준의 육신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밥벌이를 위해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분투해야 하기 때문이죠. 도시의 매연과 소음 속을 떠도는 준에게는, 가족도 친구도 심지어 호의를 베푸는 이 하나 없습니다. 남한으로 넘어오다가 엄마를 두만강에서 잃어버렸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따로 살림을 차렸으니까요. 죽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서울에서의 삶을 이어가던 준. 그가 유일하게 온기를 느끼는 상대는 주유소에서 함께 일하는 조선족 소녀 순희입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탓인지 순희는 매사 서툴기만 한데, 어찌된 일인지 주유소 매니저는 순희만 싸고도는 것 같습니다. 순희가 실수해도 준의 월급을 깎는다고 하질 않나, 귀찮은 일은 모조리 준에게만 시킵니다. 실은 매니저가 순희를 수시로 희롱하고 있었던 것인데, 이 사실을 안 준은 참고만 있는 순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준은 매니저와 갈등을 벌이고 하루아침에 해고당합니다. 체불된 임금을 받아야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정부 기관은 방관자 자세만 취할 뿐이고요. 결국 준은 홀로 주유소를 찾아가 몸싸움을 벌이다가 매니저와 격렬한 몸싸움에 휘말리는데요. 자신을 도운 순희와 함께 가까스로 주유소 밖으로 도망칩니다. 이어 덕수궁을 거닐며 데이트를 하는 두 사람. 그러나 낭만과 여유도 잠시, 순희의 집에 들이닥친 주유소 패거리들 때문에 두 사람은 또 다시 세상 밖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인사동, 청계천, 남산을 떠돌며... 수많은 사랑 약속이 난무하는 남산 자물쇠공원에서 순희와 준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듯하지만, 이들의 끝이 어떨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머물 곳을 찾아 다녀도, 어디에도 이들을 위한 자리는 없어 보입니다.
준 |
이거 무슨 말인 줄 알아? |
순희 |
야들도 사랑한단 말이네. |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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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건 중국이건 다 사랑놀음이네.
근데 이 사람들 다 결혼했겠지? |
순희 |
내는 모르지. 여기는 사진도 있다. |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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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 사진은 어떻게 찍어.
"다음 태어나면 한국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요."
지랄하네. 너도 한국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어? |
순희 |
몰라. 야도 이름이 준이다. 연아랑 준이랑 사랑한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