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그리고 냄새의 생태학
1.향수의 근대성
냄새의 사회사 문제를 다루었다고 평가할 프랑스 영화 '향수'에서 주인공 ‘장바티스트 그르누이’는 생선 비리내와 썩는 냄새에 찌든 파리의 한 시장 뒷골목 태생이다. 그가 태어난 세상은 고약한 시궁창 냄새로 가득했고, 천재적 후각을 갖고 태어난 그는 그의 세계와는 정반대의 세계에서 맡을 수 있는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는 향수를 개발하는 데 집착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마침내 최고의 향수를 개발하게 된다. 그 냄새는 사람들의 마음 속의 부정적 요소를 해소하고, 평화롭고 사랑스런 감정으로 서로 관계하게 하도록 하는 마법과 같은 효과를 갖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향수병 속에는 또 하나의 프랑스 대혁명의 잠재력이, 다시 말해 인간관계 나아가 사회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대변혁의 메세지가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주인공이 태생적 냄새로 기억하는 썩은 생선 비린내가 앙시레짐(구체제)를 상징한다면, 그의 향수는 새로운 근대사회를 상징한다고 간주할 수 있다.
향수는 전근대 귀족사회에서는 그 사용이 소수의 귀족에게 제한되었다. 영화 속에서 향수의 세례로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는 광경은 이런 제약 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다. 향수의 대중적 세례는 근대에 들어 향수가 상품이 되어 유통되고, 부유한 부루죠아를 중심으로 대중적으로 이를 소비하기 시작해야 가능하였다. 향수는 근대의 산물인 셈이다.
2.냄새의 진화
근대 상품의 보편적 특징의 하나는 교환가치를 중심으로 획일적 속성을 부여받게 된다는 점이다. 종래의 사용가치의 다양성은 점차 빛을 잃고 퇴색하고, 양적 잣대로 호환될 수 있는 교환가치의 획일적 속성이 보편화된다.
냄새 또한 상품화되면서 동일한 과정을 겪게 된다. 상품화된 향수의 냄새는 계몽, 문명, 진보, 선을 대변하는 냄새로 존중된 반면, 상품화에서 소외된 대상들의 냄새는 야만, 미개, 퇴보, 악을 대변하는 냄새로 천시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계급의 분화와 양극화는 냄새의 세계에서도 적용되기에 이른다.
최근 국제적 수작으로 주목을 받는 한국 영화 '기생충'은 계급 마다 상이한 냄새의 위계제를 잘 묘사하고 있다. 가난한 하층민이 거주하는 지하세계로 내려갈수록 쾌쾌한 하수구 냄새가 풍미하고,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높은 지대일수록 향기롭고 세련된 향수 냄새가 흘러 다닌다. 이 냄새의 위계제 하에서 지하세계에서 감지하는 땀냄새와 곰팡내는 자본이 만든 향수의 세례를 받지 못한 어둠의 냄새인 것으로 비하된다.
다양한 존재가 서로 상이한 냄새를 띠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각각 고유한 자기 존재의 냄새가 공존하는 것이 세상이다. 그런데 이 냄새의 세계에 단선적 진화의 법칙을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상품화된 향수야말로 문명의 냄새라는 논리는 상품으로 선별되는 시장논리에서 소외된 존재의 냄새에 대한 폭력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까? 향수의 근대성에 내재된 반문명적 역설이다
3.사라진 자연의 냄새들
시골 촌동네 출신인 나는 많은 원초적인 자연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다.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 봄의 훈풍, 여름의 열풍, 가을의 한풍을 겪으며, 대기를 유전하며 코끝을 자극하는 고유한 계절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봄이 되어 새싹이 돋고 날씨가 더워져감에 따라 대지는 풀냄새로 가득하고 그 농도는 짙어갔다. 아직 제초제가 보급되지 않던 시절, 풀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농사는 풀하고 전쟁이라 할 정도로 풀은 시골민의 삶을 성가시게 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를 가든지 풀과의 전쟁에서 농민들이 획득한 풀이 전리품으로 쌓여 있었다. 갓 베어낸 생풀 더미, 바짝 마른 건초 더미, 부패한 퇴비 더미, 거름과 혼합한 두엄 더미 등 등. 동일한 풀이지만 햇볕에 마른 정도와 발효정도에 따라 그 냄새는 제각각으로 달랐다.
어렴풋히 떠오르는 오일장의 모습 역시 마른 밀짚 내음으로 가득했다. 시장에는 다양한 크기의 박 바가지, 왕골, 대나무로 짠 광주리가 첩첩 쌓여 있었고 밀짚을 엮어 만든 다양한 모양의 여치집이 처마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바짝 마른 식물성 섬유질 제품들에 깃든 향긋한 풀 냄새의 여운은 아직도 인상적이다. 이 후 나이론 제품들의 등장은 시장에서 이런 제품을 몰아냈고, 이와 더불어 그 냄새도 망각의 구멍속으로 매몰되었다.
눈둑길을 걸으며 맡던 벼 익는(패는) 냄새는 나의 체험에서는 가장 향기롭고 정겨운 냄새로 기억된다. 특히 저녁 땅거미가 어둑 어둑내리고, 촌가의 굴뚝에서 밥짓는 연기가 피어 오를 무릅의 벼 패는 냄새는 어린 나를 아득한 무아경의 후각적 체험의 세계로 데려갔다.
논은 나에겐 놀이터였다. 논에는 다양한 종류의 잠자리, 메뚜기, 미꾸라지, 붕어, 곤충의 유충과 거머리 등 지금은 그 이름조차 알수 없는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었고 각각 고유한 냄새를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논둑길을 맨발로 걸으며 느끼는 차진 찰흙의 감촉을 통해서도 그 특유한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추수 끝난 가을 들녁의 볏단, 서리 맞으며 우뚝 서있는 낟가리 등 사람들의 주된 시야에서 벗어나 존재하는, 한갓 생명 없는 짚풀 더미도 인간의 후각에 대해 마땅한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있었다.
4.생명의 냄새 vs 기계의 냄새
모든 생명체는 동화작용/이화작용의 상반된 생체적 과정의 결합 속에서 존재한다. 그 때문에 어떤 생명체이고 상반된 냄새를 동시에 발산한다. 밥 냄새와 똥 냄새. 후각에 관한한 생체가 갖는 생리적 한계이다
그러나 기계는 다르다. 기계는 인간의 조작 여하에 따라 하나의 작용만 무한 반복할 수 있다. 그리고 기계의 냄새는, 그것이 정교화되어 갈수록, 인간이 인위적으로 입력하는 선택된 냄새만을 고급화시켜 갈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향수(기계의 냄새)는 인간이 만든 냄새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자연적인, 특히 이화작용의 냄새를 부정하고 배재한다. 어쩌면 인간의 오감 중 후각이 가장 자연적인 냄새로부터 괴리되어, 인위적이고 추상적인 냄새에 현혹되기 쉬운 속성을 갖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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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매력이라는 것은 총체적인 미적 감수성이지만, 후각에 제한하여 말한다면, 실제 인간의 냄새가 인위적 냄새를 능가할 수 있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은 자연과 노동으로부터 괴리된 후각적, 미적 감수성이 문화적으로 조장되는 한, 인간의 냄새가 결코 기계(인위)의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없을 것으로 예단된다. 노동과 쾌락, 땀과 향수가 이분화되고, 전자가 후자에 비해 열등 범주로 설정되는 문화에서는, 생명체의 냄새가 설 지반이 점차 잠식되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향수(기계 냄새)는 과연 자연의 냄새와 공존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일까. 나의 후각적 경험이 말하는 지혜로는 가능하다는 답변을 하고 싶다.
메주 띄우는 냄새, 강한 햇살 아래서 잘 발효되는 두엄 냄새, 참나무 관솔의 강산성의 시큼한 분비물 냄새, 그곳에 모여들던 풍뎅이들이 풍기는 소똥 냄새, 마른 말똥 더미 아래에서 막 잡은 말똥구리의 냄새, 메뚜기 잎에서 내뿜는 붉은 분비물의 냄새...
오늘날 향수 문화에서는 나쁜 냄새로 낙인되어 추방될 것임이 분명한 것들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이들과 전혀 역겨움 없이 친숙했고, 지금도 이들 냄새는 아름다운 후각의 추억을 구성하고 있지 않은가?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현대문명의 기계선호 경향은 죽음선호 본능(Necrophilia)에 기반한 것이고, 문명의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를 생명선호 본능(Eros)으로 대체해야 할 것임을 역설하였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향수로 대변되는 인위적인 냄새의 편식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생명의 냄새는 그 자체로 보존 가치가 있고, 그 보존 여부는 문명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잣대이다. 방향제와 향수 보다는 살아 있는 생명체의 땀과 살의 냄새에 더욱 친화감을 느끼는 후각적 감성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생태환경을 회복하기 위한 병든 지구의 절대절명의 요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