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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나는 인생사
명심보감을 읽다보면 계성편戒性篇에 이런말이 나온다
범사凡事에 유인정留人情이면 후래後來에 호상견好相見이라
무릇 어떤일을 하면서 함부로 대하거나 딱 잘라 거절하지 말고 다음에 생길수도 있는 일을 생각하여 인정을 남겨두면 나중에 만나게 될때 아쉬워 하지 아니하고 좋은 얼굴로 만날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어려서 서당에서 명심보감을 읽고 이말을 좌우명으로 삼으면서 지금까지도 잊어본적이 별로없다
내 마음에 깊숙히 자리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처럼 몰인정 스럽게 내 팽개치고 후일에 아쉬워 하고 후회할수도 있다는말인데 오래도록 지금 까지도 내마음에 자리하고있다
우리 말에도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있다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수원讐怨을 막결莫結하라 로봉협처路逢狹處에 난회피難回避니라 역시 명심보감에서 읽었다
좁은길 외나무 다리에서 만났으니 어찌 피할가
오래전 소화가 잘 않되어 활명수를 사러 약국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에 우연히 나에게 금전적으로 손해를 입힌 사람을 만났다
모르는척 하고 슬그머니 피하려는 그를 잡고 손을 내밀자 당황하면서 어쩔줄 몰라하는 그는 입막음로 점심을 대접
하겠고 하기에 따라 들어갔다
점심을 먹으며 그는 자신이 처해있는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의 측은한 사정을 듣고 굳이 사양하는 점심값을 지불하고 나왔다
마음으로는 괘씸하여 뺨이라도 한대 갈기고 모지락 스럽게 한마디 해보고 싶었지만 금전적인 손해야 오래되였으니이미 잊혀진 일이고 그래도 내가 그놈보다 사정이 좀 나으니 점심이라도 살수 있는것에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 속는셈치고 그를 편안하게 돌려보냈다
남의돈 떼먹고 잘사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밉지만 형편이 괜찮아 점심을 잘얻어 먹을수 있었으면 했다
그런데 그조차 허용되지 않는것은 그를 미워하거나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
내가 객지에 나온후로 어려울때는 가장 위로받는것은 조용히 흐르는 무심천이나 잔잔한 강물이다
조용히 흐르는 물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것 같은 따뜻한 느낌과 더불어 모든것을 잊게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앞을 다투거나 조금도 자기멋대로 가지않고 그저 앞만보고 낮은곳을 찾아 가기때문이다
때로는 가까이에 있는 조용한 산을 찾기도한다
산은 언제나 편안한 느낌을 받아서 좋고 또한 푸른 하늘을 바라보느라면 마음이 날라갈것 같이 가벼움을 느낀다
그래서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했으며 지자요수智者樂水라고 했나싶다
상선약수上善樂水라고 물처럼 살라는 노자님 말씀을 생각하며 답답함을 스스로 달랜다
가슴이 트이는것 같기도 하고 막혔던 체증이 뚫리는것 같기도 하다
강가에 가면 하루종일 햇볕에 따끈따끈 구어진 하얀 모래가 발바닥을 감싸며 간지름할때의 쾌감은 잊혀지지 않는다 마치 따뜻한 아룻목에 깔아놓은 이불속에 부채살처럼 여러 오누이가 발을 묻고 편안히 누어있는 그런 기분이다
오늘도 어디에서 어떤 또다른 새로움이 기다릴것 같아 해변을 찾아 파도가 출렁이는 너른 바다를 바라보며 모래 깊숙히에 발을 묻는다
역시 포근한 느낌이 들며 슬며시 눈이 가물가물 하며 긴장이 풀어진다
다정스레 바다가 나를 부르는 착각에 옷을 벗어 모래벌판에 가즈런히 포개 놓고 바다로 뛰어든다
이럴때 수영이라도 배웠더라면 시원스럽게 물장구라도 치련만 수영을 배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웁다
이것저것 많은것을 아는것 보다는 때에 따라 조금이라도 두루두루 할수있는 팔방미인이라도 되었으면 어떨가
우리말에도 오색잡놈이란 말이있다
온갖 못된 짓을 거침없이 다하는 잡놈이란 뜻으로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못된놈이라고 들릴지 모르지만 자세히 들이어다 보면 오색잡놈 이라해서 무슨일이든 가리지 않고 다할수있다는 말을 뜻하기도한다
약간 멀리 떨어진 저쪽에서 무슨일인지 왁자지껄 하는 소리가 나의 귀를 유혹시킨다
할일이 없으니 초상집 개처럼 괜히 남의 잔치에 얻어 먹을게 있나 두리번 거리듯이 그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젊은 청년 대여섯이 늙은 할망구와 실랑이를 하며 다투고있다
다투기 보다는 청년들이 무얼 잘못했는지 늙은 할망구로부터 일방적으로 호된 질책을 받고있다
- 아니 형님이 여기 웬일이시우 ! - 뜻하지 않게도 그속에 있던 청년 하나가 내앞으로 다가온다
- 김성태 ! 여기서 성태를 만나게 되다니 -
뜻하지 않게도 여기서 성태를 보니 성태 어머니의 찌든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얼굴과 마음만은 천사처럼 고우신데 어찌다 오색잡놈인 남편을 만나 아이들만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자기혼자 이리저리 쏘다니기만 하니 온갖 고생은 이루말할수 없었다
그래도 이따금 막내둥이 공부 지도해준다고 있는것 없는것 챙겨주기도 하는 어머니 같은 분이셨다
성태는 내가 서울에서 자취하고 있을때 주인집 아들로 나보다는 두살 아래다
- 아니 어떻게 여기서 -
- 아버지가 여기로 내려오셔서 같이 왔어요 우리들은 아버지 호위무사로 같이 온거죠 -
같이온 일행인 듯한한 청년들도 다가오드니 덩달아 가볍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모두가 하나같이 덩치가 클뿐만이 아니고 어깨가 딱 벌어진것이 아마도 어디에 가든지 한가닥씩 할것같이 생겼다 어찌어찌하다 할머니의 낙지 항아리를 깨트리고 낙지마저 달아나는 사고를 첬다는것이다
실랑이 끝에 약간의 손해를 변상해 주기로 하고 겨우해결 되었다
너른 모래사장위로 하얀 거품을 가득 물고온 파도가 코앞까지 넘실거린다
우연이지만 오랜만에 성태아버지도 만나볼겸 성태가 이끄는대로 일행을 따라 간곳은 골목뒤 깊숙이에 있는 있는 [진주옥 ] 뒷방이다
성태 아버지 김영운씨는 젊은 아낙과 같이 짐을 정리하고 있다가 나를 보자 의외라는듯 반갑다며 손을 내민다
젊은 아낙이 애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가 갑자기 닥친 젊은이들에게 무안한지 얼른 가슴을 가린다
김영운씨도 민망한지 얼른 우는 애기를 받아 안으며 아낙의 앞을 가로 막는다
평소 바람깨나 피웠다는 성태 어머니의 푸념이 단순히 푸념이 아닌 현실임을 보는 순간이다
서른이 채 못되었을 딸같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두집살림을 차렸다는 사실은 당시엔 화제거리였다
그런사실이 여기에서 확인된 것이다 여하튼 놀랍고 능력있는 사람이다
이곳 SK 산업에 공장장으로 오게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기서 같이 일했으면 어떻냐는 제안이다
SK 산업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100여명의 종업원이 일하는 조그마한 사문암蛇紋岩 광산이다
사문암은 철분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돌로 그것을 잘게 부수어 타우루 공화국에서 수입하는 인조석人造石
과 화학작용을 시키어 소위 토질을 개량 시키는 용성인비라는 비료를 만들어 농촌에 보급시킨다
또한 사문암을 잘게 부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불량품은 건축자재로 바닥 콩크리트 하는데 쓰인다
진주옥에서 그리 멀리 떨어저 있지않은 광산에서 돌을 부수는 크랏샤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학창시절 김영운씨 댁의 뒷방에서 자취하면서 틈틈히 이집 막내둥이 봉태의 학습을 돌보아 주었는데 맨끝에서 대롱대롱하던 녀석이 그만 명문 고등학교에 덜커덕 합격했다
그것도 아주 좋은 점수로 붙었으니 말이다
김영운씨는 입이 째지게 기뻐하며 그것이 내가 지도해준 덕이라고 항상 떠벌리면서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다
당시 그는 달리기면 달리기 축구면 축구 농구면 농구 운동이라면 내노라 하며 힘깨나 쓰는 실업자 건달로 가정이야 어찌되었던 여전히 뜬구름만 잡고다녔다
그러던 그가 SK 사장과 고등학교 동기라는 이유로 이곳에 낙하산타고 내려온것이다
건달로 돌아다니다가 호구지책으로 친구의 신세를 지게 되었으나 아는게 별로없는 그로서는 아마도 내가 자기 나름대로 필요하지 않을가 하고 생각한 것이다
나에게도 어쩌면 아주 좋은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주판질하면서 유혹하고 있다
보름여 뜨네기처럼 돌아다니며 문전걸식 하다시피 다니면서 고생좀 했으니 당연하지 않을가
마음 먹기에 따라 당분간이라도 고생은 끝일텐데 왠지 썩 마음을 끌어당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었일가
처음 무전여행을 떠날때는 적어도 두달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 목표를 겨우 반에 반지점에 와서 흔들린다면 과연 바람직 스러운 일일가
- 어쩌겠나 나와 같이 일좀 하겠나 ? 내야 뭐 아는게 있나 운동 빼놓고는 아는게 없으니 자네가 나를 도와 주어야겠어- 영운씨와 둘이서 마주앉아 조용한 식당에서 저녁을 하면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 예 말씀 고맙슴니다마는 저는 뜻한바 있어 보필하지 못할것 같슴니다 -
- 그래 ? 그뜻한바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마음이 돌아서면 언제든지 찾아오게나 기다릴테니 -
중국의 주나라 주희朱熹가 말하는 사희四喜에는 이런 말이 있다
대한봉감우大旱逢甘雨 애타게 기다리는 오랜 가믐끝에 내리는 단비 !
타향봉고우 他鄕逢故友 타향에서 우연찮게 만난 옛고향 친구 !
동방화촉야 洞房華燭夜 그리도 좋아하던 젊은부부의 첫날밤 !
금방괘명시 金榜掛名時 길고긴 십년의 고생 끝에 당당히 찾아온 장원급제 !
이 네가지를 가리켜 네가지 주희의 사희라고 했다
어느것 한가지도 기쁘지 않은게 있을까
타향에 나와서 옛고향친구를 만날때의 기쁨이라더니 아주 오랫만에 한식구나 다름없이 아껴주던 사람을 만난것이다
정말 반갑기도 하고 그분의 부탁을 받아 드리지 못하는 것이 많이 안타깝기도 하다
그까짓 시골 광산 정도를 탐내서 내가 서울에서 사표를 던진건 아니잖아 !
이왕 마음먹고 나선 길이니 어떻한 고난이 있드라도 후회없이 마무리 해볼거야
어떤 후회도 하지 않을거야 !
잡고 매달리는 성태와 김영운씨의 유혹을 뒤로하고 나와서 목노집에 들러 대포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어둠이
깃든 녹슨 철길위로 걷고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랬다지만 이 고생이 과연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가
대나무가 마디마디 옹이를 만들며 자라듯이 옹이와 같이 시련과 좌절을 겪으면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찾는것이 나의 목적이 아닌가 열심히 갈고 닦아 나자신을 보다 강건하게 다듬는것이다
쓸데없는 고집이라 생각말고 나자신을 대장간의 쇠꼬치 달구듯 단련되어 좋은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어둠속의 녹슨 철길은 어디까지 이어젓을가
길게 뻣쳐있는 이길은 어쩌면 내가 가야할 이정표인지도 모른다
아픔이 있고 쓰라림이 있고 고통이 있고 안타까움이 있고 외로움이 있는 가시밭길이다
저멀리 아득한 곳에서 반딧불 만한 조그만 불빛이 보인다 그리고 불나비처럼 그불빛을 향하여 가는것이다
어쩌면 저불빛이 있는곳이 나의 오늘밤 쉼터가 될지 모른다 또 어떤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가
걸음도 당당하게 가고가고 또가리라
가다가 넘어지면 받침목서 쉬어가고
철마가 다가오면 언덕아래 내려가서
풀버레 소리따라 휘파람을 부르리라
삿갓없는 방랑시인 또오늘은 어드메로
저드높은 하늘에는 둥실둥실 뭉게구름
따라가며 머믄곳이 내갈곳이 아니런가
시한수를 읊으면서 찾아가는 나의쉴곳
잠시쉴때 보고싶은 나의사랑 하얀미소
너의얼굴 그리면서 하얀밤을 지새운다
오늘따라 너의미소 눈앞에서 아른이고
힘내라고 응원이나 받고싶은 나의심정
성태어머니의 찌든 얼굴이 잠시 스처 지나며 곧바로 살며시 웃는 모습도 같이 떠오른다
바람결에 잠시 스처가다가 가믐에 콩나듯 찾아와 몇푼 던저주는 남편을 기다리는 그녀는 과연 성녀일가
나는 나고 너는 너 라는 이기적인 세상속에서 어쩌지 못하고 자식들만을 바라다 보는 여인이다
그래도 이따금 반찬을 가지고 와서 내방에 넌즈시 들이 밀고 나가실 때의 미소는 천사와도 같았다
그분의 미소 !
살수도 구걸할수도 빌리지도 훔칠수도 없는 상냥한 미소를 가지고 계셨다
누구엔가에게 주기전에는 아무런 쓸데가 없는 미소지만 돈이 들지 않으며 힘이 들지 않으니 붙잡고 계신지 모른다
그러나 그분은 충분히 알고계신것 같았다
아무리 주어도 조금도 밑지지않고 오히려 마음에 부자가 된다는것을 !
하루해가 저물어 가면서 오히려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것이고 한해가 저물어 갈지음에야 귤은 잘익어 더욱더
향기가 있다고한다
어려움을 자식들에게 보이지 않고 혼자서 미소로 이겨나가는 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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