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집 여자/ 송종규
떡집 여자가 전원을 켜면
바쁘게 벨트가 돌아가고
밥알이 납작해지고 근대사가 납작해지고 악기가 납작해지고
남은 오후가 납작해진다
압축기 하나로
그 여자는 무엇이나 박살 내고 그것을 짓이겨 새걸로 만든다
그 여자의 손에서 당신은
아홉 살 소년으로 뭉클, 피어나고
나는 긴 머리 찰랑거리는 포플러 곁에
팻말처럼 심겨진다
질기고 오랜 시간도 떡집 여자가 돌리는 기계 속에서는
붐붐붐붐 가볍게 튕겨 오른다
죽은 나뭇잎, 젊은 남자, 빨간 전화기를 만들어내는
그 집을 기웃거리면서
나는 희망과 소멸을 꿈꾸고
구름의 집을 짓고 따스한 김이 나는
말랑말랑한 아이를 낳는다
그 여자가 더 이상 희망과 절망을 반죽하려 하지 않을 때
나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고
두려워라, 세상은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겠지
그 좁고 더러운 유리창 안 동력기 벨트가
툭, 끊어질 때
- 시집『녹슨 방』(민음사, 2006)
떡집 여자가 전원을 켜자 다채로운 이미지가 생성 전개된다. 그야말로 떡 주무르듯 '무엇이나 박살 내고 그것을 짓이겨 새걸로 만든다' 그 이미지가 갖는 힘으로 세상을 반죽하고 압축하며 다시 태어나게 한다. 이 떡집이 있어 지긋이 눌러주고 가루로 만들어 반죽해 내기에 그나마 세상은 제 나양대로 마구 부풀어오르지 않고 숨죽여 말랑말랑해지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