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에서 막 전역한 엘비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는 들뜬 기분으로 친부 데이빗(윌리엄 허트)을 찾아간다. 사생아로 태어난 엘비스에게 아버지는 유일한 핏줄이자 희망. 한편 데이빗은 목사가 되어 새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기대와 달리 냉담한 데이빗과,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사랑받는 그의 아들 폴(폴 다노)로 인해 깊이 상처받은 엘비스는 데이빗의 딸이자 자신의 이복동생인 맬러리(펠 제임스)에게 접근한 뒤, 이들 가족을 향한 끔찍한 복수를 펼친다.
<더 킹>은 <위스콘신 데스 트립>으로 데뷔해 <맨 온 와이어>로 2008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거머쥔 제임스 마쉬 감독의 작품이다. ‘성스러운 것-성서’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영화는 불완전함을 극복하기 위해 신에게 의지함으로써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 안온한 세계와, 그 뒤 풍경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엘비스의 희망찬 표정과 가벼운 걸음걸이로 영화는 시작한다. 하지만 그 희망이 절망으로, 자신을 저버린 이들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엘비스가 이복동생 폴을 질투하는 설정은 성서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엘비스의 복수 앞에 데이빗이 꾸린 새 가정도 맥없이 무너진다. 자신을 거부하는 아버지에 대한 엘비스의 분노는 이중적이고 허위에 찬 인간, 그들에게 참회와 합리화의 기회를 허락한 신에게로 넘어간다.
‘더 킹’이라는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엘비스에게 있어 왕의 자리는 그토록 찾고 싶었던 아버지도, 사람들이 떠받드는 신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는 종이로 만든 왕관을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복수를 위해 잔인한 행동을 하면서도 그의 표정이 태연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당신의 신에게, 해결하라고 해보시지.”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든 후 내뱉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 <더 킹>이 그리는 세상은 신의 무용성과 인간의 모순, 허위에 직격탄을 날리는 비관의 세계다.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이 복수극을 풍요롭게 만든 건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다. 엘비스 역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감정을 숨긴 무표정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장전할 줄 아는 비상한 재주의 소유자임을 입증한다. 윌리엄 허트는 냉담하고 모순적인 아버지 역에 제격이며,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1인 2역을 완벽히 소화한 폴 다노의 호연도 한몫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