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 권여사는 어찌 지내우? "
" 권! 그 까미 말이야 ? "
" 에휴! 말 말어 그 놈의 여편네두 지지리 복두 없구 머 요즘 종암동 다방에 나간다네 "
야채곱창과 순대곱창을 섞은 술안주에다 소주 한 병을 가운데 놓고 한 여사와 마주 앉았다.
" 햐! 우리 몇 년만이야? 전화로만 이야기했네 그치? "
조그만 책도매상에서 경리로 일하다가 구조조정에 밀려 해직된 후, 하루에 왕복 세시간 이십분이 걸리는 일산의 책도매상을 소개 받아 다녔는데, 그 곳두 장사가 잘 안돼 구조조정됐다고 일자리를 좀 알아보아달라는 터였다.
자그마한 키에 쌍꺼풀이 아니라 쓰리훠커플의 눈주름이 똥그란 눈에 내 귓가의 흰머리칼처럼 세월을 함께 먹는 울컥이 그렇지 않아도 쓴 소주에 더욱 썼다.
" 어뚜케 요즘 할아버지하고 러브스토오리는 아직두 여전하우? "
" 그렇지 머 "
" 요즘 그 영감탱이두 장사가 잘 안돼서 에휴! "
" 아니? 이렇게 예쁜 영계애인이 실직했는데 어디 자리 좀 안알아봐주나? "
나는 깻잎에다 곱창을 놓고 마늘과 고추를 하나씩 올리면서 물었다.
" 아휴! 말 말아 어디 소개시켜주는데라고는 죄다 식당이니 "
항상 술 만 마시면 재털이를 날리고 그 때문에 순경을 부르고 하여, 동네 창피하다고 몇 해전에 전남편과 이혼한 한여사가 을지로인쇄소 늙은 사장을 알게 된 것은, 까미라고 불리우는 권여사가, 쌍문동 모 호텔 옆에 늘푸른 호프집을 개업한지 몇 달 지나서 였다.
얼굴이 달걀모양 생긴데다 피부는 까무잡잡하고, 게다가 허리는 모래시계허리처럼 사내들이 안으면 쏙 들어갈 것 같은, 말 그대로 섹쉬우먼 권여사가 장사를 시작하고 난 후 부터는 복덕방, 방앗간, 정육점, 세탁소, 사진관, 등등 동네 사장님들이 저녁마다 동네 암캐 숫캐들이 쫓아다니듯 모여드는데, 생맥주 오백씨씨 한 잔 딱 시켜놓고 땅콩안주 까먹으면서 권여사가 옆에 앉아주기를 오매불망 낚시꾼 붕어 기다리듯 하염없는 이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권여사가 테이블 돌아다니며 앉기라도하면 병맥주에다가 과일안주로 메뉴가 바뀌는 것이 보통이었다.
가게가 요로코롬 중년부터 황혼인생들까지 꾸역꾸역 모이니, 일손이 바쁘다는 아주 즐거운 핑계로 한여사도 한 손 도와준답시고 가끔 나왔는데, 마침 동네 복덕방영감과 친구인 을지로인쇄소 사장이 술마시러 왔다가, 그 날로 한 눈에 한여사에게 홀딱 반해서 그 날 부터 노래방이니, 일식집이니, 횟집이니, 등산이니, 하여 머 만리장성까지, 일사천리로 가끔 생활비도 대주니 말 그대로 한여사는 일락서산(日落西山)에 동충하초(冬蟲夏草)였다.
" 에휴 근데 이젠 잘라버릴라구 해! "
" 경기가 안좋으니깐 이 영감탱이가 생활비두 잘 안주네 "
소주 두 잔을 마신 한여사의 얼굴에는 붉은 반점들이 구름처럼 퍼져 나고 있었다.
" 한 여사 한 잔 더 할려? "
" 아냐 난 딱 두 잔이야 "
나는 국물김치를 숟가락으로 떠 마시면서 물었다
" 그래 권여사는 어뚜게 전 남편이 안받아준데나? "
" 아이구 말마라 남편이 재혼하구 새살림차리란단다 자기는 이제 못 받아들인다고 "
" 애들도 그런데 엄마 재혼하라구"
" 애들이 그러니깐 글쎄 눈물이 나더래 어떻게해서든 집에 들어와서 함께 살자는 말은 안하고 재혼하래니깐 "
권여사가 늘푸른 호프집을 개업하고 그 다음해 사월 춘풍에 의기양양하게 돛을 단 것은 고향에서 고추꽃 피던 시절 함께 어울려 놀던 동네 남자친구가 우연히 술마시러 왔다가 불혹이 지나고 이십 몇년만에 만난 그 날 이후였다.
이미 서로가 결혼을 해서 애를 둘씩이나 가지고 있던 둘인지라 첨에는 서로가 점잖하였으나 사내가 먼 길을 마다하고 매일 들려 늦게까지 남아 술을 팔아주니, 가게가 끝나면 노래방이니 브루스니 하여 서로가 밀착하기를 엠오티이엘, 에이취오티이엘 등등, 여기 저기로 나중에는 북한산 아래 수유리 장미원 연립지하에 삭월세방까지 살림을 차리는 지경에 이르도록 끝장을 보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 야! 얼굴 반반한 남자 인물값 한다구 글쎄 그 인간두 아무튼 "
" 아니 그럼 그 남자하구 헤어졌나? "
나는 벽에 붙어있는 휴지철에서 휴지를 떼어네어 테이블에 떨어진 국물을 닦으면서 한여사를 바라 보았다.
" 그래 요즘 권여사는 그럼 혼자 사나? "
" 하이구! 그 까미가 남자없이 혼자 살 애냐? "
" 갸두 불쌍한 애여 가만 보면 팔자라구는 지지리 복두 에휴!!"
" 가난한 경상도 산골짜기에서 태어나서 맘에두 없는 사람하구, 에구구!! 그것두 나이 차이두 많이 나는 남자하구, 이제 오십 넘어서 단란주점이니, 다방이니, 흘러다니면서 봐라!! 마냥 봄날 몸 탱탱한 것두 아닌데? "
"아줌마 여기 국물김치 좀 더 주세요!"
" 그 팔자나 이 인생이나 지지리 남자 복두 없지 "
한여사는 휴지로 입을 연신 닦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 아무튼 그래도 그 까미한테 시집 오라고 해남서 농사짓는 인간이 하나 있다던데, 까미가 신용카드 불량자 아녀? 이천만원인가? 천만원인가? 근데 그 인간이 자기가 빛 다 갚아줄테니께 와서 같이 살자구 한다는데, 인상이 좀 험악하게 생겼다더구만 "
" 하이구 잘됬네! 그랴두 아직 탱탱할 때 가야 머 사내두 따끈따끈하구 좋겄지 "
" 으이구 "
" 아줌마 우리 돼지껍데기 이인분하구 닭발 이인분하고 준비 좀 해주쇼!"
앞 이마가 훌떡 벗겨진 한 사내가 추리닝 차림으로 들어와서 큰 소리로 왁자지껄 하였다.
" 그래서 내가 이번에 쉬는 동안 까미하고 해남 한 번 갔다오기로 했지. 그 사내가 참 하면 이 번에 시집보낼려구 "
" 그럼 한여사는? 한 여사는 시집안가구? 저 올드 할아버지하구 러빙만? "
갑자기 한 여사는 핸드폰을 열었다.
" 응! 응 ? 여기? 여기가 어디냐면 북부경찰서 뒤 곱창집이야! 자기! 이리 올꺼야? 응! 알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