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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4년에 간행된『세종지리지』를 저본으로, 성종 12년과 성종 16년에 두 차례 수정한 후 성종 17년(1484)에 다시 증산(增刪)·수정하여 35권을 간행한『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 있고, 그 후 연산군 5년(1499)과 중종 25년(1530)에 두 차례의 신증(新增)이 더 해져 전55권의『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 간행되었다.
아래의 내용은 1530년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려있지만, 1484년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최소한 1484년, 최대한 1530년 경까지는 전라도 창평(昌平)에서 우리 신죽산안씨가 토착세거했다고 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제39권 전라도(全羅道) 창평현(昌平縣) 기록을 보면
동쪽은 옥과현(玉果縣) 경계까지 25리, 담양부(潭陽府) 경계까지 11리, 북쪽은 담양부(潭陽府) 경계까지 11리, 남쪽은 동복현(同福縣) 경계까지 34리, 서쪽으로 광산현(光山縣) 경계까지 11리이며, 서울에서는 7백 52리 떨어져 있다.
【건치연혁】 본래는 백제의 굴지현(屈支縣)이다. 신라 때 기양현(祈陽縣)으로 고쳐 무주(武州)에 부속시켰고, 고려 때에는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어 일명 명평(鳴平). 나주(羅州)에 부속시켰다. 전하는 이야기에, 현의 아전 탁자보(卓自寶)가 남적(南賊)을 막은 공이 있어 현령으로 승진되었다. 공양왕(恭讓王) 3년에 장평갑향 권농사(長平甲鄕 勸農使)를 겸하게 되었고, 본조에서도 이에 따랐다. 성종(成宗) 5년 현인(縣人) 강구연(姜九淵)이 현령 전순도(全順道)를 능욕한 일로 광주에 예속시켰다가 10년 만에 다시 전대로 하였다.
【관원】 현령(縣令)ㆍ훈도(訓導) 각 1인.
【군명】 굴지(屈支)ㆍ기양(祈陽)ㆍ명양(鳴陽)ㆍ명평(鳴平).
【성씨】본현안(安)ㆍ조(曹)ㆍ신(辛)ㆍ정(丁)ㆍ김(金)ㆍ탁(卓)ㆍ전(全)ㆍ성(成), 이(李)ㆍ함(咸)ㆍ정(鄭) 모두 내성(來姓)이다. 장평(長平) 신(辛)ㆍ김(金)ㆍ유(柳) 박(朴)이라고도 한다. 현(玄)ㆍ원(元). 갑향(甲鄕) 진(陳)ㆍ승(昇).
【성씨】 본현 안(安)ㆍ조(曹)ㆍ신(辛)ㆍ정(丁)ㆍ김(金)ㆍ탁(卓)ㆍ전(全)ㆍ성(成), 이(李)ㆍ함(咸)ㆍ정(鄭) 모두 내성(來姓)이다.
번역문 대로만 읽고 이해하면 마치 창평현 본현의 안(安)씨를 포함한 11개 성씨는 모두 내성(來姓)인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위 원본 사진을 자세히 보면 이해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 안(安)ㆍ조(曹)ㆍ신(辛)ㆍ정(丁)ㆍ김(金)ㆍ탁(卓)ㆍ전(全)ㆍ성(成)의 8개 성은 토성(土姓)이고, 이(李)ㆍ함(咸)ㆍ정(鄭)의 3개 성은 내성(來姓)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