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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단지(人間團地)
김 정 한
비록 음성이라고 하지만, 눈이 뒤틀리고, 입이 비뚤어지고, 손가락 발가락이 문드러져 나간 나환자들이 들어갈 감방은 없었다.
현대식 위용을 자랑하는 새 청사 안은 물론, 그 뒤쪽에 있는 특수용위자들의 취조장처럼 돼 있는, 헐다 남은 구청사의 일부에도 그들이 들어갈 곳은 없었다. 가뜩이나 세밑 경계가 엄한 때라 늘어난 통금 위반자를 비롯해서 사기꾼, 절도, 강도, 공금 횡령, 졸때기¹ 밀수, 매음…… 이런 따위들이 벌써 다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닌 밤중에 갑자기 끌려간 이십여 명의 음성 나환자들과, 그날 밤 편싸움을 벌인 역시 이십여 명의 부랑 청소년들은 새 청사 뒷마당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물론 두 패는 따로 떨어져서.
아까부터 청사 안으로 불려 들어간 쌍방 대표자들은 오랫동안 나오질 않았다.
나환자 측 대표의 한 사람인 우중신 노인은 주소 성명을 묻는 첫말부터 거의 반말을 쓰는 듯한 젊은 수사관의 태도에 몹시 비위가 상했다.
‘아직 왜놈들이 쓰던 말버릇 그대론가베?’
그래서 이름만을 대고, 주소는 아는 것 아니냐고 일부러 빗나갔다.
“직업은?”
“문딩이요.”
우중신 노인은 내뱉듯 말했다.
“자유원에 들어온 건 언제부터요?”
자유원이란 건 우노인이 들어 있는 음성 나환자 수용소의 이름이다. 그는 원장이 구속된 뒤, 제소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추대한 새 원장(법률이 인정하지 않는) ㅡ말하자면 대표자였지만, 그것만은 다행히 고자질이 되어 있지 않았던지, 따지려고 하지 않았다. 우중신 노인은 되도록 침착한 태도로 대답했다.
“지금의 수용소가 될 무렵부터…….”
“그럼, 박원장님 하고는 처음부터 알았겠구먼요?”
젊은 수사관은 왼손으로 턱을 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쏘아보았다. 정 나미가 떨어지는 맵새눈이었다.
“네.”
“십 여 년이나 신세를 진터인데 어떻게 이해를 못 하고서 진정서를 내고, 또 편쌈까지 하고…… 그래서 되겠어요?”
손자 나이밖에 안 돼 뵈는 녀석이 숫제 훈시조다.
“여보 젊은 나리! 대관절 취조를 하는 기요, 멀 하는 기요? 진정서를 낼 만하면 내는 기고, 싸움은 저쪽에서 떼를 지어왔으니 할 수 없이 막은 긴데…… 우선 이쪽에서는 병원에 실려 간 사람이 및〔몇〕이나 안 있소? 잘밤² 별안간 들이닥치는데 사지가 옳찮은 사람들이 그래 우짜〔어쩌〕겠소? 밤중에 몽둥이랑 삽을 들고 쳐들어와서 사람을―인간을 말입니다―개 패듯이 마구 팬 놈들은 잡아 가두지도 않고 와 우리만 이라는 기요? 예, 나리? 이라는 기〔게〕이 나라 법이오? 법을 지킨다는 사람들이이라기요?”
우중신 노인의 엉성한 수염이 그예 그의 흥분을 나타내듯 덜덜거렸다.
제까짓 늙다리가 떠들어본들! 싶었겠지만, 우선 침방울을 튀기는 게 정나미가 떨어지는 듯, 젊은 수사관은 상반신을 뒤로 더욱더 젖히더니,
“그러니까 좋게들 하라고 타이르는 게 아닙니까? 먼저 싸움을 걸어온 쪽이 물론 나쁘지만, 그렇다고 같이 때리고 치고 한 쪽도 잘했다고는 할 수 없거든요. 원장님도 관대히 봐달라고 일부러 말씀하시고 해서……!”
“머, 원장이?”
우노인은 저승꽃이 핀 얼굴에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크게 실망한 얼굴이었다. 동시에 그의 도톰한 입술은 굳게 다물렸다.
“네, 조금 전 석방된 박원장님께서 그러구 돌아가셨어요.”
젊은 수사관은 나이 깜냥엔 아주 능글능글해 보였다.
우중신 노인은 더 할 말이 없었다. 십 년 전 기백의 반만 남아있었더라도 앞에 있는 책상이든 뭐든 마구 뒤엎었을 테지만, 그저 외롭고 슬퍼지기만 했다. 그는 벌써 나이가 칠순에 가까웠다.
“그러니까요.”
수사관은 그제야 약간 누그러지면서,
“이젠 진정서 같은 것도 더 낼 생각은 마시고…… 사람은 누구나 다 다소의 실수는 있는 거 아닙니까! 좋게 돌려보내 드릴 테니 서로 의좋게들 지내도록 하시오. 네, 아시겠어요?”
제법 명수사관답게 아량을 베푸는 듯한 소릴 얼버무렸다.
‘한통속이다!’
우노인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일어서라기에 일어섰고, 밖으로 나가라기에 따라 나갔을 따름이다.
그들을 습격했던 희망원ㅡ같은 박성일 원장이 경영하는 부랑아 수양원ㅡ의 젊은 애들은, 벌써 먼저 훈계 방면이 되어 떠나고 없었다. 물론 그런 행패를 부리고도 한 사람의 희생자도 내지 않고……
문둥이들도 일장의 훈시를 듣고 몇 사람의 순경에게 보호되어 경찰서를 떠났다.
그들이 자유 없는 자유원에 돌아온 것은 밤 두시가 지난 뒤였다. 수용소에 남아 있던 이백여 명의 문둥이들도 거의 자지 않고 있었다. 가벼운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내처 끙끙거리고, 바른총으로³ 대학병원으로 실려 간 네 사람의 중상자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머리가 깨진 둘은 벌써 어떻게 됐을는지도 모른다.
맞은편 산등성이에 자리 잡고 있는 희망원에도 방마다 불이 발갛게 켜져 있었다. 놈들도 이제쯤은 돌아갔으리라 짐작되었다.
우중신 노인은 나이 덕에 그의 자리처럼 돼 있는 아랫목에 가 누웠으나 잠이 올 리 만무했다. 말이 아랫목이지 더운 기라곤 없다. 게다가 지대가 높아선지 창틈으로 스며드는 황소바람이 또 차가웠다. 가뜩이나 얼어서 돌아온 몸이 얼른 풀리지 않았다. 다리를 뻗어보자, 아까 불량배들에게 차인 허구리짬이 새삼 뜨끔뜨끔 마쳐오기⁴ 시작했다. 생각할수록 싱겁고도 분하고 슬픈 일이었다.
솔직히 말한다면, 다 같이 불우한 처지에 놓여 있는 부랑아들이 음성 나환자들을 밤중에 습격해야 할 자기들대로의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많은 사람들이 박이 터지고 다리가 꺾어지고 한 이면에는, 실은 그들 자신의 이익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전연 엉뚱스런 이유가 도사리고 있었다.
―습격을 당한 음성 나환자 수용소인 자유원과 습격을 해온 부랑 청소년 수용원인 희망원을 함께 경영하는(그래서 애국 사업가로서 자타가 공인하는) 박성일 원장이, 모종의 부정 혐의로 약 십여 일째 경찰에 구속되어 있었다.
마침 그런 틈을 타서 그날 저녁 중상을 입은 몇 사람과 우중신 노인을 비롯한 자유원 나환자 이백여 명이 박원장의 부정 사실과 비행을 어마어마하게 폭로한 진정서를 만들어가지고 하필 원장이 갇혀 있는 경찰서로 몰려가서 원장의 처벌을 호소한 일이 있었다. ‘원장이 구호 물자 횡령’이니 ‘나환자 데모’니 하는 굵직한 제호를 달고 보도된 당시의 신문 기사들을 보면,
① 박원장이 이백여 나환자들에게 지급될 나협 회비 수십만 원을 가로챘고,
② 60년부터 그해 봄까지 ‘세계 기독교 봉사회’에서 보내온 밀가루 등 구호 양곡 육천여 포대를 가로챘으며,
③ 68년 ‘가톨릭 구제회’에서 나온 구제 양곡 오 백 포대를 뻬들려 착복하 고,
④ 외국의 구호 단체에서 보내온 DDS 등 나환자 치료 약품 등 삼천여 병을 빼돌려서 시중에 팔아먹었다.
고 되어 있다.
경찰은 곧 이들의 폭로에 따라 자유원의 관계 장부를 임의 제시받아 수사에 나섰다. 말하자면 박원장의 애국 사업에 똥칠을 한 셈이었다.
문제의 꼬투리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물론 습격 당일의 쌍방의 이유는 다르다. 나환자 측의 말은, 원장 측근자의 부추김을 받은 부랑 청년들이, 박원장의 내막을 잘 알고 있는 환자들을 납치기 위해서(재차 진정서를 꾸민다는 말을 듣고서) 습격을 해온 거라 하고. 희망원 측의 핑계는 박원장의 비행을 말하지 않는다고 협박을 받은 몇 사람으로부터 구원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간 거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유야 어찌 됐든 박성일 원장을 규탄하는 나환자들과, 그를 두둔하는 희망원 청년들 사이의 싸움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끝장은 벌써 난 셈이었다―박원장은, 그들이 싸우던 바로 그날 저녁에 석방되어 나왔고 그 통에 불행히도 중상을 입은 사람들은 죽거나 살거나 하면 되는 것이다. 모두 그날의 일덕⁵이요 운수다!
그러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우중신 노인의 머리는 훨씬 더 복잡한 생각으로 뒤설랬다.⁶ 단순히 나환자들이 불쌍하다든가 희망원의 젊은 애들이 발칙하다든가 그러한 나환자나 근 오백여 명의 부랑아들을 무슨 이권처럼 알고 뜯어먹고 혹사하는 박성일 원장 개인이 얄밉다든가 하기보단, 도대체 그와 같은 일들이 예사로 있게끔 되어 있는 사회 자체가 못마땅했다.
물론 처음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다. 박원장의 친척이 서울의 어느 누구란 것도 듣고 있었다. 식량이랑 기타 구호 물자의 배금 사무를 맡아보던 시청 사회과 어떤 직원이 섣불리 이곳 자유원과 희망원의 인원수 조사를 철저히 하려고 덤볐다가 혼이 났다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박성일 원장이 처음 구속됐을 때도, 며칠이나 갈 건데…… 곧 좋게 돼 나오리라고 우노인은 생각했다. 그게 또 용케도 희망원 부랑패들이 자유원을 습격해서 난동을 부리던 바로 그날 저녁 에 석방되었다니 더욱 아리송한 일이었다.
‘그런 재주가 있으니까 외국의 경우 같으면 웬만한 자선가들도 엄두조차 못 낼 나환자 수용소니, 부랑아 수양원이니 하는 거창한 사업을 맨손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아들딸 외국 유학까지 척척 시키고, 숨은 돈도 만들고……!’
“박원장 재산이 모두 얼마라더라……”
우중신 노인은 별안간 이렇게 중얼거렸다.
“한 삼 억은 넘을 거라더만요.”
곁에 누운 애꾸눈이 역시 자지 않고 대답을 했다.
“너울께 매축지만 해도 지금 시가로 얼만데요?”
몇 사람 건너 누워 있던 코머거리의 목소리다. 역시 깨어 있었던 모양이다.
“참, 그렇지…….”
우노인은 그러고 돌아눕다가 또 “아야야” 소리를 쳤다. 허리가 내처 뜨끔거렸다.
구석 쪽에서 어느 놈이 썩썩 어디를 자꾸 긁어댔다. 손가락이 있는 모양이다.
“이 자식 낮에 이 안 잡았나? 와 이 지랄고!”
바로 곁에 있는 놈인지, 질그릇 깨지는 듯한 소리를 내지른다.
“나도라, 지 몸띵이 근지는〔긁는〕 자유쯤은 있어야 안 되겠나!”
왜정 때 전문학교까지 다녔다는 치구란 놈의 억지다.
놈은 고향에 돌아가면 고생 덜하고 살 수도 있다지만, 내처 고런 생활을 계속해왔다. 처자도 있다던가? 가끔 용돈도 조금씩은 부쳐오는 모양이었다. 이백 명이 훨씬 넘는 재소자 중에서 제 돈 내고 가끔 담배라도 사 피우는 놈은 이치구뿐이었다. 게다가 그곳 최고령자인 우중신 노인을 빼고는 학교 교육도 제일 많이 받고, 사실 또 아는 것이 많아서 약의 설명서니 사용법 같은 것도 원장인 박성일씨보다 더 잘 알았을 뿐 아니라, 그러한 소위 자선사업을 한다는 일부 인사들이 관청이라든가 기타 구호 단체들의 직원들과 짜고 저지르는 여러 가지 흑막 같은 것도 곧잘 눈치 챘다. 그래서 툭하면 “썩어빠진 놈들!” 이란 소릴 잘했다(대개 어떤 기관에라도 이런 놈들이 한두 놈은 섞여 있어서 운영자들의 미움을 받고 있지만, 자기들의 내막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간대로⁷ 처치도 못하고 있는 거다).
사실은 경찰에 낸 진정서도 이치구가 썼다. 부리부리한 눈망울부터가 그렇게 보였지만, 성질이 아주 괄괄하고 윷짝 가르듯 올바른 데가 있었다. 그래서 말하자면, 불의를 보고 못 참는―소위 지도자란 분들이 말하는, 수양이 모자라는 축에 든다. 하지만 이 자유원에서는 우중신 노인이 가장 존경을 받는 연장자라면 이치구는 제일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치구 자네도 안 잤던가?”
우노인이 말을 건넨다.
“잠이 올 수 있능기요!”
치구는 벌떡 일어나는 기색이더니,
“담배나 한 대씩 태웁시더.”
하며, 우중신 노인의 곁으로 기어왔다.
지새는 달이 봉황을 희붐하게 해주었다.
곁에 있는 애꾸눈도 일어나 앉았다.
그도 치구가 붙여주는 귈련을 한 마디씩밖에 안 남은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우두머리랄 수 있는 사람들이 이래서 그런지, 별안간 널따란 방안이 두런두런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절방처럼 큰 방이었다(자유원에는 음성 나환자들의 손바닥으로 이겨 붙여진, 교실만큼 한 토담방이 여섯이나 있었다). 그러한 넓은 방에 쥐 죽은 듯 오그라져 있던 수십 명이 마치 한밥⁸ 본 누에처럼 일시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아마 모두들 역시 잠이 잘 오질 않았던 모양이다.
별안간 저쪽 구석께서 웃음소리가 와그르르 일어났다. 뭐냐는 물음에, 그쪽 켠 대답이 걸작이었다.
“다들 깨어 있는데, 혼자서 잠꼬대로 ‘각설이’를 하고 있잖아요. ‘돈 한 푼에 팔려서…….’라고.”
경기까투리 혹은 그저 까투리라고 불리는 애의 대답이다.
그러자 웃음소리는 더 크게 번졌다.
“조용들 해라!”
아랫목에서 우영감님 (자유원 식구들은 우중신 노인을 그렇게 불렀다)의 꾸지람 소리가 들렸다.
“얼매나 답답한 처지 였길래 그런 소리를 꿈에서까지 하겠노?”
방 안은 다시 잠잠해졌다. 지난봄이던가, 한 놈이 남의 집 소를 건드렸을 때도 그랬다(그놈은 그 때문에 소신랑이란 별명을 얻었다)ㅡ마침 지나오다 보니 살팍진 암소 한 마리가 어떤 외진 덤 옆에 나부죽이 누워 있었는데, 그자의 말을 들으면 여자로면 바로 그 짬이 발갛고 헤벌쭉하게 약간 벌어져 있더라나.
그래서 불같이 일어나는 욕정에 그만 솔가지를 하나 꺾어가지고 가서 그놈의 등줄기를 쓸쓸 긁어주면서 암소의 거기다 자기 그것을 들이밀고 껍적거리다가 재수 없게 주인에게 들켰는데, 그 소주인이 찾아와서 자유원 식구들을 보고 욕지거리를 했을 때도 우영감은 “얼매나 답답한 처지였길래” 란 말을 해서 타일러 보냈고, 그 뒤 한 식구들이 그놈을 놀렸을 때도 역시 그런 투로 나무랐다. 요컨대 우영감은 “얼매나 답답한 처지였길래” 란 말을 잘 썼고, 그렇게 나오면 남의 잘못을 들어 싸우던 식구들도 그만 조용해지곤 했다.
억지 침묵이 지루했던지 한 놈이 별안간,
“영감님!”
하고 불렀다.
“와?”
“내일 우짤랍니꺼? 어데 분해서 살겠능가요?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쳐들어갑시더, 야?”
“내일이 아니라 날이 새 가니 오늘 앙이가. 그래 자고 나서 보자꼬.”
우영감도 이렇게 대답을 하고서 다시 자리에 누웠다. 병원에 실려 간 사람들이 무사함 몰라도·…‥ 추측에 아마 무슨 사고가 꼭 일어날 것만 같았다. “우짤랑기요?” 하던 구석 쪽에선 내처 곤지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원 지대는 아침이 한결 빨랐다.
오른편 자락이 강구를 물고 있는 자유원 언덕은 동살¹⁰이 들기 바쁘게 해가 비쳤다. 햇살은 언제 보아도 고마운 것이다. 쌀쌀한 날에는 더욱 기다려진다.
경비실을 지키던 사람들이 지난밤 싸움에 다쳐 병원에 실려 갔기 때문에 그날은 치구가 대신 기상 종을 울렸다. 식전 일을 해야 하는, 맞은편 산등성이의 부랑아 수양원과는 달리 자유원에는 항상 기상이 조금 늦었다.
석유 양철로 된 둔탁한 종소리를 따라 여섯 개로 된 토담방에서 수많은 나환자들이 벌레처럼 꾸역꾸역 기어 나왔다. 공동생활을 해오는 그들은, 자연 어떤 공동 규율을 갖게 되었다.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우물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취사 당번은 남 먼저 세수를 마치고 부엌 쪽으로 어기적거린다.
“여보게, 오늘은 웁쌀ⁱⁱ 좀 많이 놓게! 그리구 돼지죽처럼 짓지 말고 좀 꼬들꼬들하게 지어 보란 말야.”
‘코뺑사’란 별명을 가진 늙정이가 코 먹은 소리를 질러댔다. 신체 조건들이 완전치 못한 그들은 아침 일만은 면제돼 있었다.
그런데 얼마나 더 살 거라고 어떤 놈들은 숫제 산정까지 산보를 간다.
경비실을 돌아나간 텃밭 끄트머리께서 우중신 노인은 뜨끔거리는 허리에 손을 댄 채, 오른편 강어귀짬을 물끄려미 내려다보았다. 삼만 평 가까운 새 매축지가 긴 둑으로 막혀 있다. 오 년이란 세월이 결려서 거기 있는 자유원의 이백여 음성 나환자들의 손바닥과 건너편 희망원에 수용돼 있는 사백여 명의 부랑아들의 노력에 의해 메워진 개펄ㅡ 지금은 일등 옥토다. 남들이 알기는 그곳 자유원과 희망원의 공동 농장 같지만, 사실은 두 곳의 원장을 겸하고 있는 박성일씨의 사유 재산이 돼 있다.
―문둥이들과 걸뱅이¹²들이 메운 땅!
우중신 노인은 별안간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어려운 매축으로 말미암아, 박성일 원장이 국토개발상인가 뭔가를 탔다는 사실을 회상하면,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조국인가 하는 한심한 생각마저 들었다. 협잡꾼들을 위한 조국이라면 심한 말이 되겠고, 적어도 그러한 협잡배들이 득세를 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싶었다. 미처 철도 안 든 고아들과 손바닥만 남은 문둥이들이 무거운 돌과 흙덩이를 져 나르고 이겨 붙이고 하던 일을 생각하면, 아니 그보다 거기서 나오는 곡식일랑, 딴 곳으로 말끔 빼돌리고서 시청에서 주는 썩은(변질미가 나올 때가 많았다) 좁쌀이나 보리쌀만을 원생들에게 주는 원장의 소행을 생각하면 언젠가 치구가 말했듯이 당장 우 몰려가서 그놈의 둑들을 모두 헐어버리고도 싶었다.
응달이 돼서 아직 햇살도 들지 않은 건너편 언덕에선 밭을 일구느라고 여기저기 수많은 고아들이 개미떼처럼 붙어 있다. 예정 평수와 그룹을 짜 놓고서 경쟁을 붙인다던가? 그곳―희망원 쪽에 있는 박원장의 사무실에는 내처 커튼이 내려져 있는 걸 보면 아직 박원장이 나타나지 않은 모양이다. 아마 며칠간의 구류 생활에서 얻은 피로를 댁에서 푸시는 모양인가 싶었다.
‘영리한 놈이다!’
우중신 노인은 엷은 햇살을 한 아름 안은 채 토담방으로 되돌아왔다.
식사 시간에는 모두 다 제 배 채우기만 바빴다. 절간 중들이 하듯, 모두 제각기 식기들을 내밀었다. 다행히 손가락들이 완전한 사람들은 수월스럽게 식사들을 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한 마디씩 남은 손가락 사이에 술총¹³을 끼워가지고 뒤적거린다든가, 혹은 몽뚝한 손바닥만으로 밀어 넣는다든가, 그래도 먹는 데는 빨랐다.
“오늘은 모두 단단히 먹어 두세요!”
경기까투리가 경기까투리답게 지레 촐랑거렸다. 젊은 치들은 무슨 수작들이 돼 있는 모양이다.
“어쩌자는 것고?”
우중신 노인은 엉성한 수염을 훔치면서 치구 쪽을 건너다보았다. 자기가 새로운 원장으로 추대돼 있긴 했지만 사실은 모든 일을 치구에 게 맡기고 있었다.
“희망원으로 간다는구먼요…….”
치구의 대답도 작정이 명확하지가 않았다.
“택도 아닌 소리! 그놈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리로 갈라꼬…… 그라다가는 아무 일도 안 된다.”
우노인은 이러고서 일어섰다. 그는 식사 후엔 언제나 가는 너럭바위가 있다. 거기서 식후 일미로, 산뽕잎을 섞어서 말은 담배를 한 대 피우는 것이 버릇이요 낙이다. 치구나 애꾸눈이나 코머거리도 곧잘 그 너럭바위를 찾아왔다.
“꼭 갈라면 바로 시청으로 가는 기 졸〔좋을〕 끼다!”
우중신 노인은 치구를 보고 이렇게 타일렀다.
무슨 사발통문이라도 돼 있었던지, 이 방 저 방에서 어기적거리고 나오는 짊은 놈들이 어느새 뜰을 메웠다. 곧 어디로 떠날 모양들이다.
너럭바위에 있던 치구가 뛰어갔다. 젊은 치들과의 사이에 한참 논란이 벌어졌다. 우노인도 갔다. 참견을 안 할 도리가 없었다.
“보래 이 사람들아! 우리가 떠드는 목적이 멋고? 희망원 아아들하고 싸우자는 기 앙이지를? 아무 말 말고 치구의 말대로 하는 기 옳을 끼다. 안 그렇나?”
우중신 노인의 말에는 아무도 섣불리 대꾸를 못 했다.
그러고 약 두 시간 후 자유원 나환자들은 시청 정문 앞에 버티고 앉았다. ‘악질 원장 물러가라’니, ‘× ×은 왜 원장만 감싸주노?’ 따위 플래카드까지 어느새 준비돼 있었다.
그러나 대표로서 시장을 만나러 들어간 이들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사람들은 이 병신들의 데모를 신기한 눈으로 보기만 했다.
우중신 노인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고! 분했다. 치가 떨렸다. 허구리가 뜨끔거리는 것마저 잊어버리고 마룻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한숨이 아닌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의 헐근거리는¹⁴ 숨결은 마치 오장이 무슨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듯이 느껴졌다.
“노인, 어찌 된 일이오?”
낯선 환자가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우중신 노인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같이 온 치구도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제기랄. 무슨 말들을 해야제…….”
고참인 그 환자는 비뜰어진 입을 더욱 일그러뜨리며 짜증을냈다. 다른 환자들도 그저 신기한 듯이 기웃거리기만 했다. 눈썹이 없는 부석부석한 얼굴들이 모두 닮아 보였다.
우중신 노인과 치구가 안내된 곳은 바로 국립 나환자 수용였다. 그들은 그날 시장실 앞 복도에서 시장님도 만나보지 못한 채 갑자기 어떤 사복에게 인도되어 시청 뒷문을 빠져나왔다. 이유를 물어봐도 답이 없었다(문둥이에게는 답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
그들은 곧 자동차에 실렸다. 문둥이에게는 아주 흔감한 차였다.
“대관절 어디로 가는 깁니꺼?”
치구는 감정을 누르면서 문둥이란 입장에서 다시 물어보았다.
“가면 알아요. 자유원보다 몇 배 나은 데니까요.”
사복은 이렇게 얼버무리면서 담배만 벅벅 빨아댔다.!
차가 어떤 산고개를 더위잡을 때, 우노인과 치구는 문득 마주 쳐다보았다.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국립 나환자 요양소―사회에서 말하는 소위 ‘문둥이막’의 허름한 집들이 이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바로 그곳 출신이었던 것이다. 얼핏 모교라도 찾아가는 듯한 이상한 감회가 잠깐 들다가 말았다.
두 사람은 아무런 이유 설명도 없이 그곳에 인계되었다. 키가 땅딸막한 젊은 사무원은 벌써 어떤 사전 연락이라도 받은 듯이 이쪽 사복의 말에 그저 “네, 네” 하며 받아들일 뿐이었다.
우노인과 치구는 어리둥절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이미 어떤 판단과 각오가 깃들어 있었다. 사복이 있는 앞에서는 사무원과도 아무 말을 하기가 싫었다. 물론 그 사무원과는 초면이었다. 그곳을 나온 지 벌써 십 년이 넘었으니까. 아니, 우중신 노인의 경우는 벌써 이십 년이 가까웠다.
아무도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그곳으로 되끌려간 이유는 그들 자신이 곧 깨달았다―일종의 격리다. 병 ―육체의―그것도 남에게의 전염을 방지하기 위한, 격리 본래의 목적에 의한 격리가 아니다. 정신 문제다. 정신상의 병―불의와 부정을 싫어한다, 미워한다, 협잡배와 위선자를 고발한다, 규탄한다, 이것이 병이란 거다. 남이 동조한다. 그것은 선동에 의한 결과다. 말하자면 전염이다. 데모는 그와 같은 정신병의 완전한 전염이란 거다. 그러니까 부정을 규탄하는 정신병자는 대중으로부터 냉큼, 그리고 완전히 격리시켜야 한다―이런 투다.
그렇다면―가령, 박성일 원장이나 그를 두둔하고 감싸주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우중신 노인이나 치구 같은 사람은 확실히 무서운 보균자임이 틀림없다. 전염의 우려성이 지극히 많은…… 그러니까 불평분자를 증오하는 그들로서는 오히려 당연한 처사다.
하지만 당한 쪽으로서 억울한 것은, 단순히 자유원으로부터 갑자기 격리되었다는 그 사실만이 아니다. 십여 년의 세월을 무서운 병마와 싸워 이겨낸 그들을 다시금 그 진저리나는 양성 나환자들 속에, 격리 아닌 복귀를 시켰다는 놀라운 처사다. 물론 박성일 원장이 이와 같은 방법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자유원의 식구들이 늘 전전긍긍하는 것이 바로 그의 이러한 악랄한 수법이다. 사십 남짓한 나이로서는 정말 비상한 머리를 가진 사람이다.
일단 되돌려 보내진 사람들은 쉬 나가지지를 않았다. ‘레프로민’ 검사를 비롯한, 재검사란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여러 가지 반응을 세밀히 조사해야 한다. 적어도 3주일 이상의 시일이 걸린다. 곯려주려면 또 얼마든지 곯려줄 수도 있는 것이다.
“재검사가 필요하다 카는 기지요? 우리는 이곳에서 오래 치료를 받고 완전히 낫아서 나간 사람입니데잇?”
사복이 돌아간 뒤, 치구는 사무원을 보고 이렇게 물었다. 그의 괄괄한 어조나 부리부리한 눈에는 일종의 위협 비슷한 것이 내비쳤다.
“네? 그러나 지금 소장님이 마침 서울 출장중이 돼서……”
혼자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땅딸막한 사무원은 그저 마네킹처럼 아무런 내색도 없이 이럴 뿐이었다.
“다른 의사는 없어요?”
“네, 있어도 진찰, 더구나 재검사는 소장님이 계셔야 됩니다.”
뭐든지 “네, 네” 대답해놓고는 결말이 시원찮은 대답만 했다.
치구는 뭉클하며¹⁴ 우노인을 돌아보았다.
“할 수 없심더. 오늘은 여기서 자기로 합시더·…‥”
그렇다고 내일이면 어떻게 하리란 뚜렷한 계획이 서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이내 어떤 방으로 안내되었다. 물론 양성 환자들이 들어 있는 방이었다. 다행히 눈썹만 빠지고 얼굴이 약간 부석부석 했지, 곪아터졌다거나 진물이 질질 흐르는 그런 엉망들은 아니었다.
점심은 식사 시간이 지났다 해서 주지 않았다. 속은 약간 출출했지만 그저 먹고 싶은 정도 없었다. 그곳 고참들이 묻는 말에는 아무런 대답도 않고, 잠시 허탈 상태에 빠져 있던 두 사람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구내의 ˙바깥편은 두터운 철조망으로 완전히 사회와 단절돼 있었다. 때는 달라도 둘 다 지내던 곳이라, 역시 철조망이 굳게 쳐져 있는 바닷가로 나아갔다. 철조망 밖에 있는 시커먼 용바위란 놈이 옛날과 같이 갯물을 머금었다 뿜었다 하고 있었다. 석양빛도 옛날처럼 아름다웠다. 그들은 자연이 부러웠다. 변치도 않고 거짓도 없는 자연이. 우중신 노인은 거기만 가면, 옛날이―남같지 않은 복잡한 과거가 그립고도 안타깝게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조용히 입을 뗐다.
치구도 전문학교를 다녔지만, 우중신씨는 젊었을 때 일본까지 가서 공부를 했다. 그의 집은 옛날엔 땅마지기 좋이 가지고 누리던 세도가였으나, 할아버지대에 가서 갑자기 살림이 기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책상물림이었지만 농사를 손수 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중신씨가 결혼을 한 것은 아직 스무 살도 채 되기 전이었다. 그 무렵 5년제 중학의 4학년 때라고 기억하고 있다. 당시 본인은 결혼 같은 건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반대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촌에서 일부러 대구까지 (그는 중학을 대구서 마쳤다) 찾아와서 ㅡ할아버지께서 그렇고 어머니가 또 오래 신양중에 있으니 집안 일이 말이 아니라면서, 아무래도 며느리를 빨리 보아야 되겠다고 거의 사정을 하듯 조르기에 마지못해 승낙을 했던 것이다(어떤 편이냐면 그는 인정에 여린 로맨티스트였으니까).
물론 오늘날처럼 맞선 같은 것도 보지 않을 때다. 부모들이 맘대로 고른 신부는 학교도 안 나온 구식 처녀였지만 다행히 얼굴이 반반했다. 그러나 소위 대례만 올렸을 따름이지 부부로서의 정이 들기는커녕, 일생을 통해서 한 번도 부부 생활 같은 생활을 못 해봤다. 그는 객지에서 중학을 마치자 이내 일본으로 떠났고 아버지가 반대하는 문과를 택한 죄밑¹⁶도 있고 해서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한 번도 고향에 돌아오질 않았다.
그러나 사실은 공부에 전념한 게 아니고, 그는 학생 시대부터 여러 가지 문화 ‘서클’이라든가 어떤 정치적인 ‘그룹’에도 관계하고 있었다. 조국을 잃은 식민지 청년으로서는 그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학업도 중동무이¹⁷가 되고, 그러고도 끝내 그길로 나아가서 경찰 출입을 사랑방 나들이하듯 하는 동안에 조국을 잃은 것처럼 고향마저 잊은 청년이 되어서 십 년 가까운 세월을 줄곧 객지에서만 흘려보냈다.
그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벌써 그의 아내는 집에 있지 않았다. 그저 도망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아내(복둘이란 이름이었다)는 일언이폐지하면 시가를―그러니까 결국은 중신 자기를 위해서 청춘과 인생을 희생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십 년 공부가 나무아미타불이 된 격이었다.
복둘이는 구식 유교 가문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교육이라고 받은 것이, 여자는 출가 후는 시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남편에게 복종하고, 어떠한 역경에 처하더라도 뼈가 빠지게 일을 해서 그 댁 선산에 떳떳이 묻혀야 된다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녀는 그것을 직심으로 실천했다.
그녀의 시가는 농가였다. 그것도 대농가에 가까웠다. 머슴만 해도 장골이 둘이나 있었다. 그녀는 배우지 못한 상일을 부리나케 익히지 않을 수 없었다. 체면이고 부끄러움이고 다 버려야만 했다. 다리를 무릎 위까지 걷어 올리고 마구 무논에 들어가서 징그러운 거머리에 물려가며 모내기도 해야 되고 그 많은 농사 빨래도 혼자서 다 해내야만 했다. 먼 냇가까지 무거운 빨래통을 하루에도 몇 통씩 이고 나가려면 그야말로 목줄기가 사뭇 가슴속으로 말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정말 못 견디게 아팠다. 눈물이 나왔다. 서방이라도 같이 있어주었으면 저녁으로라도 위로를 받았을 텐데 그렇지도 못했다. 그걸 생각하면 더욱 눈물이 나왔다. 복둘이는 그러한 고생들을 우선은 겪어야 할 자기의 운명같이 생각했다―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 하고 은근히 기대를 가지고 이겨 나갔다.
그러나 나이 어린 신부 복둘이의 고생살이와 고민의 꼬투리는 단순히 이러한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정신을 좀먹는 보다 큰 것이 있었다. 남편이 그리운 것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드러누워 옹알거리는, 변덕스럽고도 인정사정 모르는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라 그렇다 치자. 주야장천 사랑방에만 잡치고¹⁸ 앉아서 고래고래 고함을 내지르는 시할아버지가 골치였다. 성한 사람 같음 또 몰라…… 그는 불치의 고질을 앓고 있었다. 바로 문둥병 환자였다. 그 바람에 많은 재물도 없앴지만, 요만치도 효력은 없고, 게다가 식구까지 들볶아댔다.
아들도 며느리도 다 있었지만 어느 누가 손 하나 보아줘? 조석 시중, 약 시중에, 하다못해 세숫물 시중까지 복둘이가 죄다 해야만 했다. 게다가 사흘들이 벗어 내놓는 진물이 불그레한 빨래! 시어머니는 노상 빨랫비누를 숨겨놓고 혼자서만 쓰기 때문에, 아무리 바쁘더라도 복둘이는 잿물을 받쳐서 빨아야만 했다. 그런 날은 속이 메스꺼워 밥도 잘 먹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중만 해도 어느덧 십 년이 가까웠다. 그래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드디어 자기마저 문둥병이 오르고 말았다. 그 푼더분하던 얼굴이 고역에 마를 대로 마르다가 마침내 부석부석 붓기 시작하고 별안간 눈알이 흐늘흐늘 눈물에 떴다.
“집구식 〔집안〕이 망할라 카이 벨일을 다 보겠네!”
이것이 기겁을 한 시어머니의 수인사였다. 시아버지도 한다는 말이 돌아오지 않은 아들에 대한 불평뿐이었다.
“지까짓 기 독립운동이 다 멋고? 부모 말 안 듣는 놈이 어데 복 받을 줄 알았던가…….”
속으로야 여간 불쌍한 생각이 들었으랴마는 겉으로는 자연 그녀를 두고 짜증들을 내게 마련이었다.
이렇게 해서, 복둘이의 눈물겨운 고생살이도 수포로 돌아가고 그것을 참고 견디어 나가게 하던 꿈마저 산산이 부서졌다. 이내 그녀는 시할아버지의 약을 달이던 질오가리 하나와 밥그릇 하나, 그리고 숟가락 하나를 물려받은 책 동구 앞 움집으로 쫓겨났다.
만약 운명이란 말을 쓸 수 있다면, 이것이 그녀를 그처럼 지루하게 기다리게 하던 운명이었다.
얼떨한¹⁹ 우중신씨는 아내와 반짇고리(그녀는 그것을 굳게 잠긴 자기의 의릉 속에 깊이 넣어두었다) 속에서, 소위 내방가사란 것들이 적힌 두루마리들에 섞여 있는 얄팍한 공책 한 권을 발견했다.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서투르게 그어댄 글씨만 보아도 자기의 소회를 적었을 것이란 것이 직감되었다. 물론 맞춤법 같은 것도 엉망이었다.
어화우리 친척분닉 소회드러보소이천지열닌후의일월셩신 발가잇고명ᄉᆞ딕천마련후의만물이티여날지유인이최기한딕고금ᄉᆞ을싱각하니강기하기그업닉송고적 시절의난상강오륜나려오며이식을마련하여인싱을구휼하고요순우탕문무공밍티순곤악놈흔도덕셩경현젼지어니여우리흐싱교훈하니 츄만셰나려오며인의여지쑨을바다상강우륜발근법되우리조션제이리라백의왕토ᄉᆞ난백셩우리동포아니널가·…‥
읽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으나 그는 기어코 끝까지 뜯어 읽어갔다.
……하놀가튼우리낭군(우중순씨는 여기서부터 흐느꼈다고 한다)
가고어이못오신고셰상이별남녀중의날가튼이쪼잇는가오호명월발근쫴와초산운우셩길적의설진심중무한사도황연한꼼이로다무진장회강잉하야문을열고바라보니무심한뜹구름은꼰쳤다다시잇ᄂᆞ우리님계신곳은저구름아래엇만답답해라둘사이에무삼약수막혓관딕양쳐가막막하야소식조차끈탄말가술푸도다이내심사어대다가지 접할꼬황산들건너올새복승가튼청춘홍안호박꼿치피어나고섬섬옥슈다진토록애면글면사랏건만이니몸죄가만하부모봉양다못하고낭군시중못해보고몬실느무병이들어셔납니다셔납니다禹씨가문쪄 나가면
이것이 끝을 맺지 못한 복둘이의 수기였다.
우중신 노인은 이러한 사연을 세세한 데까지는 이야기 안 했으나, 별안간 감은 그의 움푹한 눈자위는 지금도 당시의 일을 속으로 울고 있는 것같이 치구에겐 느껴졌다.
“그런 일이 있었던기요?”
치구는 목이 멨다. 왜 그런 얘기를 지금까지 묻어두었을까, 안타깝기도 했다.
“그래…….”
우노인은 기억을 더듬는 듯 잠깐 먼 물마루짬을 바라보더니,
“그러나 내캬 집에 돌아왔을 때는 벌써 그 움집 에도 안 없나!”
그는 그 당시의 심정을 연상케 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치구는 마침 생각난 듯이 담배를 꺼내 붙여 올리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할 수 있나, 찾을 결심을 했지!”
우노인은 약간 말소리가 높아졌다.
“여기저기서 수소문을 했더니, 한 일 년 가까이 그 움집에서 살았대. 그러다가 결국 집에서 양식도 잘 안 대 좃는지―소문들은 그랬으나, 차마 그렇게까지야 했겠으랴마는―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는데, 죽지 못해 찾아간 곳이 바로 이곳 요양소였던 모양이라……”
“우째 용케 알아냈던가베요?”
“말도 말게, 이 사람!”
우노인은 파란 생연기를 나불거리고 있는 담배를 아까운 듯이 손가락 끝으로 꼭 쥐어 꺼서, 너덜너덜한 미군 점퍼 포켓에 감추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십 년 만에 돌아온 아들이 취직은커녕 집안일일랑 돌보려하지 않고 병들어 나간 계집만 찾으련다고, 아버지의 호통과 어머니의 앙탈이 여간 아니었다고. 그러나 그는 끝내 어른들의 말을 거역하고 집을 나섰다.
우선 아내의 친정곳²⁰부터 가보았다. 처가에서도 딸의 간 곳을 아는 이가 없었다. 한편 괘씸도 했겠지만, 그래도 사위는 ‘백 년 대객’이라고, 장모는 술을 거르고 밥을 지었다(이것이 우리 한국의 아낙네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음식이 목에 잘 넘어갈 리 없었다. 그는 하룻밤도 쉬지 않고, 날이 저문데도 부득부득 그곳을 떠났다.
설마……? 싶었지만(그때만 해도 나환자들은 요양소ㅡ이름조차 문둥이막이라 했다ㅡ에 들어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으니까) 그는 결국 요양소들을 누비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이 예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 당시는 탈주 환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규율이 아주 엄해서 일반인의 출입은 물론 접근까지 금지되어 있었다.
그는 우선 이 바닷가 수용소 가까운 한 부락에 요양을 핑계해서 잠시 머물기로 했다(사실 또 그는 건강이 좋지 못했다).
그는 일부러 환자 물색을 내느라 지팡이까지 해 끌고 매일같이 이곳 수용소 부근의 바닷가를 거닐었다(사실은 헤맨 거지만). 그러다가 하루는 용케도 철조망 안쪽에서 풀들을 매고 있는 한 떼의 여자 수용원들을 발견했다. 그는 반색을 한 나머지 가슴을 두근거리며 슬금슬금 가까이 가보았다. 모두 천형 (天刑)의 용수인 듯 수건을 눈이 가릴 정도로 푹 숙게 썼을 뿐 아니라, 도무지 얼굴들을 들지 않았기 때문에, 저쪽에서 아는 체하기 전에는 좀처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는 바다를 향해서 일부러 물수제비를 뜨기도 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은근히 그녀들 쪽을 흘겨보았다.
어쩌다가 드는 얼굴들 속에서 동그래하게 생긴 한 턱모습!
순간 중신씨는 그것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저쪽에서도 얼른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황산때기〔황산댁 〕 아니오?”
주책없이 부르짖어진 우씨의 물음에 그녀도 주책없이 철조망 곁으로 뛰어왔다.
“우째 여길 왔능기요? 일본서는 언제 왔능기요?”
복둘이의 눈은 눈물에 둥둥 떴다.
“미안하오…….”
우중신씨는 목이 메어 말이 잘 안 나왔다. 물론 철조망이 가려있다. 그는 철조망 사이로 손을 내라 해서, 복둘이의 다행히 손가락이 남은 핏기 없는 손을 꽉 쥐어 잡았다. 그러고는 연신 “미안하오” 를 되풀이 했다.
복둘이의 흐늘흐늘한 눈에서는 눈물만이 흘러내렸다. 그것이 십 년 동안 쌓이고 쌓인 그녀의 그리움이요 하소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둘이는 곧 이렇게 말했다.
“가이소…… 누가 보문…….”
그녀는 자기 발로 걸어 들어간 모범 나환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자기 발로 걸어 들어갔듯이, 그녀는 우씨를 떼어놓고 저쪽으로 되돌아 가버렸다.
우중신씨는 바로 이곳―지금 그들이 앉아 있는 이 용바위 앞 언덕에서 그날 밤을 울고 새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달 후, 그는 한사코 마다하는 복둘이를 기어이 따내어서 기차 소리도 안 들리는 후미진 산골에서 새살림을 시작했다.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지만 우씨의 재혼을 추진해오던 부모는 그러한 아들을 저주했다. 저놈이 미쳤나, 턱도 없는 소리 말라 했다. 그러나 이미 구들더께²¹가 다 된 그의 할아버지는 손자의 간청을 흔연히 받아들였다.
“오냐, 너가 정말 사람이로고나! 암, 인간을 애껴야지, 애낄 줄 알아야지……”
그러고는 얼른 도장을 꺼내주며 아무 데 논을 팔아서 손자며느리의 치료에 쓰라 하였다.
그러나 세상엔 팔자소관이란 말이 안 없어질 만큼 선의의 노력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대풍자유(大楓子油)를 비롯해서 나병에 좋다는 온갖 약들을 백방으로 구해서 쓴 우중신씨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복둘이는 병이 낫기 전에 뜻밖에 또 딴 병을 들얹어서 그만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멀쩡하였던 우씨가 대신 문둥이가 되고 말았다. 그는 자기도 복둘이처럼 발로 그 수용소에 들어갔노라는 말 이외에 다른 이야기는 일하지 않았다.
“그때는 진짜 환자니까 내 발로 걸어 들어왔지만 지금은 이 무슨 일고 말이다. 멀쩡한 사람들을 이렇게…… 이기 자칭 사업을 한다는 그 박가란 놈…… 따위들의·…‥”
우중신 노인은 가슴을 풀어헤치며 분통을 터뜨렸다. 어둠이 점점 물빛을 검 게 해갔다.
우중신 노인과 치구는 밤이 이슥해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물론 애써 자려고도 하지 않았다. 납작코 반장이 새로 빤 담요라곤 했지만 기분이 나빠 덮기도 싫었다. 피부의 지각이 마비되지 않은 두 사람은 추워서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잠이 안 온 것은 단순히 춥다든가 담요 때문이라곤 할 수 없었다.
역시 처음에는 그들을 그곳으로 내몬 박성일 원장이나 그의 일당과 같은 놈들의 소행이 얄미웠다. 분했다. 그러나 그저 분해하고 낙담할 수만은 없었다. 분할수록 보복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다. 몸은 비록 완전한 편은 아니었지만 마음은 결코 병들어 있지 않았다. 정신은 오히려 성한 사람들보다 더 전전하다고 자부를 했다. 살아 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불의에 굴복하거나 방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해(內海) ―잘록한 바다 건너 × × 공장에서는 밤새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쇠붙이 두들겨대는 소리가 악착스럽게도 들려왔다. 거기도 잠을 못 자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다소 위안도 되었다. 밤새 쇠붙이를 두드리는 사람들도 그 쇠붙이처림 정신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가 있을 것이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우중신 노인은 해가 돋기도 전에 사무실로 갔다. 마침 난로에 무연탄을 갈아 넣고 있던 어제 그 땅딸막한 사무원이 그를 수상쩍게 돌아보았다.
“전화 좀 빌려야겠소!”
우노인은 정중하게 말했다.
환자들에겐 전화사용이 금지돼 있었지만, 젊은 사무원은 마지 못하는 듯한 표정으로 승낙을 했다.
우중신 노인은 벽에 걸려 있는 전화번호부를 끌러 와서 뒤적거리다가 그만두고 114를 돌렸다(그는 심한 노안인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
그러고서 어디와 간단히 통화를 하더니 곧 수화기를 놓았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희색이 만면해 보였다.
바로 그날―막 조반이 끝났을 무렵이었다. 우노인이 수용되어 있는 × ×동 국립 나환자 수용소에는 웬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땅딸막한 키에 후줄근한 감색 양복을 입은 예의 젊은 사무원이 직접 우노인을 데리러 왔다.
“나이 멫 살이나 대 비던가요〔돼 보이던가요〕?”
우노인은 후줄근한 감색 양복을 따라가면서 이렇게 물었다.
“한 마흔 남짓 될까요……?”
감색 양복은 돌아도 안 보고 대답만 했다.
‘틀림없구마.’
우중신 노인은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무실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람은, 역시 그가 아침에 전화 연락을 한 최군―아니, 최국장이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뵙기가―”
최국장은 공손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곁에 섰던 사무원은 그려한 신사보다 우중신 노인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미안하네, 아침에 전화를 걸어서……”
우중신 노인은 검버섯이 핀 얼굴에 겸연쩍은 빛을 띠었다.
“천만에요!”
최국장은 오히려 당연한 일인 듯이 송구스러워했다.
우중신 노인은 자기가 거기에 오게 된 이유와 전화를 낸 의도를 간단히 설명했다.
“그렇습니꺼, 지도 신문에서 그런 싸움이 있다는 건 보았습니더만,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미처 몰랐다는, 역시 죄송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최군이 돌아간 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우중신 노인과 치구는 지프차에 실려서 수용소를 빠져나갔다.
“역시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도 있구먼요…….”
치구는 아까 우노인이 사무실에서 돌아와서 얼핏 말하던 것을 생각하곤, 이렇게 말했다.
우중신 노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살아 있는 보람이라도 느낀 듯한 표정을 하였을 뿐이다.
최군은 우노인과는 아주 남이었다. 억지로 갈래를 말하자면, 우노인의 외조부의 첩의 딸의 딸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마침 우노인의 동네에 시집을 와 살던 최군의 어머니가 살기가 딱해서 늘 어린 그를 데리고 우씨의 집에 와서 일을 거들며 밥을 얻어먹이곤 했다. 최군이 국민학교에 다닐 무렵에도 내처 그런 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우노인의 할머니는 그를 퍽 귀여워하고 가엾어 해서 이녁 손자들이 입던 옷가지 같은 것도 내주곤 하던 것을 우노인은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까 뭐 별로 적선을 한 것도 없지만, 최군의 어머니는 그 뒤에도 그것을 큰 은혜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최군의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없었다. 그런데 최국장은 지금도 자기가 국민학교를 마친 것은 우씨 가문의 덕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가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을 할 때도 그런 내용이 적힌 편지를 자주 보내왔다. 요컨대 그는 어머니를 닮아서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시내 신설 지구에 꽤 넓은 땅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곳 조그만 우체국장을 하면서 오븟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자수성가를 한 사람이었다.
박원장이란 사람의 비인도적인 처사가 분한 나머지, 그리고 또 문득 떠오르는 어떤 계획이 있어서, 덜컥 전화를 냈던 것이지만 우중신 노인은 차에 실려 오면서도 내처 미안스런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괜히 오래 살아서 남에게 신세만 끼친다고 슬퍼지기도 했다.
지프차가 닿은 곳은 어떤 신개지 가운데 선, 자그만 우체국 앞이었다. 통용문으로 들어갔다 나온 운전사는 그들을 어떤 중국음식점의 조용한 방으로 안내했다. 뒤미처 따라온 최국장은 우노인 앞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 떠날 땐 안 포켓에서 불룩한 종이 몽치 하나를 꺼내놓고 자리를 떴다.
‘약소하옵니다. 딱하실 땐 언제든지 또 연락해주십시오. 최순조.’
이런 내용이 적혀 있는 쪽지와 함께 현금 십만 원이 들어 있었다.
“오만 원밖에 말을 안 했는데……!”
우노인의 감개무량한 얼굴엔 이내 흐뭇한 웃음이 떠올랐다.
“이만하면 됐지?”
그들은 지난밤부터 실은 어떤 끔찍한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집을 나온 그들은 곧장 자유원을 향해 갔다. 자유원에는 일부러 밤늦게 들어갔다.
모두들 반가워했다. 국립 수용소에 끌려갔다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는 더욱 다행스럽게들 생각했다. 반면 박원장에 대한 증오감은 한결 높아졌다. 박원장은 그날 낮 그들을 한군데 모아놓고 장시간 훈시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서 대우도 현재보다 좀 개선해 보겠다고 떠벌였던 모양이다. 음성 나환자는 그에게는 소중한 존재들이었으니까!
이튿날 아침 우중신 노인과 치구는 경기까투리란 청년을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
세 사람은 우선 시내로 들어가 자유시장이란 곳의 고물전들부터 뒤졌다. 괴나리봇짐도 하나 못 가진 그들은 대뜸 배낭과 담요부터 하나씩 샀다. 그리곤 조그만 천막과 삽과 냄비, 반합(飯盒), 마른 찬거리, 식량…… 천막은 무거우니 젊은 까투리가 지기로 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치구의 배낭 속에 넣었다.
까투리는 치구가 돈을 꺼내 치르는 걸 보고(우중신 노인은 최국장에게서 받은 돈을 몽땅 치구에게 맡겼던 것이다) 어머나 싶었지만 이유도 묻지 않고 그저 싱그레 웃기만 했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그랬다. 문둥이들도 어디 캠핑이라도 가는가 하는 당치도 않은 생각들을 했는지도 모른다.
세 사람은 전이 처진 중절모자들을 없는 눈썹 밑까지 푹 늘러쓰고 있었지만, 속은 숫제 무슨 개척단에라도 따라가는 기분이었다. 긴 막대기를 지팡이처럼 짚고 다니는 우중신 노인이 길잡이처럼 앞장을 섰다. 그들은 이내 버스를 타고 또 성엣장이 둥둥 떠내리는 바다 같은 강을 나룻배로 건너고, 그러고도 장시간을 걸었다. 강가는 진펄에 이어 널따란 들이었지만 길은 곧 독메²²를 감돌았다. 그러다가 또 들이 나오고 두메가 되곤 하였다. 들의 가장자리며 후미진 골짜기에는 작고 큰 촌락들이 꽁꽁 얼어붙은 듯 잡치고 있었다. 어딜 가도 산이 있고 들이 있고, 그리고 인간은 살았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으레 나뭇개비가 있고, 그 곁에는 닭이 있고, 또 코흘리개들이 놀곤 하였다.
세 사람은 외롭지가 않았다. 비록 당장은 설 땅이 없다 하더라도 깊이 들어갈수록 조국이란 것이 점점 가슴에 느껴졌다.
우중신 노인 일행이 당도한 곳은 일찍이 우씨가 아내 복둘이와 단둘이서 살던 외진 골짜기였다. 인가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진 않아도 들어가면 아주 으슥한 곳이었다. 샘물이 조그만 도랑을 만들고 있는 골짜기에는 오후의 태양이 조용히 깃을 내리고 있었다.
우노인이 살았다는 움집은 이미 지붕은 팍 사그라지고, 주토로 만든 토담만이 겨우 헐리다 남아 있었다.
“어떻노, 지리가?”
우노인은 감개가 무량한 듯이 두 팔을 쩍 벌려서 지형을 그리 물었다.
“명산 복집니더!”
치구가 감탄을 마지않았다.
“저 서쪽 등성이가 됐구먼요. 쉬 밭도 일굴 수 있겠고요…….”
경기까투리도 석양을 얼굴에 가득히 받으며 덩달았다.
세 사람은 우선 짐을 풀었다. 그리곤 이내 까투리가 지고 온 헌 천막을 주토로 된 토담 위에 펼쳤다. 낙엽으로 침실을 만들었다. 그 위를 경기까투리란 놈이 정말 까투리처럼 한바탕 뒹굴었다.
치구는 배낭 속에서 그날 시중에서 산 식량이랑 반합 등속을 꺼냈다.
세 사람은 무슨 의논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웃었다.
‘이렇게 해서 사는 거다……’
이런 표정들이랄까.
경기까투리는 곧 반합을 놓을 구덩이를 만들었다.
이윽고 조국의 한 골짜기에는 문둥이들이 태우는 삭정이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하늘을 향해 높이 올랐다.
산골은 어둠이 한결 빨랐다. 그들은 가볍잖은 짐들을 지고 종일을 나부댄 셈이지만, 꽤 늦게까지 모닥불을 에워싸고 앉아 있었다.
우노인은 그때야 비로소 이군(까투리의 성이 이가였다)도 알아두라는 듯이 자기를 도와준 최국장이란 사람의 이야기를 대충 하였다. 그리고 그의, 의리를 잊지 않고 인간을 아끼는 고마운 뜻을 자기 혼자서만 받을 수 없었다는 자기의 심정도 아울러 털어놓았다.
“내사 곧 죽을 사람이고―”
우노인은 한결 심각한 목소리로,
“가끔 우시개삼아 이야기는 했지만 죽기 전에 인간단지를 꼭 한번 맨들어보고 싶었다. 자네들은 내 뜻을 누구보다 잘 알아주고 또 친부모처럼 돌봐준 것을 고맙게 생각하지만, 오늘부터 나는 자네들을 동지로서 믿는대잇…….”
치구와 이군은 새삼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우노인은 말을 계속했다.
“인간단지! 그 말이 덜 좋거든 ‘문딩이 공화국’이라 캐라! 문딩이도 인간이니까 말이다. 대통령도 문딩이는 인간이 아니라고는 몬 할 기 앙이가? 도처에 무슨 단지 무슨 단지들을 맨들어싸니 우리도 한번 맨들어보자 말이다. 알겠지?”
모닥불 빛에 비친 그의 눈은 노인의 눈 같지 않았다. 이상한 채가 도는 것같이 느껴졌다.
“만약 몸만 성하다면 더럽은 놈의 세상을 한번 싸악…… 나이도 나이고 몸도 이러고 보니, 이왕 죽을 바엔, 또 어떤 놈들의 무슨 단지가 댈지도 모르는 땅이니, 인간단지라도 맨들어보고 죽을라네. 안 대면 내 목숨하고 바꿔서라도…….”
굉장한 기백이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무슨 유언 같기도 했다.
“그기싸 안 대겠습니꺼. 돈 있고 권력 있는 놈들은 나라 땅에 돼지단지도 맨드는데 아무리 문딩이라도 문딩이단지 맨드는데 차마 쥑이겠능기요.”
치구도 자신 있게 말을 했다.
우중신 노인을 가운데로 하고 세 사람은 나란히 누웠다.
이군부터 코고는 소리가 들렸지만, 우중신 노인은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자리에서 죽은 아내의 생각이 끈덕지게 되살아났으나 생각을 다시 현실로 내몰았다.
그래도 자꾸만 과거가 잊혀지지 않았다. 남들은 비웃을는지 모르나 자기 딴에 제법 욕심을 가지고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아내까지 버려가며 선배 동지들을 따라 독립운동에 가담해 보았지만 그도 저도 안 되고 해방 후는 병신 몸이라 친일파 모리배들이 득실거려도…… 생각할수록 분하고 자기의 일생이 한스러웠다. 베갯잇도 아닌 낙엽 위에 지는 눈물이 부질없이 그의 목을 차게했다.
‘죽은 아내에 대한 속죄로서라도……!’
기어코 거기에 ‘인간단지’를 만들어보리란 결심을 굳혔던 것이다.
“와 통 안 주무시네요?”
치구도 잠이 안 왔던지 이렇게 물었다.
우노인은 그저 “글쎄” 라고만 했다.
이튿날 우중신 노인은 치구와 이군을 다시 자유원으로 내보냈다. 많은 환자들이 박성일 원장의 처사에 불만을 품고 있을 때가 좋았고, 한편은 몇 사람만 우선 왔을 때 부근 부락민들이 들이닥치면 세 부족으로 곱다시 쫓겨나고 말겠기 때문이었다.
“빨리 서둘도록 해야 한다…….”
우중신 노인은 자기 키보다 긴 지팡이를 짚고 서서, 저만큼 내려가는 두 사람을 보고 한 번 더 다짐을 했다.
우중신 노인은 그들을 보낸 뒤 곧장 서쪽 버덩²³으로 올라갔다. 옛날 복둘이와 밭을 일구고, 조랑 고구마랑 무를 심던 곳이다. 지금은 물론 다시 가시덤불과 마른 풀들로 덮여서 옛날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그때의 일들이 역력히 떠올랐다. 그는 무심코 지팡이 끝으로 땅을 푹푹 찔러 보다가 약간 노글노글해 보이는 흙을 한 줌 쥐어 보았다. 양지바른 곳이라 촉촉하긴 해도 그리 차지는 않았다. 아니 도리어 훈기 같은 게 느껴졌다. 동시에 그는 이상한 충격을 받았다.
갑자기 죽은 아내의 손이 또 생각났던 것이다. 그녀는 손이 작은 편이었다. 조그만 손이 토실토실하고 예뻤다. 오랫동안 거친 농사일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모습과 보드라움은 좀처럼 가셔지지 않고 있었다. 그 자그만 손으로 그녀는 열심히 그 흙을 파고 곡식과 채소를 가꾸곤 했던 것이다. 사실은 그녀의 손이 제대로의 아름다움을 지녔을 때는 그 손에 애무를 받아보지도 못했고, 또 애무를 해주지도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때의 기분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자기가 미처 몰랐던 그 손의 아름답고 의젓했음을 불같이 일어나는 상상력 에 의해서 새삼 실감케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갓 그립다든가, 슬프다든가, 감개가 무량하다든가 하는 그런 축축한 감정에만 젖어 있지는 않았다. 느닷없이 기억 속에서 떠오른 조그만 손은 마치 하얗게 박제라도 된 것처럼 이내 그의 넋을 내리눌렀다. 그는 잠깐 전신에 소름이 돋는 듯한 기분이었다. 곧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그 하얀 손의 환상을 떨어버리려고는 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꽉 붙들고 싶었다. 남들은 거기서 죽은 아내와, 지금 거기 서 있는 자기의 오늘의 운명을 기박하다든가 기구하다든가 할는지도 모르나 당자인 본인은 새삼 운명 따윈 믿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자기의 잘못, 인간의 잘못이라고만 새겼다. 요컨대 인간의 용기 부족과 노력의 부족이 가져온 결과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는 한결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울께를 메우던 힘의 십 분의 일만 들여도 그 질펀한 버덩이 훌륭한 밭이 될 것만 같았다. 문둥이의 공화국이!
오후에도 그는 낯익은 버덩으로 올라갔다. 버덩에서 다시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하늬바람에 억새꽃처럼 흰 수염을 휘날리며 그는 발아래 멀리 굽어보이는 행길²⁴과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촌락들을 바라보았다. 행길은 가끔 구름이나 숲에 가려지면서도 산기슭과 들녘을 끈덕지게 누비어 나갔다. 자동차가 지날 때는 먼지를 뿌옇게 올리기도 했다. 그러한 차량들이나 또 사람들이 마치 개미같이 보이기도 했다. 초라했다. 물론 촌락들도 개미둑처럼 어설프고 초라했다. 산이라든가 들녘이 주는 만고불변의 굳건한 인상에 비하면, 그 위를 기어 다니는 차량이라든가 사람, 혹은 납작하게 땅에 붙어 있는 촌락…… 이런 따위 인간의 수작들은 마치 무슨 장난감 같은 인상밖에 주지 못했다.
“기껏해야 육, 칠십 살다 죽는 인간…….”
그걸 어떻게 하자고 권력을 가지겠다, 돈을 몽텅 벌어 보겠다, 사리사욕을 위해서 생떼를 쓰고, 남을 모함하고, 사기와 협잡을 밥 먹듯 하고, 큰놈에겐 빌붙기를 일삼으면서도 겉으로는 뭐니뭐니 해서 뻔지르르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 유상무상들이 덧없다든가, 구역질이 난다기보다 그날의 우중신 노인에게는 도리어 어떤 엉뚱스런 생각을 갖게 했다. 결국 가짓부리에 지나지 않는 명분을 개가죽 무릅쓰듯 코에 걸고, 한평생 우쫄거려 본댔자 결국은 개뼈다귀 같은 인생! 자기는 이미 다 산 목숨이다. 그 칠십 평생의 비겁하고 너절하고 더러움을 하루아침에 확 씻어버릴 도리는 없을까……?
자기는 이미 올 데까지 온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버티고 그 자리가 문득 자기 생애의 마지막 고비 같은 예감이 자꾸만 들었다.
“어 ㅡ잇!”
우중신 노인은 먼 아래쪽을 향해서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내질렀다. 그 산 발치의 개미허리 같은 고개를, 이삼십 명가량의 문둥이들이 떼를 지어 넘어오고 있었다. 그는 별안간 ‘모세’라도 된 듯, 다시 소리를 내질렀다.
흩진 세 식구가 불과 하루 사이에 자그마치 이십여 명으로 늘어났다. 천막도 두 개가 더 붙었다. 며칠 뒤엔 다시 식구가 불었다. 식구가 도통 오십 명 선을 넘어섰다.
이 급조 천막 지대의 입구에는 어느덧 흰 널빤지에 빨간 ‘인간단지’라고 쓴 팻말이 세워졌다.
치구는 원래 그들의 거주지 시청으로 가서 오십여 명의 퇴거증명을 한꺼번에 받아와서, 새로 정착한 곳의 군청에 내놓았다.
군청 사회계 직원들은 눈이 둥그레지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 × 시에 배정되던 양곡을 이리로 돌리면 안 되오!”
여러 소리 늘어놀 것 없이 이러구서만 돌아섰다. 그날도 자유원에서 몇 사람이 더 와 있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박성일 원장이 아주 노발대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배은망덕한 놈들이라면서,
“제 놈들이 이곳을 빠져나간다고 해서 어디 가 발을 붙일 수 있나 보자. 미구에 오도 가도 못하고 거리에서 굶어 죽을 것이 뻔한데……”
이것은 떠난 사람들에 대한 악담인 동시에, 한편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위협이기도 했다.
결국―바로 그 이튿날 아침나절이었다. 면사무소 직원 두 사람과 파출소 순경 한 삭람이 함께 그 괴상한 간판 ‘인간단지’를 찾아왔다.
“이곳 반장이 누구요?”
제일 나이 들어 보이는 한 친구가 자기들의 신분을 밝히면서 막사의 흙담을 쌓고 있는 한 패를 보고 물었다. 아무 데라도 애국반이란 게 있는 듯이 말하는 걸 보아서 역시 면직원이 틀림없었다.
“반장은 없소만 저 언덕 위로 가보시오.”
일행은 두말 않고 그들이 가리키는 언덕 위―버덩 쪽으로 갔다.
거기서는 수십 명의 음성 나환자들이 패를 나누어 밭을 일구고 있었다. 역시 같은 사람이 같은 소리를 했다.
“반장이란 건 없소만 무슨 일로 왔소?”
우중신 노인이 일동을 대표하듯 말했다.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뻔한 것이었다ㅡ왜 허가도 받지 않고 함부로 여기 들어왔느냐, 그것도 그렇거니와 이 아래 부락들이 발칵 뒤집혀져서 면이랑 파출소로 몰려와 그냥 두지 않겠다고 야단들이니 빨리 본래 있던 자유원으로 되돌아가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우중신 노인은 잠깐 생각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장 효과 있는 대답을 가려내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암만 해도 박성일 원장의 부추김을 받은 것 같은ㅡ말하자면 박원장과 꼭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어서 노여움이 한결 더했던 것이다.
“허가라니 누구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까?”
우중신 노인은 결국 이렇게 되물었다.
“그야 관청의 허가지요.”
면서기의 대답도 퉁명스러워졌다.
“글씨요, 관청이라 하지만 관청도 하도 많으니 어느 관청 인지? 면입니까, 파출솝니까, 아니면 군청? 도청? 어느 쪽입니까?”
“이 영감이 누굴 보고 따지는 거요?”
면서기는 결국 화를 버럭냈다.
“따지는 기 아니라, 몰라서 묻는 거 아니오.”
“좋게 타이를 때 알아서 하시오. 괜히……”
파출소가 한마디 거든다.
“글씨요, 누가 덮어놓고 반대를 합니까. 순서를 아리키 달라는 거 아입니꺼. 면이면 면이다, 군이면 군이라고.”
어쩌자는 건지 세 사람의 방문객은 서로 얼굴만 잠깐 쳐다보았다.
“이 늙은 것도 법률을 전연 모르는 건 아니오만, 소위 헌법에 규정된 ‘거주의 자유’란 거 말임더. 집 없는 국민이 건축 허가가 필요치 않은 깊은 산중에 있는, 노는 나라 땅에 움집을 짓거나 거기서 살 때도 허가를 꼭 맡아야만 대는 건지 어떤지? 내 생각 같애서는 애기의 경우처럼 출생에는 허가가 필요치 않고, 낳은 후 신고만 하면 되듯이, 거주의 경우도 필요하다면 신고만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지만 당신네들의 경우는 다르지 않소?”
역시 나이든 면직원의 말이다.
“문딩이니까? 그러나 여기 온 사람들은 모두 음성입니다. 나라에서 성한 사람과 아무 차별 대우도 하지 않는 그런 국민입니다.”
우중신 노인은 시종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아무튼 우리는 여러분들을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상부의 명령도 그렇고, 또 부근 주민들이 어떤 짓을 할는지도 모르니까요…….”
경찰은 경찰다운 소리를 했다. 면서기들보다 솔직한 데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그날은, 결국 서로 어떻게 하겠다는 약속도 타협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고 이틀 뒤.
간신히 자리 잠은 ‘인간단지’의 천막들은, 벌떼같이 몰려든 인근 주민들에 의해서 순식간에 여지없이 헐리고 말았다.
반항을 하던 환자들은 모조리 떡이 되어 쓰러졌다. 몸도 성치 못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게 불시에 습격을 받고 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저 울음만 나올 따름이었다.
수라장이 된 뒤에야 관청에서 현장 조사가 나오고 조사를 해간 뒤는 그저 그뿐이었다. 그것으로 끝난 셈이었다.
문둥이가 아닌 ‘문둥이’들은 울음을 그쳤다. 울어보았자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악을 저지르고 부정을 하더라도 상대가 강한 자일 때는 입도 달싹 못하는 주제에, 약한 자에 대해서는 병이 다 나았더라도 내처 문등이 취급을 하는, 그러한 사회의 방관과 천대 속에서 결국 ‘인간단지’의 식구들은 법의 혜택조차 입지 못하는 이방인이란 것을 뼈저리게 느낀 셈이었다.
국회의원 선거 때 무슨 투표를 해줬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리도, 하는 놈이 바보다.
‘인간단지’의 식구들은 부상자들을 가운데 두고 모두 침통한 표정들을 하였다. 결국 억울함을 호소할 길조차 없는 문둥이 아닌 ‘문둥이’들의 대회 같은 것이 되었다.
“모두 어짤레?”
우중신 노인은 비장한 어조로 이렇게 물었다. 누가 발론을 한 것도 아니지만 그는 벌써 ‘인간단지’의 지도자처럼 돼 있었던 것이다.
모두 뭉클해서만 있는 걸 보자, 우노인은 예의 앙칼진 목소리로,
“이곳을 쬐겨나면 우리는 지는 거다. 다시는 갈 데가 없데잇! 그러니까 자유원으로 도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일찌감치 돌아가도록 해라.”
아무도 되돌아가려고는 하지 않았다.
이내 모두 흩어져서 일부는 허물어진 천막을 고쳐 치고, 일부는 일구던 밭을 계속 일구었다.
터진 머리를 봉대로 싸맨 치구는, 부락민들이 빼 던진 ‘인간단지’란 팻말을 다시 찾아 세웠다. 그리고 그는 우노인 곁으로 와서 장시간 이야기를 하였다.
다음날 치구는 경기까투리를 데리고 읍으로 나갔다. 저물기 전에 돌아온 그들의 배낭 속에는 소금 따위 극히 필요한 물건들과 함께 이십 여 개의 낫이 들어 있었다.
가까운 부락들에는 안 갔지만 먼 데 동냥을 나갔던 사람들은 계속 수상한 소문들을 듣고 왔다. 그만큼 했음 떠날 줄 알았던 문둥이들이 내처 버티고 있으니까 이번에는 아주 밖으로 내쫓는다, 정 안 들으면 모조리 강에다 밀어넣어 버리겠다고까지 벼른다는 것이었다.
“미친 놈들! 즈그만 살라는 땅인가? 어데 해보라지·……?”
우중신 노인은 모두 들으란 듯이 일부러 큰 소리로 구두덜거렸다. 밤에는 늦게까지 모닥불을 피워놓고 놀았다. 그러면서 습격을 당한 이야기와, 또 그런 일이 있으면 어쩌겠느냐는 이야기들이 으레 나왔다. 속담에 문둥이가 풍은 대풍이라고, 모두 큰소리들을 쳤다.
맞서 싸우자는 정도가 아니었다. 정말 또 내쫓으러 온다면 놈들하고만 싸울 게 아니라 놈들이 사는 동네까지 마구 덮치자는 놈도 있었다. 나라가, 법이 국민을 못 지켜 줄 바에는 자기들의 힘으로 그러한 불법을 막는 수밖에 도리가 있겠느냐는 주장들이었다.
그들은 의논한 결과 향토예비군처럼 반을 나누고, 밤에는 제법 보초까지 다 세웠다.
그와 동시에 부근 주민들의 동정을 살피는 정보활동까지 개시했다.
하루는 동냥을 나갔던 한 패가 지레 돌아왔다. 온다는 것이었다.
“한 집에서 한 사람씩 꼭 나오게 대〔돼〕 있담더!”
“응……”
우중신 노인은 무슨 계책이라도 서 있는 듯이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곧 ‘인간단지’에 비상소집이 내렸다. 모두 보통 때와 같이 일을 하다가 부락민들이 또 몽둥이를 들고 올 때는 곧 한곳에 모이기로 했다.
“먼저 손을 대서는 안 댄데잇! 저쪽에서 기어이 덤빌 때는, 때는 한번 해보자 말이다. 알겠나? 이기고 지고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우중신 노인은 이렇게 당부를 하고 치구를 시켜 몇 사람의, 손가락 없는 불구자만을 천막 안으로 불러들였다. 힘으로는 못 당할 테니 악으로써 대결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손가락이 없는 팔뚝들에 낫을 한 자루씩 동여매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두 자루씩 가진 셈이었다. 이것이 그날의 소위 특공대와 같은 것이었다.
“놈들이 간대로 때리쥑이지는 몬할 끼다. 이래서 우리들의 결심을 비이자〔보이자〕 말이다.”
“멋하면 한 놈 쥑이고 나도 죽을라요!”
이마가 몹시 까진 ‘소신랑’이 역시 표독스런 소릴 했다.
결국 올 것은 왔다.
이백여 명의 장정들이 백주에 괭이며, 삽, 몽둥이 들을 들고 몰이꾼처럼 몰려왔다. 어느 얼굴을 보나 인간 백정이다.
오십 명 남짓한 ‘인간단지’의 식구들은 우선 손에 쥔 것 없이 그들의 천막 앞에 앉아 있었다.
부락민들은 천막들을 죽 에워쌌다.
구장인지 뭔지 얼굴이 넓적하고 입이 메기처럼 커다란 사람이 겁에 질려 있는 듯한 단지의 사람들을 보고 명령을 하듯 했다.
“여러 말 할 것도 들을 것도 없으니 곧 이곳을 떠나시오!”
목소리도 입 따라 우렁찼다.
경기까투리가 일동을 대표해서 따지려들었다. 그러나 그는 두 마디도 못 하고 구장인 듯한 사내의 발길에 차여 넘어졌다.
단지민들은 우꾼하려다²⁵ 말고 천막 안을 돌아보았다.
흰 수염을 덜덜 떨며 우중신 노인이 예의 긴 지팡이를 짚고 경기까투리가 섰던 자리에 나타났다.
“자네 말마따나 여러 말 할 것 없네. 우릴 쥑이라. 우선 나부터!”
우중신 노인은 누더기 같은 윗도리를 확 찢어 젖히며 뼈만 남은 가슴을 쑥 내밀었다.
그러나 구장깨나 해먹을 만한 사람같이 보이는 메기아가리에겐 그까짓 거러지들의 불평이나 위협 따윈 왼눈도 깜짝할 필요가 없었다.
“자네? 이 자식이 머 이런 기 있노!”
메기아가리의 넓적한 손바닥이 우노인의 얼굴을 몰강스럽게 냅다 갈겼다.
쓰러질 듯하다가 일어나는 우노인의 수염으로 피가 벌겋게 흘러내렸다. 우노인의 지광이가 상대방의 아랫배짬을 지르자, 미처 닿기도 전에 또 한 부락민의 괭이가 느닷없이 우노인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퍽! 하는 둔탁한 음향과 함께 쓰러진 우노인의 눈은 방 하얗게 뒤집혀졌다. 거의 순간적인 일이었다.
떼를 지어 앉아 있던 ‘인간단지’의 식구들은 우꾼하고 일어서고, 천막 안에서는 두 팔에 낫을 동여맨 십여 명의 젊은이들이 튀어나왔다.
한참 난투극이 벌어졌다. 천막은 헐리고 ‘인간단지’의 식구들은 여기저기 쓰러졌다. 부락민도 더러 낫에 상했다. 이건 그저 싸움이 아니라, 바로 죽이고 살리고 하는 전쟁이었다. 세 부족으로 달아나던 경기까투리를 비롯한 젊은 환자들은 드디어 몇 갈래로 나뉘더니 비호같이 산길을 내리쏘았다. 이젠 그들의 머릿속에도 조국이니 동포니 하는 생각은 요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끝-
2016년 4월 3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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