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현대 의학도 노화(老化) 앞에서는 아직 초보다. 암도 고치고, 각종 난치성 질병들도 차곡차곡 정복해나가고 있지만, 주름살, 흰머리, 노안과 같은 사소한(?) 노화 현상들마저 손을 잘 못 쓰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호르몬 치료법이라든가, 노안 수술법, 줄기세포 치료법 등이 나와 노화를 늦춰준다고들 주장하고 있으나, 기대 수준에는 못 미친다. 척추 관절 분야에서도 척추관협착증, 무릎의 골관절염 등 나이가 들면서 증가하는 질병을 근원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 질병의 진행을 늦추거나, 통증 없이 잘 움직이고 걸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치료의 주된 목적이다.
유전자 끝 텔로미어가 길면 젊은 세포 노화 막으려면 텔로미어 주는 것 막아야
노화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왜 늙는지, 또 늙으면 왜 병이 많이 생기고 아픈 지에 대해 밝혀진 것이 별로 없다. 만약 이 비밀을 푸는 사람은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일 것이고, 세계 최고의 갑부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노화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중의 하나가 텔로미어(telomere) 이론이다. 텔로미어는 유전자(DNA)의 끝에 붙어 있는 일종의 뚜껑이다.
운동화끈을 자세히 보면 끝에 작은 플라스틱 고정물이 붙어 있다. 운동화 끈을 꿰고 묶고 푸는 것을 쉽게 해주며, 닳는 것도 막아준다. 텔로미어는 운동화끈 끝에 붙은 플라스틱 조각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포가 분열을 거듭하다보면 텔로미어는 점점 닳고 짧아진다. 텔로미어가 길면 젊은 세포, 짧으면 노화가 진행된 세포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텔로미어의 길이는 노화의 한 상징으로 꼽힌다. 그 연장선에서 텔로미어가 줄어드는 것을 막아 노화를 늦추려는 연구들이 진행 중이다. 연구가 완성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텐데,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미국 미시시피대학과 UC샌프란스시코대학 공동 연구팀은 여기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1999~2002년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가한 20~84세 6503명을 △중강도 운동(가벼운 걷기 등) △고강도 운동(달리기 등) △출퇴근(등하교)을 걷기나 자전거로 하기 △웨이트 트레이닝 등 4개의 그룹으로 나누었다. 이 중 한 개를 하면 1포인트를 받고, 2개를 하면 2포인트를 받는 식으로 최대 4포인트까지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들의 혈액 속 백혈구의 텔로미어 길이를 측정해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해보았다.
그 결과 운동을 한 개만 한 사람들의 텔로미어 감소율은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3%가 적었다. 운동을 2개 한 사람은 감소율이 24%, 3개는 29%로 증가했다. 4가지 운동을 모두 하는 사람은 무려 52%나 됐다. 수치가 높을수록 텔로미어가 천천히 감소하는 것이며, 노화가 늦게 진행된다는 뜻이다.
이 연구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운동과 텔로미어 감소의 연관성이 40~65세 사이에 가장 크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텔로미어의 감소를 막으려면 특히 중년에 운동을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퇴근길에 전철, 버스 탈 때 한두 정거장 전에 내려 걸어라
이 연구 하나만 보고, 운동이 노화를 막아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이 연구는 운동을 많이 하면 실제로 텔로미어 감소를 막을 수 있는 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텔로미어를 유지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운동 양이 얼마인지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은 같은 연령대의 운동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텔로미어가 더 길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연구 이전에도 운동선수들의 텔로미어 길이가 사무실 의자에 앉아 일하는 동년배들보다 더 길다는 연구들도 나와 있다. 또 텔로미어는 비만, 흡연, 당뇨병 등의 병이 있으면 더 빨리 짧아지는 것도 확인돼 있다.
운동이라고 해서 전문 장비로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번 연구에서도 운동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외에 일상에서의 가벼운 걷기, 출퇴근이나 등하교를 걷거나 자전거로 오가는 것도 포함돼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한 실천이다. 이것이 노화 예방의 기본이다. 젊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으면 퇴근길에 전철, 버스를 한 두 정거장 전에 내려 걷기부터 당장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