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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마 13:9-16절
제 목 :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된다
일 시 : 2021. 1. 6.
마13:9-16/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유명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그 비유의 해석 사이에 있는 말씀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는 비유 중에서 가장 중요한 비유입니다. 그래서 막4:13/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저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은혜를 받고 새로운 깨달음이 주어집니다. 이 비유속에 정말 많은 보화들이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13장에서 다른 여러 가지 비유도 말씀하셨지만 특별히 씨 뿌리는 비유와 가라지 비유는 비유를 말씀하고 거기에 대한 완벽한 해석까지도 주셨습니다. 그만큼 이 비유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비유의 양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데 1) 첫 번째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더 많은 천국의 비밀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11-12절을 보시면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천국의 비밀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2) 두 번째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 않는 마음이 완악한 사람들 즉 귀를 닫아 버리고 눈을 닫아 버린 사람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고침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복 받을 사람들에게 더 많은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며 저주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기회도 주시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성경에는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긴다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오는데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된다는 말씀은 대부분은 들을 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로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 듣는 것은 그 날 한 번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더 많은 복된 말씀들과 천국의 비밀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이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오늘 밖에 없습니다. 오늘만이 나의 날입니다. 오늘이라는 시간만 나에게 주어진 나의 시간입니다. 물론 내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이라는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보면 분명히 미래가 있고 내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미래와 내일은 볼 수도 없고 나의 것이 아닙니다. 오늘만이 나의 날이며 오늘만 있을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의미에서 고후6:1-2/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너희를 권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2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베풀 때가 있고 구원의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혜를 베푸시는 때가 언제이며, 구원의 날은 언제입니까? 바로 지금입니다. 그래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실수하고 놓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에 은혜를 받고, 다음에 구원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내일 은혜를 받으면 되겠지? 다음 주일에 은혜를 받지 뭐?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오늘 은혜를 받고 오늘 구원을 받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오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내일에도 은혜를 받고 그 다음날에도 구원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오늘 은혜를 놓치고 구원을 놓치면 내일도 놓치고 그 다음날도 놓치게 됩니다. 오늘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에 참석해서 말씀을 받고 은혜를 받으면 그 은혜는 날마다 더해집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여 예배를 빠지고 말씀을 놓치면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게 됩니다.
그리고 있는 자라고 했는데 여기서 있다는 것은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까? 곧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는 은혜도 있고 구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말씀을 빼앗기거나 잃어버리면 거기에는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습니다. 마리아의 경우를 보면 그렇게 말씀합니다. 눅10:42/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습니다. 그 좋은 편이란 예수님의 무릎 앞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붙잡은 마리아는 아무 것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지난 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모든 제자들과 주님을 따르는 많은 여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이나 부활에 대해서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으시는 현장에 따라가서 그것을 보았으며, 예수님이 무덤에 묻혔을 때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넣기 위해서 빈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릎 앞에서 말씀을 받은 마리아는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으면서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을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그것이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현장에 가보지 않았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보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다 믿었습니다.
마리아 들은 주님의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말씀이 없고 말씀을 믿지 않으니까 자신이 직접 경험을 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리아처럼 말씀을 붙잡으면 그런 시행착오를 할 필요도 없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어집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붙잡으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 말씀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놓치게 되면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모든 복들까지도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붙잡고 말씀으로 충만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더 많은 것들을 얻게 되고 받게 됩니다.
2. 어떻게 하면 넉넉히 받게 됩니까?
1)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자와 눈이 있어야 합니다.
12절에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라고 했으며, 16절에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받아 넉넉하게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자는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받아 넉넉하게 됩니다. 그러지만 눈과 귀가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게 됩니다.
그래서 눅8:18/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눅8:18절 말씀도 바로 앞에 있는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결론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눅8:11-17/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16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17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 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길가와 같은 밭, 바위가 있는 밭, 가시떨기가 있는 밭에 대해서 설명하시면서 세 종류의 밭은 결실을 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 자가 누구인지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함으로 결실하는 자라고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 자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먼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의 말씀을 들었을 때 거기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게 아멘으로 받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듣고 지키어 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받는 목적이 그 말씀을 듣고 지키려는 의도에서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저는 그 동안 목회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내가 그 말씀을 받고 지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성도들을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목회를 하면서도 나에게 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주님은 내가 말씀을 받아 먹어야 됨을 깨닫게 해 주셔서 나 자신을 위해서 말씀을 받아 먹는 훈련을 했습니다. 3) 세 번째로 인내로 결실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받는 자세와 말씀을 받는 목적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세 번째는 더 중요합니다. 말씀을 아무리 많이 받고 잘 받았어도 그 말씀을 지키려고 인내하지 않는다면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자가 아닙니다. 말씀을 받았으면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그 말씀이 싹이 나고 잎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이 들을 귀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눅8:16-17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17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 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등불을 등경 위에 두게 되면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그 빛을 보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도 진짜 말씀을 받았으면 받은 말씀을 감추어 두려고 하고 숨기려고 해도 저절로 들어나고 알려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빛이고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눅8:18/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눅8:15절에 나오는 좋은 밭과 같은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함께 물질의 복과 건강의 복과 형통의 복과 자녀들이 잘 되는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됩니까? 말씀을 제대로 받지 않으면 있는 것도 빼앗기게 됩니다. 말씀을 어떻게 듣고 받는지 스스로 삼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속에 말씀을 잘 받고 풍성하게 받아서 넉넉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더해지는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올해 한해 동안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아멘아멘
할렐루야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