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으로의 여행 크로아티아, 발칸을 걷다]
Croatia
11 문명과 자연이 만나는 곳, 크로아티아(5)
렉토르 궁의 기념품 가게를 통해 건물을 나왔다. 날이 맑아서인지 가시광선은 사물을 아름답게 비추었다. 렉토르 궁 맞은편에는 두브로니크의 대성당이 있다. 성당의 원래 이름은 ‘동정녀 승천 대성당’(Cathedral of the Assumption of the Virgin)이라고 한다. 이 성당은 6-7세기에 비잔틴 양식으로 재건되었고 1667년 대지진 이후 1672년부터 1713년까지 이탈리아 건축가 안드레아 불파리니와 파올로 안드레오티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한다.
엘레나는 성당을 가리키며 이야기하였다.
“이 성당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12세기 1차 재건 당시 영국 왕 리처드가 십자군 전쟁에 나섰다가 해상에서 조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로크룸이란 섬에 구조되어 상륙했는데 이것을 신의 은총이라고여겨 자금 지원을 하였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관련이 있습니다.”
“셰익스피어”하고 나는 엘레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인 ‘12야’에 영감을 준 것이라고 합니다. 여주인공 비올라가 바다에서 조난된 뒤 일리리아에 머물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두브로브니크라고 합니다.”
모든 여행지마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있다면 여행이 보다 더 재미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엘레나와 나는 구 항구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갈까 망설였다.
렉토르 궁 뒤편으로 해서 구 항구로 갈까, 아니면 스폰자 궁 방향으로 갈까 생각하다 스폰자 궁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구 항구에는 많은 관광객과 그리고 요트가 정박해 있었고 예전의 모습을 한 관광용 배도 있었다.
엘레나는 나에게 구 항구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이곳은 아주 오래전 12세기-17세기까지 역사적으로 중요한 항구의 역할을 했습니다. 주변 건물은 거의 15세기 르네상스 스타일이죠. 그리고 검역 사무실이 있는데 이곳은 말 그대로 검역을 위한 곳이었고요. 모든 것들은 40일 동안 검역 후 도시에 들어올 수 잇었다고 하며 1377년 만들어졌답니다. 원래는 섬에 위치해 있었으나 물, 음식 등의 공급 문제로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죠.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은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에피다우로스 지역으로 그리스인들의 하룻밤 정박지로 이용되었다는군요. 2세기 로마 점령 후 에피다우룸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보는 성곽은 중세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성곽 안의 지역을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이곳 말로 그라드(Grad)라고 부른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올드 타운, 구시가지가 아닐까요?” 하고 엘레나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나는 엘레나를 보며 물었다.
“식사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이곳 항구에서 식사를 하면 어떨까요?”
엘레나와 나는 항구에 있는,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이곳은 이탈리아와 가까운 해안도시라 그런지 음식이 이탈리아식이다. 스파게티와 피자 등. 역사적으로 베네치아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을 나와 엘레나와 나는 스르지 산에 오르는 케이블카를 탈까 아니면 도시 성곽을 볼까 고민하다가 성곽을 보기로 하였다.
우리는 항구를 나와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올라갔다. 성벽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100미터-150미터 정도 올라갔을까? 돔니카 수도원 근처 오른쪽에 성곽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었다. 성곽의 입장료는 30쿠나이고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연다. 성곽으로 올라가는 입구는 여기 말고 우리가 성벽을 둘러보고 나올 곳에도 있었다. 그곳은 렉토르 궁 쪽 안으로 좀 더 들어간 끝부분에 있고 또 다른 곳은 엘레나와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티켓을 사서 올라갔다. 성곽을 나올 때 가끔 직원이 티켓을 보여 달라고 한다.
성곽으로 올라가보니 쪽빛 바다와 푸른 하늘이 무척이나 더 진하게 느껴졌다. 좁은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여행하면서 느끼는 이러한 감흥은 다른 어떤 것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곽에서 보는 붉은색 지붕, 좁은 골목길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는 엘레나에게 “지붕을 보면 같은 색이라도 붉은색이 진한 게 있고 옅은 게 있죠. 왜 같은 지붕 색인데 차이가 날까요?”하고 물어보았다.
엘레나가 나를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글쎄요, 제가 알기로는 내전 때 폭격을 당해 지붕을 다시 앉었다더군요. 그래서 근래의 것은 짙고 이전에 있던 것은 옅답니다.”
“네, 맞아요. 단순한 풍경이지만 내전으로 인해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이 이야기가 지금 이 상황에 맞는지 모르겠지만 역사는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것 같아요.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말입니다.”
많은 관광객이 오갔다. 나는 엘레나에게 성벽 카페에서 음료 한잔 하고 가자고 하였다.
2킬로미터의 성벽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다.
엘레나는 나에게 성벽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성벽은 13세기-16세기에 세워진 것인데 아직까지는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15-16세기 오스만 투르크의 위협을 받으면서 시가지를 완전히 감싸는 성벽이 세워졌고 성벽의 높이는 25미터, 두께는 내륙으로 6미터 바다 쪽으로는 1.5미터에서 3미터 정도 된다고 합니다. 철옹성 같은 요새라는 생각이 드네요.”
해안선을 따라 둘러쌓은 성벽은 짙은 푸른색 바다와 하늘 그리고 붉은색의 지붕과 종탑을 보다 더 아름답게 꾸며 주었으며 성벽의 모습은 스페인의 아빌라의 성벽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엘레나와 나는 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였다. 잠시 동안 엘레나와 나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잇었다. 바다는 푸른색, 안으로는 붉은색, 그리고 벽은 회색이랄까 아니면 베이지 색이랄까 그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엘레나는 나에게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하였다. 우리는 다시 천천히 걸었다.
천천히 걸어가는 길에 버나스 쇼가 이곳을 지상의 낙원이라고 한 말이 생각이 났다. 돌아서 온 곳은 플라차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우리는 성벽을 돌아 내려왔는데, 내려오는 계단은 심한 급경사였다. 성벽에서 내려와 렉토르 궁 방향으로 갔다. 그리고 로자 광장을 만났다. 그곳은 플라차 거리의 끝이고 구 항구와 도미니크 수도원 그리고 성벽으로 가는 입구였다. 엘레나와 나는 플라차 거리를 따라 필레게이트 방향으로 갔다. 저녁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거리는 많은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엘레나와 나는 호텔로 가기 전 이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언덕진 계단 사이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가서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하였다. 이곳은 베네치아의 영향을 받았는지 피자와 스파게티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피자와 스파게티 그리고 홍합을 와인과 함께 시켜 먹었다. 우리가 식사를 하고 나왔을 무렵에는 해가 이미 지고 있었다. 천천히 플라차 거리를 따라 거닐었다. 가끔 골목 사이로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이 들렸다.
호텔에 도착한 엘레나와 나는 내일 9시에 트로기르를 경유하여 스플리트로 출발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