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2차 금정산(金井山)-801.5m
◈산행일:2005년02월13일 ◈날씨:오전-맑음/오후-맑음
◈위치:부산광역시 북구 금성동 산성마을 산성흑염소먹거리촌
◈참가인원:45명 ◈산행소요시간:7시간10분(08:30~15:40)
◈교통(한일고속관광조시제기사):마산(07:07)-동마산요금소(07:15)-진영휴게소(07:24-42)-북부산요금소(08:00)-화명동에서 우회전(08:11)-산성마을(08:25)
◈산행구간:산성마을→파류봉→상계봉→망미봉→남문→산성고개→동문→의상봉→원효봉→북문→고당봉(정상)→마애불입상→가산리
◈산행안내 : 전체(김기수) 선두(전임수), 중간(신종섭), 후미(박윤식)
◈특기사항 : 양산시 동면 석산리 지당마을소재 해수탕에서 목욕
◈산행메모: 북부산요금소에서 만덕 방향으로 진행하여 낙동대교를 건너면 도로바닥에고속도로 끝이라는 글을 만난다. 이어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만나서 따라간다. 신호대에서 U턴하면 양산방향이다. 화명동에서 금정산성 이정표를 만나서 우회전하여 따라간다. 산성흑염소먹거리촌에서 하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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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산의 능선에 바위봉이 봉수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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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산성집과 물레방아집 사이 골목으로 들어간다. 6분 후 금정가나안수양관을 만나서 왼쪽으로 휘어지니 산길이다. 밋밋하게 올라가니 한국의 만리장성이라는 금정산성을 만난다(08:45).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장전동, 구서동, 북구 금곡동, 화명동, 만덕동일원에 있는 사적제215호인 금정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숙종29)년에 국방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해상을 방어할 목적으로 금정산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약17㎞, 높이는 1.5~3m이고 면적은 약8.2㎢에 이르는 국내 산성 가운데 가장 거대한 성이다. 처음에 산성을 쌓은 것은 확실하지 않으나 고대에 남해안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신라시대부터 성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1667년(현종8년)에 통제사 이지형을 불러들여 왜구의 침략을 방어할 대책을 강화하는 가운데 금정산성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보아 1703년 이전에 산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산성을 축조하자는 논의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1701년에 경상감사 조태동의 건의로 착공하여 이듬해에 성을 준공하였다. 그 후 1807년(순조7) 동래부사 오한원이 동문을 준공하였고 이듬해에는 서․남․북문의 문루를 완성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한 금정산성부설비가 장전동에 전해온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1972년에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1974년까지 동․서․남문을 복원하였으며 1989년 북문을 복원하였다. 산성의 수비는 동래부사가 맡았으며 중군과 승병장 등의 직책을 가진 중간간부와 군병 등의 상비군 및 인근 사찰의 승려가 지켰다. 그러나 유사시에는 동래, 양산, 기장의 3개읍 소속의 군인과 사찰의 승려가 차출되어 지켰다. 금정산성은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에 대비하기 용이한 낙동강하구와 동래지방이 내려다보이는 요충에 위치하고 있어 조선후기 부산지방의 국방상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가파른 오름짓을 5분쯤 하니 바위를 만난다. 먹거리촌에서 보았던 그 바위봉인 파리봉이다. 두 손으로 짚고 오르니 밧줄도 잡아당긴다. 뒤에서 받치고 앞에서 부대장이 손을 잡아당기며 올라서니 바위사이를 건너뛴다. 난코스를 벗어나는 듯했는데 허리를 밧줄로 감싼 바위도 만난다. 왼쪽은 낭떠러지다. 오른쪽밧줄을 잡고 건너뛰어 통과한다. 이제까지 다닌 산중에서 이 정도의 난코스는 찾기 힘들 정도다. 어렵게 바위 위에 올라서니 파리봉 정상인 작은 마당이다(09:06).
진행방향의 능선에는 눈높이의 봉들이 볼록볼록 솟아있다. 밋밋한 비단능선(산성)길이다. 금정산성 제1망루를 만난다(09:22). 지붕은 태풍 때 날아갔단다. 바위로 이루어진 상계봉은 오른쪽으로 왕복 10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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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방향으로 내려가서 오르니 헬기장봉이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보는 파리봉은 한 폭의 그림이다. 왼쪽 뒤로 돌아보니 조금 전 유격훈련으로 통과한 파류봉, 그뒤로 멀리서 고당봉이 함께 어우러져 풍광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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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봉에 오르니 쪼개진 바위사이에 망미봉이라 쓰인 표지철이 꽃혀있는 망미봉이다(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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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토 길로 미끌거리며 쏟아지니 남문을 만나고 임도를 따라간다. 차량이 일으키는 먼지도 마시며 20분간 진행하니 산성고개다(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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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마을2.1, 동문0.5, 북문4.5, 고당봉5.4, 남문3.2킬로미터를 안내하는 이정표도 있다. 산성 따라 6분간 진행하니 동문을 만나고 밋밋하게 올라 대륙봉에 올라선다(10:35). 고당봉이 정면에 다가왔다. 내려가니 고당봉이 가린다. 침목과 돌계단으로 올라 망루를 만나고 5분 후 의상봉에 올라선다(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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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서 성을 따라 숨차게 올라가니 원효봉이다. 돌계단으로 내려가니 북문을 만나고 시장바닥이 된다(11:24).
사거리 이정표에는 동문4, 범어사1.6, 구천주교목장1.5, 고당봉(금샘)0.8㎞다. 먼저 와서 산성막걸리 맛을 보는 회원들도 보인다. 洗心井을 지나 돌계단으로 올라가니 금샘0.5㎞이정표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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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는 고당봉(姑堂峰)안내판도 있다.
〈정상부분이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는 이 봉우리는 하늘에서 천신인 姑母할머니가 내려와 산신이 되었다(異說도 있다)하여 그 이름이 유래하였는바 이는 고대의 신선사상에 기초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지금도 정상부근에는 고모당이라는 기도처가 있다. 금정산 10여봉 중 최고봉이며 그 가슴께에 용머리형상의 용두암이 있고 남쪽 산허리쯤에는 고당샘이 있다. 동쪽 능선 허리에는 범천의 금어가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와 살았다는 금샘(金井)이 있어서 금정산과 범어사라는 이름의 연원이 되었다.〉
오른쪽으로 몇 걸음 진행하여 왼쪽으로 올라가니 고모당기도처다. 사람은 없고 부처님 혼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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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을 하고 안전산행을 빈다. 되돌아 안내판까지 내려가서 사람들이 길을 메우며 오르는 돌계단으로 올라간다. 내려오는 사람과 엉키며 어렵게 표지석 앞에 선다(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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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밀려 내려오다가 바람막이 바위사이에서 식당을 차린다(12:10-30). 식사라야 빵 두 개다. 우회길이 합쳐지는 억새 숲을 만나니 앞서간 일행들이 식사중이다. 장군봉2.3, 범어사2.5㎞ 이정표도 있다. 10분간 장군봉 방향으로 진행하니 가산리마애불 갈림길이다(12:50).
왼쪽 길로 5분간 내려가니 향냄새가 풍기며 마애여래입상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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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된 양산시 동면 가산리 소재 이 불상은 범어사의 북쪽 금정산의 화강암 절벽 위에 있다. 마애불은 높이1.2m 폭2.5m나 되는 거대한 여래입상이다. 마애불의 주변에 축대가 남아있고 토기조각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 근처에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암벽에 새겨진 불상은 오랜 세월의 비바람으로 심하게 마멸된 데다 바위에 균열이 많아 원래의 모습을 알기는 어렵다. 다만 각 부분별로 약간의 흔적들이 남아있는데 머리에는 관을 쓴 듯한 흔적이 남아있다. 눈초리를 치켜올린 채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눈과 큰 코, 꼭 다문 입, 어깨까지 내려온 귀 등은 다정하고 자비로운 부처의 모습이라기보다 오히려 위엄을 갖춘 수호신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손 모양이나 옷자락의 형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남아있는 옷자락의 주름모양은 불상에서 볼 수 있는 일정한 양식을 따르지 않고 이리저리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있으며 두 개의 발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전체적인 조형수법으로 볼 때 통일산라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되돌아 올라가서 왼쪽으로 내려가서 왼쪽으로 휘어지니 조금전의 마애불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쳐진다. 계단이 끝나니 바위돌 계곡으로 쏟아진다. 돌에 막히면 돌아서, 건너뛰기도, 두손을짚고 미끄러져 내리기를 30분 가까이 진행하니 비단길로 변하며 임도를 만난다(13:31). 마애불아래에서 만난 부부가 일러 준대로 임도 따라 오른쪽으로 진행한다(나중에 알았지만 여기서 임도를 건너는 직진길을 찾아야 했었다). 지원사를 만나서는 시멘트길로 변하며 7분 후 송어양식장이 있는 삼호공원에 내려선다(14:07). 8분 후 4차선인 35번국도를 만나 왼쪽으로 이동하여 삼거리 고가도로 아래에서 산행이 끝난다(14:40).
☆승차이동(16:00)-목욕(16:05-17:20)-남양산요금소(17:24)-장유휴게소(17:50-18:03)-장유요금소(18:07)-창원터널요금소(18:15)-마산착(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