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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동백은 12월 초부터 이듬해 4월 말까지 꽃을 피우지만 2월 말부터 3월 초가 되어야 ‘이거다’ 싶은 자태를 내보인다. 올겨울 유난히 혹독했던 추위 때문에 아직은 제 모습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봄기운 가득한 해풍을 맞으며 꽃망울마다 토실토실 살이 올랐다.
지심도는 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길이 2㎞, 폭 500m이고 가장 높은 산봉우리가 해발 97m에 불과하다. 12가구 20여명이 살고 있다. 섬 곳곳에는 일본군들이 사용하던 진지와 포대, 탄약고, 망루 등이 남아 반 세기전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학생들이 떠나 폐교된 지심도 분교는 쓸쓸하기만 하다. 도시인의 바쁜 발걸음이라면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 2~3시간 정도로 충분하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이방인에게 지심도는 제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룻밤을 함께 지낸 후에야 옷고름을 살짝 풀어보일 뿐.
새벽녘 어슴푸레한 오솔길을 산책해 본다. 부산히 아침을 준비하는 까치·직박구리·동박새들의 지저귐이 귀가 따가울 정도다. “푸드덕.” 낯선 발자국 소리에 놀란 새들이 날아오른다. 산 정상의 활주로 잔디밭으로 걸음을 옮긴다.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는 수평선. 저 멀리 남해 바다 위로 동백꽃보다 더 붉은 햇덩이가 ‘불끈’ 솟아오른다. 하늘이 갑자기 밝아졌다. 맑은 날에는 저 멀리 대마도가 보인다. 부서지는 파도 소리, 동백잎을 뚫고 불어오는 바람 소리는 가슴까지 시원하다.
지심도의 또다른 매력은 갯바위 낚시다. 줄줄이 걸려 올라오는 학꽁치·자리돔의 손맛은 놓치기 힘든 유혹이다. 보통 낚싯대를 쓰지만 뜰채를 이용해 학꽁치를 퍼담을 때도 있다고 ‘꾼’들이 전했다. 섬의 남북단인 샛끝과 마끝, 동쪽의 동섬, 선착장 부근 등 포인트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여기서 한 1년 머무르면 도시에 절은 기운이 좀 가실까요?” 아들과 함께 지심도에서 하룻밤을 묵은 한 40대의 말에 5년 전 이곳을 찾았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다는 조동일(53)씨가 한마디 했다. “1년은 무신 1년, 한 1주일이면 쏙 빠질끼라.”
(지심도(거제)=채성진기자 dudmie@chosun.com )
◇여행 수첩
▲가는 길: 서울 남부터미널(02-521-8550)에서 장승포행 버스가 하루 6회 운행한다(일반버스 1만9900원), 5시간30분 소요. 지심도 도선장까지는 택시 기본요금 거리다. 부산연안여객터미널(051-469-0117)에서 쾌속선(어른 1만6000원·어린이 8000원, 하루 7회 운항)으로 40분이면 장승포항에 닿는다. 거제수협공판장 방향으로 500m쯤 가면 지심도 도선장(055-681-6007). 하루 3회(08:00, 12:30, 16:30) 운항하며 10여분쯤 걸린다. 요금은 왕복 7000원. 주말과 여름 성수기에는 증편된다. 선장 반용호(011-864-0279)씨에게 출항 여부를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다.
▲묵을 곳·먹을 곳: 지심도에는 10여곳의 민박집이 있다. 조동일씨의 한목민박(055-681-6901, 011-9592-7672), 김성철씨의 해돋이민박(055-681-7180, 016-9663-8853) 등에서 2만5000~3만원. 가정식 백반이 1끼에 6000원. 낚시 도구는 민박집에서 대여한다. 장승포항 항만식당(본점: 055-682-3416, 분점: 055-682-4369)의 해물뚝배기는 20여가지 해산물과 칼칼한 국물맛이 일품. 혜원식당(055-681-5021)의 꽃게탕과 해물탕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