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2월
특별 인텨뷰
박태호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장소: 로스 엔젤레스 윌셔 타워 호텔
일시: 1991년 10월 29일
경력: 1919년 10월 15일 함경북도 출생
1927년-1933년 보통학교 학생
1934-1936년 보현사 불교 학원 학생
1937년-1945년 보현사 승려
1946년-1954년 불교도연맹 함경북도 위원회 부장
1955년-1958년 인민 경제대학 학생
1959년-1969년 불교도연맹 함경북도 위원회 위원장
1970년-1978년 불교도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형근: 이렇게 뵙게 되어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지난 10월 23일 하와이에 도착하여 5일을 지내고 28일 로스 엔젤레스에 도착하여 예정되었던 범불교연석회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역사적인 조국통일불교도합동법회를 가졌는데 이것에 대해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박태호: 우리 조선불교도연맹 대표단은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북과 남, 해외동포들의 불교도 모임에 참가하기 위하여 하와이를 거쳐 여기 로스 엔젤레스에 도착하였습니다. 나는 우리 대표단과 공화국 북반부의 전체 불교도들을 대표하여 이번 회합이 실현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온 한불협, 평불협, 그리고 미주지역의 모든 불자들과 동포들에게 사의를 표하며 따뜻한 인사를 전합니다.
오늘 북부조국의 불교도들과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주석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힘차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나는 미주지역 동포들이 이역 땅에서 온갖 시련과 난관을 극복하면서 생활터전을 꾸려가며 조선 민족의 슬기를 빛내며 나라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벌리고 있는데 대하여 숭고한 경의를 표합합니다.
통일은 7천만 겨러 모두의 절절한 소망이고 더는 미룰 수 없는 우리 민족 모두에게 나서는 선차적 과업이며 1990년대에 기어이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려는 것은 우리 민족의 한결같은 의지로 되고 있습니다. 우리 대표단은 부처님의 화해와 화합의 정신에 따라 민족의 대단결로 조국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앞당겨 나가기 위하여 이번 회합에 적극 참여하려고 하며 아울러 미주 지역의 모든 불자들과 동포들에게 우리 나라에서의 사회주의 건설과 우리 인민과 불교도들의 행복한 생활에 대하여 소개하며 미국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의 생활 모습을 조국 인만들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끝으로 나는 우리 대표단의 활동에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어제 (로스 엔젤레스의) 관음사 법당에서 조국통일 기원불교도합동법회를 가졌습니다. 이것은 뜻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북부조국 불교도 대표단과 남부조국 불교도 대표단, 그 밖의 대표단 미주 지역의 불자들과 동포들이 많이 참가했습니다. 나와 서의현 스님이 연설을 하고, 일본에서 온 분들이 연설을 했습니다. 우리 불교도도 자주 만나서 조국통일을 염원하고 협력하고 서로 노력하자고 부처님 앞에서 맹세를 하고 서원을 한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또 북.남. 해외불교도가 이렇게 처음 만났으니 앞으로 우리가 여러 가지 장애가 있겠지만 될수록 자주 만나서 서로 민족의 지상과업인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데서 우리 불교도들이 어떻게하면 역할을 높이겠는가를 논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김형근: 조금 전에 법타스님이 ‘미주현대불교’에 쓴 ‘북한불교의 실상과 교류 전망’이라는 글 중에서 북부 조국에 사찰이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기술하여 정확하지 않다고 말씀했는데 북부조국의 불교계 현황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박태호 : 사찰 숫자는 약 60개 됩니다. 전쟁 전에는 5백개쯤 되었는데 전쟁 중에 미군의 폭격에 의해 모든 사찰이 다 파괴되어 타버렸습니다. 지금 있는 것은 전후에 복구한 것들입니다. 최근에만 해도 평양시 교외에 있는 대성산 광법사를 복원했습니다. 이것도 전쟁에 흔적도 없이 없어진 것들입니다. 김일성 주석님께서는 불교 사찰이 불교도들이 수행을 쌓는 도량인 동시에 민족의 귀중한 건축 유산이므로 복구해서 후세에 전해야 한다고 간곡하게 가르쳤습니다. 김주석님도 금년 봄에 광법사에 오셨습니다. 또 평양시 교외에 동명왕릉이 있는데 옛날에 거기에 정릉사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복원하여 완성단계에 있습니다. 금강산의 유점사, 외금강에 있던 신계사, 내금강에 있던 장안사, 안변에 있던 석왕사, 이런 유명한 사찰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찰들이 다 망가졌습니다만 60여개가 복원된 것입니다. 불교도 수는 약 1만명, 스님들의숫자는 2백명쯤 됩니다.
김형근: 비구니 스님은 있는지요? 조선불교도연맹과 불교학원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박태호: 비구니 스님은 없습니다. 조선불교도연맹은 공화국의 전체 불교도를 대표하는 유일한 조직입니다. 이 조직은 도.시.군에 위원회가 있습니다. 신자들은 사회주의 건설에 참가하고 있고, 신앙생활은 자유롭게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어느 사회나 비슷하며 우리도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나라의 통일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불교학원은 3년제인데 스님들을 양성하는 곳으로 일반대학을 나온 사람으로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북부조국에서는 따로 독립해서 종교학과는 없지만 김일성 종합대학에 종교학과가 있습니다. 불교학원은 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 직속으로 되어 있습니다. 조선불교도 연맹은 다른 나라의 불교단체와 교류.협력을 많이 합니다. 또 몽고에 본부가 있는 아시아 불교 평화회의, 타이에 본부가 있는 세계불교협회 등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불교서적 등을 출판하고 있으며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북부조국의 통일방침을 지지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정당 사회단체에 가입하여 활동을 합니다.
김형근: 현재 불교학원의 학생수는 몇 명입니까?
박태호: 예 20명입니다.
김형근: 비극적인 분단시대가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남부조국의 불교계에 관심이 많으시리라 생각이 됩니다. 남부조국의 불교계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태호: 남부조국 불교계 스님들과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름은 전에부터 알고 있었고, 남부조국 불교신문 같은 출판물을 통해서 남조선불교계의 움직임 같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남부 조국의 민주화, 자주화 등 조국통일을 위한 활동들이 남부조국 청년, 학생등과 기독교 등 다른 종교계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 불교는 이에 너무 소극적인 점입니다. 가까운 예로서 남부조국에서 강경대 학생이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서 실해당하고 그것으로 남부 조국이 몇 개월간 아주 맹렬한 시위. 집회 등이 아주 많았었고, 명동 성당에서도 농성도 많이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때에도 남부조국 불교계에서 그것에 대해 별로 행동을 한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김형근: 민족자주통일 불교운동협의회에서는 그 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박태호: 예, 물론 지선 스님이 의장으로 있는 통불협에서는 투쟁하고 있지만 남부조국 최대 종단인 조계종단이라든가 그 밖의 종단들에서는 모두 침묵을 지키는 것이 아쉽고 유감스럽게 생각됩니다. 사회가 요란스럽게 들끓고 있는데 불교가 이런 것들을 외면해서야 되겠습니까 ?
김형근: 제가 이 회의를 구상하면서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미주불교인협의회’ 이름을 맨 처음 제안하면서부터 남부 조국에서 실질적으로 조국의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세력의 몫으로 통불협 의장인 지선 스님을 남부조국의 대표 중의 한 사람으로 선정하였는데 이번 회의에 결국 빠졌습니다. 지선 스님이 빠졌기 때문에 역사적인 의의도 반감되는 것 같은데 대선사님의 의견은 어떠한지요 ?
박태호: 현재 북.남 상황을 볼 때 평양과 서울을 오고 가면서 함께 행동하기에는 어려우니까 외국 땅에서나마 북과 남, 해외에 있는 불자들이 통일방안을 함께 논의하고자 하는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온 것인데 남부 조국의 통불협의장 지선 스님이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지선 스님 자신은 참가하겠다고 결의 표명을 했고, 미주 쪽에서도 연락을 했는데 남부조국 당국이 여기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가로 막았습니다. 여권 발급도 안해주었고, 북의 동포들과 만나는 것도 승인하지 않아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전에 지선 스님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출판물을 통해서 민족자주통일불교운동협의회 분들이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잘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선 스님과 만나서 나라의 통일을 하는데 우리 불교도들이 어떻게 이바지하겠는가를 함께 의논하려고 했는데 지선 스님이 오지 못했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대표단의 이름으로 지선 스님이 여기에 참가할 수 없도록 가로막은 남부조국 당국의 구태의연한 반통일적 자세에 대하여 아주 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의현 스님을 비롯한 남부조국 종단의 지도급 스님들이 이번 행사에 오셨는데 지선 오지 못한 것에 대해서 응당 남부조국 당국에 항의하는 목소리를 전혀 내지않고 그저 수수방관하고 있는데 대하여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김형근: 남부조국의 불교계에서 한강 유등제 등 몇 차례에 걸쳐 북부조국의 불교계 인사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러나 조국 땅에서는 만나지 못하고 미국 땅에서 만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박태호: 우리는 언제든지 북과 남 불교인들이 자주 왕래를 하고 자주 만나서 상호 관심사에 대해서 토론하고 교류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남부조국에서는 국가보안법이 있어서 우리가 나가는 것도 마음대로 안되고 저쪽에서 들어오는 것도 마음대로 안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가보안법 자체가 북부조국 주민 전체를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법을 그냥 두고 있는 조건 하에서는 남북교류라든가 북남스님들이 왕래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남조선 국회 내에서나 재야 단체에서도 빨리 철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울려나오고 있지만 남부조국 당국은 보안법 유지를 계속해서 고집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있는 이상 북남간의 교류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김형근: 우리 민족의 가장 큰 과제는 통일입니다. 분단시대를 사는 불교인들이 우리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어떠한 자세, 어떠한 사명감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박태호: 우리나라는 외세에 의하여 분단 된지 40년이 지났는데 이런 비극 속에서 우리 불교가 부처님의 숭고한 이념을 이 땅에 꽃피우려면 우선 나라의 통일을 해야 합니다. 나라의 통일 없이는 불교의 이념을 이 땅에 꽃피운다는 것은 빈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라의 통일을 위해 노력한다. 이보다 더 중대하고 긴급한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어떻게 하면 나라의 통일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는가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불교가 남, 해외에 있는 불교도들이 불교도 조직들이 어떻게 하면 자기 일상생활에서, 일상 불사에서 나라의 통일에 이바지 하겠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우선순위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형근: 박태호 선사님의 개인 신상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박태호: 고향은 함경북도 길주이며 나이는 72살입니다. 가족은 아들이 둘인데 손자들도 있습니다. 맏아들은 작가이며 둘째 아들은 미술가입니다.
김형근: 바쁘신 시간에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가까운 시일내에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