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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
성경 ; 겔37:1-14, 롬8:6-11, 요11:1-44
제목 ; 사람노릇을 하도록 너에게 생기를 불어넣으리라
우리나라 가수 중에 ‘신해철’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조금은 별나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로서는 좀처럼 이
해하기 쉽지 않은 행동을 하거나 발언을 해서 일쑤 세상 사람들의 주목
을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이 지금 MBC-TV 케이블 채널인 ‘에브리원’에서 방송 중인
‘부엉이2’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을 비롯한 유
명 인사들의 가정생활을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방송
국에서 임의로 선정한 여러 부부들의 가정생활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작진은 100% 리얼 프로그램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신해철 씨 집에서 촬영하던 중, 신 씨가 크게 분
노를 터뜨리는 바람에, 촬영을 중단해야만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사
건의 발단은, 카메라 기자들이 목욕하려고 옷을 벗는 신 씨의 모습을
찍으려고 했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카메라 기자들이 욕실까지 좇아와서 옷을 벗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찍으려고 하자, 카메라를 끄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카메라 기자들이 촬영을 감행하려고 하자, 신 씨는 제작진을 향
하여 크게 분노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가 제작진의 의도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작진 측에
서는 이미 사전에 충분히 이해를 구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카
메라 기자들이 목욕탕까지 따라가서 그가 옷을 벗고 있는 모습까지 찍
으려고 하자, 신 씨로서는 도저히 참아내기가 어려워서 그처럼 분노했
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카메라기자들도 그들이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
을 것입니다. 아마 그들도, 자신들이 옷 벗고 있는 모습을 타인이 카메
라로 촬영하려고 했다면, 아주 크게 화를 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
하고, 그들이 그런 몹쓸 짓을 해야만 했던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
의 소임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방송국에서 요구하는 대로 촬영해야만 하는 의
무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직책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요컨대,
카메라 기자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직책에 충실하기 위해서 신해철 씨가
옷을 벗고 있는 민망한 장면까지도 찍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카메라 기자들은 ‘사생활침해’와 ‘직무감당’이라는 두 가지 사이에서
항상 고민하고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직무에 충실하려고 하면 다른 사
람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게 되고, 반면에 다른 사람의 사생활침해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카메라 기자로서의 직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알다시피, 저의 아내는 지난 해 여름에 딸이 살고 있는 영국에 가서
한 달이 넘게 있다가 왔습니다. 제 아내는, 목회자의 부인이기도 하지
만, 다른 한 편으로는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를 낳게 되자, 아내는 그 아이의 출산을 도와주기 위해서
영국을 가게 된 것입니다.
아내가 영국에 가 있는 동안, 목회자 아내로서의 사명은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목회자 부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직무를 유
기한 셈입니다. 한나가 한국에 있다면, 두 가지 일을 모두 겸하여 수행
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나가 영국에 살면서 아이를 낳게
되었기 때문에, 아내는 두 가지 일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해서 감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한나는 올해 여름에도 자기 엄마가 영국에 와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 자신들도 물가가 비싼 영국에서 간신히 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여행경비를 보내줄 테니, 엄마가 영국에 꼭 와주셨으면 좋
겠다고, 벌써 오래전부터 전화로 통사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많이 다릅니다. 특히 엄마가
된 사람들은 ‘모성애’라고 하는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약하나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한나도 엄마
를 보고 싶어 하지만, 아내 또한 어지간히 딸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내는, 딸보다는 외손녀들을 더 보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딸이 살고 있는 영국으로 달려가고 싶은가
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목회자 부인으로서 그 직책에 충
실하고자 딸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 싶은 마음을 포기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한 아이의 엄마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 목회자 부인으
로서의 사명을 망각해야만 할까요? 물론, 두 가지 일을 다 한꺼번에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아내는 지금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고민과 걱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고,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기 이전과는, 우리의 상황이 아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기 이전에는 육신의 부모만 섬기면서 세상나라 일에
만 충실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에서도 충실하게 살아가면
서, 동시에 천국백성으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잘 섬겨 살아야만 하는 것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나라의 일과 세상나라의 일이 서로 맞물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나라의 일과 세상
나라의 일 중에서, 반드시 그 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감당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고민도 하고 걱정도
하는 것입니다. 하기야, 아직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런 경우가 생
길 경우, 크게 걱정을 하거나 별다른 고민도 하지 않고 세상을 우선적
으로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꾸준히 교회를 다님으로써 믿음을 갖게 되면, 기
독교신앙인에게 있어서 무엇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고 무엇이 나중
에 해야 할 일인지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어째서 우리는 믿음생활
에 충실해야 하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기본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와 세상 사이에서 고민과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믿음생활을 충실히 하려고 하면, 세상적으로 손해
도 많이 봐야하고, 때로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도 있습니
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의 길을 온전히 가야만, 우리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바꿔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하늘의
축복을 받고자 한다면, 세상적으로 많은 손해를 보는 것도 감수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두 가지를 모두 한꺼번에 다 누릴 수
는 없습니다.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다른 하나는 포기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영원한 미래를 선택하든지, 아니면
잠시 잠깐 동안 살게 될 이 세상을 택하든지, 둘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혹시 오해할까봐 말씀드립니다만, 영원한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고
해서, 이 세상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사람답게 온전히 살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과감하게 하나님나라와 영원한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중에서, 대학에 들
어가려고 하는 학생과, 졸업 후 세상에 진출하려고 하는 학생 중에서,
누가 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까? 그 정답은,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알
고 있을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한 미래를 바라보고 살아야, 이 세상에서도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
에서 사는 동안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영원한 미래를 약속
하시고 있는 하나님을 먼저 선택해야 합니다. 즉, 세상에서 원하는 일을
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먼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그가 쓴 로마서에서 말하기를 ‘성령을 따라 살면
생명과 평안을 누리지만,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롬8:6)’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이
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 경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
도 바울 선생은 로마서 8장 7절에서 ‘육신의 뜻대로 산 사람치고 하나
님의 율법을 지킨 일도 없거니와, 또한 결코 지키려고 하지도 않는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아무리 신앙심이 좋은 사람이라도 우리 육신과
세상을 부인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이 좋다고 해서
세상을 멀리하고 살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을 우선
으로 삼고 사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과 육신의 생각이 서로 부딪
히지 않을 때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서로 충돌할 때에는 반드시 신앙을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아주 굳건한 믿음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온 세상만물과 우리 인생을 주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리고 지금은 아주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하나
님을 떠나 살면 죄를 짓게 되고, 그 결과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컨대, 우리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
는 것을 꼭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만, 육신이 원하는
바를 막아내거나 억제할 수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육신의 욕망이 이
끄는 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길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죽은 자를 일으키고, 그들에게 다시 생
명을 주는 자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설령 죽는다고 해도 다시 살 것이
다(요11:25)”라고 교훈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좌우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겨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보다는
세상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 안에 있는 불신앙적인 성도들을 염려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도 옛날에 살던 그 모습그대로, 죄의 지배를
받아서 육신의 욕망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다(롬8:7)’고 말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톨스토이 우화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
다.
어느 날, 젊은 물고기들이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그런
데, 사람들은 말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다.’라고 이야
기 했습니다. 하지만, 젊은 물고기들은 그토록 중요한 ‘물’이 어떤 것인
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늙은 물고기를 찾아가서 물어보게 되었
습니다.
그 노인 물고기는 젊은 물고기들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지금 물속에
서 살고 있단다. 그렇기 때문에, 물은 곧 생명이다. 우리 몸은 항상 물
에 적셔져 있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
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물고기들은 그 사실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속
에서, 우리는 호흡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살아갈 때가 많은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
나 살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단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건만,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알 수 없습
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루는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서 어떤 골짜기로 가
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골짜기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뼈가 가득
했습니다. 그리고 그 뼈들은 천지사방에 각기 흩어져 있었고 아주 바짝
말라 있었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묻기를 “너 사람아, 이 뼈들이
다시 살아나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서 에스겔 선지자는 “주 여호와여, 그 일은 하나님만이 아실 수 있습니
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너는 이 뼈들에게 내가 시키는 대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일러주시는 대로
“너희 마른 뼈들아, 너희는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라! 너희가 다시 살아
나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너희 속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
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일러주시는 대로 계속 그 마른 뼈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힘줄과 살이 돋아나게 하고
피부를 입혀주겠다. 그런 다음, 너희가 다시 살아나도록, 너희 속에 살
아있는 기운을 불어넣겠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여호와 하나님인 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가 이렇게 말하자, 그 마른 뼈들이 본래의 모습대로
연결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힘줄과 살이 돋아나고, 그 위에 피
부가 생겨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숨을 쉬
기 시작하더니, 그들이 살아나서 엄청난 군대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말하자면, 죽어
서 바짝 마른 뼈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살아남으로써 생기가 넘치는 새로운 생명체로 변화가 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해
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속에서 생기가 솟아서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
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람노릇을 제대로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자기 욕심대로 살기
때문에, ‘살았으나 죽은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
으면 그 살과 뼈가 썩어서 냄새가 나듯이, 그 영혼이 죽어있는 사람은
그 입에서 썩은 냄새가 나게 마련입니다. 불평과 원망의 소리가 바로
그 썩은 냄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우리 인생
의 전부라고 믿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어디까지나 저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훈련을 쌓는 훈련 장소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
에, 우리는, 저 영원한 나라를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그래서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날마다 올바른 선택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
를 원합니다. 순간의 선택이, 단지 10년만이 아니라, 영원한 운명을 결
정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잠시 이 세상에서의 즐거움
과 유익을 얻고자 하나님을 멀리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취하지 마십시
오.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는 영광스러운 영원한 미래가 있음을
확실히 믿고, ‘믿음의 사람답게’ 하루하루 올바른 선택을 해서 생명의
길을 열심히 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
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