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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만족에 빠진 세속적인 교회(1)
요한계시록 3:14~22,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는 이제 부활의 주님께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중에 마지막 편지를 살펴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일곱 번째로 주님의 편지를 받는 이 교회는 라이디게아에 세워진 주의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책망만 받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이 교회에 보낸 주님의 편지 내용은 주님의 사랑이 깊이 밴 호소의 말씀인 것을 보게 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 서구 교회와 우리나라의 교회의 상황과 매우 가깝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들은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주님의 이 편지의 내용을 차분하게 살피고, 영적 교훈을 얻고 경계로 삼고 새롭게 각성하는 은혜를 입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이 라오디게아 교회가 세워진 라오디게아 시의 사회적, 경제적, 지리적, 종교적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라오디게아 시의 위치는 다른 여섯 교회의 자리로부터 남동부 쪽에 위치합니다. 지금의 터어키 남서부쪽인데, 이 도시는 주전 250년에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이 도시는 서머나 지역과 에베소 지역의 도로가 합쳐져서 동방으로 나아가는 교통의 관문으로서 동방지역으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많은 사람들과 상품들이 오고가는 상업도시였습니다. 그 결과 라오디게아는 엄청난 부자들이 사는 도시로 유명하였습니다. 주후 60여년 경에 지진으로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로마 황제가 재건 작업을 돕기 위하여 지원금을 준다고 했으나, 이 도시는 그 지원금을 거절하고 자기들의 재력만으로 도시를 완전히 복구할 정도로 부가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또 라오디게아는 주변에 목축하는 이들이 많아서 양모로 만든 모직 산업으로 유명하여 옷감 산업이 발전했습니다. 특별히 의학이 발전되어 사람들의 눈을 고치는 안약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 라오디게아 도시 주변에는 히에라폴리스라는 도시가 동북쪽에 있고, 남쪽에는 골로새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지형적으로 히에라폴리스는 온천이 나오는 곳인데, 그곳에 있는 파묵칼레 지방은 석회가 담긴 온천수가 나와서 신비로운 절경을 이루는데, 지금까지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에 몰려와서 휴양하며 관광을 즐기곤 합니다. 그곳에서 나온 온천수는 매우 뜨거운데, 그 흘러 내린 물이 라오디게아 시 주변에 이르면 식어서 미지근하게 변하다가 남쪽에 있는 골로새 시에 물이 이르게 되면 완전히 식어서 차갑게 변한다고 합니다.
종교적 배경을 살펴보면, 이 라오디게아 도시도 역시 황제 숭배나 이교 문화가 팽배하고, 우상 숭배의 관습이 널리 퍼졌을 것은 분명합니다. 특별히 라오디게아 시에는 유대인들이 많았는데, 주후 62년 경의 세금 자료를 계산한 것을 보면 유대인 성인 남자만 7,500명에 달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유대교의 영향력이 참 많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주로 유대인들은 장사하는 일에 종사했으므로, 그들이 라오디게아 사회 각층에 포진하여 영향력을 끼쳤을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환경 속에 있는 도시에 복음이 들어와서 교회가 세워져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귀양갈 때까지 존속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님께서 보내신 편지의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이 교회의 영적 상태와 그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책망과 권면과 호소와 약속에 대하여 함께 알아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을 향하신 주님의 말씀을 깨닫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시는 부활의 주님께서 자기를 소개하시는 말씀을 살펴봅시다.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여기서 주님은 자신을 세 가지의 호칭으로 표현합니다.
첫째는 아멘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아멘’은 본래 히브리어인데, 신약 시대 헬라어로도 그 음을 그대로 받아서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 뜻은 ‘진실하다, 참되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나 어떤 약속에 대하여 동의한다는 뜻으로 말하거나, 어떤 마음의 소원을 담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화답하여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이름으로 그 아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구약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번 사용된 바 있습니다. 이사야서 65장 16절 말씀에서 나오는데, 거기서 이르기를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자기를 ‘진리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진리의 하나님이 원문으로 보면, ‘엘로헤이 아멘’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이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아멘이 되시는 하나님이신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아멘’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멘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진실하고 참되고 거짓이 없으시고 그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참되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시고 그 하신 말씀을 반드시 온전히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는 라오디게아 성도들의 진실치 못함과 안과 밖이 다른 위선됨을 책망하시는 주님의 어법입니다.
또 예수님은 자기를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세상 가운데 보냄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말씀과 그의 성품과 그의 구원의 사역을 위한 모든 복음의 비밀들을 세상에 오셔서 온전히 드러내 입증해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드러내려 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드러내셨고, 아버지께서 부탁하신 말씀을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하시려는 뜻을 받들어서 자기들의 악한 원수들의 방해와 위협과 모진 고통을 직면하면서도 끝까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자기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하나님의 충성된 참된 증인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셨습니다. 이렇게 충성되고 진실한 하나님의 증인이라고 주님께서 자기를 호칭하시는 뜻은 이 편지를 받는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의 충성되지 못함과 진실치 아니함을 책망하며 그들이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외면하였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는 그 원천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세상 만물의 유래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3 말씀에서도
“만물이 그(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1:15 이하에서도 이르기를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는지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요 모든 창조물은 그를 위하여 존재하고 만물이 다 그리스도와 함께 서게 되고 그가 모든 창조의 근본, 기초, 원천이 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성도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기도 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는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의 창조의 근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자기를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사실상 죽은 교회요 소망이 없는 교회와 같을지라도, 주님께서는 여전히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재 창조, 새 창조의 근본이신 분이시기에, 그를 붙들면 라오디게아 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고 새롭게 창조되어 온전케 될 수 있다는 소망을 담은 호칭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아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아멘이신 주님의 제자들로서 거짓이 없고 진실하고 안과 밖이 일치가 되고 신앙과 삶이 일치가 되는 아멘 성도, 아멘 제자, 진짜배기 천국 시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충성되고 진실하신 증인이신 주님을 닮아 주님께서 맡겨주신 복음의 증인 된 사명을 신실하게 죽음을 무릅쓰고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비록 연약하고 부족할지라도, 거의 영적으로 죽은 자와 방불할지라도 다시금 주님을 간절히 붙잡으면, 주님께서도 얼마든지 우리를 도와주사 새 창조, 재 창조를 하시어 하나님 보시기에 지극히 아름다운 교회와 성도가 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자신을 표현한 후에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하여 자신이 가진 평가와 그 교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대목을 보겠습니다. 15절과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미지근한 물에 비유합니다.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물로 비유합니다. 실제로 이 라오디게아 시는 돈은 많지만 물이 귀하여, 북쪽에 있는 히에라볼리 지금의 파묵칼레인 온천수를 수도관으로 받고, 골로새 지역에서 찬 물을 받아서 식수와 도시 용수로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히에라볼리 물이 이곳에 오면 찬 물과 합쳐져서 라오디게아 지역에 있는 하천은 물이 미적지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라오디게아 지역을 흐르는 물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아서 미적지근한 물들이 흘러서, 그것을 먹으면 구토가 나오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라오디게아 하천의 물만 미지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이 미지근했습니다.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고 미적지근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지, 세상을 따르든지 둘 중 하나야 하는데,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도 함께 섬겼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라오디게아 도시가 우상화하여 섬기는 재물을 하나님만큼 좋아하고 따랐습니다. 라오디게아 성읍은 돈 자랑이 많았습니다. 지리적인 이점을 바탕으로 서방과 동방의 교통의 관문에 자리잡아 동서 문물의 교류를 통하여 활발한 상품 거래를 통하여 많은 재물을 모았습니다. 그리하여 돈이 많은 재벌들이 다 라오디게아 시에 모여 산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황금만능주의 사상이 온 도시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교회도 어느틈엔가 그러한 사상에 완전히 물들어버렸던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언제나 가난하고 고난을 당하고 세상에 의하여 배척을 당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오히려 기독교 신앙을 가질 때 부자가 되고 세상에서 잘 되고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을 때 전도도 잘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 사교적인 모임을 강화해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유력 인사들, 돈이 많은 이들도 출석하여 아무런 위화감이 없이 교제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장했습니다. 부자들은 교회 안에서 특별대우를 받게 했습니다. 신앙심이 없어도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게 했습니다. 교회의 문제가 생기면 유력한 인사들이 돈을 출연하고 사회적 지위를 가진 교인들이 나서서 로비를 해서 문제를 잘 풀어갔습니다. 그 도시에 유독히 세력이 크고 숫자도 많은 유대인들과의 관계도 정치적으로 술술 풀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과의 갈등도 없었습니다.
다른 종파들의 비판과 핍박도 거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다른 이교 사원의 이교적 제사들에 대하여 성도들에게 주의를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일지라도 다른 종교의 제사 행위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하는 사회적 상황이면 그냥 눈감아 주었습니다. 특별히 각종 모직 조합 등 여러 조합 활동 때에 이교 예배에 참석하도록 강요하곤 했는데, 기독교인들도 그러한 조합에서 활동하여 밥을 먹고 살아야 하니 그러한 예배도 참석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허용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 교회가 세상적으로 비판을 받거나 핍박을 받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라오디게아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라오디게아 기독 교회는 착한 교회요 자기들의 말을 잘 듣는 교회요 세상과 잘 어울리는 진보적인 지성적 종교 집단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세상의 칭찬을 듬뿍 받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 중에 유력한 인사들도 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참석하여 거기에 유력한 부자 교인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교제하려고 교회에 출석하니 교회는 날로 숫적으로 부흥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했을까요? 16절 전반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그들은 스스로를 생각할 때 자기 교회는 부자라는 것입니다.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의 재정으로 볼 때나 교인들이 가진 세상 지위로나 교인들의 외형적 규모로나 교회 건물의 현대적 시설로나 사회에서 라오디게아 교회가 끼치는 영향력에서나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다고 자평한 것입니다. 그들은 외적으로 참으로 교만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 무엇이 부족하여 필요하다고 기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필요치 않을 만큼 외적으로 부자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은 이렇게 세상적인 축복을 받은 것은 자기들에게 그럴 만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큰 믿음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고 스스로를 대단한 믿음을 가진 자로 생각했습니다. 영적으로 대단히 큰 자로 자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만족에 빠져 자기를 크게 오해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부요함이 세상의 은금과 권세와 외적인 사람의 숫자와 교회당의 건물의 크기에 비례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과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사모함과 하나님 한분만을 갈망하며 그를 사모함에 달린 것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겸하여 세상을겸하여 섬겼기 때문에, 어느틈엔가 뜨뜻미지근해진 물처럼 하나님께서 입에 넣자 마자 토하여 내칠 진저리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라오디게아 교회는 오늘날 재물과 세상 출세을 축복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물질제일주의의 축복 신앙을 추구하는 세속화된 서구 교회와 미국 교회의 영적 현실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모습들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전이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큰 건물, 재정의 많음, 유력한 교인들을 자랑함, 세상적인 성공을 축복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진정 그 내면에는 주님을 향한 진실하고 충성되고 겸손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 신앙은 없는 모습들이 그러한 모습들입니다. “나는 부자라 나는 부족함이 없다”는 자기 만족의 자세는 스스로 속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세속화된 오늘날의 신앙 세태를 살피고 나 자신을 성찰하여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뜨겁고 겸손하고 오직 십자가의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