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식이
최 양 귀
삼식이는 미국 시애틀에 사는 딸 애완견이다. 딸이 영상으로 통화 할 때마다 삼식이도 옆에 있다. 그녀는 삼식이를 끌어안고 어린 아기처럼 좋아한다. 그의 집이 딸 안방에 있는 것도 은근히 못마땅하다. 사람이 개를 가까이 하는 것이 별로 탐탁하지 않다. 실내에 키우는 것도 싫어한다. 어릴 적에 개에게 물린 이후 무서운 대상이다.
초등학생 때 어둠이 차오르는 조용한 저녁 이웃집 흙담을 지나는 순간 갑자기 개 짖는 소리에 놀라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뒤따라 온 개는 오른손 검지를 물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상처를 치료하느라 민간요법으로 개털을 불에 태워 붙이기도 하고, 약도 바르며 고생한 적이 있다.
그 이 후로 개를 보면 그 기억이 되살아나 무서움으로 온몸이 굳어진다. 길에서 만나면 최대한 멀리 떨어져 걷는다. 방문하는 집에 애완견이 있으면 묶여져 있는지 확인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주인에게 미리 얘기해 오해가 없도록 한다. 딸네 집 방문을 앞두고 사위와 손자 손녀를 만날 생각을 하면 기쁨이 벅차오르지만 삼식이를 떠올리면 걱정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 딸은 삼식이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착한 애라며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몇 번을 말했다. 특별한 종으로 우리나라 순수 혈통 진돗개 같다고 했다. 분양 받을 때 교배하지 않는다는 서약서와 불임수술증명서를 주인에게 보내는 조건으로 데려 왔다. 철저하게 관리된 혼혈이 아닌 순수한 단일 종으로 성격이 얌전하여 키우기가 아주 수월하고 털도 잘 빠지지 않아 집안에서 키우기에 좋다고 했다. 눈치가 빨라 주인과 친밀한 관계인 사람은 금방 알아보고 짖지도 않는다.
삼식이가 가까이 오면 소리 지르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대로 하면 되려나 하는 의구심을 안고 시애틀 공항에 내렸다. 딸집으로 향하는 동안 마음은 오로지 삼식이와 같은 공간에서 2개월을 같이 생활한다는 무거운 마음에 얼굴은 굳었다.
드디어 삼식이를 만났다. 딸이 삼식이를 부르며 나와의 관계를 조곤조곤 설명한다. 다행히 알아들었는지 일반 개들처럼 짖지 않는다. 그는 나의 옷과 발 냄새를 맡는다. 무서워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고 가만히 앉아 딸의 조언을 기억하고 굳어진 손으로 삼식이 머리털을 만졌다. 그의 딱딱한 머리뼈와 부드러운 살도 만져진다. 몸에 소름이 돋는다. 잠시 딸이 자리를 비우니 그는 적극적으로 나의 주위를 돌며 냄새를 맡는다.
작은 소리로 “도와주세요.”하니 손녀가 웃으며 얼른 달려 왔다. 안절부절 못하는 자세에 모두 웃는다. 그럭저럭 인사를 마치고 그가 1층에 있는 것을 보고 얼른 2층 내방으로 올라갔다. 방에서 짐을 푸는 순간에도 머리에는 온통 삼식이 생각뿐이다. 식사하러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 사이로 그의 위치를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내려 왔다. 식탁 옆에 그의 밥과 물그릇도 있다.
그는 소파에 가만히 목을 빼고 앉아 있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딸 가족은 계속 ‘삼식이는 정말 똑똑하고 물지 않는다.’고 거듭 안심시킨다. 조금씩 긴장을 풀고 그를 쳐다보니 털이 밝은 갈색으로 미국인 금발과 같다. 털이 여러 개가 묶여서 자라 빠질 때는 말려서 덩어리로 떨어져 한눈에 보이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눈은 크고 갈색 눈동자도 해맑고 예쁘다. 미국인을 닮았다. 용기를 내어 딸이 부르는 억양으로 삼식아! 하니 두 귀를 쫑긋하며 세운다. 어머 반응 하네 귀엽다. 움츠렸던 몸이 조금씩 부드러워졌다.밤에는 방문을 꼭 닫았다.
시차 적응으로 잠이 오지 않아 조용히 복도에 나가니 딸과 손자 손녀 방문은 활짝 열려 있다. 발자국 소리에도 삼식이는 자는지 반응이 없어 안심했다. 아침에 방문을 열고 잘 잤느냐고 물으니 모두 삼식이가 방으로 들어와 발끝에 앉으면 따뜻하고 좋단다. 무서워 소스라치게 놀랄 것 같은데 한 가족처럼 지낸다.
서로 그가 자기들 방에 들어오길 기다리는 것 같다. 손녀는 동그란 솔로 목욕도 잘 시킨다. 그의 목욕 타월을 세탁하는 것이 나는 궁금했다. 손녀는 우리와 같이 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딸 가족 몰래 그의 타월을 따로 세탁했다.
손자들이 아침에 학교로 갈 시간이다. 학교가 가까워 사위가 산책 겸 아이들을 걸어서 데려다 준다. 사위는 삼식이의 대변 비닐이 달린 개 목줄을 어깨에 걸치고 그와 보조를 맞추어 걷는다. 안전한 곳을 지날 때는 목줄을 길게 잡고, 도로변 위험한 곳을 지날 때는 짧게 잡으며 산책하는 요령을 알려 준다. 등굣길이 삼식이에겐 첫 번 째 산책이고 대소변하는 시간이다. 사위는 삼식이가 소변 후 배변을 하니 능숙하게 비닐을 뒤집어 항문을 닦고 세 덩이 배변을 주운 후 묶는다. 유심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나는 며칠 후 개 목줄을 어깨에 메고 삼식이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어색한 일이 일어났다. 낮 시간인데 그가 길에 배변을 한다. 어쩔 수없이 본대로 개 목줄에 달린 비닐을 꺼내어 대변을 줍는데 따뜻하다. 이상하게도 별다른 감정이 없이 미소가 피어난다. 자신이 의심스럽다. 딸 가족이 그를 가족처럼 돌보는 것을 따라하니 사랑스러워 진 것이다.
나의 애완견에 대한 생각에 대변화가 일어났다. 그와 산책 할 때 애완견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초면인데 한 가족 같은 느낌으로 인사가 된다. 애완견이 이웃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삼식이가 아무것도 먹지를 않는다. 가족들이 모두 걱정한다. 오후 쯤 연노랑색의 위액을 토한 후 밥을 먹는다. 산책하는 동안 나무 열매 같은 무언가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삼켰다고 한다. 산책 때 삼식이의 움직임을 잘 관찰해야 겠다. 매일 세 번 산책하고 대소변을 치우고, 밥과 물을 주다 보니 그에게 점점 빠져들었다.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으면 발밑에 앉아 있기도 한다. 소파에 앉으면 엉덩이를 내밀며 품에 안기려 해서 놀랐다. 1층에서 일하다 2층으로 올라가면 소파에서 가만히 잠자던 삼식이는 어느새 일어나 졸졸 따라와 방에 들어오려고 한다. 방문을 닫아야 할지 그도 들어오게 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그에게 설명을 하고 문을 닫았다.
때론 차를 타고 먼 곳에 가서 낯선 곳을 함께 산책하기도 했다. 삼식이와 단둘이 있기도 하다 보니 딸이 말한 것이 모두 사실로 내게 다가왔다. 그는 성품이 얌전하고 온순하다. 주인 말도 잘 들어 애완견으로 만점이다. 애완견과 함께 실내에 있으면 식사도 못할 줄 알았다. 이젠 그가 잘 먹으면 기분이 좋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름을 불러 주면 두 귀를 쫑긋 세운다. 대화가 통하는 것 같다. 건조된 닭살을 간식으로 줄때는 보물찾기를 한다.
그는 냄새를 맡으며 잘 찾아 맛있게 먹는다. 때로는 힘겨루기를 하자고 그의 장난감을 물고 온다. 그것을 입에 물리고 당기며 힘겨루기를 하는데 으르렁 소리를 내며 좋아 한다. 삼식이 습성을 많이 알게 되었다.
어느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점점 가까워 온다. 이번 여행에서 그랜드캐년 같은 미국의 웅장한 경치와 시설에 놀라 왔지만 삼식이와 친해진 것도 나에겐 기적 같은 새로운 일이다. 이젠 송아지 같은 애완견도 무섭지 않다.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도 이해하게 되었다. 가족들의 배려로 개에 대한 편견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었다. 그들의 조언을 믿고 따라 하니 극복되었다. 주변 사람들과 생활습관이나 가치관에 의아하게 생각하던 부분들도 새롭게 살피며 좀 더 이해심을 넓혀 가야겠다. 다음에 삼식이를 만나면 기쁠 것 같다. 그가 나를 알아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