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斷想)
[오늘의 법구]
⊙ 외형보다 내면의 번뇌가 문제다
옷을 벗고 머리를 깎았다 해도 풀로 엮은 풀옷을 입었다 해도 목욕하고 반석에 앉았다 해도 어리석은 번뇌를 어찌하리오.
雖裸剪髮 被服草衣 沐浴踞石 奈痴結何 수나전발 피복초의 목욕거석 나치결하
《법구경(法句經)》 『도장품(刀杖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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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법구는 수행자의 외형과 수행의 본질은 전혀 다른 문제임을 아주 날카롭게 일깨우는 게송입니다.
1. 게송의 뜻
雖裸剪髮 被服草衣 수나전발 피복초의
"옷을 벗고 머리를 깎았다 해도 풀로 엮은 풀옷을 입었다 해도"
① 「수나전발(雖裸剪髮)」 — 옷을 벗고 머리를 깎았다 해도 번뇌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雖)는 '비록'의 뜻인데 글 전체에 부사로 쓰였습니다. 나(裸)는 '옷 벗을 나'로 나행외도(裸行外道)를 뜻 합니다. 전발(剪髮)은 머리를 깎았다는 뜻이지만 외도들은 머리를 깎은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머리를 묶 는 결발(結髮)의 형태를 취했습니다.
이를 정리하면 「수나전발(雖裸剪髮)」은 "비록 옷을 벗고 머리를 깎았다거나 결발을 했더라도"로 해석됩니 다. 그렇다면 그 속뜻은 "겉모습을 바꾼다 해도 번뇌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외도 들의 모습을 보시고 비평하신 것이라 하겠습니다.
② 「피복초의(被服草衣)」 — 풀로 엮은 풀옷을 입었다 해도 저절로 심신이 청정해지지는 않는다
외도들은 나행외도도 있지만 나무껍질만 걸치기도 하고 짐승의 가죽만 걸친 사람도 있고 풀로 엮은 풀옷 을 입은 외도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거친 옷을 입는다 해도 "저절로 심신이 청정해지지는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옷을 아주 검소하게 입고, 음식을 절제하고, 몸을 괴롭게 하는 고행을 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몸을 괴롭히는 것과 마음의 번뇌를 끊는 것은 별개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몸은 풀옷을 입고 있 어도 마음은 명예와 재물을 탐할 수 있습니다. 몸은 산속에 있어도 마음은 세속의 시비와 원한에 사로잡 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의 기준은 겉모습의 청빈함이 아니라 마음의 청정함입니다.
沐浴踞石 奈痴結何 목욕거석 내치결하
"목욕하고 반석에 앉았다 해도 어리석은 번뇌를 어찌하리오."
③ 「목욕거석(沐浴踞石)」 — 목욕하고 반석에 앉았다 해도 번뇌의 때는 씻어주지 못한다
목욕(沐浴)은 '목욕하는 것'이고, 거석(踞石)은 '바위에 걸터앉거나 바위 위에 앉는다'는 뜻입니다.
외도들은 해탈이나 생천을 위하여 번뇌를 씻는다고 하루에 세 차례나 목욕을 하기도 하고, 바위에 웅크리 고 앉아 있기도 하고, 한 발로 서 있기도 하는 등 고행을 하였습니다.
몸을 깨끗하게 씻고 수행하기 좋은 장소에서 좌선한다고 해도, 마음속 번뇌까지 저절로 씻겨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물은 몸의 때를 씻어 줄 수 있지만 탐욕의 때, 성냄의 때, 어리석음의 때까지 씻어 주지는 못합 니다.
결국 마음의 때는 바른 관찰과 지혜와 수행으로 닦아야 합니다.
④ 「내치결하(奈痴結何)」 — 어리석은 번뇌를 어찌하리오.
이 구절이 이 게송의 핵심을 나타냅니다.
내(奈)와 하(何)는 '어찌 내 · 나', '어찌 하'라 하는데, 내(奈)는 절박함이라든가 무력감에서 탄식의 의미로 '어찌하랴'는 의문사이고, 하(何)는 '무엇, 왜, 어찌, 어떻게'의 의미가 있는 의문사입니다. 내(奈)는 주로 '내(奈) ··· 하(何)'와 결합하여 어찌할 방법이 없는 난처한 상황의 탄식조로 쓰입니다.
"겉모습은 수행자처럼 갖추었는데 마음속 어리석음의 번뇌는 그대로라면, 그것을 어찌 수행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는 비평과 함께 날카로운 물음입니다.
불교에서 진정한 출가는 단순히 집을 떠나는 것만이 아닙니다.
탐욕에서 떠나고, 성냄에서 떠나고, 어리석음에서 떠나는 것이 참된 출가입니다. 그래서 이 게송은 결국 외형적 출가보다 내면의 출가가 중요하다는 가르침으로 귀결됩니다.
2. 게송의 대의(大意)
이 게송의 대의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수행은 겉모습보다는 마음의 번뇌를 끊는 데 있다."라고 하겠습니 다.
게송에서 거론된 모습은 불교 수행자들의 모습이 아니라 외도들의 모습을 부처님께서 비평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에서는 사문(沙門)이라 출가 유행가(遊行家)들이 많았고, 이들 중에 고행이 유행했는데, 나행외도(裸行外道)들은 무소유라 하여 나체로 수행하기도 하고, 초의로 몸을 가리기도 했고, 머리를 깎거 나 묶기도 하고, 바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기도 하고, 한 발로 서 있기도 하고, 번뇌를 씻는다고 하루에 세 차례나 목욕을 하는 등 고행으로 해탈(解脫)이나 생천(生天)하려고 갖은 고통을 참음으로써 노력했는데, 부처님께서는 이들의 노력이 몸만 괴롭힐 뿐 내면을 바꾸지 못한다고 보시고 비평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음속에 들끓는 번뇌는 그대로 두고 겉모습으로 계금취견(戒禁取見)으로 아무리 노력해 본들 무슨 이익 이 있을 것인가? 불제자들이 저들의 모습을 본받고 행하려 한다면 쓸데없는 시간 낭비만 한다는 가르침 이 아닌가 합니다.
문제는 어떤 외형적인 형식보다도 보다 실제적인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헌상을 관하여, 번뇌 를 제거하고 참다운 진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라 생각합니다.
🌿 옷을 벗고 풀옷 입고, 몸을 씻고 고행해도,
들끓는 번뇌는 씻어내지 못하나니
한 생각 지혜 관찰이 마음의 때 씻는다네.
외형으로 멋진 모습 아무리 보여줘도
가지가지 헛된 금계(禁戒) 철저히 지켜내도
내면을 맑히는 사람 미치지 못한다네.
참된 수행은 외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한 생각 한 생각의 번뇌를 알아차려 어리석음의 번뇌의 매듭을 푸는 것입니다.
"외형에 집착하지 말고, 내면의 마음을 살피자." 이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오늘 마음에서 탐욕이 일어나면 "탐욕이구나." 성냄이 일어나면 "성냄이구나." 어리석음이 일어나면 "어 리석음이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 그 알아차림 하나가 바로 어리석음의 번뇌의 매듭을 푸는 길이라 생 각해 봅니다.
오늘도 비가 내립니다.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 9월입니다. 기온도 내려가서 가을 기운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맞은 9월에도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며, 자애와 연민, 복과 지혜를 닦아 통찰지를 갖추고 정리를 따라 정심정행하며, 마음을 고요히 하여 넉넉한 9월을 활발발 하게 열어 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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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