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05장 강해 ‘아내를 즐거워하라’/ 이레교회 새벽기도회 20170424 月曜日 정인준 목사]
사도신경 찬송가 268(202)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5분), 통성 기도(5분):
말씀 봉독(잠언 5:1-23), 설교(15분), 개인기도(20분).
어제 본 잠언 4장이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오늘 5장은 지혜로운 삶의 한 구체적인 걸림돌로서 음녀로 묘사되는 간통죄를 들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의 가치를 간단히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마음을 쏟고 하나님의 슬기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를 보호할 슬기와 지식을 얻고 그것이 우리 입술을 지켜 줄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3-6절은 죄를 설명하면서 죄는 마치 ‘음행하는 여자’ 같다고 비유합니다.
죄란, 처음에는 꿀보다 달지만 나중에는 쑥같이 쓰게 되는 이중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오늘 이 세상에는 우리를 꿀과 기름으로 유혹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아!’,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데 뭐!’,
‘내가 능력이 있어서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눈앞의 쾌락을 따르기보다는 영원한 생명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5절의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에서 ‘스올’은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이미 생명으로 나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벌써 ‘죽음’을 경험하는 있는 우매자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현재 행동을 하나님께서 지켜보시고
그 행위를 심판하시리라는 사실을 믿으면서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겁니다.
◈ 7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죄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을 봅니다.
구약의 율법에서 간통은 죽음의 형벌로 엄히 다스렸던 금기였습니다.
8절에 “네 길에서 그 여자를 멀리 떨어져 있게 하여라. 그 여자의 집 문 가까이에도 가지 말아라.”고 하신 것은
그러한 간통죄를 피하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일단 간통죄를 짓게 되면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순간의 쾌락 때문에 한평생 에이즈 같은 저주의 병에 시달리는 겁니다.
특별히 성적인 죄에 관하여는 고린도전서 6장 18절 말씀에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마귀는 대적해야 하지만 죄, 특히 간통죄는 피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창세기 39장 9-10절에서 우리는,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받은 요셉이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하고서,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였다’는 것을 봅니다.
히브리서 13장 4절 말씀도 음행에 대해 경고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성도는 마땅히 고린도전서 3장 16-17절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 죄를 짓는 사람은 11절에 의하면 ‘육체적인 질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12-13절에 보면 ‘끊임없이 계속되는 양심의 가책’과 후회를 겪습니다.
14절에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한다’고 가르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과 10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라면 마땅히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하되
혹시라도 죄를 지었을 경우에는 철저히 회개하는 삶을 살 일입니다.
◈ 15절부터 18절까지에서 ‘샘’은 자기의 결혼한 아내를 상징합니다.
20절까지의 말씀에서 우리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를 배웁니다.
남편은 젊어서 취한 자기 아내를 즐거워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배우자에 대해서 만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육체적인 내용으로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영적으로도 우리는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영적으로 순결하고 정결한 삶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점집으로 무당집으로 찾아다니면 이는 영적 음란입니다.
성경은 성윤리 문제의 기준으로,
하나님이 제정하신 일부일처제를 한결같이 가르치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9장을 통해서 그렇게 가르치셨고
창세기 2장 24절에서는 아담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11장 3절에 보면 “솔로몬은 무려 칠백 명이나 되는 후궁을 거느렸고
그 외에 수청 드는 여자가 삼백 명이나 되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여인들에게 빠져 마음이 흐려졌으므로 진실을 보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솔로몬은 나중에야 깨닫고
전도서 2장을 통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 자기 아들들에게
자신의 삶을 통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전도서 9장 9절에서도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라고 가르칩니다.
◈ 21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악한 사람의 최후를 보여줍니다.
주님의 눈은 사람의 길을 지켜보시며, 그 모든 길을 살펴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21절을 다 함께 읽습니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