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새벽 산책길에 서초구청장님과 조우한 얘기를 올렸었죠?
비 온 뒤끝의 양재천 주로에 구배가 안 맞아 생긴 웅덩이를 민원했던.......
모두 공감하며 학수고대 눈길을 비치셨는데,
전문 도시계획사이신 조회장님만 "한 2년 쯤 걸릴걸..."하시며 찬물을 껸졌어요.
'그래,산길에서 마주친 중년아낙과 악수 한 번 나눴다고 바쁘신 구청장 나으리가
즉시 약속을 지키시겠어? 그냥 가문의 영광으로나 간직하자...'자위했어요.
그런데 좀전 9시10분(쿠퍼 출근시간이라 정확함)에 구청에서 전화가 온 거에요.
따르릉 따르릉......
홍안:출근길 그이에게 바이바이 하던 차, 급히 들려와 핸펀을 받는다.
서초구청 담당자: 여보세요 신숙자씨 핸드폰 맞습니까?
저는 서초구청 재난치수과 담당자 채규석이라고 합니다.
닷새 전 우성 뒷산에서 구청장님께 '양재천 구배가 안 맞는다'건의하셨지요?
제가 확인해서 시정하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위치가 정확히 어디 쯤 입니까?
홍안: 아,예 엉겁결에 만나뵈 말씀 드린건데 이렇게 빨리 전화를 주실 줄 몰랐어요.고맙습니다.
(가슴이 콩닥이는걸 누르며) 위치는 촌스럽게 '세계적 명품도시 서초'그 아래 부분과
영동1교와 무지개 다리 사이에 서 너 군데 입니다.
담당자:아! 바로 '아이리스원'꽃밭 앞이군요.
그런데 그곳은 꽃밭 조성으로 흙이 많이 유입되어 수영장 뒷편과 문제이지요.
홍안: 강남구쪽 주로에도 꽃밭 뿐 아니라 풀밭도 많은데 우리만큼 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나 눈이 온 후에는 우리 크럽이 강남구 탄천 쪽으로 뜁니다.
담당자: 실례지만 무슨 크럽 이신가요?
홍안:영동1교에서 모여 뛰는 마라톤크럽으로 양재천에서 12년이나 된 모임 입니다.
그때 산에 안 오셨다면 저희 홈피에 이 이야기를 올렸으니 언제 한 번 보시지요.
담당자:(즉시 반응하며 컴을 열었던지) 아! 여기 나오는군요.
역사가 오래된 동호회네요.
홍안: 제가 알기론 양재천의 모임 중 제일 오래된 마라톤 크럽이지요.
여기엔 전문 도시계획사와 건설업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구배공사 지적을 몇 번 하셨어요.
담당자: 죄송합니다.문제임을 알면서도 강남구의 5/1밖에 안 되는 예산이라......
홍안: 저도 대치동에서 11년 살고 양재동에서도 12년이나 되어 잘 압니다만,
지금 서초구에는 삼성타운도 들어서고 반포 재건축으로 유입인구가 많아
세금도 예전보단 많을텐데 예산탓만 하시기엔 좀 무리가 있네요.
담당자:그냥 이해를 해주십사는 뜻으로 드린 말씀이고 아무튼 빨리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지금처럼 양재천을 계속 사랑해 주십시오.
홍안: 양재천 사랑은 우리 크럽처럼 열렬한 모임도 없을 겁니다.
저희는 홍수 끝이면 온 회원이 양재천 속의 오물을 마대자루 몇 포대 씩 건져 올리고
눌러붙은 지렁이를 집게로 일일이 잡아낸답니다.
(이영화회장님 시절,저와 송태호님이 부회장으로 있으며 기획했던 일이 상기됨)
담당자: 아~ 그렇게 아껴주시다니 참으로 고맙습니다.앞으로도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저희 재난치수과에서 적극 노력해 내년 봄 까지는 꼭 구배공사를 하겠습니다.
홍안: 고맙습니다. 이렇게 빨리 시정이 되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는데......
실례지만 참으로 신속한 공무원이신 것 같은데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담당자: 아닙니다. 담당 구청 공무원으로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 뿐이며,
오히려 민원이 있기 전 조치하지 못한 것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홍안:저는 살기에 바빠 구청장님 얼굴도 몰랐던,그야말로 민초라 감동되어 그럽니다.
저희 회원들도 그 날 구청장님과 악수한 손 만져보자고 할 정도로
그냥 저 같은 분들이라 이 이야기 전하면 모두 좋아할 것 같아 여쭙는 겁니다.
담당자:(매우 겸손한 목소리로) 그냥 저 개인이 아닌 구청 직원으로 말씀 드릴게요.
서초구청 재난치수과 채규석 입니다.
전화번호는 2155-7124번 제 직통번호이니 언제라도 양재천에 건의 말씀 있으시면
이 번호로 전화 주십시오.
오늘 말씀하신 사항은 늦어도 내년 봄 까지는 꼭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이 글을 맺으며 저는 지금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분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가 주는 본분을 알고 묵묵히 세상일을 해나가는 분.......
이런 분의 손길로 아마 우리 양재천은,
웅덩이진 곳 없는 비 온 뒤 맑은 공기에 하늘대는 앵초와
아이리스의 그윽한 향기를 만끽하며 걷거나 뛸 수 있는 고향이 될 것입니다.
참으로 고마운 시월의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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