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6월 20일 화요일 맑음
아침부터 부산하다.
정산 장날, 장마당에 선을 뵐 내 매실들을 차에 싣고, 바닥에 깔 보온 덮개, 위를 덮을 그물망 등을 차례로 실었다.
“어여 와서 밥 먹어. 밥 먹고 빨리 가야 자리를 잡을 수 있어.”
“어머님도 잡수세요. 오늘 고생하실 텐데..... 제가 팔면 안 될까요 ?”
“아녀, 내가 잘 팔어. 난 월래 어디 갈 때면 아무 것도 못 먹어. 어여 먹어”
정산장터에는 이미 장을 돌며 장사를 하는 분들이 모여들어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물건을 풀고 있었다.
우리는 마늘장사를 하시는 분 옆에다 자리를 깔았다.
매실 34자루를 진열한다. ‘특’은 맨 앞에 다음은 ‘대’ 중은 맨 뒤에 펼쳐 놓았다. 그 위에 약간이라도 그늘을 만들기 위해 그물망으로 덮었다.
아직 매실은 우리 것 말고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때 한 늙수그레한 분이 다가오는 데 어디서 안면이 있는 분인 것 같았으나 떠오르지는 않는다. “이 매실 얼마씩 해요 ?” ‘특’짜리를 보여드리면서 “이런 건 2만 5천원 합니다” “내가 지금 어디를 가는 길이라 그런데 내일 사러 올 테니까 네 자루만 준비해 주세요. 어디 사세요” “용두리 뒷골이라고 애경유지 뒷 동네입니다” “전화 번호를 주세요” ‘청정농원’ 명함을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얼굴은 새까맣게 타셨지만 농부의 품격은 아니신 것 같았다.
‘진짜로 사러 오실래나 ? 오늘 재수가 열리는 건가 ?’ 기다려 볼 일이다
“어머님 점심은 어떡하실래요 ?” “응 싸왔어” 가방을 가리키신다.
어느 새 도시락을 싸셨네. 참, 용의주도하시다.
“이따 제가 와서 사드릴 게요” “아녀, 아녀, 어여 가. 이따 점심이나 잘 챙겨 먹어” 나를 몰아 내신다. 무더운 날 뙤약볕에서 앉아계시기도 힘들 텐데 고집이시다. 교장까지 하던 사위가 장돌뱅이를 하는 것이 챙피해서 그러시는지...
그냥 “골라, 골라, 싸요, 싸요” 옛날 실력을 뽐내고 싶었지만 참아야지.
“그럼 저는 가서 일하다가 점심 때 올 게요” “아녀, 오지마. 저녁때나 와 봐.‘그럼 나는 그동안 미루었던 사과와 자두, 복숭아 소독을 해야겠다.
서당골부터 시작해서 안산밑까지 물 세 통으로 해결했다. 나무가 커 감에 따라 약도 많이 든다. “올 해부터는 건조기도 있으니까 마른 과일로 만들어서 먹어요” 안사람이 어디서 들었는지 할 일 하나를 더 만들어 주었다.
그동안 자두는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라 생각하고 대충 넘어갔었는데, 이젠 신경을 써야 하겠다.
자두는 벌레가 심하다. 1주일에 한 번씩은 살충제를 주어야 딸 수가 있어서 귀찮은 나무다. 어쨌든 마누라한테 점수를 따려면 농사를 잘 지어서 바쳐야지 않겠는가. 벌써 벌레가 침입한 흔적이 보인다. 이미 때가 약간 늦었다. 앞으로 꼬박 꼬박 약을 해야겠다.
점심 때쯤 정산으로 나갔다. 매실이 얼마나 팔렸는지도 궁금하고 장모님께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드려야 겠다. 너무 더워서 그런지 장은 한산하다.
제일 궁금한 게 장모님 앞의 매실 무더기다. 약간 줄어있어서 다행이다.
“어머니, 많이 파셨어요 ” “잘 안 사가. 여나무 개 팔았나 ?
“괜찮아요. 안 팔린 건 공판장으로 가면 되니까요”
“식사는 하셨어요 ?” “응”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올까요 ?
“냅둬, 입이 한 두 개여 ? 사다 주고도 욕 먹어. 어여 가서 일 혀”
농약사 사장님을 만났다. “매실에 병이 온 게 아니라 칼슘 부족이예요.”
“예, 칼슘 부족이요 ? 그런 게 있어요 ?” “가뭄이 심할 때 그런 현상이 나타난 대요. 남쪽 하동, 광양도 말도 못한대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요 ?”
“약을 뿌릴 때 칼슘액을 넣어서 뿌려줬으면 괜찮았을 텐데요” 사장님도 모르고 있었던 일이었지만 이리저리 많이 알아봤나 보다. 원래 최악의 가뭄이라니까.... 이런 적은 없었지. ‘그래도 다행이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병이라면 내년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절망을 했었는데 길이 열렸구나. 진작에 알았었더라면 이런 참사는 없었을 텐데....’ 곧장 냇가로 달려갔다. 물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칼슘을 타서 뿌리고 싶었다. 바짝 말라있다. 논 바닥이 쫙쫙 갈라지고.... 논 주인들의 마음은 어떨까 ? 나는 그나마 다행이다. 물주기는 포기했다.
안산밑의 매실을 마무리해야 한다. 매년 3000kg는 따내던 밭인데 올 해는 1000kg이나 딸 수 있을까 ?
5시, 장으로 나갔다. 얼마나 팔렸을까 ? 궁금하다.
멀리서 바라보니 매실 뭉텅이가 푹 줄어 있었다. ‘꽤 많이 파셨구나. 뙤약 볕에서 고생 많으셨구나’ 먼저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 10개를 샀다.
“어머니 고생 많으셨어요, 이 거 하나 드세요” 주변에 쭉 돌렸다.
“다 못 팔았어.” “괜찮아요. 많이 파셨는 데요. 남은 것은 공판장에 넘기면 돼요.” 22 자루나 파셨다. ‘우리 장모님 최고’
남은 것을 차에 싣고 돌어와서 다시 선별하고, 오늘 딴 것과 합하여 공주 공판장으로 직행한다. 돌어오는 길에 목이 탄다. 슈퍼에 들러 콜라 한 병을 사는 데 2000원이나 된다. ‘비싸구나. 이 걸 사야 하나’ 내가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어디까지 변할까 ? 공주 대교를 오르는데 길 바닥에 토마토가 좌악 깔려있고, 한 사람이 쓸만한 것을 골라 봉지에 담고 있다. 토마토를 출하하려 싣고 가던 농부이리라. 이 가뭄에 속을 까맣게 태우며 길러낸 토마토, 몇 푼이라도 건지려고 그래도 기대를 하며 왔을 텐데 길 바닥에 깔아 놓고 몇 개라도 건져보려고 주워담는 저 분의 마음은 어떨까 ? 바로 옆 푸른 강물로 뛰어들고 싶지는 않을까 ?
내려서 같이 주워드리고 싶었지만 차들이 밀려 그냥 지나쳤다.
‘농부의 마음 농부가 알아줘야지’
서울로 가는 택배를 붙이고 나니 날은 이미 어둡다.
엑기스 담을 매실을 닦아 건져 놓으니 오늘 하루도 끝이 난다.
다사다난했던 하루였다.
밀린 귀농일기 쓰는 중에 눈이 자꾸 감긴다.
내일로 또 미루어야 겠다
잠은 잘 올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