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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시 전문)
가을이 오는 소리
이순자
한여름 무르익어
아스팔트에 녹아들고
포도는 제 열을 달구어
토해 낸다
나는 긴 팔 남방셔츠로
팔을 덮고
양산을 받쳤으나
햇빛은 막무가내다
빈 박스 모으는 노파가
끌던 수레를 세우고
이마의 땀을 닦는다
가로수도 식은 땀을 흘리며
어깨가 축 쳐져 있다
하늘에 옅은 구름도 멎은 채 쉬고 있다
찌르레기와 풀벌레는
바뀌는 계절을 노래했지만
실감하지 못하더니
산사과 열매의 채색에
놀라며
물러나는 여름의 아쉬움인가
치닫는 세월의 두려움 같은 것일까
허전함과 놀라움이 밀려드는데
가을은 소리 없이
벌써 내 발밑에
이미 와 있었네
(잘못된 번역)
The Sound of Autumn
Lee, Soon-Ja
At the height of summer
Melting in asphalt
Grapes (heat their own heat.
throw up
I am wearing a long-sleeved shirt.
under one's arm
in favor of mass production
The sun is out.
An old woman who collects empty boxes
I'm going to put up the wagon
wipe the sweat off one's brow
with a cold sweat on the street
have drooping shoulders
Even the light clouds are resting in the sky.
The stinger and the grassworm
I sang the changing season,
I didn't realize it.
in the color of the fruit and the fruit
in amazement
What a pity for a retreating summer?
Is it like a fear of passing tiem?
I'm overwhelmed with vanity and surprise.
Autumn is silent
under my feet
You were already here.
(번역 고치기)
우선 제목부터 이상하다. “가을이 오는 소리”를 The Sound of Autumn 이라고 하면 “오는” 이라는 단어가 번역되지 않은 것이다. 굳이 생략해야 할 필요가 없다. “The Sound of Autumn's Coming” 정도로 추가해 놓으면 될 일이다.
(1) 첫 번째 연
첫 번째 연의 번역부터 경악할 수준의 오역이다. 잘못된 <번역> 도 아니고 이건 그냥 호작질 광란 수준이다.
한여름 무르익어
아스팔트에 녹아들고
포도는 제 열을 달구어
토해 낸다
At the height of summer
Melting in asphalt
Grapes (heat their own heat.
throw up
“한 여름 무르익어” 에서 한여름이 주어이고 아스팔트가 목적어인데 주어 목적어의 개념부터 0 점이다. 보통 사람도 아니고 자칭 영어 전문가라는 번역가이면서 정말 이따위로 해서야 되겠는가? 그러므로
At the height of summer
Melting in asphalt
로는 안된다.
The mid summer get ripe
to melt in the asphalt
이렇게 주어, 목적어 순서부터 바꾸어야 하고 “한여름” 이라는 단어의 번역도 약간의 기간적 개념이 있는 “mid summer” 정도가 좋다. “한여름”이 주어인데 주어 앞에서 전치사 “at” 가 나와서는 정말 안된다.
“포도는 제 열을 달구어”
Grapes (heat their own heat.
이건 번역은커녕 코미디 축에도 못 들 코미디이다. 쓴 웃음조차 안나온다. 우선 이 작품에서의 “포도”란 아스팔트 “포장도로”의 준말인 “포도 鋪道” 이다. 즉, “pavement road” 이다. 그런데 이 포장도로가 “Grapes?” 먹는 포도라는 말인가? 정말 기가 차다.
그리고 이곳에서 괄호 한 쪽 “ ( ” 는 도대체 왜 나오나? 괄호 양 쪽 “ ( .... ) ” 도 아니고. 원래의 한글 원문을 보아도 괄호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 번역에서 괄호를 집어넣은 일, 그것도 한 쪽 괄호만 집어넣은 것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생각컨대 번역자는 일은 안 하고 놀다가 자기 손가락이 제멋대로 춤춘 적도 모르고 괄호 “ ( ” 한 쪽을 남겨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문인의 기본인 교정도 안한 것이지. 이 번역인은 본래 사기꾼이라 치고, 그럼 도대체 이 단체의 편집인들, 교정인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 잘난 회장, 부회장, 수석부회장은 어디로 갔나? 또 출판사 “그리고” 의 직원들은 도대체 무얼 했단 말인가? 정말 한심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제 열을 달구어” 라는 문장의 번역을 보자.
( heat their own heat?
포도가 자신의 “열”을 어떻게 또 “열”하나? 이 때의 제 열이란 몸의 열이니깐 heat 이라는 명사보다는 fever 라는 명사가 더 적합하다. 그리하여 <포도가 제 열을 달구어> 라는 문장은 아래와 같이 번역함이 좀 더 타당하다. 물론 쓰레기보다 못한 괄호 " ( " 는 반드시 빼야겠지. 그래서 이렇게 번역해야 한다.
“The pavement road heats up its own fever”
다음은 “토해 낸다” 라는 단어.
“throw up”
throw up 은 일반적으로 “던져 올리다” 라는 뜻이고 이따금 “사직한다” 또는 “부정으로 해 먹은 돈을 게워낸다” 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우리말 “토하다” 에는 가장 보편적인 영어단어 “vomit” 가 있으므로 “토해 낸다” 는 “vomit” 또는 “vomit forth” 가 더 정확한 번역에 가깝다.
(1 연 옳은 번역)
The mid summer get ripe
to melt in the asphalt
The pavement road heats up its own fever
to vomit forthward
(2) 둘째 연
나는 긴 팔 남방셔츠로
팔을 덮고
양산을 받쳤으나
햇빛은 막무가내다
I am wearing a long-sleeved shirt.
under one's arm
in favor of mass production
The sun is out.
“남방셔츠”란 태평양 더운 지역에서 입던 시원한 셔츠를 통칭한다. 그리하여 해당되는 좋은 단어 "aloha shirt" 가 있다. 따라서 첫 행 번역은
“I am in a long-sleeved aloha shirt”
가 좋고 이 줄에 마침표는 불필요하다. 문장상 흐름으로 보아도 그러하고 원문에도 마침표는 없다. 마침표 하나라도 번역자가 제멋대로 붙이거나 떼거나 하는 짓은 엄금이다.
그런데 “팔을 덮고” 를
“under one's arm” 이라고 해놓았다.
또 다시 실소가 나온다. 내 옷을 입고 도대체 누구의 팔을 덮겠는가? 나의 팔이다. 그리고 팔을 덮는 데에 남방셔츠가 팔의 밑 (under) 에 들어가야 하나? 아니면 위에서 덮어야 하나? 위에서 덮어야지. 또한 나의 팔은 몇 개인가? 두 개다. 세상에 “팔을 덮고” 라는 이 짧은 한국어를 번역하는 데에 이렇게 많은 엉터리 과오를 저질러야 하는가? 일부러 하려고 해도 하지도 못할 실수를 너무도 많이 하고 있다.
그러므로 “팔을 덮고” 라는 이 줄의 번역은 최소한
“covering my arms”
라고는 되어야 하겠다.
다음 줄의 번역을 살펴보자.
“양산을 받쳤으나”
“in favor of mass production”
이 시 詩에서의 양산은 “햇빛을 가리는 양산 陽傘” 즉, "파라솔 parasol" 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갑자기 자동차공장 같은 제조업체에서의 양산 量産 즉, 대량생산에 해당하는 “mass production” 이라는 영어가 튀어나왔다. 도대체 파라솔이라는 물건 즉, 한 개씩 눈에 보이는 보통명사하고 대량생산이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추상명사가 구분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참으로 혀를 차게 만든다.
그리고 양산을 “받쳤으나” 라고 했다. 양산을 들고 사용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좋아한다”라는 뜻의 “in foavor of” 라는 영어가 왜 나오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번역이다. 그리고 원문이 “~ 하였으나” 이니깐 “그러나” 라는 뜻의 “but” 가 뒤따라와야 한다.
따라서 “양산을 받쳤으나” 라는 문장은
“to wear a parasol, but” 라고 번역됨이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햇빛은 막무가내다” 는 말은 햇빛이 그만큼 뜨겁고 사정없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번역이 “The sun is out”? “태양이 죽었다고”?
말도 안되는 번역이다. 우선 “해”가 아니라 “햇빛”이므로 “sun” 대신에 “sunlight” 를 써야 한다, 그리고 그 햇빛이 펄펄 살아서 뜨겁게 사람을 괴롭히는데 갑자기 햇빛이 죽었다는 “out” 가 왜 나오나? 그러므로 매우 강하고 압도적이라는 뜻의 “overwhelming” 또는 “지독한” 이라는 뜻의 “severe" 라는 단어가 좋다. 연결하면
(2 연 옳은 번역)
I am in a long-sleeved aloha shirt
covering my arms
to wear a parasol, but
the sunlight is overwhelming
정도가 좋겠다.
(3) 셋 째 연
빈 박스 모으는 노파가
끌던 수레를 세우고
이마의 땀을 닦는다
가로수도 식은 땀을 흘리며
어깨가 축 쳐져 있다
하늘에 옅은 구름도 멎은 채 쉬고 있다
(3 연 잘못된 번역)
An old woman who collects empty boxes
I'm going to put up the wagon
wipe the sweat off one's brow
with a cold sweat on the street
have drooping shoulders
Even the light clouds are resting in the sky.
매우 잘못된 번역이다. 우선 끌던 수레를 세우고 땀을 닦는 행위의 주체가 누구인가? 빈 박스를 모우는 노파이다. 즉 노파가 주어이다.
그런데 갑자기 "I'm going to“ 라고?
노파는 3인칭인데 갑자기 1인칭 “내” 가 왜 나오나?
그리고 "be going to" 는 미래 시제이다. 시제를 “과거”가 아니라 “미래” 라고 완전히 정반대로 번역해 놓았다.
그러므로 "I'm going to" 는 생략해버리고 그냥 자기가 끌던 수레를 멈추다
즉, "put up her carried wagon"
또는 "stop her carried the wagon" 이라고 하면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누가 누구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가?
노파가 자신의 이마에 생긴 땀을 닦는 것이다.
그런데 “Wipe the sweat from ‘your’ forehead” 라고 번역하면 ‘너’의 이마에 맺힌 땀이 되어버리므로 ‘그녀’의 이마 즉, ‘her’ forhead 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땀을 닦는 행위의 주체는 3인칭이므로 “wipe”가 아
니라 “wipes” 라고 3인칭을 표하는 접미어 “s”를 붙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3 연 앞부분은 이렇게 번역된다.
An old woman who collects empty boxes
put up her carried wagon
and wipes the sweat from her forehead
3 연의 뒷부분은 다음과 같다.
“가로수도 식은 땀을 흘리며 어깨가 축 늘어져 있다”에서
가로수는 “도로”가 아니고 “나무”이다. 도로와 나무도 구분 못하는가?
그러므로 “기로수”의 번역은 “the street” 가 아니고 “the street trees” 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깨는 어떤 “상태”인가? 축 처진 상태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번역함이 타당하다.
“with their shoulders slumped”
그리고 “가로수도” 에서의 “도” 자는 “~ 조차도” 라는 뜻이고, “구름도” 에서의 “도” 자는 구름 “또한” 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 조차도 하는 뜻의 “even" 이라는 영어가 가로수 ”the street trees“ 앞에 와야 하고, "또한" 이라는 뜻의 "also" 라는 단어가 옅은 구름의 앞에서 즉, “The light clouds” 의 앞에 붙어줌이 좋다. 정리하면,
그리고 “하늘에 옅은 구름도 멈추고 쉬고 있다”에서
“Even the light clouds are resting in the sky”라고 번역하면 “멈추고” 라는 단어의 번역이 빠진 것이다. 그러므로 멈추어진 상태를 표하는 "still" 이라는 형용사가 있어야만 하겠다. 그러므로 이를 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번역이 합당하다.
Even the street trees are sweating coldly
with their shoulders slumped
And also the light clouds in the sky are still and resting
(3 연 전체의 바른 번역)
An old woman who collects the empty boxes
put up her carried wagon
And wipes the sweat from her forehead
Even the street trees are sweating coldly
with their shoulders slumped
And also the light clouds in the sky are still and resting
(4) 마지막 4 째 연의 번역을 살펴보자.
찌르레기와 풀벌레는
바뀌는 계절을 노래했지만
실감하지 못하더니
산사과 열매의 채색에
놀라며
물러나는 여름의 아쉬움인가
치닫는 세월의 두려움 같은 것일까
허전함과 놀라움이 밀려드는데
가을은 소리 없이
벌써 내 발밑에
이미 와 있었네
(4연 잘못된 번역)
The stinger and the grassworm
I sang the changing season,
I didn't realize it.
in the color of the fruit and the fruit
in amazement
What a pity for a retreating summer?
Is it like a fear of passing time?
I'm overwhelmed with vanity and surprise.
Autumn is silent
under my feet
You were already here.
“찌르레기”라는 벌레는 “starling” 이다. 이렇게 정확한 번역이 있다. 그런데 “stinger” 는 침이나 가시 또는 무기 이름에 자주 쓰인다. 명백한 오역이다. “풀벌레”는 통상 “grasshopper” 를 자주 쓰고 grassworm 이라는 단어는 매우 생소하다. 그리고 “ ~ 했건만” 이라고 했으니 “though”라는 전치사가 있어야 좋겠다.
그리고 노래는 누가 하는가? 바뀌는 계절을 노래한 주체는 바로 찌르레기와 풀벌레이다. “I” 즉, “내”가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완전 넌센스 무식한 번역이다.
또한 바뀌는 계절을 실감하지 못하는 주체는 “여름”이다.
그러므로
“찌르레기와 풀벌레는
바뀌는 계절을 노래했건만
실감하지 못하더니“ 의 번역은
”Though the starlings and grasshoppers
sang about the changing season
of which the summer did not realize“
가 되어야 한다.
한편 산사과 열매의 채색에 놀라며 물러나는 주체도 “summer” 즉, “여름”이다. “I” 즉, “나”는 절대 아니다. 이 번역자의 인칭에 대한 개념이 매우 저급하다.
그리고 “산사과”는 문자 그대로 “Mountain apple” 인데, 이유없이 번역하지 않았다. 즉, 번역 실종이다. 또한 열매 “fruit” 가 왜 두 번이나 반복되어 나오나? 납득할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딱딱한 산사과 열매는 fruits 보다는 bearings 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이어지는 번역은
And is it the regrets of the fading summer
surprised to see the colouring
of the bearings of the mountain apples.
그리고 “치닫는 세월의 두려움 같은 것일까?“ 에서
“치닫는” 은 세월이 단순히 지나친다는 개념이 아니고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다는 의미에 가까우므로 여기에서는 “running” 이라는 번역이 더 적합하다.
또한 “두려움”은 일반적인 공포 즉, “fear” 보다는 내적인 염려나 외경 의 뜻이 있다. 그러므로 “awe” 라는 단어가 좀 더 가까운 느낌이 아닐까 한다. 또한 “~ 같은” 이니깐 “something like” 라는 표현이 필요하다. 한편 이 문장은 “~ 인가 아니면 ~인가” 라는 문장구조이므로 “or” 이라는 단어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문장의 번역으로는
“Or is it like something an awe of the running years”
를 추천할 만하다.
마지막 넉 줄의 번역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
허전함과 놀라움이 밀려드는데
가을은 소리 없이
벌써 내 발밑에
이미 와 있었네
허전함과 놀라움은 나에게 밀려든다. 그러할 때 가을이 이미 조용하게 내 발 밑에 와 있었다는 뜻이므로
While a sense of emptiness and surprise floods me
The autumn already came
silently
under my feet
라는 번역이 좀 더 정확하다.
그러므로 제 4연 전체의 올바른 번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Though the starlings and grasshoppers
sang about the changing season
of which the summer did not realize
And is it the regrets of the fading summer
surprised to see the colouring
of the bearings at the mountain apples.
Or is it like something an awe of the running years
While a sense of emptiness and surprise floods me
The autumn already came
silently
under my feet”
따라서 이순자 시인의 시 “가을이 오는 소리” 전체의 바른 번역문은 다음과 같이 될 수 있다.
The Sound of Autumn’s Coming
Lee Soonja
The mid summer get ripe
to melt in the asphalt
The pavement road heats up its own fever
to vomit forthward
I am in a long-sleeved aloha shirt
covering my arms
to wear a parasol, but
the sun light is overwhelming
An old woman who collects empty boxes
put up her carried wagon
And wipes the sweat from her forehead
Even the street trees are sweating coldly
with their shoulders slumped
And also the light clouds in the sky are still and resting
Though the starlings and grasshoppers
sang about the changing season
of which the summer did not realize
And is it the regrets of the fading summer
surprised to see the colouring
of the bearings at the mountain apples.
Or is it like something an awe of the running years
While a sense of emptiness and surprise floods me
The autumn has already come
silently
under my f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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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기꾼 번역을 제대로 밝혀놓았네요.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