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에 관한 성경절
요한복음 20장 19절에서 제자들은 안식 후 첫날 저녁에 문을 닫고 모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이 부활 기념 예배를 드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고 있었고 아직 부활의 소식을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 평강을 주시고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을 회복하고 사명을 맡기신 사건입니다.
그 모임 자체가 첫째 날을 거룩하게 제정했다는 문장은 없습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에서 드로아의 신자들이 첫째 날에 떡을 떼려고 모였고,
바울은 밤중까지 말씀을 전했습니다.
다음 날 떠나야 하는 바울이 마지막 밤에 신자들과 작별하며 가진 특별 집회였습니다.
유두고가 창에서 떨어졌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고, 바울은 새벽까지 말씀을
나눈 뒤 길을 떠났습니다.
이 특별한 송별 모임을 매주 드리는 일요일 정기예배의 제정으로 볼 근거는 없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은 신자들이 날마다 집에서 떡을 떼었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떡을 떼었다는 사실만으로 특정 요일이 거룩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은 매주 첫날에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얼마씩 따로 모아 두라고 권합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 헌금을 미리 준비하라는 실제적인 지침입니다.
바울은 첫째 날을 안식일이라 부르거나 예배일로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구제금을 계획적으로 준비하라는 말씀이 넷째 계명의 날짜를 바꾸는 명령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서 요한은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날이 일요일이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나의 성일”이라고 부르신 날은 안식일입니다.
출애굽기 20장은 “제칠일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자체의 표현을 따라 ‘주의 날’을 이해할 때 제칠일 안식일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의식적인 절기와 제칠일 안식일의 차이
골로새서 2장 16~17절은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도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하며, 그것들을 “장래 일의 그림자”라고 설명합니다.
이 문맥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미리 보여 주던 의식과 절기를 다룹니다.
레위기 23장에는 유월절과 무교절과 속죄일 같은 절기 가운데 일상적인 일을 쉬는
의식적 안식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제도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사역을 가리키는 그림자였습니다.
그러나 창조 때 제정된 제칠일 안식일은 죄가 생기기 전에 주어졌고, 동물 희생을
예표하는 의식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십계명 가운데 기록되어 창조주를 기억하게 하는
도덕적 계명입니다.
그림자는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목적을 이루었지만, 창조주를 예배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권위를 기억하게 하는 넷째 계명은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얻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과 로마서 14장에 나오는 날들에 관한 말씀도 사람의 공로로 구원을
얻으려는 절기 준수나 공동체 안의 논쟁을 다룹니다.
이런 구절을 사용하여 창조 때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십계명에 기록하신 제칠일 안식일을 폐지하려면,
신약성경 어딘가에 분명한 변경 명령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명령은 없습니다.
성경의 명백한 계명은 모호한 추론으로 취소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요일에 예배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진실한 믿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많은 분이 받은 빛과 전통 안에서 정성껏 하나님을 섬깁니다. 사람의 마음을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존중하는 것과 성경의 진리를 분명히 말하는 것은 충돌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말하되 말씀을 감추지 말고, 말씀을 말하되 교만하거나 공격적으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 안식일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순종의 문제입니다
안식일과 일요일은 달력에서 하루 차이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묻습니다.
“하루가 무슨 큰 차이가 있는가? 어느 날이든 하나님을 예배하면 되지 않는가?”
물론 우리는 매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매일이 중요하다는 말이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신 날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정하셨기 때문에 그날이 중요합니다. 핵심은 하루의 길이가 아니라
말씀하신 분의 권위입니다.
에덴동산의 금지된 열매도 겉으로 보기에는 열매 하나였습니다. 모세가 반석을 한 번 더 친 일도
사람의 눈에는 작은 행동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웃사가 흔들리는 법궤를 붙잡은 일도 선한 의도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판단으로 바꾸는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내가 이해하고 동의하는 부분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분을 신뢰하기 때문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실수 하나를 기다리며 벌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오래 참으십니다.
성경의 엄숙한 사건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말씀의 무게를 가르칩니다.
순종은 공포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니라 신뢰에서 나오는 응답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이 순종을 낳고, 순종은 사랑을 눈에 보이게 합니다.
우리는 안식일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구원하신 분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말을 듣는다고 해서 부모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자녀이기 때문에 부모를 신뢰하고 따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순종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이미 나타난 사랑에 믿음으로 응답합니다.
진리는 사람의 수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 재림교회 카스다 게시판 발췌글)
http://cafe.daum.net/DRSTUDY
SDA남은무리운동
첫댓글 일부 개신교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은혜로 얻는 구원진리에
푹빠져가지고,,,
십계명 진리마저도 순종하는것을
마치 은혜를 퇴색하거나 인간율법행위로 구원을
받으려는 것으로 착각하고,,,
믿음에서 나오는 정당한 순종의 행위를
마치 자기 율법의 행위로 지키려는 것으로 보게된 이유는
개신교역사 약500년동안 십자가 은혜와 구원진리만 배우고 가르치고
살았기 때문에 머리에 그것만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봅니다
모든 행위를 " 구원"에다 갖다 붙여서 분석하는것입니다
폭넓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아무리믿음이 좋고, 당연히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것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은 죄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고요
고로
참믿음은?- 결코 십계명 율법을 불순종 하도록 그렇게 만들지 않습니다
성령이 마음에 있다면 우리가 비록 연약해서 실수할수있고 법을 어길수는
있지만 그렇지만 또 회개하게 하고, 일어 서게하고
율법을 어긴 죄를 깨닫게 하실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요일2: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