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서지방의 충신 명현들
1909년 순종임금이 호서지방(湖西地方)을 지나며 그 주변에 산소, 사당이 있는 충신(忠臣)과 명현(名賢)들에게 치제(致祭)토록 하였다.
순종 2년(1909년) 1월 7일(양력), 순종임금이 호서지방(湖西地方)을 지나며 연로(沿路)에 있는 선비들과 이름난 신하들의 사당들에 모두 치제(致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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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령(詔令)을 내리기를,
“이 신하의 곧은 절개와 뛰어난 충성심에 대하여 늘 크게 감동하고 있었는데, 행차가 이 곳을 지나면서 사당을 보게 되었다. 고(故) 문열공(文烈公) 박태보(朴泰輔)의 사판(祠版)에 지방관을 보내어 치제(致祭)하도록 하라.”하였다.
또 조령을 내리기를,
“이 네 정승들은 그 당시에 지조를 굳게 지켰으며, 그 덕에 사직이 안정되었다. 행차가 여기를 지나면서 사당을 바라보니 충직한 의리를 생각하게 되며 슬픈 생각이 더욱 절절하다. 고 충헌공(忠獻公) 김창집(金昌集), 충문공(忠文公) 이이명(李頤命), 충익공(忠翼公) 조태채(趙泰采), 충민공(忠愍公) 이건명(李健命)의 사판에 지방관을 보내어 치제하도록 하라.” 하였다.
또 조령을 내리기를,
“여섯 신하〔死六臣〕의 뛰어난 충성과 절개는 위아래로 천년 동안 대비할 만한 사람이 드물다. 행차가 그들의 무덤을 지나게 되니 더욱 감회가 크다. 고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 충문공(忠文公) 성삼문(成三問), 충간공(忠簡公) 이개(李塏), 충경공(忠景公) 유성원(柳誠源), 충렬공(忠烈公) 하위지(河緯地), 충목공(忠穆公) 유응부(兪應孚)의 무덤에 지방관을 보내어 치제하게 하라.”하였다.
또 조령을 내리기를,
“아! 우리 선조 임금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때에 충성을 다하여 큰 공훈을 세웠으니 천년이 지나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행차가 호서(湖西)를 지나면서 큰 나무를 바라보니 깊은 감회를 금할 수 없다. 고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무덤에 지방 관리를 보내어 치제하게 하라.” 하였다.
또 조령을 내리기를,
“유학을 추세우고 큰 의리를 확고하게 지키며 효종(孝宗)과 잘 맞았으니 백대에 이르도록 감동하게 된다. 호서 지방을 지나게 되니 그가 남긴 기풍을 찾아볼 수 있다. 선정(先正)인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의 사판에 지방관을 보내어 치제하게 하라.” 하였다.
또 조령을 내리기를,
“기미를 밝혀서 강경하게 상소를 올리고 어려운 때를 당하여 나라에 목숨을 바쳤으니 그 높은 충성심과 굳센 절개는 오늘까지도 역역하다. 호서 지방을 지나가니 슬픈 감흥이 이니 선정인 문열공(文烈公) 조헌(趙憲)의 무덤에 지방관을 보내어 치제하게 하라.” 하였다.
또 조령을 내리기를,
“학문이 순수하여 한 시대의 스승이 되었으니 선대 임금이 예의로 대우한 것을 생각하면 그 감흥을 어떻게 비유할 수가 있겠는가? 지금 이 고장을 지나면서 그의 사당을 가리키게 되니 선정인 문정공 송준길(宋浚吉)의 사판에 지방관을 보내어 치제하게 하라.” 하였다.
또 조령을 내리기를,
“도덕이 순수하고 연원이 정확하여 백대가 지나도 영원히 사람들이 흠모하게 되었다. 호서 땅을 지나가니 감회가 더욱 간절하다. 선정인 문원공(文元公) 김장생(金長生)과 문경공(文敬公) 김집(金集)의 사판에 지방관을 보내어 치제하게 하라.” 하였다.
<순종실록【원본】 4책 3권 2장 B면【영인본】 3책 5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