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눌이 해방절이 아니고 광복절인 이유*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되었다'라고도 말하제만,
'1945년 8월 15일에 광복되었다'라고 해사라 더 정확한 말이여람짜.
'말이란 어야 다르고 아야 다르다'라고 했데끼 해방과 광복은 그 발음에 차이만침이나 본뜻에서도 큰 차이가 있구만이라.
우선 사전적인 바른 뜻이로 보자므는
해방(解放)「명사」=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함.
광복(光復)「명사」=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음.
이리케 큰 차이가 있습디다.
뜻이 그라다봉께
해방(解放)이란 말은 일본이 연합군(미국)에 항복했잉께 (지절로) 억압에서 풀려났다넌 의미가 큰 – ‘타력에 의해 풀려남’이란 의미가 되고라.
광복(光復)이란 ‘일제에 의해 비합법적으로 빼앗겼던 조국을 다시 찾았다’는 의미가 되아가꼬 이준열사부텀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랑 광복군덜로 끊임없이 잇어져 내론 조국 광복을 위한 투쟁과 희생덜얼 모도 다 항꾼에 아우를 수 있는 낱말이 되아람짜.
물론 연합군 활동에서넌 우리 광복군덜도 영국군의 요청에 의해가꼬 1943년 6월부텀 인도·버마 전선에 '인면전구공작대'럴 파견했든 바도 있고, 미국 전략첩보국(OSS)과 합동이로 국내 진입작전을 준비한 바도 있었제마는 마지막에 조국 본토에서 일본에게 우리가 직접 항복을 못 받어 낸 것이 한이기는 하지라.
우선 ‘비합법적으로 빼앗긴 조국’이란 의미는
1905년 11월 17일에 일본이 우리나라럴 식민지 삼을 수단이로 불법 강제로 맺인 을사늑약이 무효라는 뜻이로 을사늑약은 고종황제가 승인 하덜 안 했잉께 이 조약은 무효라넌 주장입니다.
그래가꼬
고종황제는 이 점을 들어서 이 조약이 무효라고 만방에 알릴라고 미국에 특사 헐버트럴 파견하고,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다 이상설, 이위종, 이준을 비밀리에 특사로 보냄시로 을사늑약의 불법성과 일본이 무력이로 자행한 침략의 부당성얼 만방에다 알릴라고 했제만, 폴쌔 전에 이미 1905년 7월 29일 자로 비밀리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었던 일제와 미국에 의해 참석도 못 하고 무산되아 뿌렀었지라.
이후로도 일제의 침략에 대항해가꼬 전국 각 지역에서넌 의병덜이 계속 들고 일어났고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에 안중근 의사는 당시 청나라 길림성 하얼삔(哈爾濱)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 博文)럴 저격, 사살했지람짜.
그라고 일제의 법원에서 재판을 받음시로도 ‘나는 대한국(大韓國) 의군(義軍) 참모중장(參謀中將)의 자격으로 국권 회복을 위해, 의병부대를 이끌고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을 전개하였으며, 독립전쟁의 수행으로 국적(國賊)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살인자가 아니라 전쟁을 하면서 나라의 적을 죽이고 잡힌 만국공법(萬國公法) 상 포로 신분이다’라고 말했었어람짜.
그 뒤로 일제는 1910년 8월 29일 한국 강제 병합에 관한 조약을 통해 국권을 강탈했제만,
앞서 언급된 것만칠로 원천무효인 을사늑약이로 모든 주권을 불법 강탈한 상태에서 이뤄진 행위임시로 이 역시 절차적이로도 불법이었응께 근본적이로 가치가 없넌 강점에 의한 불법적 행위인 일방적 강제 병합이었고 이 역시 순종의 승인은 없었고라.
거그에 항거해가꼬 1919년 3월 1일에 3·1독립선언문이 민족 대표 33인에 의해 발표되았고,
같은 해에 이런 일제의 불법적인 강점에 대해가꼬 독립에 의지럴 담어서, 국가 형태로서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럴 셔가꼬, 9월 11일 한성임시정부랑 러시아 임정까지 통합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럴 수립, 선포했지람짜.
그라고 그 이전부텀 의병과, 독립군과 광복군이란 이름이로 중 소규모 개별 조직덜에 항일 투쟁덜언 수 없이 계속 잇어져 왔었제만, 정식 광복군이란 형태로는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의 무장독립군이로 중경(重慶, 충칭)에서 창설되았어라.
《국군의 뿌리 한국광복군》 저자인 조승옥(曺昇玉, 고군 내동 출신) 육군사관학교 철학과 교수넌
“우리 국군의 정통성은 ‘대한제국군- 의병- 독립군- 광복군- 국군’으로 그 군맥이 이어졌다” 라고 말하넌데 이는 대한민국 광복회(光復會)에서도 공식적이로 인정하는 바이여라.
그람시로 이리케 끊임없이 이어져 온 우리 국민의 광복 활동과 광복군(光復軍)에 연합군 활동도 있었던 가운데서, 1945년 일본이 연합군(미국)에 항복함으로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었다넌 말이 옳다는 야깁니다.
그란데도 일부에서넌
근대사 역사럴 잘 몰루든가 역사럴 욕불로 왜곡할라고 드는 자덜이 요새 잔 많애져가꼬 ‘해방(解放= 구속, 억압 등에서 벗어남)은 거저 굴러들어 온 떡이고 미국이 우리나라에다 그냥 준 선물’이라고 말덜얼 합디다.
그케 말한다믄
을사늑약 이후 나라럴 구하겠다넌 일념이로 전국 각지서덜 수없이 일어났든 의병 활동이랑, 대한국(大韓國) 의군(義軍) 참모중장(參謀中將) 안중근 장군에다가, 조국 독립과 광복을 염원하심시로 몸 바치신 3.1운동 희생자분덜이랑
엄동설한에 동상 걸린 발로 만주 벌판을 누볐던 독립군덜과 영국군, 미군과 항꾼에 연합군에 속해가꼬 활동하신 그 모든 분덜에 피와 땀과 목숨까장 희생하신 그 가치덜 조차도 모도 다 부정하넌 짓이구만이라.
그래서
자주(自主) 대한 독립을 염원하심시로 꾸준히 독립운동얼 하솄든 독립유공자 선인덜과 의병, 의군에다 광복군... 그 부단한 자력에 노력덜이 다 빠지고 타력(他力)만 남게 되넌 해방(解放)이라고 말하기보담은
광복(光復=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음)이 더 올발른 말이고 그래서 '해방절'이 아닌 '광복절(光復節)'인데 그 본뜻과 근본을 훼손함시로 왜곡에다 호도되고 있음얼 간과해가꼬는 안 됩니다.
그런 짚운 뜻이 댐겨진 오눌은 우리나라의 광복을 기념하기 위해가꼬 제정한 국경일로 광복절(光復節)이고,
1945년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자덜한테 빼앗겼든 나라에 주권을 다시 찾인 날로, 2026년 오늘 8월 15일은 제81주년 광복절(光復節)이여람짜.
-진도솔개동리 출신/ 제59회 조병현 올림-
첫댓글 멋집니다... 統一과 一統의 차이일까요?
금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