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중몰이) 흥보 마누라가 나온다. 전에는 못벅고 못입어서 볼 모양이 없거니와 이제사 돈이 없느냐, 쌀이 없느야, 은금 보화가 없느냐, 녹용 인삼이 없느냐. 위 아래로 옷을 입었는데 한산 세모시에다가 옥색물을 들여 입고 구 시월 씨암닭 걸음으로 아장거리고 나온다. 아장거리고 나오더니, [시숙님. 안녕히 오셨으며 형님께서도 안녕하고 조카들도 평안하오?] 인사를 드리는듸
(아니리) 사람 같으며는 뻘떡 일어나서 맞절을 해야 도리가 옳은듸, 발을 똥그랗게 올려 괴고, 담뱃대 긴놈 썩 꼬나 물고, [그거 참 괴상한 일이로다. 아, 흥보야. 네 계집 쫓겨 나갈 때 보고 지금 보니까 미꾸라지가 용됐구나.] 흥보 양주 못 알은 체하고 하인들을 시켜 음식을 차리는데 꼭 이러하겠다.
(휘몰이) 음식을 차리는듸 안성 유기, 통영 칠반, 천은 수저, 그림 넣어 집리서리 수 벌리듯 주루루루 늘어놓고, 꽃그렸다 오죽판, 대 모양 양각 당화기, 얼기설기 송편이며, 네귀 번듯한 정절편, 주루루 엮어 산피떡, 평과, 진청, 생청 놓고, 조란 산적 웃짐쳐, 양회, 간, 천엽, 콩팥 양편에다 갈라 놓고, 청단, 수단, 잣배기며, 인삼채, 도라지채, 낙지, 연포, 콩기름에 갖은 양념 모아놓고, 편적, 거적, 포적이며, 설낏 볶음, 메밀 탕수, 어포, 육포 쭉 갈라놓고 천엽살, 갈비찜, 양지머리, 차돌박이 들여놓고, 어적, 육적 지져가며, 끌끌우는 생치구이, 호도독 포도독 메추리탕, 옴방 톰방 오리탕, 겨자, 고추, 생강, 마늘, 문어, 전복, 붕어찜을 나는 듯 괴어 놓고, 전골을 드리어라. 청동 화로, 백탄 숯불, 부태질 활활하여 고추같이 피워놓고, 살찐 소 반짜고기 반환도 드는 칼로 점점 편편 오려내어 깨소금에 참기름을 쳐서 조물락 조물락 재워 내어 소양푼 대양푼에 여기도 담고 저기도 담고, 산채, 고사리, 물 미나리, 녹두채, 맛난 장국 주르륵 주르륵 들어 붓고, 계란을 톡톡깨어 껍질을 얼른 벗겨 찌개를 들여라. 손 뜨거운데 쇠젓가락 말고 나무젓가락을 드려라. 고기 한 점을 덥썩 집어 참기름에 풍덩 적셔 피치치치치치치치. 너도 먹고 나도 먹고. 보배답다 천은병, 평사낙안 기러기병, 청유리병, 황유리병, 유리잔, 호박대, 빛 좋은 과화주를 보기 좋게 들여 놓고, 술, 진지를 드리는 구나.
(아니리) 흥보 마누라 술 한잔 정히 부어, [옛소, 아주버니. 박주 오나 약주 한잔 잡수시오.] 놀보놈이 홀짝 홀짝 먹더니만, 이 더러운 뱃속에 좋은 술이 들어가니 환장을 하는데, [야, 흥보야. 너는 내속을 잘 알지? 남의 소대상날에 가서 술을 먹어도 술잔 끝에 권주가 없이는 안 먹는 성질이다. 니 계집 미끈허니 곱게 꾸민 김에 권주가 한 마니 시켜라] 흥보 마누라 그 말을 들어 놓으니 사지가 벌렁벌렁 떨려,
(진양조) 들었던 술잔을 상 위에다가 내려 놓고, 어와 세상 사람들아 이런말을 들어보소. 시숙이 제수더러 권주가 하란 것을 어디서 보았오. 형제 구박은 그만두고 사흘 굶어 죽게 된 동생을 돕지는 못할망정 몽둥이로 쳐 보내고서 무슨 낯으로 내집을 왔오. 나도 이제는 돈도 있고, 쌀도 있고, 은금 보화도 많이 있소이다. 전곡자세를 허드니만 내 집을 뭣하러 왔오이까? 어서 가오, 어서 가오. 동네 사람들이 알고 보면 몽둥이 찜질을 당하리다. 안 가려면 내가 먼저 들어 가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