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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원 박사 周·人·工 四書三經] *<제102강> (2018.04.16.)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코드주역(周易) (제30강)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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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코드주역> ; [58] 重澤兌 [59] 風水渙 [60] 水澤節
오늘의 주역(周易) 공부 ③ ☞ [60] 수택절(水澤節)
* [60] 절괘 * [水澤節]
* [節卦 第六十] ☞ 이 괘의 상괘는 ‘험난(險難)함’을 상징하는 감괘(坎卦, ☵)이고 하괘는 ‘기쁨’을 상징하는 태괘(兌卦, ☱)이다. 상층부는 험난한 일들로 인해 힘이 빠져 있는 상황이고, 하층부는 자족하여 기뻐하는 상황이다. 상층부는 그 동안 자녀양육으로 인해 심신이 고달픈 부모라면 하층부는 기쁨에 들떠있는 어린아이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기쁨에 들뜬 아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가 없다. 그들이 절제(節制)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규율과 예절을 통하여 절도(節度) 있는 삶이 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래서 이 괘의 이름을, ‘절도 있는 생활을 유도한다’는 의미에서 ‘절(節)’이라고 붙였다.
— [60] ‘수택(水澤) 절(節)’괘는 [59] ‘풍수(風水) 환(渙)’괘의 종괘(綜卦)이다.
[59] ‘풍수(風水) 환(渙)’괘 | [60] ‘수택(水澤) 절(節)’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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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節)’은 대나무의 마디이다. 대나무가 생장(生長)하면서, 일정한 부분 자라다가 어느 부분에서 단단한 마디를 만든다. 그리고 또 일정 부분 자라고 다시 단단한 마디를 만들어 전체 줄기를 견고(堅固)하게 한다. 대나무는 그렇게 하여 크게 성장(成長)을 할 수 있다. 사람도 크게 성장하려면 대나무와 같은 절도(節度)를 지녀야 한다. 절도(節度)가 없는 사람은 진정으로 훌륭한 인격을 갖출 수가 없다. 사랑도 절제가 없으면 참다운 사랑이 아니다!
*『역전』에서 말했다. “물건이 이미 離散되면 마땅히 節制하여 멈춰야 하니, 節卦가 이 때문에 渙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괘의 됨이 못[☱] 위에 물[☵]이 있으니, 못의 容納함은 限界가 있다. 못 위에 물이 가득차면 容納하지 못한다. 節制가 있는 象이다. 그래서 ‘절(節)’이라 한 것이다.”
*—— [수택절(水澤節)의 괘사(卦辭)] ——*
| 節, 亨, 苦節不可, 貞. |
[60節] 절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밝은 마음으로 해야 한다.
지키기 어려운 절(節)은 불가하니, 바르게 해야 한다.(苦節不可, 貞)
* 절제하는 것을 고통스럽게 여기면 바르게 할 수가 없다.(苦節, 不可貞)
* [‘苦節 不可 貞’에 대한 두 가지 해석] ——*
① ‘고통(苦痛)을 느낄 정도로 지나친 절도(節度)는 불가하니, 바르게 해야 한다.’(程子)
② ‘절도(節度) 있게 하는 것을 고통(苦痛)스럽게 여기면, 바르게 할 수가 없다.’ (子然)
* [강 설(講說)] ————
절도(節度)를 세우는 일, 즉 예법(禮法)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나 지킬 수 있는 공평(公平)한 법도(法度)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키기 괴로울 정도로 만들어 놓으면 오히려 해로울 수가 있다. 그래서 ‘지키기 괴로운 절(節)은 바르게 할 수가 없다.’고 한 것이다. 일단 예법(禮法)을 만들어 놓으면 모두가 그 예법을 지켜야 한다. 하층부는 예법을 지키도록 애써야 할 것이요, 상층부는 솔선(率先)하여 예법은 준수하여야 한다.
『역전』에서 말했다. “일이 이미 節制가 있으면 밝게 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節에 밝게 통하는 뜻이 있는 것이다. 節制를 하는 것은 的中함을 귀하게 여기니, 지나치면 괴로우니 節制하는 것이 괴로움에 이르면 어찌 한결같이 (실천)할 수 있겠는가. 굳게 지켜 한결같이 (실천)할 수 없으니 이는 바르게 할 수 없는 것이다.”
[傳] 事旣有節이면 則能致亨通이라 故節有亨義하니라 節貴適中하니 過則苦矣니 節至於苦면 豈能常也리오 不可固守以爲常이니 不可貞也라
*—— [수택절(水澤節)의 단전(彖傳)] ——*
[60節] 彖曰, “節, 亨” 剛柔分而剛得中.
“苦節不可, 貞” 其道窮也. 說以行險, 當位以節, 中正以通.
天地節而四時成, 節以制度, 不傷財不害民.
단(彖)에서 말했다. “절제(節制)해야 하는 형국에서 밝은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은
굳센 것과 부드러운 것이 나뉘어져 굳센 것이 중심(中心)을 얻기 때문이다.
지키기 괴로운 절(節)을 만들면 정고(貞固)하기 어려운 것은 그 도(道)가 궁하기 때문이다.
기쁨으로 험한 것을 행하는 것이니,
마땅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절도(節度)를 지켜야 하고 알맞고 바르게 처하면서 통해야 한다.
천지(天地)가 절도를 지켜 사계절(四季節)이 이루어진다.
절도를 지켜 법도(法度)를 만들어야 재정을 손상시키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
· ‘剛柔分而剛得中’은 ‘수택(水澤) 절괘(節卦)’가 ‘지천(地天) 태괘(泰卦)’를 본괘로 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말한 것이다. 태괘(泰卦)는 상·하가 ‘지(地)·천(天)’인데, 하괘의 구삼(九三)이 상층부의 오효(五爻)의 자리에 올라가 중(中)의 자리를 얻었음을 말한 것이다.
· ‘其道窮也’에서 ‘그 길이 궁하다’는 것은 상효(上爻)를 두고 하는 말이다.
· ‘說以行險’(열이행험)에서 ‘說’은 태괘를 이르는 것이요, ‘險’은 감괘를 말하는 것이다.
· ‘節以制度, 不傷財不害民’는 리더[군주]가 해야 할 일을 말한 것이다. 군주는 절도로써 제도를 만들어 백성의 재산을 보호하고 백성들의 행복을 도모해야 한다.
* [강 설(講說)] ————
[주역강설]▶ 하층부가 절도(節度) 없이 설치는 것은 음(陰)인 육삼(六三)이 두 양(陽)과 함께 즐기고 있는 데서 연유하므로, 절도 있는 생활을 하도록 유도하면, 음(陰)과 양(陽)이 각각 분별을 지키게 되고, 그리하여 양인 구이(九二)가 중심에서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다. 그래서 ‘굳센 것과 부드러운 것이 나뉘어져 굳센 것이 중심(中心)을 얻는다’고 했다.
하층부의 사람들이 엄한 규칙을 지키고 어려움을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상층부가 자신의 자리를 정확하게 지켜 모범(模範)을 보이고, 바르게 처신하여 하층부의 마음과 통해야 한다. 그래서 ‘기쁨으로 험한 것을 행하는 것이니, 마땅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절도(節度)를 지켜고 중정의 도로 하면 통한다’고 했다. 음(陰)이 음의 역할을 하고, 양(陽)이 양의 역할을 하여 각각 구별된 역할을 하는 것이 예(禮)이다. 그러나 예(禮)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음(陰)은 음(陰)으로만, 양(陽)은 양(陽)으로 치우쳐 한마음이 되지 못하고 괴리(乖離)된다. 그래서 ‘중정(中正)의 도(道)로 하면 통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說以行險’에서), 내괘는 兌이고 외괘가 坎인 것은 기뻐하여 險한 것에 행하는 것이다. 사람이 기뻐하는 바에는 그칠 줄을 모르고 어려움과 險함을 만나면 그칠 것을 생각하니, 막 기뻐하면서도 그치는 것이 節의 뜻이다. ‘當位以節’은 九五가 존위에 거하는 것이 地位를 담당한 것이요, 못 위에 있는 것은 節制가 있는 것이니, 地位를 담당하여 節制하는 것은 節度를 主管하는 자이다.
[傳] 以卦才言也라 內兌外坎은 說以行險也라 人於所說則不知已하고 遇艱險則思止하나니 方說而止는 爲節之義라 當位以節은 五居尊은 當位也요 在澤上은 有節也니 當位而以節은 主節者也라
*—— [수택절(水澤節)의 상전(象傳)] ——*
[60節] 象曰, 澤上有水, 節, 君子以制數度, 議德行.
상에서 말했다. “못[☱] 위에 물[☵]이 있는 것이 절(節)이니,
군자는 이 괘의 이치를 살펴, 수(數)와 법도(法度)를 제정하고 덕행(德行)을 논의한다.”
· ‘君子以制數度’에서 ‘數’는 ‘도량형, 양전, 관직의 수’ 등을 말하고 ‘度’는 ‘제도, 법도’
* [강 설(講說)] ————
하늘과 땅이 절도 있게 움직여서 사시(四時)가 순환하고 만물이 생장(生長)하는 것처럼, 절도 있게 법도(法度)와 예절(禮節)을 제정하여 시행하면, 백성들이 질서(秩序) 있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고 경제 활동도 원만하게 유지된다.
『역전』에서 말했다. “君子가 節의 象을 관찰하여 數와 度를 세우니, 무릇 물건의 大와 小, 輕과 重, 多와 寡, 高와 下, 文과 質이 모두 數와 度가 있다. 이는 節制하는 것이다. 數는 過多이고 度는 法制이다. ‘德行을 議論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두는 것을 德이라 하고, 밖으로 발하는 것은 行이라 하니 사람의 德行이 義에 마땅하면 節度에 맞는다. 의는 헤아려서 절도에 맞음을 구하는 것이다.”
[傳] 澤之容水有限하여 過則盈溢하나니 是有節이라 故爲節也라 君子觀節之象하여 以制立數度하나니 凡物之大小, 輕重, 高下, 文質이 皆有數度하니 所以爲節也라 數는 多寡요 度는 法制라 議德行者는 存諸中爲德이요 發於外爲行이니 人之德行이 當義則中節이라 議는 謂商度求中節也라.
*—— [수택절(水澤節)의 효사] ——*
‘上六, 苦節, 貞凶, 悔亡.’ ‘九五, 甘節, 吉, 往有尙.’ ‘六四, 安節, 亨.’ ‘六三, 不節若, 則嗟若, 无咎.’ ‘九二, 不出門庭, 凶.’ ‘初九, 不出戶庭, 无咎.’ |
* [수택절(水澤節) 초구(初九)의 효사] ———
[60節] 初九, 不出戶庭, 无咎.
象曰, “不出戶庭” 知通塞也.
초구(初九)는 문이나 뜰을 벗어나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 상에서 말했다.
“문이나 뜰을 벗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은 통하고 막히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 [강 설(講說)] ————
초구(初九)는 절도(節度)의 생활을 시작하는 단계이다. 대나물의 생장과정으로 보면 첫 번째 맺어지는 마디에 해당한다. 그처럼 초구(初九)는 아직 어리다. 규율과 법도를 아직 모른다. 사람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규율과 법도를 익혀 준수해야 한다. 그래야 밖으로 나가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있고 인간관계도 제대로 맺을 수 있다. 따라서 그것들을 읽힐 때까지 집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 좋다. 강양의 초구는 앞으로 나아고자 한다. 그러나 초구의 나아감을 가로막는 것이 구이(九二)나 육삼(六三)이다. 이들은 모두 부정(不正)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이나 뜰을 벗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은 통하고 막히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주역강설]▶ 초구(初九)는 어떤 단체에 처음 들어간 사람이나 낯선 나라에 처음 간 사람 등도 이에 해당한다. 거기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잘 아는 사람에게 겸손하게 물어서 하는 것이 좋다. 공자(孔子)는 태묘의 제사에 참여했을 때 물어서 했고, 맹자(孟子)는 “외국에 들어갈 때에는 먼저 그 나라의 법에 대해서 공부한 뒤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역전』에서 말했다. “戶庭은 집 밖의 뜰이요, 門庭은 문 안의 뜰이다. 初九가 陽으로 아래에 있고 위에 다시 正應이 있으니, 節制할 수 있는 자가 아니며 또 절제의 初期에 있다. 그러므로 삼가 지켜서 집 밖을 나가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고 경계한 것이다.”
[傳] 戶庭은 戶外之庭이요 門庭은 門內[一作外]之庭이라 初以陽在下하고 上復有應하니 非能節者也*(注)요 又當節之初라 故[一无故字]戒之謹守하여 至於不出戶庭이면 則无咎也라 初能固守로되 終或渝之하니 不謹於初면 安能有卒이리오 故於節之初에 爲戒甚嚴也라
*(注) ‘上復有應 非能節者也’ : 沙溪는 “初九가 六四에 應하니, 이는 밖으로 구하는 것이므로 節制할 수 있는 자가 아닌 것이다.” 하였다.《경서변의(經書辨疑)》
* [수택절(水澤節) 구이(九二)의 효사] ———
[60節] 九二, 不出門庭, 凶.
象曰, “不出門庭” 失時極也.
구이(九二)는 문 밖을 나가지 않으면 흉하다. 상에서 말했다.
“문이나 뜰을 나가지 않으면 흉한 것은 마땅히 때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 [강 설(講說)] ————
구이(九二)는 대나무가 어느 정도 성장한 상태이다. 사람으로 보면, 집안에서 배운 것을 사회(社會)에 나가서 실행하고 익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집에만 계속 머물러 있으면 사회성을 배양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래서 ‘문 밖을 벗어나지 않으면 흉하다.’고 했다. 공자도『논어(論語)』에서 “배우고 제 때에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했다. 여기서 ‘익힌다’는 말은 ‘실제 생활에서 실천(實踐)한다’는 말이다. ‘제 때’는 바로 시중(時中)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九二가 비록 剛中의 자질이나 陰에 처하여 기뻐하고 있다. 그리고 柔弱한 陰을 받들고 있으니 陰의 자리가 바르지 못한 것이요, 기쁨에 거하는 것은 剛함을 잃은 것이요, 陰을 받드는 것은 삿된 것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節制하는 道는 마땅히 剛中·正을 써야 하는데 九二가 剛中의 德을 잃었으니 九五의 剛·中·正과는 다르다. 집 밖을 나가지 않으니 구오를 따르지 않음을 이른다.”
[傳] 二雖剛中之質이나 然處陰居說而承柔하니 處陰은 不正也요 居說은 失剛也요 承柔는 近邪也라 節之道는 當以剛中正이어늘 二失其剛中之德하니 與九五剛中正으로 異矣라 不出門庭은 不之於外也니 謂不從於五也라.
* [수택절(水澤節) 육삼(六三)의 효사] ———
[60節] 六三, 不節若, 則嗟若, 无咎.
象曰, “不節之嗟” 又誰咎也!
육삼(六三)은 절도를 지키지 않으면 탄식을 할 것이다. 아무도 탓할 수 없다.
상에서 말했다. “절도를 지키지 못해서 울부짖으면 또 누구를 탓하겠는가?”
· ‘不節若’에서 ‘~若’은 ‘~然’과 같다. ‘不節若 則~’은 ‘절도를 지키지 않으면 곧~’이다.
· ‘无咎’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① 앞의 내용이 부정적일 경우 ‘아무도 탓할 수 없다. ’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② 앞의 내용이 부정적일 경우 ‘허물이 없다.’ 여기에서는 ①의 뜻이다. 상(象)에서도 ‘誰咎也!’라도 말했다. 결국 ‘反求諸己’해야 한다.
* [강 설(講說)] ————
육삼(六三)은 부정(不正)이고 또 부중(不中)이다. 하층부의 제일 윗자리에 있지만 아직 성인(成人)이 된 것은 아니다. 규율과 법도(法度)룰 배우고 실습했지만 자유자재로 실천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그리고 육삼(六三)은 불만이 많은 자리에 있어 그간에 배운 예절을 지키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예절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면 성인(成人)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예절이나 법도(法度)를 제대로 지키기 못하게 되면 참 아프게 탄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의범절을 지키지 못하면 깊이 탄식(歎息)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탓하겠는가.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결코 참다운 인격자가 아니다.
『역전』에서 말했다. “六三은 中正하지 못하며 剛을 타고 險한 것에 임하였으니, 진실로 마땅히 허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柔順하고 和說하니, 만약 스스로 節制하여 義에 순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흉함과 허물이 반드시 이를 것이니, 상심하고 恨歎할 만 하다. 그러므로 절제하지 않으면 한탄하는 것이니 자기가 스스로 자초하였기에 허물을 돌릴 곳이 없는 것이다.
[傳] 六三은 不中正하고 乘剛而臨險하니 固宜有咎나 然柔順而和說하니 若能自節而順於義하면 則可以无過요 不然則凶咎必至하리니 可傷嗟也라 故不節若이면 則嗟若이니 己所自致라 无所歸咎也니라
* [수택절(水澤節) 육사(六四)의 효사] ———
[60節] 六四, 安節, 亨.
象曰, “安節之亨” 承上道也.
육사(六四)는 예절과 법도를 편안하게 지키게 되면 밝은 마음으로 통할 것이다. 상에서 말했다.
“예절과 법도를 편안하게 지키게 되면 밝은 마음이 되는 것은
윗사람이 제정한 바른 도리를 잘 이어받기 때문이다.”
* [강 설(講說)] ————
육사(六四)는 상층부에 있어 아래의 사람을 잘 다독이고 또 리더인 구오(九五)를 보좌해야 하는 자리이다. 육사(六四)는 부드러운 음(陰)의 자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규율과 법도를 몸에 익혀 자유롭게 실천하는 자이다. 그래서 절도(節度)를 편안하게 지키게 되니 모든 것이 밝게 통하는 것이다. ‘윗사람이 제정한 바른 도리(道理)를 잘 이어받는다’는 것은 구오(九五)의 굳센 중정(中正)의 도(道)를 받들어 절제(節制)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六四는 九五의 굳센 중정[剛·中·正]의 도道를 유순하게 받드니, 이는 中正함으로 節制를 하는 것이다. 陰으로서 陰位에 있는 것은 正道의 便安함이니, 자리에 마땅함은 節制가 있는 象이다. (육사는) 아래에는 初九와 응한다. 육사는 감체로 물이니 물이 위로 넘치는 것은 절제가 없는 것이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절제가 있는 것이다. 六四와 같은 뜻은 억지로 절제하는 것이 아니요 그러므로 형통함에 이룰 수 있으니 절제는 편안함을 선으로 여긴다.”
[傳] 四順承九五剛中正之道하니 是는 以中正爲節也니 以陰居陰은 安於正也요 當位는 爲有節之象이라 下應於初하니 四는 坎體로 水也니 水上溢은 爲无節이요 就下는 有節也라 如四之義는 非强節之요 安於節者也라 故能致亨이니 節은 以安爲善이라.
* [수택절(水澤節) 구오(九五)의 효사] ———
[60節] 九五, 甘節, 吉, 往有尙.
象曰, 甘節之吉, 居位中也.
구오(九五)는 예의와 법도를 달게 여겨서 지키니 길(吉)하다.
적극적으로 나서면 고상(高尙)함이 있다. 상에서 말했다.
“예의와 법도을 달게 여기고 지켜서 길한 것은 자리에 거처하는 것이 알맞기 때문이다.”
· ‘往有尙’에서 ‘往’[가다]의 주역 코드는 진괘(震卦, ☳)이다. 절괘에서 구오를 중심으로 한 외호괘(3효-4효-5효)가 뒤집어진 진괘이다. 그래서 ‘往’을 쓴 것이다.
* [강 설(講說)] ————
구오(九五)는 법도를 지키고 절제(節制)를 하는 상황에서 모든 구성원들을 이끄는 중심적(中心的)인 리더이다. 구오(九五)는 굳센 자질을 지니고 있고, 또한 중정(中正)의 덕(德)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 직위와 역할에 알맞은 훌륭한 능력(能力)을 지닌 지도자이다. 전체를 위하여 절도(節度)를 세우고 스스로 그것을 실천하는 것에 솔선수범(率先垂範)하니 만인의 모범(模範)이 된다. 그러므로 고상(高尙)함이 있다고 한 것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九五는 剛·中·正으로 존위에 있어 節制의 주체가 이른바 ‘地位를 담당하여 節制하고 中正하여 통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있어서는 便安히 행하고 천하는 기뻐하며 따르므로, 節制함이 달고 아름다운 것이니, 그 길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행하면 그 공이 크므로 행하면 嘉尙할 만한 일이 있는 것이다.
[傳] 九五는 剛中正으로 居尊位하여 爲節之主하니 所謂當位以節, 中正以通者也라 在己則安行이요 天下則說從이니 節之甘美者也니 其吉可知라 以此而行이면 其功大矣라 故往則有可嘉尙也라
[주역강설]▶『논어(論語)』<이인편(里仁篇)> 제11장에서 “군자(君子)는 형벌 받기를 좋아하고 소인(小人)은 혜택 받기를 좋아한다.(君子懷刑 小人懷惠)”고 했다. 혹 실수로 교통법규를 위반하여 범칙금이 부과되면 소인은 봐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군자는 범칙금을 내는 것이 전체의 조화를 이루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범칙금 내는 것을 바란다. 규범(規範)대로 하는 것을 달게 여기기 때문이다.
구오(九五)가 규범(規範)과 예법을 달게 여길 정도가 된 상태에서 밝은 마음으로 사회교화를 한다면 큰 효과를 발휘하여 고상(高尙)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나서면 고상함이 있을 것이다’고 했다. 오늘날의 사회를 보더라도, 문제(問題)는 언제나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절제(節制)와 법도(法度) 지키는 것을 달게 여기지 않는 상태에서 정치를 하는 데서 비롯된다. 절괘(節卦) 구오(九五)의 가르침을 명심해야 한다.
* [수택절(水澤節) 상육(上六)의 효사] ———
[60節] 上六, 苦節, 貞凶, 悔亡.
象曰, “苦節貞凶” 其道窮也.
상육(上六)은 예절과 법도를 지키는 것을 고통스럽게 여기면,
바르게 해도 흉하니 후회가 없도록 해야 한다. 상에서 말했다.
“법도를 지키는 것이 고통스러워하여 바르게 해도 흉하게 되는 것은
그 도(道)가 궁(窮)하기 때문이다.”
· ‘貞凶’(정흉) ; ① (고통스롭게 절제하는 것을) ‘참고 견디면 흉하니’ ② (절제를 고통스럽게 여기는 상황에서) ‘바르게 해도 흉하다’
· ‘悔亡’(회망)은 앞의 ‘苦節 貞凶’과 관련하여 다양한 해석이 있다. ① (절제를 고통스럽게 여기는 상황에서 굳세게 하면 흉하니) ‘후회가 없도록 해야 한다’ ② (절제하는 고통을 참고 견디면 흉하더라도) ‘후회가 없으리라’(정자) ③ (바르더라도 흉하나) ‘뉘우침이 없어질 것이다’(주자)
* [강 설(講說)] ————
상육(上六)의 ‘苦節’은 구오(九五)의 효사 ‘甘節’과 대조적이다. ‘절의와 법도를 지키는 것을 고통스럽게 여긴다’는 것은 중화(中和)의 덕(德)을 잃었기 때문이다. 상육(上六)을 중심(中心)의 자리에서 물러난 원로이다. 이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적당히 살면서, 예법을 지키기가 귀찮고 싫어진다. 그래서 ‘예의범절을 지키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했다.
법도(法度)를 지키고 절제(節制)해야 하는 상황에서 모든 일은 구오(九五)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상육(上六)은 소외(疎外)된 자이다. 뒷자리에 물러나 있는 처지에서 절제(節制)하고 법도를 지키는 것을 고통(苦痛)스럽다고 생각하면 ‘곧고 바르게 하려 해도 흉하다’고 했다. 그래서 한쪽으로 밀려나있는 상육(上六)의 모습이 처량해 보이기까지 한다. 상육(上六)이 군자라면 마지막까지 지속적으로 예법(禮法)을 지켜야 한다. 그러면 ‘후회가 없을 것이다’ 공자는 “마음을 좇아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從心所欲 不逾矩)”고 했다. 상육(上六)의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깊게 성찰해 볼 만한 말씀이다.
흉(凶)하고 길(吉)한 것은 사실(事實)의 판단이고, 후회(後悔)하고 안 하는 것은 가치(價値) 판단의 문제이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일이 있고, 살아도 후회하는 일이 있다.’ 전자는 흉하더라도 후회가 없고 후자는 길하더라도 후회가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역전』에서 말했다. “上六은 節卦의 極에 거하였으니, 節制함이 괴로운 자이다. 험난함[坎卦]의 極에 거하였으니 이 또한 괴로운 뜻이 된다. 굳게 지키면 凶하고 뉘우치면 흉함이 없어질 것이니, 悔는 지나침을 덜어 中을 따름을 이른다. 節卦의 悔亡은 다른 卦의 悔亡과 말은 같으나 뜻은 다르다.
[傳] 上六은 居節之極하니 節之苦者也요 居險之極하니 亦爲苦義라 固守則凶이요 悔則凶亡이니 悔는 損過從中之謂也라 節之悔亡은 與他卦之悔亡으로 辭同而義異也라
¶ 주역 ☞ [60] 절괘(水澤節)의 괘사와 효사 (정리 복습)
‘ 節, 亨, 苦節不可, 貞.’
‘上六, 苦節, 貞凶, 悔亡.’
‘九五, 甘節, 吉, 往有尙.’
‘六四, 安節, 亨.’
‘六三, 不節若, 則嗟若, 无咎.’
‘九二, 不出門庭, 凶.’
‘初九, 不出戶庭, 无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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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周易』☞ [60] 절괘(水澤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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