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현직 대통령이자 민주당의 후보인 조 바이든과 전임 대통령이며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간의 대선 토론이 끝난 다음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힌 것에 대해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바이든이 토론 도중 여러 차례 말을 더듬으며 문장을 제대로 끝내지도 못하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사람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토론 뒤로 바이든의 후보 적합성을 두고 논란이 벌어져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 심각한 노령화 증세를 보이며 대선 후보로서 ‘최악의 퍼포먼스’를 한 셈인 바이든은 후보직을 사퇴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계속 강력하다.
바이든의 건강, 특히 인지능력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문제 제기가 있었던 터다. 근래에 들어와서 그의 행동거지가 부쩍 부자연스러워 보이고 말실수가 잦아 노인성 치매를 앓지 않은가 하는 의혹이 제기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백악관은 대통령의 건강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전혀 문제없다는 말로 버텨왔는데, 이제는 그런 대응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토론장에서의 바이든의 행태가 과연 온전한 건강과 인지력을 지닌 것인지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미국 정가는 발칵 뒤집혔다. 노령화 증세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대선 후보 경쟁력이 없어졌으니 민주당 안에서도 바이든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드센 가운데 본인과 가족, 측근은 버티는 모양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 7월 5일 자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의 선거자금 기부자, 민주당계 주요 인물, 기업인 등 168명이 최근에 “민주주의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재선에 도전하려는 의사를 당신이 접을 것을 경의를 담아 촉구한다”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고 하니, 사퇴 압박은 쉬 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논의를 보면 바이든의 문제를 트럼프와의 경쟁이라는 측면에서만 따지는 경향이 큰 점이 눈에 띈다. 후보직 사퇴를 주장하는 쪽도 트럼프에 비해 바이든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점을 내세우는 편이다. 그런데 후보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것만이 그의 문제라고 할 것인가. 바이든의 인지능력이 저하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그가 현직 대통령이라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는 말도 된다. 미국의 대통령은 어마어마한 책임을 져야 하는 직위다. 그런 직위를 인지능력 저하 또는 치매 증세를 드러내는 노인이 수행하고 있다니,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미국은 지금 동유럽 우크라이나와 서아시아 팔레스타인에서 전개되는 전쟁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고, 동아시아에서도 타이완을 놓고 중국과 갈등을 고조하는 중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서 중대한 전쟁이 이처럼 위험하게 동시다발로 일어난 적은 없었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미국의 현임 대통령이 치매 증상을 앓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의 안전에도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바이든의 인지능력 저하가 그의 직무 수행에 당장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성을 톺아보는 논자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국정 운영 누가 하나?” “바이든이 주도권 쥐고 있지 않다.” 앞엣 것은 2022년 가을에 러시아에서 독일로 가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노르트스트림을 폭파한 것이 미국임을 폭로한 기사를 써서 세계의 이목을 끈 미국의 노기자 시모어 허시가 최근에 자신의 서브스택에 올린 글의 제목이고, 뒤엣 것은 세계의 다양한 현안과 정치 쟁점을 다루는 자칭 ‘부랑자’ 저널리스트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케이틀린 존스톤이 온라인 매체 컨소시엄 뉴스에 올린 기고문의 제목이다. 바이든의 인지능력 저하가 큰 문제가 되는 까닭은 그가 대선후보이기 이전에 현직 대통령이기 때문임을 지적한 논자는 내가 알기로 그 두 사람밖에 없었다.
대선후보 토론 중 요령부득의 말을 하거나 한순간 멍하게 있는 바이든의 모습은 미국이 최근에 일으킨 전쟁과 갈등에 대해 대통령인 그가 얼마나 깊이 관여한 것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만큼 그는 지금 국정을 제대로 알고서 수행하는 것인지 믿지 못하게 할 만큼 충격적으로 병약해 보였다. 그러나 어떤 나라도 “자기가 무엇을 승인한 것인지 모르는 대통령을 가져선 안 된다. 권력을 지닌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어젯밤(토론)은 우리가 오늘날 분명 그런 위치에 있지 않은 대통령을 가지고 있음을 미국과 세계에 보여준 셈이다.” 허시의 이 말은 동유럽과 서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갈등을 조장하고 확대하는 행위를 하면서도 바이든은 그로 인한 위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공산이 큼을 시사한다.
존스톤의 지적은 더 노골적이고 신랄하다. “미국인이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뽑느냐 타바스코소스 병을 뽑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제국은 아무런 중단 없이 굴러갈 것이다.” 그녀에 따르면 바이든이 되든 트럼프가 되든 상관없이 전쟁, 경제적 불의, 정치적 권위주의, 생태학살의 자본주의, 제국주의적 우려먹기 등은 계속된다. 이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와는 관계없이 미국의 지배 시스템은 그냥 돌아간다는 말이다.
허시의 말대로 현임 미국 대통령이 국정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존스톤의 말대로 래브라도 리트리버와 타바스코소스 병 간에 어느 것을 뽑느냐 만큼이나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꼴은 말이 아닌 셈이라 할 수 있다.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딥스테이트’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내세우고 그동안 국정을 농단해왔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은 바이든 취임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대를 철수했지마는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대규모 전쟁을 벌여온 셈인데 이런 전쟁도 대통령을 조종하는 예컨대 네오콘 세력과 군산복합체(MIC), 아니 미키매트(MICIMATT)의 장난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군대-방산업체-의회-정보세력-매체-학계-싱크탱크(Military-Industrial-Congressional-Intelligence-Media-Academia-Think Tank)를 가리키는 ‘미키매트’는 딥스테이트를 이루며 정부의 수반이 누구인가와 무관하게 국정을 재단하고 요리한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이 노령으로 인해 상당한 기간 사실상 국정 수행 능력을 상실한 상태로 지내왔다면, 미국은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가 국정을 책임진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이 국정을 농단해온 나라가 된 셈이다. 허시가 “국정 운영 누가 하나?”라고 물은 것은 그래서 지금 당장 미국의 국가수반이 누구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질문은 불필요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존스톤의 말대로 미국의 대통령은 래브라도 리트리버든 타바스코소스 병이든 상관없을 수 있다. 미키매트가 알아서 미국을 움직이고 세계를 농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고 달라질까? 2017년에 대통령 취임 이후 그는 딥스테이트를 해체하겠다고 기회만 있으면 되뇌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올 11월 대선에서 그가 당선되어 내년에 취임하면 과거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양대 정당은 모두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고, 딥스테이트이든 미키매트이든 지배 블록을 좌우하는 것은 자본이기 때문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극복 없이는 유권자가 뽑은 대통령이 국정을 좌우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여겨진다. l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