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4주일 강론 : 일흔 두 제자의 파견(루카 10,1-12.17-20) >(7.6.일)
* 예수님은 인류구원사업을 위해 일흔 두 제자를 세상으로 파견하셨습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하느님 나라의 확장에 매진할 수 있기를 청하면서,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가톨릭 청년 선교단의 25세 김요한 군이 몽골에서 파견 활동을 할 때의 일화입니다.
김요한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후 “하느님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여름 방학 때 해외 선교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목적지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외곽 빈민촌이었습니다.
몽골은 천주교 신자가 아주 적고, 불교와 전통 샤머니즘 문화 속에 살고 있고, 그곳은 물 사정이 좋지 않아, 매일 물을 얻기 위해 먼 거리를 걸어야 합니다. 김요한은 현지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며, 매일 깨끗한 물을 길어 나르고, 아이들에게 함께 놀아주고, 따뜻하게 웃어주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어린이가 물었습니다. “형은 왜 우리를 도와줘요? 왜 나랑 놀아줘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형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은 너도 사랑하셔. 그래서 너랑 함께 있고 싶었어.”
그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몇 달 후, 그 마을에 처음으로 세례받은 가족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가족은 세례식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청년이 아무 말 없이 물을 길어주고, 우리 애랑 놀아주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정말 계신 걸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요한은 선교 일지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저는 그저 물을 건넸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물을 통해 하느님 사랑이 전해졌답니다. 파견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가서, 따뜻하게 있어 주는 것’, 그것이 복음입니다.”
이처럼 파견은 많은 말을 전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따뜻한 미소를 주고, 귀를 기울여주고, 작은 도움을 주면 그런 모습을 통해 하느님은 구원의 손길을 펼치십니다.
경북의 어느 작은 마을에 살던 김 마리아 자매는 70세가 넘었지만, 늘 성당에서 기도하고 봉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는 성당이 멀고, 신자도 별로 없었습니다. 마리아 자매님은 어느 날 본당신부님께 “신부님, 저는 나이가 많지만, 이 마을에도 하느님 말씀이 전해지길 바래요.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신부님은 조용히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 자매님의 말씀 자체가 하느님의 파견입니다.” 그 후 마리아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 김치, 밑반찬, 직접 만든 된장을 나눠주기 시작했고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할머니를 무시했고, 어떤 사람은 그냥 웃기만 하다가, 몇몇 어르신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몇 달 후, 첫 영세자가 나왔습니다. 그분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된장이 좋아서 받았는데, 이젠 그분의 사랑이 느껴져요.”
마리아 할머니는 그렇게 10년 동안 복음을 열심히 전하다가, 90세로 선종하실 때 30명이 넘는 신자와 작은 공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거창한 선교나 유명한 성인의 업적이 아니라, 한 평범한 신자의 조용한 실천이 하느님 나라를 이룬 실화입니다.
이처럼 파견은 먼 나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 내 이웃, 내 학교, 내 가족에게 하느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일흔두 제자를 둘씩 짝지어 각 지역으로 파견하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내용은 지금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라고 파견된 이들입니다.
그런데 왜 ‘일흔두 명’입니까? 이것은, 창세기 10장에서 말하는, 온 세상 민족의 수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특정한 소수 엘리트가 아니라, 모든 이의 구원을 향한 보편적 선교를 생각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성직자 몇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라며 아주 솔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안에서 복음의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하지만, 때때로 거절당하거나 비웃음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처럼 보이더라도,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 분명히 자라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확한 지침을 주십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선, ‘평화’를 전하는 것입니다. 판단하거나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의 삶 안으로 들어가고,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그의 상처를 안아주어야 합니다.
선교의 가장 큰 기쁨은 결과가 아니고, 누군가를 회개시키거나 감동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자체로 이미 하느님께 기억되었습니다. 그분의 눈에는 그분을 위해 헌신하는 시간이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파견하셨던 일흔두 제자가 누구인지 이름을 모르지만, 그들은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심기 위해 복음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주님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이사 6,8)라고 물으십니다. 주님의 물으심에 이렇게 대답합시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