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0세인 김말순 여사. 시계가 알람을 울린다. “약 먹을 시간입니다.” 버튼을 눌러 약을 받지 않으면 딸에게 연락이 갈 것이다. 상체를 일으키는 대신 리모컨을 눌러 침대를 세운다. 김 여사는 아침을 위해 전화기에 붙은 편의점 그림을 누르고 도시락 배달을 부탁했다. 가족과 친구, 응급 119 등의 사진이 붙어 있어 누르면 연결된다. 잠깐 인터넷을 하기로 했다. 커다란 돋보기가 장착돼 작은 글씨도 시원시원하게 잘 보인다. 오늘은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음악치료 강좌를 듣는 날. 샤워를 하며 몸이 뻣뻣해 손이 잘 닿지 않는 부분은 도구를 이용한다. 등을 쉽게 닦을 수 있는 막대기, 발을 올려놓고 문지르기만 하면 닦이는 발판 등이 그것이다. 낙상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미끄럼방지 타일을 깔고, 구석구석 손잡이를 달아뒀다. 김 여사는 새로 산 원피스를 입고 목걸이보다 예쁜 돋보기를 목에 걸었다. 노화로 인해 신체기능이 많이 떨어졌지만 일상생활에 큰 불편은 없다’. 이는 현재 시판 중인 제품을 사용하는 시니어의 하루 일과를 재구성한 시나리오다.
‘나를 노인이라 부르지 마라. 나에게도 오늘보다 더 멋진 내일이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몸과 마음이 젊은 내이름은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다.’ [게티이미지]
시니어가 거대 인구집단이 되면서 이들을 겨냥한 시니어 산업이 뜨고 있다. 국내에서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고,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는 올해부터 이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거란 전망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06년 연구보고서를 통해 국내 시니어 산업이 2010년부터 10년간 연평균 12.9% 이상 성장할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중 14개 부문 기존산업은 연평균 성장률 4.7%에 머물 거라 전망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또한 국내 시니어시장 규모가 2010년 43조9612억원에서 2020년 148조5969억원으로 팽창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업들의 대처도 발빠르다. 유한킴벌리는 우리나라의 급속한 고령화 현실을 인식하고, 2005년부터 노인의 평생학습과 일자리 창출 등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고령화를 주제로 여섯 차례 포럼을 열기도 했다. 시니어가 되면서 요실금과 배뇨장애를 가진 소비자가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제품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장수시대를 맞아 50세 이후 100세까지의 긴 인생 후반기를 연구하고 있다. ‘60대는 새로운 40대’라는 생각으로 건강하고 활기찬 시니어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대비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시니어라이프 조한종 이사(시니어비즈니스컨설턴트)는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 10%, 소득 2만 달러, 문화적 성숙도 등 시니어산업의 성장요건을 모두 갖췄다”며 “미국과 일본은 이미 이 시장이 급속하고, 다양하게 크고 있다”고 말했다.
시니어산업이 뜨는 배경에는 막강한 소비군단이 있다. 높은 구매력과 건강을 두루 갖춘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 그룹이다.
“나이든 사람이 정자에서 바둑을 두거나 집에서 쉬는 시대는 지났죠. 건강에도 안 좋아요.” 올해 68세인 이순모(경기도 용인시)씨. 그는 복지관에서 배운 UCC 제작과 포토샵 기능을 활용해 시니어를 위한 포털사이트 ‘유어스테이지(yourstage.com)’에서 시니어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은퇴 이후 초등학생 대상으로 숲 행태 해설가와 인터넷 기자로 활동했던 이씨는 “75세가 돼도 젊음을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 정권 교수가 지난해 말 국내 60세 이상 남녀 750명을 대상으로 ‘노년층 라이프스타일 조사’를 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71.2%가 자신을 실제 나이보다 젊게 느끼고 있었다. 연령이 높을수록 실제 나이와 인지 나이의 격차가 커지는 사람이 많았다(LGERI리포트, 대한민국의 시니어 그들은 어떤 소비자일까).
소비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롯데백화점 매출의 27%는 50대 이상 구매 고객에서 나왔다. 대구백화점도 VIP 고객의 20%가 60대 이상 회원이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노티즌이 부상하고 있다. 롯데닷컴은 50대 이상 고객 매출이 2008년에 비해 35%나 늘었다. 성형외과와 피부과를 찾는 노년층도 크게 늘고 있다. 레알성형외과 김수신 원장은 “눈 밑 지방을 제거하고, 주름살을 펴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는 노년층 비율이 전체 환자의 30%에 이른다”며 “시니어를 위한 전문센터를 준비 중에 있다”고 말했다.
중년 이후의 인생에는 다양한 변화가 찾아온다. 시력·청력·근력이 떨어지고 고혈압·심장병·관절염 등 만성질환을 얻어 활동이 어려워진다. 은퇴 후엔 심리적으로 위축돼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니어산업은 시니어의 특성을 파악하고 삶의 단계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교보생명 금융노년전문위원인 한주형 박사는 “시니어산업은 나이 든 사람의 삶의 질이 젊었을 때와 같이 유지되도록 돕는 데 목적이 있다”며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수요와 욕구를 파악해 만들어주는 창조적인 분야”라고 말했다. 예컨대 다리 힘이 약해진 시니어는 화장실 변기에 앉았다가 일어서는 일상적인 동작이 힘겹다. 이때 변기 옆에 손잡이를 달아주면 도움이 된다. 시니어를 위한 인테리어산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조 이사는 “일본 1부 상장 기업의 70%가 시니어 관련 부서를 설치하고 있을 정도로 시니어 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한국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시니어의 신체·심리적 특성을 분석해 상품 개발과 마케팅을 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