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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 산행기 (2)
연하천 대피소~벽소령 대피소 (3.6Km, 2시간 15분 소요)
밤새 잘들 주무셨는가? 10km 넘는 산길을 걷고 난 다음날, 6시에 기상하자마자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었다. 또한, 모르는 아저씨 사건과 맨 끝의 환자 코고는 요란한 소리에 잠자리 설친 사람들도 많으니 말이다. 밖으로 나오니, 일찍 출발하는 사람들 벌써 식사중이다. 얼른 세수하고, 영원이와 커피부터 한 잔 끓여 마셨다. 그리고, 승렬이와 바로 식사 준비에 들어 갔다.
역시 누룽지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마칠 즈음, 어제 버너를 켜달라며 친해진 거제 아줌마들이 나와 자리를 넘겨주고 서둘러 출발준비를 하였다. 하늘은 잿빛, 한 두 방울 비를 날리다 만다. 그래도, 배낭에 커버 씌워 놓고, 간단한 준비운동하고, 대피소 앞에서 단체사진 한 장 찍은 다음, 7시 40분에 세석대피소를 향해 셋째날 산행을 시작하였다.
잘 주무셨는가? 승식이 아직도 눈감고 있네---
산속에서의 모닝커피, 죽인다! 그래, 이 맛이야!
연하천 새벽 풍경, 식사 준비
연하천 대피소 앞 단체사진. 자, 떠나자! 세석으로
평이한 숲길을 따라 가다 음정마을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나오자, 술 떨어져 이틀을 참아야 하는 괴로움에 누군가 내려갔다 세석으로 술 사오기를 바랬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선익이 또 한마디 했다. ‘군대계급 순으로’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이럴 땐 방위들 시켰어!’ 그러다 나온 선익이의 우이동, 동작동, 파주 방위출신 이야기에 또 한번 웃었다. 결국, 술은 포기하고 삼거리를 그냥 지나쳐야만 했다.
얼마 걷지 않았지만 오르막 길이라 서서히 땀도 나서 전망 좋은 공터 다다르자 잠시 쉬며 겉옷부터 벗었다. 출발부터 너무 여유를 부린 탓일까, 연하천에서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사람들 모두가 우리를 앞질러 갔다. 한 사람 붙들고 ‘단체사진 한 장 찍어 주고 가라’고 부탁도 하였다.
음정 갈림길. 술 생각 절로 나지만 엄두가 안나 모두 포기
조리대 사이길. 준식이 쓰레기 봉투 끝까지 달고 다녔다.
잠시 쉬며 한장. 이곳부터 겉옷도 벗어 버렸다.
내려다 보이는 단풍 계곡 - 아침 하늘은 잿빛
다시 가파른 바위길이 30여분, 무거운 배낭 메고 오르기 점점 힘들어 진다. 숨이 턱에 닿을 즈음, 커다란 바위밑 작은 공터에서 잠시 휴식이다. 어김없이 선익의 모터 달린 입이 실력을 발휘한다. 검은 선그라스 쓰고, 스틱 하나 들고 더듬더듬 확인한 후 집고 오르내리는 영달이의 모습을 ‘맹인 길 걷기’ 모습으로 똑같이 재현한다. 덕분에 실컷 웃고, 피로를 한 순간에 날려버렸다.
무슨 봉우리인지도 모르고 넘었다. 알고 보니 형제봉이었다. 내려가는 길에, 커다란 바위 두개가 멋있게 서있다. 이게 형제 바위란다. 그 바위 골에 서서 단체사진 찍고, 내려서니 바로 이정표가 서있다. 벽소령 대피소까지 1.5Km, 세석 대피소까지는 7.8Km 남았다. 점심식사할 벽소령 대피소까지는 한 시간을 더 가야 한다.
가파른 바위길 기다싶이 오른다
작은 바위 밑 공터에서
영달이 지팡이 - 폼 한 번보라!
형제바위에서
형제바위 이정표
오르내리막이 많으니, 휴식도 어제보다 잦다. 이정표에서 20여분 더 가서 휴식하며 뒤돌아보니, 우리 넘었던 봉우리와 커다란 바위가 한 눈에 들어오고, 섬진강쪽 산들이 위용을 자랑한다. 다시 20여분을 더 가니, 또 다시 가파른 바위길이 앞에 있다. 오르기전 단체사진 한 장 찍고, 줄 서서 오르자마자 곰출현주의 현수막이 보인다. 곳곳마다 곰에 관련된 안내문들이 많다. 심혈을 기울여 자연으로 돌려보낸 반달곰을 보호하고,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한 것들이다.
뒤돌아 바라본 형제봉
바위고개 넘기 전
곰출현 주의
또 다른 커다란 바위 사이를 내려와서 다시 바위길을 오르내리기를 15분, 10시가 조금 못 되어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하였다. 태환이 흡연구역에서 담배부터 한대 피운다. 엊그제 금연을 시작한 나로서는 그 냄새를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았다. 점심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 그래도 취사장 쪽으로 내려가 밖의 의자에 앉아 단풍이 물들어 가는 능선과 계곡을 바라보며 20여분을 그냥 편히 쉬었다.
점심은 남은 떡국과 라면으로 하기로 하였다. 먼저 물 끓여 떡국부터 나누어 먹고, 승렬이 가지온 어묵도 끓여 먹다, 아에 라면까지 사서 두 번에 나누어 끓여 확실하게 점심을 해결하였다. 식사후 한참을 쉬었다가 11시 조금 넘어 세석 대피소를 향해 출발을 하였다.
이곳을 지나야 비로서 벽소령으로 들어 갈 수 있다.
또 바위 너덜길 넘고
벽소령 대피소 - 태환이 담배부터 문다.
이른 점심 - 떡국과 어묵, 그리고 라면
벽소령 대피소~세석 대피소 (6.3Km, 4시간 30분 소요)
지리산은 1500미터 이상의 큰 봉우리가 10여개, 1000미터 이상의 작은 봉우리가 20여개, 그 사이사이에 20여개의 계곡을 거느린 거대한 산이다. 이 가운데 산행이 가장 아기자기하고, 기암괴석 절경과 조망이 뛰어난 구간이 바로 이 구간이었다.
벽소령에서 세석으로 가는 첫 구간은 산등성이를 깎아 길을 낸 것 같은 등산로이다. 마치 좁은 군사도로 같다. 오랜만에 평탄한 길을 30여분 내리 걷다가 넓은 공터에서 걸어온 길도 뒤돌아 보고, 단풍이 물들어 달려 내려가는 대성골을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하였다.
세석 가는 길 들어서 바라본 벽소령 대피소 - 단풍도 내려가고 있다.
오솔길 같다 - 고산에서 자라는 사스래나무
산등성 깎아 만든 것 같은 등산로
같은 모양이 겹쳐진 계곡 전경 - 대성골 쪽이란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며, 고목을 길과 나란히 놓아 꾸민 정원 같은 등산로를 오르고, 쉬다가 단풍보며 다시 오르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덕평봉을 넘어 선비샘에 다다랐다. 시원한 샘물로 목축이고, 물병에 물도 채웠다. 이날 선비샘에서 쉬면서 영원이의 제안에 일정을 수정하였다. 세석에서 새벽 3시에 일어나 장터목에 배낭 나두고 천왕봉 오르자! 이것이 종주하는 13명 모두가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영원이는 산행을 많이 하다 보니 신령님과 친구되어 어제밤 꿈속에서 도움을 받은 것 같다.
선비샘을 나서 다시 산행에 들었다. 이른 점심 먹고 출발해 물도 얻었겠다 커피 생각이 절로 났다. 길가의 넓은 바위, 적당한 자리를 찾아 영원이 제트보일러로 물을 끓여 커피타서 한 모금씩 나누어 마셨다. 그리고, 이석이가 모르고 있는 어제의 ‘잘 모르는 아저씨’ 스토리를 선익이가 맛갈스런 입담으로 풀어내 또 한 번 웃음를 선사했다. 피로엔 웃음이 보약이다. 커피 마시고 힘을 내, 다시 바위 너덜길을 오르내리다가 단풍나무사이 작은 계단을 올라서 조금 더 가니, 갑자기 시야가 확 티였다.
정원 같은 길에서
선비샘
선비샘 지나 길가 바위 - 커피 마시며 선익이 '모르는 아저씨'를 다시 풀어내 웃음바다
험한 바위길 또 오르고
단풍 나무사이 나무계단 오르면 시야가 트인다.
칠성봉, 지리산 주능선 최고의 조망대이다. 천왕봉쪽을 보면, 영신봉 뒤로, 촛대봉, 연하봉, 제석봉,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긴 능선이 그림같이 펼쳐 보인다. 거기에, 바로 발아래 영신봉에서 시작하는 낙남정맥의 단풍이 조화를 이루면서 멋진 절경을 만들어 낸다. 누군가 외쳤다. 저기 단풍들면 끝내준자! 저기가 바로 영신봉에서 뻗어나간 산줄기이다. 오늘 목적지 세석 대피소는 영신봉과 촛대봉 사이에 있다.
5년전 산행때, 누군가의 질문에 태환이가 이야기 했다. ‘명산은 함부로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 속살을 구석구석 보려고 중독되어 또 찾아오는 것이 아니더냐? 칠성봉 조망대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모두 겉옷의 일부분이다. 결코, 지리산은 송두리째 속살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칠설봉에서 보여지는 겉옷만으로도 연신 감탄하며 그 모습을 정신없이 카메라에 담으며 또 한참을 쉬었다. 널널하게 산행시간을 잡았어도 이래저래 시간은 잘도 간다.
영신봉 넘어 촛대봉에서 천왕봉이르는 능선
칠성봉 조망대에서
칠성봉 표지 앞에서 - 세석으로 출발 하기 전
칠성봉 이후부터는 암릉구간이다. 거기에 또 다시 100개가 넘는 긴 계단도 있다. 칠성봉 이정표를 뒤로하고 나섰지만 좌우 절경을 감상하느라 가뜩이나 느린 걸음 더욱 지체하게 만든다. 조릿대 사이 괴목도 스쳐 지나고, 구절초 흐드러진 길도 지나고, 너덜 바위길도 지나며 온 몸의 힘과 기운이 다 할 즈음, 죽음의 계단을 만났다. 죽을 힘을 다 털어 힘들게 계단을 올라서니, 기암괴석의 절경과 조망에 또 한 번 기가 막힌다. 올라온 보람이 있다. 뒤돌아서 짝궁뎅이 또 한 번 보고, 이곳에서 시작하는 산줄기도 다시 자세히 보고, 영신봉 표지에서 인증사진도 찍었다. 이제 세석은 엎드리면 코닿을 지척에 있다. 싸진찍고 나오다 말뚝 사이 갑자기 땅속으로 꺼진 흙때문에 배낭메고 엎어질 뻔했다. 아휴! 십년감수했다! 발목이라 삐엇으면 산행도 못할 뻔했다. 다행히 무릎으로 지탱해 바지만 조금 버렸다.
영신봉을 지나니 평이한 내리막 길이다. 촛대 바위 아래 넓은 평전이 펼쳐 있고,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작은 나무들 사이에 그림 같은 대피소가 눈에 들어 온다. 그리고, 10여분을 더 가서 3시 40분에 세석 대피소에 도착했다. 연하천을 떠난지 거의 8시간만이다.
칠성봉 지나 조리대 사이길
긴 죽음의 계단 올라와서
뒤 돌아 본 지나온 길 - 멀리 짝 궁뎅이도 보인다.
영원한 산악대장 영원이
영신봉 표지 앞에서
세석평전과 대피소 전경
세석 대피소
세석의 식수대
입실은 5시 30분이 넘어야 가능 하니, 취사장 자리 나길 기다렸다가 겨우 한 테이블 차지했다. 서둘러 식사 준비를 하였다. 내일 새벽에 출발하려면 이른 저녁을 먹고 일찍 자야만 하기 때문이다. 찌게 끓여 햇반 사서 먹고, 라면도 끓여 먹었다. 승식이와 현주는 식사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도착하였다. 밥과 찌개를 따로 챙겨 주었다.
예약을 못해 걱정했던 한 팀은 비예약자를 위한 별도의 노약자, 선착순으로 해결하였다. 환갑이 내일 모레니 우선적으로 배정해주었다. 그러면서, 대피소 책임자 왈, 내일 일출 6시 20분, 촛대봉에서 보는 것이 천왕봉보다 멋지단다. 12시에서 1시방향, 광양제철소의 불빛이 보이면 일출을 볼 수 있는 확률이 90퍼센트가 넘는다. 잠자리에 들기전 세수하러 나오면서 하늘을 보니 달도 있고 별도 있다. 광양쪽 하늘도 붉게 보인다.
‘내일은 일출을 볼 수 있겠다!’는 설레는 가슴으로 세석에서 셋째밤을 보냈다.
취사장에서 이른 저녁식사 준비
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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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연하천인지 ? 아니면 벽소령 대피소에 "웬만큼 참을만하면 오지마시고, 도저히 참기 힘들면 그때 지리산에 오세요"라는 현판이 있었는데, 요사이에도 있는지 모르겠더군요... 하늘길(고도 1000 미터 이상의 등산길)을 걷는 분들이 너무 부럽습니다.^^
연하천 대피소 입구에 있습니다. 나무가 회색빛으로 변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