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澗松集 卷二 / 詩○七言絶句
江上雜興 【十四首○在柰內】
明波爲鏡石爲屛,碧樹含風爽籟生。
莫道山翁無事業,竹牀移處展黃庭。
水鏡山屛護一廬,仰觀飛鳥俯游魚。
綠陰濃處仙鷄唱,疑是王喬弟子居。
一面淸江三面山,蕭然白屋竹林間。
箇中何物同心事?沙鳥千群自在閒。
巖巒簇簇彩屛回,竹裏茅簷向水開。
短棹行裝無定所,白鷗同去又同來。
煙消風定立江湄,水底遙岑鏡裏眉。
嘯詠郤忘山日暮,興來還怕俗人知。
一鶴高飛萬里天,江湖勝地好盤旋。
由來飽食終媒禍,莫逐秋鴻近稻田。
睡覺虛窓海色浮,半輪殘月隱汀洲。
一聲欸乃江天曉,知放東南孤客舟。
世人皆向名場去,獨有江山象外遺。
白手歸來收拾盡,滿船風月自相隨。
鷗飛如雪水如藍,寂歷江天細雨𩁺。
漁唱一聲山夢覺,竹林疏處數征帆。
雨過林亭暑氣淸,竹牀高臥養襟靈。
居然一枕羲皇夢,驚破游魚蹴浪聲。
道興湖上道人遊,霞佩星冠照碧流。
夜靜月沈笙鶴去,鏡光明處泛虛舟。
秋江夜夜趁漁翁,洗網廻舟月滿松。
淸露著巾巾角墊,郤嫌人笑學林宗。
江山自古無常主,無事身閒是主人。
向使子陵爲世用,桐江鷗鷺未應親。
花氣氛氲草氣浮,松聲淅瀝水聲幽。
問誰領得風流事?唯有黃鸝與白鷗。
ⓒ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남명학연구소 | 2015
간송집 제2권 / 시(詩)○칠언절구(七言絶句)
강가에서 마음대로 읊다 14수 〔江上雜興 十四首〕
내내(柰內)에서 짓다.
맑은 물결 거울 되고 바위는 병풍 되고
/ 明波爲鏡石爲屛
푸른 숲은 바람 맞아 시원한 피리를 연주하네
/ 碧樹含風爽籟生
산골 노인 할 일 없다 말하지 마오
/ 莫道山翁無事業
대 침상 자리 옮겨 황정경을 펼치리라
/ 竹牀移處展黃庭
강거울 산병풍이 오두막 한 채 지키는데
/ 水鏡山屛護一廬
우러러 보니 나는 새요 굽어보니 노니는 물고기라
/ 仰觀飛鳥俯游魚
푸른 그늘 짙은 곳에 학이 우니
/ 綠陰濃處仙鷄唱
왕교 제자 사는 곳 아닌가 싶네
/ 疑是王喬弟子居
한 쪽은 맑은 강 세 면은 산인데
/ 一面淸江三面山
쓸쓸한 초가가 대숲 사이에 있네
/ 蕭然白屋竹林間
그 속에 어느 것이 내 마음과 같을까
/ 箇中何物同心事
모래톱의 물새 떼 스스로 한가롭네
/ 沙鳥千群自在閒
바위산 늘어서서 고운 병풍 두르고
/ 巖巒簇簇彩屛回
대숲 속 초가 처마 강을 향해 열렸네
/ 竹裏茅簷向水開
짧은 노에 차림새 보니 갈 곳도 없어
/ 短棹行裝無定所
흰 물새와 함께 갔다 또 함께 돌아오네
/ 白鷗同去又同來
안개 걷히고 바람 잦아 강가에 섰더니 / 煙消風定立江湄
물에 비친 먼 멧부리 거울속의 눈썹 같네 / 水底遙岑鏡裏眉
시 읊다가 서산에 해 지는 줄 모르고 / 嘯詠郤忘山日暮
흥이 나 도리어 속인이 알까 두려워하네 / 興來還怕俗人知
만 리 먼 하늘에 학 한 마리 높이 나니 / 一鶴高飛萬里天
강호의 빼어난 경치는 노닐기 좋구나 / 江湖勝地好盤旋
원래 배불리 먹는 것은 끝내 화를 부르거니 / 由來飽食終媒禍
벼논에 가까이 노니는 가을 기러기 좇지 말라 / 莫逐秋鴻近稻田
자다 깨니 빈 창에 바다빛이 떠 있고 / 睡覺虛窓海色浮
반원 모양 새벽달이 물가에 비치네 / 半輪殘月隱汀洲
한 줄기 노 젓는 소리에 강하늘이 밝아지니 / 一聲欸乃江天曉
동남쪽 외로운 나그네 배가 떠나는 줄 알겠네 / 知放東南孤客舟
세상 사람들은 모두 명리를 다투는 곳으로 가지만
/ 世人皆向名場去
유독 강산만 세상 밖에 남았네
/ 獨有江山象外遺
빈손으로 돌아와 모두 다 거두어들이니
/ 白手歸來收拾盡
배에 가득한 바람과 달이 절로 따르네
/ 滿船風月自相隨
물새는 눈처럼 희고 강물은 쪽빛인데 / 鷗飛如雪水如藍
적막한 강하늘에 가랑비 흩뿌리네 / 寂歷江天細雨▼(雨+彡)
어부의 노래 한 곡조에 산속 꿈을 깨니 / 漁唱一聲山夢覺
대숲 성근 사이로 떠나가는 배 몇 척 보이네 / 竹林疏處數征帆
비 지나간 숲속 정자에 더운 기운 맑아져 / 雨過林亭暑氣淸
대 침상에 높이 누워 호연지기를 기르네 / 竹牀高臥養襟靈
어느새 베개 베고 태고의 꿈을 꾸다가 / 居然一枕羲皇夢
노닐던 물고기 튀어 오르는 소리에 놀라 깨네 / 驚破游魚蹴浪聲
도흥 물가에 도인이 노닐더니
/ 道興湖上道人遊
노을을 옷 삼고 별을 모자 삼아 푸른 강물을 비추네
/ 霞佩星冠照碧流
밤은 고요하고 달은 잠기니 생학은 떠나고
/ 夜靜月沈笙鶴去
거울 빛 맑은 곳에 빈 배를 띄우네
/ 鏡光明處泛虛舟
가을 강에 밤마다 고기 잡는 늙은이를 따라 갔는데
/ 秋江夜夜趁漁翁
그물 씻고 배 저어 올 때 소나무 가득 달빛 서렸지
/ 洗網廻舟月滿松
맑은 이슬이 두건에 내려 두건 꼭대기가 젖으니
/ 淸露著巾巾角墊
사람들 날더러 임종을 따라한다 비웃을까 겁나네
/ 郤嫌人笑學林宗
강산은 예로부터 정해진 주인이 없으니
/ 江山自古無常主
일 없고 한가한 이가 주인이라네
/ 無事身閒是主人
만약 자릉더러 세상에 필요한 사람 되라 했다면
/ 向使子陵爲世用
동강의 물새와 해오라기도 친구 하지 않았으리
/ 桐江鷗鷺未應親
꽃향기 가득하고 풀내음 넘치는데 / 花氣氛氲草氣浮
솔바람 소리 시원하고 물소리 그윽하네 / 松聲淅瀝水聲幽
풍류를 즐기는 일 누가 맘껏 누리는가 / 問誰領得風流事
오직 노란 꾀꼬리와 하얀 물새라네 / 唯有黃鸝與白鷗
[주-D001] 황정경(黃庭經) : 도가의 경서로 신선(神仙)의 장생법(長生法)을 말한 경(經)인데, 칠언시(七言詩)로 되어 있다.
[주-D002] 왕교(王喬) : 왕교는 왕자교(王子喬)로,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 진(晉)이다. 태자 시절에 왕에게 직간하다가 폐해져 서인이 되었다.
젓대를 잘 불어 봉황새 소리를 냈으며 도사(道士) 부구공(浮丘公)을 만나
흰 학을 타고 산꼭대기에서 살았다 한다. 《列仙傳 王子喬》
[주-D003] 노 젓는 소리 :
원문에는 ‘款’으로 되어 있으나 의미상 ‘欸’가 맞을듯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4] 생학(笙鶴) : 신선이 학을 타고 생황을 연주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선학(仙鶴)을 뜻한다.
[주-D005] 임종(林宗) : 중국 한나라 곽임종(郭林宗)이 쓴 두건이
비에 젖어 한쪽이 꺾여 접혀졌는데, 당시 사람들이 그것을 본받아
일부러 두건의 한쪽을 꺾어 ‘임종건(林宗巾)’이라 불렀기 때문에
이를 비유한 것임. 이때 접혀진 두건을 절건(折巾),
또는 절각건(折角巾)이라 하였다.
[주-D006] 자릉(子陵) : 자릉은 후한(後漢) 때의 은사(隱士) 엄광(嚴光)의
자(字)이다. 광무제와 어려서부터 절친한 사이였던 그는
광무제가 천자가 되자 자취를 감추고 은거하였는데,
광무제가 찾아내어 잠자리까지 함께 하였다.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제수했으나 나아가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을 마쳤다. 《後漢書 卷 83》
ⓒ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남명학연구소
| 김익재 양기석 구경아 정현섭 (공역) | 2015
간송 선생이 34세 되던 해 폐모론이 일어나 조정의 6품 이상 관원들의 수의(收議)가 있었다. 간송은 신자(臣子로)서 대비를 폐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폈다. 이로 인해 대북파 세력들을 피하기 위해 칠원현 내내(柰內)로 피신하여 상봉정을 짓고 살았다.
상봉정(翔鳳亭)의 주련을 옮겨보았다.
一鶴高飛萬仞天 (일학고비만인천) 만 리 먼 하늘에 학 한 마리 높이 나니,
江湖勝地好盤旋 (강호승지호반선) 강호의 빼어난 경치는 노닐기 좋구나.
由來飽食終媒禍 (유래포식종매화) 원래 배불리 먹는 것은 끝내 화를 부르거니,
莫逐秋鴻近稻田 (막축추홍근도전) 벼논에 가까이 노니는 가을 기러기 쫓지 마라.
합강정 은행나무와 월주(月柱)
합강정 아래 간송이 직접 심었다는 400년 된 은행나무는 아직도 건재하다. 예로부터 학문을 닦는 행단(杏壇) 근처에는 은행나무를 반드시 심는다고 한다. 합강정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은 가히 장관이라 한다. 특히 칠월 백중날 달이 뜨면 월주(月柱)가 하늘과 맞닿는다고 한다. 지금은 남지 철교에 가려 감흥은 다소 덜하지만, 그 풍경을 상상만 하여도 가슴이 설렌다.
간송(間松) 조임도(趙任道)의 삶을 들추어보다
조임도(趙任道. 1585(선조 18)∼1664(현종 5)) 조선 중후기 학자로,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덕용(德勇), 호는 간송당(澗松堂). 조식(趙埴)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문화유씨(文化柳氏)로, 병절교위(秉節校尉) 유상린(柳祥麟)의 딸이다. 선생은 세 분의 스승, 김중청(金中淸)·고응척(高應陟)·여헌 장현광(張顯光)등을 사사(師事)하였다. 여헌(旅軒)의 뛰어난 제자를 「旅軒門下의 十哲」 이라고 하는데, 간송은 가장 으뜸(首位)이었다 한다.
1604년(선조 37) 향시에 합격하였고, 그 이듬해인 21세 때 『관규쇄록(管窺鎖錄)』을 저술하였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거상대절(居喪大節)」 10조(條)를 써서 자손들이 교훈으로 삼도록 하였으며, 아버지의 언행록인 『추모록(追慕錄)』을 지었다. 1611년 정인홍이 퇴계 공척(功斥)상소를 위한 소회(疏會)참석 요구가 있었으나 이를 거절하였다. 이 때 사람들이 천인벽립(千仞壁立)의 기상이라 추앙하였다.
1634년 공릉참봉(恭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고, 그해 선비들의 추대로 김해 신산서원의 원장을 맡았다. 1638년 여헌의 언행과 출처및 질의 답문한 것을 모은 『취정록(就正錄)』을 쓰고, 그 이듬해 『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을 편찬하였다. ‘금라전신록‘은 1639년에 편찬한 함안문화예술지로서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 중후기에 지역 문화를 바탕으로 학문과 문학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 귀중한 문헌이다.
퇴계와 남명을 아우른 학자
간송이 23세 되든 1월 용화주중(龍華舟中)에서 한강 정구 선생을 배알하였다. 이때 장여헌, 곽망우, 정한강등 35명의 뱃놀이(용화동범록)에 간송 선생도 같이 자리하였다. 용화산하동범록후서(龍華山下同泛錄後序)에는 당시 선생의 아버지 입암공(立巖公)과 숙부이신 두암공(斗巖公)께서 술자리를 마련하여 제현(諸賢)을 위로하였다 한다.
선생이 80세 나이로 병이 위급하실 때, 좌우 사람들을 보며 말하기를 “옛사람이 죽음에 임해서 기뻐하며 웃은 이가 있다.” 그분은 “도정절陶靖節(도연명)이다.” 라시며 웃으면서 돌아가셨다 한다. 간송은 퇴계학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지만, 퇴계학과 남명학을 아우른 학자로 평생을 산림처사로 일생을 마쳤다.
[출처] 간송 조임도와 두암 조방의 삶을 반추해 보는 역사 기행 / 함안 합강정과 반구정|작성자 소다
내내신거설柰內新居說/조임도趙任道
내내에 새 삶터를 마련한다는 이야기
대개, 일직이 들은 이야기에,파巴 땅의 공인卭人이 기이한 귤을 얻게 되어서 이것을 쪼개자,네 사람의 늙은 노인들이 있는데 서로 상대하여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이.마치 인간의 락樂를 누리는 것 같고,귤 속의 하늘의 해가 명랑하고,산천山川은 맑고 고왔으며,테두리 구역 안에 포용함이 있어서 가히 깃들여 살기에 누었다 일어났다 할만하니,완연, 하나의 별천지였다고 하였다. 세상에서 이르는 바, 귤 속의 즐거움이나 상산商山의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이를 가르킴인가.내가 가만이 생각하자니 이것이 괴이한것이다.맹랑하고 올바르지 못한 것이라고 치부해버렸다.그런데, 또 한편 마음에는 미련이 있어서 귤 속의 락樂을 한번 누려보고픈 생각이 드는 것이지만, 네 사람의 노인을 따라 노닐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만력萬歷 무오년戊午年 가을 문득 구름 노을 밖의 세상에 대한 상념을 내게 되었다. 구업舊業을 버리고,가솔을 거느리고,부모를 부축하고 동북 쪽을 향하여 수십여리를 가서 어떤 향리인지 이름도 없는 한 구역을 차지하게 되어서,이름을 내내柰內라 지었다. 삼사인의 가족이 우리보다 먼저 와 있었다.띠집을 갈대로 덥고생업의 계책은 담연淡然해서 질그릇을 굽거나 물고기를 잡는 생업으로 가족을 부양하였다.내가 온 것을 보고 좋아하고 기뻐하며 술병과 잔을 벌려놓고 우리를 위로하였다 인하여 나를 상객에 자리하기를 추구하였다.나는 이에 그가 점유한 반분을 점유하고 사세를 편히 정돈하게 되었다 상하를합쳐 사가四家를 이루고 신구新舊모두 팔호八戶가 되었다.
내 생각에 귤과 사과는 모두 나무에 열리는 열매다.사과의 크기는 귤에 한참 못 미친다.귤 속에는 겨우 넷 늙은 이가 들어 있는데, 사과 안에는 능히 팔호八戶[여덟 사람]이나 수용하였다. 귤 속의 즐거움은 바둑에 불과한데, 사과안의 생업은 도업陶業과 어업漁業을 겸업한다. 이 어찌 포섭하는 경계가 가지런하지 않단 말인가 받아드려 지니는 것이 실로 작은 것이 도리어 많다. 또,옛 적에 이르는 바 귤橘은 파巴에 사는 공인卭人이 얻었던 것이고. 지금 이르는 바 사과는 파산巴山의 객客이 집을 짓고 사는 곳이다. 의문 되는 것은 역시 이 사이에 몇개가 더 있다. 시험삼아 이곳의 형세를 말해 본다면, 동쪽 서쪽 남쪽이 모두 산이다.그리고, 북쪽은 큰 강이 있는데,또,층층 높은 바위 와 절벽이 강 가를 따라 병풍처럼 여러 리수里數에 이어진다. 그 가운데 가장 기이하고 승경勝景이라 이름 있는 곳을 이르자면 로어암鱸魚巖이며,경양대이며,이은데李銀臺인데 이은대는 이인노李仁老가 일직이 정자를 지었던 땅이다.내내柰內의 북서쪽에는 천척 깎아지른 절벽이 강물에임하여 삐쭉 삐쭉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큰 자라는껍질 속에 움추려서 그 등짝이 둥그스름 솟아 있는 것을 본떠서, 이에 옛 주처사周處士 익창益昌은 방실房室을 추조하고 책을 읽고 학문에 힘쓰던 옛 터전이다 한강寒岡 선생은 여기에 살고자하였으나 소원를 이루지 못하였다 주정周亭의 동편으로 십여보 거리에 바위가 있는데 그 한 자락이 펑퍼짐해서 자연 그대로 누대樓臺가 된 것이다. 사람 십여인이 앉을만하고 대의 위에는 풀이 연하고 모래가 깨끗하다 푸른 나무가 둥그렇게 옹위해서 ,바람이 불면 머리위로 세 구멍 통소 소리인듯 솔바람소리가 시원하다.비록,여름철 한창 더위에도 더위를 알지못한다.내가 일직이 시한귀절을 읊조리기를,
임정林亭에 비 한줄기 ,더운 기운 청량하고
대 평상에 높이 누어 심령心靈 을 쉬노라니
잠깐 잠든 사이 꿈에 희황羲皇이 분명하였네
놀라 깨자 노닐던 물고기 물 차는 소리라
동북쪽 귀통이로 십리 쯤 되는 툭 트여 바라다 보이는 곳에 검푸른 못을 아래로 푸른 암벽위에 날아갈듯한 정자가 있다 곽선옹郭仙翁의 망우정사忘憂精舍다.선옹仙翁은 학을 타고 하늘에 오른지도 일년여가 되었다.강 밖으로는 큰 평야가 흐릿하게 펼쳐지고, 평원은 넓고도 비스듬히 보이고 얕으막한 산들은 농(阜+龍)에서 끊기기까지 달리는 것 같기도하고,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혹은 일어서고,혹은 업드리는 같기도 하다.가지 성긴 소나무 백百여그루가 포구 위로 빽빽히 늘어선 모양은 비취빛으로 덮은듯 성하게 그늘을 드리운다. 강의 북쪼에는 들에 있는 가게가 산을 의지하고 있는데,그중 몇 개의집은 하얀집이라 사이사이에 은은히 빛나보인다.이상李上네 집안은 형과 아우가 서로 다른 생업을 하는데,그 집을 이름하기를,마산정馬山亭이라 하였다. 마산정에서 서쪽으로 수백보 거리에 도흠보道興步가 있는데, 뱃사공 두세집이 언덕에 의지하고 산다.도흥道興이 의지하여 뒤로한 산 이름은 용화산龍華山인데 그 조종祖宗이 되는 산이 방장산方丈山이다.동쪽에서 자세를 갖추고 남쪽에서 꺾기어 북으로 왔다가 남으로 달려서 정호강鼎湖江에 이른다.낙강洛江은 이 산줄기가 다한 곳에 이르러 두 강이 합쳐져서 하나가 되는데 이 강의 이름을 기강岐江이라고 한다 용화산 북쪽 산자락밑에 구불구불 꿈틀거리는 정침강은 마치 목마른 용이 머리를 구부리서 냇물을 마시는 형상이다 한그루 노송나무가 있는데,높고 곧게 위로 뻗어 자라 우뚝 빼어났다 거친 풀과 교목의 숲을 대표하여 돌출한 곳은 청송사靑松寺가 있던 옛 터전이다. 도흥에서 내내까지의 거리가 가장 가깝다. 지나가는 손이 도흥을 경유하여 님북을 가고 오는 사람이 하루에 천여 사람이나 되는데도,험준한 산령인 서치西峙와 깊은 강이 북쪽의 통로를 끊어놓았다. 저절로 선풍仙風,.도기道氣가 발부치는 곳이 아님은 혹 여기에 들어오지 못기 때문이다. 이것도 내내柰內가 유절幽絶된 곳이라 가히 낙토樂土가 된 까닭이며,외인이 들어와서 능히 싸우는 바의 처소가 아닌 것이다..동쪽으로 소 울음 소리가 들릴만한 거리에 육지와 강안 江岸과의 사이 틈이 있는 곳에 사람이 산다. 여기를 일러 상포上浦라고 한다. 하얀 백사장, 비취빛 푸른 대나무 숲, 강마을은 깨끗하고 산뜻한 풍경이다. 또 숲이 있는 산자락 밖으로 비스듬한 곳에 못과 호수를 바라볼 수 있고 물가에는 세발 마름과,연꽃과 가시돋친 연이 자생하고,구름과 모래와 잔물결 이는 곳에는 오리,갈매기 기러기등이 날기도 하고, 소리 내기도 하며 노닌다. 그리고, 상선과 장다니는 배는 흐름을 따라 위로 가고 아래로가서, 포구에는 왕래가 끊이지 않는데,여름과 가을에 더욱 많아진다. 경범輕忛은 바람에 돗이 부풀고 노 젔는 소리 달빛을 흔드나니, 이는 내내奈內의 승경勝景이다. 저 상서로운 구름은 푸른 옥돌을 찌는 것 같고,상서로운 노을은 채색을 올린 것 같다.천만가지 기운과 형상을 거울 속에 섞어 담아놓은 것 같은 것 이것이 내내柰內의 아침과 저녁 풍경이다.물가에 버드나무는 처음에는 황색인데,붉은 꽃은 물속에 거꾸로 비치고 어린 녹색은 지면에 그늘을 만들고 좋아라 새들도 서로 부르네,바위에 단풍은 비단으로 꾸미고,물가의 대숲은 눈을 토해내고, 뜰에는 옥섬돌이요 나무는 옥으로 꾸민 꽃송이로다. 내내奈內의 사철 풍경이다,때로 달빛은 평호平湖에 가득하고,만가지 소리는 그쳐 몽땅 적적한데,일엽편주 조각배 내키는 대로 흐르게 두니,다만 맑은 바람 삽상한 것 만 느낄뿐이라,날개가 겨드랑에 돋아나서 끝없이 넓게 날아 올라서 하늘 밖으로 나가 호령하니 아득히 넓어서 끝이없는 것 같다.진실로 조물자와 더불어 노니는 것을 속세의 사람이 능히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귤橘 속의 승경이 좋아도 이와 같은 청절淸絶에 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하물여, 산에 가서 뜯고 물에가서 낚아 생활을 돕는 게책이겠는가 달을 영송하고 바람을 읊조려 심금을 드날리고.안상案上의 황적黃籍[책]은 속을 조용히 하고 마음을 기쁘게하는 연모[도구]다 처음 익은 술과 동동주에 뜨는 밥티끼, 이는 한가한 속에 흥興을 이끌어내는 미천이라 집 사당에 제례의 일이 있으면 밤에 목욕재계하고 주찬을 마련한다 집 사람은 술두루미와 술잔을 챙겨 공경스럽게 제사를 받든다 부엌의 노비는 제기를 나르는데 몸을 잽싸게 움직인다. 선령先靈이 이에서 좀 편안하시고,사람의 도리가 이로써 섭함이 없게 된다. 귤 속의 노인들도 이런 도리를 행하는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 길일 양신을 잡아 한쌍의 술두루미를 마련하여 자친慈親[어머니]을 위로해드린다. 술과 안주를 간소 청결히 한다 술잔과 소반이 정결하고 아름다웠다 연잎 싹을 입에 넣어드리고 붕어찜과 회를 담아 상에 올렸다. 모자가 함께 기뻐하고 화기和氣와 따뜻한 정이 훈훈해진다
술잔을 바쳐들어 장수를 빌고,이어 축원가를 영송詠誦 하니 한 집 안의 복락福樂 끝남이 없다. 귤 속의 노인 이런 즐거움인지 아닌지 나는 모르겠다 그러니, 귤 속의 하늘과 땅은 내내奈內의 하늘땅이 아니요, 귤 속의 산수山水는 내내의 산수가 아니며. 귤 속의 인사人事는 내내의 인사가 아닌데, 어찌,우리의 참된 천지,참된 산수, 참된 인사와 같아서 또 달리 참된 즐거움이 있으리오.전 날에 내가 아직 내내를 얻지 못했을 적에는 늘, 귤 속의 사람들을 부러워 하였었다. 이제, 내가 내내를 얻었으니, 귤 속의 즐거움을 원하지 않는다. 이는 귤속 사람은 내내奈內사람과 더불어 즐거움이 참되고 거짓되며 허망하고 진실됨이 같지 아니함이 있음을 안다. 세상 사람들이 헛되이 귤속의 사정을 함부로 장담하여 속이는 말을 들었으나, 내내에 복지福地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해서,세상사람들이 헛되이 귤속의 일이 허환虛幻임을 알면서도 내내에 진락眞樂이 있음을 알지못한다.파巴의 공인卭人이 귤을 쪼깨서 속을 옂본본 것 같음이 없다면 누가 능히 내내奈內의 멋스러움이 실로 귤속보다 수승함을 알 수 있으리오.내가 이를 애석히여겨 이 설문을 지어서 사람들사이에 전파하는 것이다 대저, 신기한 것을 좋아하고 진실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납득하기를 기다리는 까닭이다.
간송澗松선생별집別集卷一
내내신거설柰內新居說/조임도趙任道
[출처] 내내신거설柰內新居說/조임도趙任道|작성자 모르니 어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