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식당 촬영지로 유명해진 길리 트라왕안(Gili Trawangan)은 가까이에 있는 길리 메노(Meno), 길리 아이르(Air)와 함께 길리 3형제로 불리며 발리 여행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작은 섬이다.
여행자들은 발리 관광의 일부로 여기지만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길리 3형제는 발리가 아닌 롬복에 속하는 섬들이다. 생물학적으로 유명한 경계선인 월리스선(Walace Line)이 발리와 길리 사이를 지나기도 한다. (서쪽은 동남아시아 생물권이고 동쪽은 오세아니아 생물권). 그것은 동식물들이 발리 롬복 사이를 건너가기가 어려웠다는 얘기이고, 날씨가 나쁘면 발리 - 길리 사이 배편이 결항하는 일이 잦은 것도 그러한 지리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발리 섬에는 힌두교를 믿는 발리족들이 살지만 길리 섬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이슬람교를 믿는 사삭족들이다. 여행자들 사이에는 하루 다섯 번씩 울려퍼지는 이슬람 기도 소리(애잔)가 이슈가 되기도 한다.
사실 길리(Gili)는 고유명사가 아니고 (사삭어에서?) 섬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인 듯하)다. 롬복 섬 주변에는 수많은 길리들이 있다.
세 개의 섬 중에서 길리 트라왕안이 제일 크고 여행 인프라도 몰려있어서 가장 많은 여행자들이 방문하지만 조용한 곳을 선호하는 여행자들은 길리 메노나 길리 아이르를 찾기도 한다. 우리는 트라왕안에 4박을 예약하고 다른 섬들은 투어를 통해 둘러보기로 했다.
2024. 2. 1
아침을 먹고 숙소 사장님의 차를 타고 빠당바이(Padang Bai)로 이동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발리의 성산인 아궁산과 힌두교에 관해 설명을 하던 사장님은, 크샤트리아는 군인이고 바이샤는 농사꾼이라며 자기는 크샤트리아 계급이라고 얘기하는데 말투에 뭔가 자부심 같은 게 느껴진다. 오호!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구나.
애초에 오스티나라는 배를 예약했다던 사장님은 표가 없어 못사고 대신 이마나 표를 샀다며 이마나 창구로 우리를 데려가서 표를 받아 주었다. 오스티나든 이마나든 길리만 가면 되지, 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창구앞 골목에 앉아 서비스로 주는 차를 마시며 기다리다가 (숙소 사장님과는 이별하고) 시간이 되어 이마나 직원을 따라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탔는데, 어라 배 이름이 이마나가 아니고 만타익스프레스네? 짐은 갑판에 싣고 선실에는 100석 정도 의자가 있다. 에어컨 옆자리에 앉은 바람에 좀 춥게 가기는 했지만 편안하게 잘 달려서 (1시간 반 정도?) 길리 트라왕안에 도착했다.
배삯이 정확히 얼만지는 모르지만, 픽업 포함 700리부를 주었으니 바가지는 아닌 듯하다. 배삯 외에 빠당바이 터미널에서 10리부씩, 길리 입도 후에 20리부씩 추가 비용이 들었다.
항구에서 숙소까지는 10분이 조금 넘는 거리. 이 섬에는 자전거와 마차 외에는 이동 수단이 없으니 걸어가야지. (마차는 기본 요금이 만원이 넘는다니 애초 선택지가 아니다.)
숙소는 위치(항구와 스노클링 포인트를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를 고려해서 리셀(Ricel) 홈스테이로 잡았는데, 저렴하고 (4박에 119만 루삐아, 하루 25,000원 정도) 한국말 하는 사장님과 순박해 보이는 남자 직원들 모두 친절했지만, 시설이 많이 낡아서 추천하기는 어려운 숙소다. 15년 전에 한국 가서 벌어온 돈으로 차렸다는 숙소가 이제는 리모델링이 시급한 상태가 되었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식당 랄라뿌(Lalapoe. 싸고 맛있는 식당이다, 매일 가서 먹었을 정도)에서 점심을 먹고, 바닷가로 나갔다. 길리 왔으니 거북이 보러 들어가야지. 스노클 장비를 빌려 바다로 나가 보니 얕은 바다가 길게 이어지고, 알록달록 열대어들이 무리지어 돌아다닌다. (산호는 그리 화려한 수준이 아님)
드디어 거북이를 만나서 한참을 따라다니며 구경하고
저녁은 다시 랄라뿌에서.
2024. 2. 2.
오전에 바다에 나가서 스노클링, 어제보다 더 멀리 더 오래 돌아다녔는데, 거북이는 만나지 못했다.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사장님에게 길리 3섬 스노클링 투어를 예약했다. 바닷가 여행사들이 200리부 달라고 하던 퍼블릭 투어를 110리부에 해 준다더니, 슬쩍 사람 수가 적은 150리부짜리 투어를 권한다. 그럼 그걸로 하죠. 이틀 후에 막상 투어를 가 보니 20인 투어나 15인 투어나 별 차이는 없다. 3,500원 차인데 뭐, 그렇겠지.
숙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2 대에 80리부) 일몰 투어에 나섰다. 항구를 거쳐 남쪽으로 돌아서 일몰 명소들을 눈여겨 보면서 서쪽 해안을 따라 올라갔다. 유명 일몰 포인트들을 지나 섬의 북쪽 끝을 돌아서자 윤식당 촬영지가 나온다.
윤식당 자리에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과 숙소가 영업 중이다. 우리도 재미있게 봤던 예능 프로지만, 역시 한국 여행자들이 근처에 많이 보인다.
윤식당 앞에 앉아서 좀 쉬다가 왔던 길을 다시 더듬어 일몰을 감상할 위치를 물색했다. 아까 올라갈 때 옆지기가 찜해놨다는 데까지 가 보니 서쪽 해안의 중간쯤에 위치한 곳이다. 콜드 비치 바(Cold Beach Bar. 이름은 거창하지만, 그냥 길가에 있는 가판대에 가깝다.)에서 음료 두 잔을 시키고 (100리부, 자릿세라고 생각해야지) 바닷가에 앉아 일몰을 즐겼다.
숙소로 돌아올 때는 섬의 중북부를 가로지르는 빌라낍 거리(Jl. Vila Kip.)로 왔는데 지도에서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좁은 비포장 길이다. 날은 어두운데 가로등도 없으니 편안한 길은 아니다. (숙소 사장님이 헤드라이트가 달린 자전거를 골라주었고 작동법까지 알려주었지만, 불빛이 약해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2024. 2. 3
이틀 동안 물놀이 하느라 피곤하기도 하고 옆지기 피부가 뻘겋게 부어오르기도 했고 해서 오늘은 쉬기로 했다. 맛있는 거나 먹자고 검색을 해서 수파르만 피자라는 가게를 찾았는데, 무슨 사연인지 피자가 안된다고 해서 인도네시아 음식을 먹었다. 피자집에 왜 피자가 없지? 저녁 때 레기나 피자라는 식당을 찾아가서 결국 피자를 먹었다.
바닷가에 있는 메디컬센터에 들어가 친절한 분위기에 홀려 화상 연고 하나를 후딱 샀는데 알고보니 엄청난 바가지였다. 250리부씩이나 주고 구입한 15그램짜리 proson 연고가 (나중에 검색해 보니) 온라인에서는 33리부에 팔리고 있었다.
2024.2.4
길리 3섬 투어를 하는 날이다. 픽업 서비스가 없는 대신 숙소에서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줘서 항구까지 타고 갔다. 먼저 간 곳은 길리 메노 앞 바다, 해저 조각상이 있는 곳이다. Bask Nest Underwater Sculpture. 바닷가 여행사에서 조각상 사진을 보고 이거 언제적 거냐고 물었더니 잘 모른다고 하길래 혹시 고대의 신비?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아니고 (메노 섬의 리조트에서 의뢰해서 설치한) 현대 작가의 작품이란다.
바다에 뛰어들자마자 거북이를 한 마리 구경했고, 가이드를 따라 해저 조각상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아뿔싸! 스노클 마스크 안으로 물이 들어온다. 마스크가 불량이냐, 아님 콧수염 때문이냐? 당황해서 벗었다 다시 썼다를 반복하다가 멘붕이 와서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오리발만 열심히 흔들어댔다.
다행히 옆지기는 신나게 돌아다니며 바닷속 구경을 잘 했다고 한다.
몇 차례 스노클링이 끝나고 길리 아이르에 상륙해서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에서 점심 먹는 동안 사진을 정리해서 나눠준다는 명분인데 식당 후기가 엄청나다. 구글 평점이 2점대였나, 비싸기만 하고 맛이 없다는 후기 일색이라 음료수만 마셨다.
2024.2.5
다음 행선지는 롬복 섬의 승기기 해변이다. 방살까지 배를 타고 가서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 곳. (버스가 하루에 한두 번 있다던가 하는 얘기는 들었지만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 어제 숙소에 물어봤더니 방살에서 승기기까지 150리부에 데려다줄 친구가 있다고 했었는데, 아침에 체크아웃하려니 친구가 못 나오게 되었다고 하면서, 방살 가면 삐끼들이 달려들텐데 150 - 200 사이에서 흥정하면 된다고 200 이상은 절대 주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퍼블릭 보트를 타는 곳은 항구 선착장보다 백여 미터 북쪽에 있다. 그걸 몰라서 배낭을 지고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막 출발했던 10시 30분 배가 다시 돌아와서 우리를 태우고 출발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배삯은 23리부고 방살까지는 30분 정도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