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이 중요
주조 기요시 등 동행 간부의 인사가 끝난 후, 신이치의 지도 순서가 되었다.
“드디어 그토록 염원하던 왓카나이에 올 수 있었습니다. 대단히 기쁩니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모두를 포용하는 듯한 온화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차에서 정말 아름답고 장엄한 석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여러분의 영광과 승리의 상징이며 또 제천의 축복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늘은 다 같이 그 석양을 바라보면서 간담하듯 편한 마음으로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5항목의 지침을 제시했다.
첫째, 자신감을 가져라. 그리고 퇴전하지 마라
둘째, 모두 사이좋게 전진하기 바란다.
셋째, 선배, 후배라는 차별 없이 무엇이라도 서로 상의할 수 있는 동지가 되기 바란다.
넷째, 왓카나이가 일본 최초의 광선유포를 달성하기 바란다.
다섯째, 이 왓카나이 땅에서 일본 그리고 세계의 위인을 속속 배출하기 바란다.
그가 ‘일본 최초의 광선유포’를 왓카나이 동지에게 호소한 것은 훗카이도 특히 사할린을 바라보는 왓카나이는 소련(당시)에 가장 가까워 동서냉전 하에서 긴장을 풀 수 없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미군은 이곳에 레이더기지를 설치하였고 자위대도 훗카이도에서는 북쪽 수비로서 힘을 기울여 왔다.
불법에서는 인간의 일념 전환과 생명 변혁으로 대우주도 움직이며 모든 환경을 바꿀 수 있다고 설한다. 전쟁 위협에 시달려 온 사람은 평화와 행복을 손에 넣을 권리와 사명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불법이라는 생명의 대법(大法)을 갖고 일어서는 이외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치는 왓카나이에 광선유포의 모범이 될 큰 성(城)을 구축하고 평화의 등대를 세우고 싶었다.
더욱이 신이치가 이 땅에서 ‘세계의 위인’을 배출하도록 염원한 것은 혹독한 자연 환경 등의 역경 속에서야말로 민중의 고뇌를 아는 진정한 위인이 육성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실현을 위해서도 왓카나이 동지가 자신들이야말로 시대와 사회를 건설할 주역이자 남녀 주인공이라는 ‘패기’와 ‘긍지’를 가져 주기를 원했다.
◇
‘광포를 확대한 실증으로 야마모토 선생님을 모시자!’며 많은 홍교의 열매를 맺은 왓카나이 동지에게는 기세가 있었다.
그러나 왓카나이 지역은 일본의 최북단에 있어 간부 지도의 손길도 별로 닿지 않았기에 평소에 외면당한 듯한 쓸쓸함을 느끼면서 활동하는 멤버도 적지 않았다.
사실, 야마모토 신이치의 지도는 이 마음속의 어둠을 부수는 데 그 주안점이 있다고 해도 좋다.
신이치는 <센니치니부인답서>의 “사도 지방에서 이 지방까지는 산해를 거쳐서 천리에 이르는데”(어서 1316쪽) 라는 글월을 배독했다.
이 어서는 아부쓰보가 부인인 센니치니를 대신하여 사도에서 미노부에 게신 니치렌 대성인을 찾아간 데 대해, 센니치니에게 주신 편지다.
신이치는 “그대는 사도지방에 계시더라도 마음은 이 지방에 왔느니라.”(어서 1316쪽) 라는 글월을 인용하여 이렇게 호소했다.
“사도라는 산과 바다를 사이에 둔 먼 곳에 있어도 강한 구도심을 가진 센니치니의 일념은 대성인과 함께 있었습니다.
지리적인 거리와 정신적인 거리는 전혀 다릅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도 내가 있는 한, 이곳을 반드시 광선유포해 내겠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결의하여 당당히 투쟁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대성인과 함께 있습니다.
또한 그것이 학회정신이며 본부에 직결하는 신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도쿄에 살거나 혹은 학회본부에 있어도 혁명 정신을 잃고 투쟁심을 잊는다면, 정신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나도 진지합니다. 광포에 불타는 왓카나이 여러분과는 같은 마음으로 가장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대성인은 “우리들은 예토(穢土)에 있지만 마음은 영산(靈山)에 사느니라.”(어서 1316쪽)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바세계는 예토, 즉 더러워진 국토지만 정법(正法)을 수지한 사람의 마음은 영주산 즉 상적광토에 있다는 대선언입니다.
이곳이 내가 사명을 다할 무대라고 마음을 정하고 광선유포를 위해 매진할 때 어떤 곳도 어떤 역경도 아주 소중한 보처(寶處)가 됩니다. 이 원리를 확신하느냐 못하느냐에 모든 것은 결정됩니다.
지금 전국의 동지는 간사이라고 하면 ‘상승(常勝)’의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간사이는 도쿄를 능가하여 광선유포의 일대 추진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예전에 간사이는 도쿄에 비해 회원세대수도 매우 적었으며 조직도 약했다.
광선유포에 대한 미래 구상에서 간사이의 중요성을 통감한 도다 조세이는 1965년 1월, 신이치를 간사이로 파견했다.
당시만 해도, 간사이 동지는 누구든 어떻게 한다 해도 도쿄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신이치는 무엇보다도 한 사람 한사람의 그런 일념을 전환하는 데에 온 심혈을 기울였다.
“간사이에 무너지지 않는 창가의 금주성을 구축합시다.”
“일본 제일이며 모범적인 대법전(大法戰)을 전개합시다.”
신이치라는 젊은 리더의 혼과 접하여 간사이 동지(同志)의 마음이 일변했다.
“우리야말로 광포의 주역이다.”
“간사이야말로 광포 투쟁의 본거지다.”
그리하여 모두 사자분신(獅子奮身)의 투사가 되었다.
이해 5월 오사카 지부는 1만 1,111세대라는 미문의 홍교를 달성해 광포사상 불멸의 금자탑을 세웠다.
더욱이 7월에는 처음으로 학회에 후보를 공천한 참의원의원 선거에서 도쿄 지방구가 참패했지만, 오사카 지방구는 신이치의 지휘 아래 당선이 불가능하다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멋지게 승리했다.
이후 멤버들은 이 간사이야말로 광포의 모범인 ‘상승의 도읍’이라는 강한 긍지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바로 광선유포의 중핵이며 창가학회의 대표라는 부동의 자각을 갖게 되었다.
◇
신이치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간사이가 크게 발전한 요인은 동지들의 일념전환이었습니다. 일념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 그리고 간사이가 도쿄를 능가한 일은 전국의 동지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호소하고 싶습니다!
왓카나이는 도쿄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삿포로에서도 멉니다. 교통도 불편합니다. 인구도 결코 많지 않습니다. 겨울의 추위는 말로는 다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합니다.
확실히 이런 곳에서 분발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힘들다고 말할 것 같으면 어디든지 힘듭니다. 고생하지 않고 광선유포 할 수 있는 그런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힘든 이유를 열거해서 이래서 무리다. 저래서 안 된다고만 한다면 시간이 지난 후에도 무엇 하나 바뀌지 않습니다.
자기 일념이 환경에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싸우지 않고 패배를 정당화하기 때문입니다.
이 최북단에 있는 왓카이나가 광선유포의 모범적인 땅이 되면 전국 각지의 동지가 ‘우리도 못할 리가 없다’며 용를 갖습니다. 모두가 자신감을 갖습니다.
홋카이도는 일본열도의 왕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왓카이나는 그 홋카이도의 왕관입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일본 광포의 돌파구를 열 왕자입니다.
이윽고 21세기를 맞이했을 때에는 ‘홋카이도의 시대’ ‘왓카나이의 시대’가 오리라고 나는 굳게 확신합니다.”
큰 함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멤버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아무쪼록 여러분은 자랑스러운 동지로서 신심을 완수하여 후회 없이, 의의 있는 소원 만족의 인생을 보내기 바랍니다. 나는 도쿄에서 더욱더 여러분의 다복과 번영, 건강과 건투를 기원 드리며 제목을 계속 보내겠습니다.”
☞ 신 · 인간혁명 제13권 ‘북두’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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