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COVID 19) 치료제, 러시아 임상 3상, 알팜(Р-фарм), 스푸트니크V 백신.. 최근 주식시장에서 가장 '핫한' 종목의 하나인 일양약품에 관한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단어들이다.
엊그제만 해도, 일양약품은 러시아가 개발한 첫 신종 코로나 백신의 유력한 위탁생산(CMO) 기업으로 지목되면서 투자자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러시아 국부펀드인 직접투자펀드(RDIF)의 키릴 드미트리예프 대표가 19일 남미의 백신 관련 웨비나에서 "내달에는 스푸트니크V 백신을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 인도, 브라질, 중국 그리고 다른 1개 국가에서 (백신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게 그 계기였다.
러시아 백신의 '한국 생산설'이 제기된 러시아 언론 기사 모음. 원래 '남미 대륙'의 백신 관련 웨비나에서 드미트리예프 RDIF 대표가 백신 공급 물량을 이야기하면서 스쳐지나가듯 한 말이다. 제목은 'RDIF 대표, 아르헨티나와 페루에 백신 공급 발표'/얀덱스 캡처
투자자들은 그 소스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관련 기사 서핑을 마다하지 않았고, 일양약품 주식은 시간마다 출렁거렸다.
물론,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달 18일 드미트리예프 RDIF 대표가 현지 뉴스전문 TV 채널 '러시야 24'와 인터뷰에서 "스푸트니크V의 한국 내 생산과 관련한 협상이 최종 단계에 있다"고 말한 소식이 국내로 전해지며, 일양약품의 주가는 직전 거래일 대비 23.45% 급등하기도 했다.
주가가 출렁거릴 때마다 일양약품 측은 반응은 '아니다'로 요약된다. 보도에 따르면 일양약품 측은 일관되게 "우리의 생산설비는 인간 아데노바이러스 벡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스푸트니크V 백신을 생산할 수 없다"며 "(러시아 측과의) 접촉 또한 없었다"고 했다. 이 회사의 백신 생산설비는 '유정란 방식'이라고 한다.
러시아 첫 백신 스푸트니크V
그럼에도 일양약품은 왜 매번 유력한 러시아 백신의 위탁생산업체로 꼽힐까? 러시아 최대 제약사의 하나인 알팜(러시아어로는 Р-фарм 에르-팜)과의 깊은 협력관계 때문으로 보인다. 알팜은 스푸트니크V 백신 생산 업체중 하나다.
두 기업의 협력은 관계는 일양약품의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슈펙트'(라도티닙 радотиниб)의 러시아 진출로 시작됐다. 알팜은 지난 2014년 '슈펙트' 의 러시아 시장 진출권(홍보및 개발)을 따냈다. 일양약품으로서는 알짜배기 파트너를 잡은 셈이다.
이 협력 관계가 주식시장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끈 계기는 '슈펙트'의 '약물 재창출' 임상 시험이다. 신종 코로나 치료제로서 '슈펙트'의 가능성을 확인한 일양약품은 신종 코로나 환자가 적은 국내에서는 임상 시험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 러시아로 눈을 돌렸고, 알팜사가 흔쾌히 응한 것이다.
알팜사의 '라도티닙' 임상시험에 관한 러시아 매체 보도/캡처
알팜사는 지난 5월 14일 러시아 보건 당국으로부터 '슈펙트'의 임상 시험 승인을 받아냈다(의약품의 임상 시험 승인 번호 194). 일양약품은 일약 신종 코로나 시대의 최고 호재 종목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일양약품 측이 신종 코로나와 관련, 기대하는 것은 백신의 위탁 생산보다는 '슈펙트'의 성공적인 임상 시험인 것으로 보인다. 주식 전문가들도 '슈펙트'의 임상 결과에 관심이 높다. 러시아의 의약품 전문 사이트 'Medum.ru'의 '라도티닙(슈펙트)' 임상 시험 항목에는 '임상 결과가 언제 나오느냐'는 질문이 올라와 있다. '코리아 발' 질문도 적지 않아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성급한 질문'이다. 러시아 의약품의 임상 시험 등록에 따르면 '슈펙트' 임상 시험은 내년 4월 30일까지 진행한다고 되어 있다. 물론 그 전에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만, 확률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Medum.ru'에 올라 있는 '라도티닙' 임상 관련 자료
러시아 얀덱스에서 '라도티닙 임상 시험' 검색/캡처
러시아 포탈사이트 얀덱스(yandex.ru)에서 '라도티닙 임상시험'을 검색해 보면 주요 언론의 보도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주로 의학 관련 사이트가 간단하게 다루는 정도다. "알팜사는 러시아 연방의 11개 의료기관(입원 환자 180명 대상)에서 입원한 신종 코로나 환자들을 대상으로 '라도티닙'의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무작위 연구를 수행할 예정이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일부 매체는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미하일 삼소노프 알팜사 의료담당 책임자 인용)고 전한다. 그러나 '슈펙트'는 아직 러시아에 의약품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바이러시아(www.buyrussia21.com)로 제보도 들어오고 있다. "원래 임상 의료기관이 (러시아 언론 보도에서 보듯) 11곳이었는데, 8월 중순 26곳으로 늘었고(추후 다시 3개 기관 추가), 임상 방식도 '단순 연구'에서 '(위약) 대조 시험'으로 변경됐다"는 것 등이다.
특히 추가된 의료기관에는 러시아 최고의 국책 감염병 연구기관인 러시아 중앙감염병 연구소와 모스크바 국립 세체노프 의과대학이 포함되어 있다고도 했다. 세체노프 의대는 스푸트니크V 임상 시험을 진행한 곳으로 유명하다. 일양약품과 스푸트니크V 백신과는 세체포프 의과대학으로 또 연결되는 셈이다.
알팜사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임상시험 공지(가운데)
알팜사 공지 내용. 아래 쪽에 '라도티닙' 자료(굵은 글자)가 올라와 있다/캡처
안타깝게도(?) 이같은 제보는 아직 러시아 언론이나 알팜사 홈페이지에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알팜사가 가장 최근에 '라도티닙' 임상 관련 공지를 올린 것은 지난 8월 5일이다. 이 공지는 "알팜사는 5월 14일 신종 코로나 감염 환자의 치료 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라도티닙' 약물의 임상 시험을 수행 할 수있는 허가를 받았다"며 "임상 시험은 11개 의료기관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의료기관 확대에 대한 공지는 아직 알팜사 홈페이지에도 올라오지 않았다.
'슈펙트'의 러시아 임상시험과 러시아 백신 생산과는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기 어렵다. 굳이 매개체를 찾는다면, 알팜사와 세체노프 의과대학 정도다.
하지만,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20일 정례브리핑에서 "국내에서 (스푸트니크V를) '위탁 생산' 형식으로 생산하느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국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게 팩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