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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 창26:12-25, 요3:16-18
오늘 총동원 전도 주일에 처음 교회에 오신 분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어느 부흥집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목사님께서 설교도중에 성도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가 무슨 바다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썰렁해’입니다. 그럼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바다는 무슨 바다입니까?”라고 묻자 성도들이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바다 이름은 “사랑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모두가 재미있어 했습니다. 평소에 남편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 듣는 것이 소원인 한 여 성도님이 집회가 끝나고 집에 가서 남편에게 애교를 부리면서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여보, 내가 문제를 낼게 한번 맞추어 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는 ‘썰렁해’라고 해요~~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는 무슨 바다일까요?” 남편이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하자 애교 섞인 목소리로 힌트를 주면서 아내가 말 했습니다. “여보! 이럴 때 당신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거 있잖아요?” 그러자 남편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아-하 열~~바다!!!!”
오늘 구약 본문의 말씀은 이삭이 열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나 어떻게 믿음으로 대처했는지, 그러한 이삭을 하나님은 어떻게 축복하셨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으며, 믿는 자들에게 어떠한 축복을 주셨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열 받게 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무엇이며,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분입니다.
1)하나님을 떠나서는 참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복 받기를 소원합니다. 옛날에 우리 선조들은 그릇에, 베게에, 수저, 장롱 등에 복자를 쓰고, 대문에도 “소문 만복래(笑門 萬福來)” “입춘대길”이라는 글을 써서 붙이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보니까 복자를 거꾸로 붙여놓아서 그 이유를 물어 보니 복이 위에서 우리 집에 내려오라고 글자를 거꾸로 써서 붙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이 복 받기를 좋아 합니다. 그런데 그 복이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세상 사람들은 한결같이 공통되는 내용이 물질의 복, 건강의 복, 사업이 잘 되는 복, 자녀의 복, 성공의 복, 장수의 복의 범주를 넘어가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자기가 아는 복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참 복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신령한 복”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신령한 복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영적 새 생명을 얻는 복” “죄 사함을 받는 복”,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 “구원 받아 영생의 축복에 참여하는 복”,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는 복”, “참 평안과 기쁨을 얻는 복”,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는 복” “악인의 꾀를 쫒거나,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과 함께 하지 않는 복” “말씀의 맛을 알고 말씀을 가까이 하는 복” 등입니다. 이 신령한 복은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복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신령한 눈이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그 자체가 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산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로 인해 많은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편이 되어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리라 하셨습니다. 시편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로다.”(시128:1-6) 여기 이스라엘은 택한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시온은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하나님의 집인 성전 곧 교회로 불러내어 예배와 성경 공부와 성도의 교제와 봉사 등을 통해 하나님 경외하는 도를 배워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경외하는 자로 살게 합니다. 그리하여 신령한 복을 알게 하시고, 사모하게 하시고, 받아 누리게 하십니다. 이 신령한 복을 받은 자들은 그 복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알기 때문에 건강하지 못해도, 가난해도,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해도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과 감사가 하늘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하나님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는 자가 최고의 행복 자들입니다. 모세는 선민 이스라엘을 축복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하나님은 행복의 대상을 이스라엘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여기 이스라엘은 조금 전에 말씀 드린 대로 택함 받고, 부르심을 받아 구원 받은 모든 백성을 일컫는 말입니다. 신명기 7:6절에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자들을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오래 전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울 때 일입니다. 군산에 미군 부대 비행장이 있습니다. 그 옆에 있는 “옥봉”이라는 마을에 거지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그들은 비행장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뒤져 먹을 만한 것은 먹고, 돈 될 만한 것이 있으면 팔아서 살았습니다. 거기에 아들과 단 둘이 사는 한 미망인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집이 없어 굴을 파놓고 그 굴 앞에 막대기를 걸친 다음 기름종이를 치고 살았습니다. 미군 부대에서 버린 쓰레기를 뒤져 먹을 것을 찾고, 또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서 팔아 그 돈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집을 사려고 아주 조금씩이지만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교회 건축을 한다.’는 광고를 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라는 말씀이 생각난 집사님은 고민이 되었습니다. ‘굴에서 사는 내가 작은 집 하나를 사려고 돈을 모으고 있는데, 이것을 헌금해야 되나? 초가집이나 함석집이라도 있으면 헌금해도 좋은데, 나는 집도 없이 굴에서 사는데…….’ 상황을 보면 헌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말씀으로 감동이 왔습니다. 집사님은 말씀에 의지해서 결단하고 어렵게 모은 집값을 헌금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감동을 받고 집사님을 위해 간곡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시간에 미군 부대의 목사님이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에서 신비로운 빛이 어느 마을을 비추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미소를 가득히 머금으시고 그 마을의 어느 굴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깨니 꿈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꿈이 너무 신기해서 통역관을 데리고 꿈속에서 본 마을을 찾아가 보았더니 예수님께서 들어가신 굴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으로 들어가니 어머니와 아들이 찬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꿈 이야기를 했더니 집사님이 건축 헌금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에 불이 붙은 목사님은 당장 힘을 써 집사님을 미군 부대 식당의 종업원으로 취직시키고 그 아들은 부대 비행장의 경비로 세웠습니다. 그 후로 목사님이 제대하고 미국에서 목회하면서 그 집사님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내를 잃은 큰 부자 한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부인에게 감동을 받았다며 그 부인과 아들을 미국으로 초청하여 가족으로 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과 아들이 미국으로 가서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찾으시고 그런 자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사랑하고 가까이 함으로 복을 받는 성도되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의 구원을 받습니다.
1)하나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요3:16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셨습니다.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셨다는 말입니다. 그 중에는 비열한 인간, 아내를 구타하는 사람, 도둑, 압제자, 살인자. 아이들을 학대하는 자, 알코올중독자, 노예를 부리는 사람, 부도덕한 인간, 창기, 거리의 부랑아, 잔혹하고 복수심에 사로잡힌 자, 살인자 등이 다 포함됩니다. 본성이 사랑이신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것입니다. 사랑은 행동합니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앉아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능한 한 가장 완전한 방법으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사랑하십니다.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되 가장 낮은 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주님의 탄생의 자리는 짐승의 구유였습니다. 사람이 타락하여 짐승처럼 된 사람들까지도 구원하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였습니다. 이처럼 사랑의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주셨고 그리고 그 아들을 죽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아무 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세상 죄를 지고 살인강도와 같은 취급을 받으시고 가진 수치와 모욕과 고통을 당하시는 저주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엄청난 대가에 대한 희생의 사랑이 두 가지 행위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 아들을 세상에 주시기까지, 그리고 그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악한자라도 “나 같은 것도 구원을 받을 수 있나요?”라고 물을 필요도 없이 “아멘”입니다. 주님의 피 값이 너무 고귀하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의 사랑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 바로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멸망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해 내는 것, 영원한 생명으로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 믿음을 통해서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정죄하거나 심판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으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즉 세상은 심판받고 정죄당하기에 마땅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 죄 아래서 태어났고, 로마서3:10의 말씀처럼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 두 가지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우리를 구원해 내시고자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분의 목적은 우리를 멸망으로부터 구원해 내는 것이요. 또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해 내시는 것에 있습니다. 구원 얻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통해서, 오직 그분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딤전1:15절에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이 말씀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한 때 예수님을 알지 못하여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한 자였습니다. 그는 한 때 열심 있는 종교가였습니다. 자기는 무척 의로운 자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에서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 인줄 알고 죄를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온갖 박해를 무릅쓰고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행4: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3)믿지 않는 자체가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신뢰하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는 구원을 받지만 믿지 아니하는 자는 정죄함을 받습니다. 이에 대해 본문 17-18절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희생하면서까지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는데 그 사랑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일이 얼마나 큰 죄요, 얼마나 하나님을 열 받게 만드는 일이겠습니까?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믿음은 심판을 멈추게 하고, 누구도 정죄할 수 없는 은총을 받습니다. 믿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믿지 않는 자는 정죄됩니다. 어떤 사람이 가장 큰 죄인입니까? 간음죄도, 살인죄도 아니고 불신앙이 가장 큰 죄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한 자요, 따라서 이미 심판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뜻은 첫째로 정죄는 하나의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 어떠한 것도 불신자에게 심판이 임하는 사실을 바꾸거나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불신자는"벌써"죄의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이방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외인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이 없는 영적 고아로 삶을 삽니다. 셋째로 불신자는 자신이 그동안 범해 왔던 모든 죄에 대하여 형벌을 받게 되고 영원한 저주를 피할 길이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분들은 한 사람도 불신앙으로 정죄 받고 멸망에 이르는 사람이 없으시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생활 구원이 있습니다.
1)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자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성경은 영생구원도 있고, 생활 구원이 있습니다. 주님은 지상의 삶을 하나님의 은총을 얻어서 신앙인으로서 능력 있게 살 것을 명하고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 사는 동안 은총을 받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생활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롬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한 사람에게 보상하시는 분입니다. 잠 22:4에 보면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대로 이삭에게 보상하신 것입니다. 가나안에 가뭄이 들었습니다. 이삭은 가뭄을 피해서 애급으로 내려가던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애급에 내려가지 말고 그랄에 머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니 순종은 해야 하겠지만 그랄에 머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삭이 그랄에 머물려면 먼저 그랄 사람들이 허락을 해야 하는데 사실 그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랄도 흉년이기 때문에 물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한정된 그랄이라는 공간에 이삭의 식솔들이 머문다면 그랄 사람들과 충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또 이삭의 식솔들의 반대도 있을 것입니다. 환경적으로나 관계적으로 볼 때 그랄에 머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그랄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숨을 걸고 말씀에 순종해서 그랄에 머물렀던 이삭에게 축복으로 보상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순종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믿음은 곧 순종입니다. 이삭의 부친 아브라함도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복의 근원이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삭도 어려서부터 순종의 사람으로 훈련을 받아 아버지가 하나님께 순종하여 결박할 때도, 칼을 내려치려 할 때도 순종하고, 아내를 얻을 때에도 아버지께 순종하여 리브가라는 귀한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본문과 같이 그랄에 머물라 하니 그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2)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갈 6:7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또 마 7:12에서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인생은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이삭이 우물을 요구하는 그랄 사람들에게 다투지 않고 우물을 양보 하니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점점 더 좋은 우물을 주십니다. 이삭은 우물을 심고 더 좋은 우물을 거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은 것을 열매로 돌려받게 하시는 데 더 풍성하게 주시는 분입니다. 성도는 사랑으로 섬기셨던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선한 것으로 심기를 힘써야 좋은 것을 거두게 됩니다.
탤런트 김혜자 권사는 올해 70세의 나이인데도, 아직 해맑은 웃음과 천진스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인도, 시에라리온 등지에 24차례의 구호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그가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촬영을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딸과 유럽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월드비전에서 에티오피아에 구호활동에 같이 가자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신기한 나라 구경이나 하번 하는 셈치고 따라 가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에티오피아에서 6일간 구호활동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깨끗한 집에서 비싼 옷 입고 다녀도 되나 하는 생각에 힘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후에 한동안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는 한국에서 해외 구호활동이 처음 시작되던 무렵인 1992년에 우리나라 연예인으로는 처음으로 구호사업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러는 사이에 자신이 많이 배우고,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 그는 시에라리온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힘겹게 일하는 아이들을 보고는 자신이 끼고 있던 다이아몬드 반지를 버렸다고 합니다. 김혜자 씨는 눈물이 많은 여자입니다. 그는 “나는 처음 몇 년 동안은 정말 미친 여자처럼 울고 다녔다.” 합니다. 그러고는 “지금은 그런 단계를 넘어섰다.”고 하는 여유를 보이면서도, 2시간쯤 뒤에 그는 다시 한쪽 구석에 주저앉아 또다시 눈물을 쏟곤 합니다. 그는 온종일 밥을 굶고 있는 아이들을 만난 자리에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은 도울 수 있어서 기뻐서 우는 거니까 이전과는 다르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돌아오면 자신이 먹는 것에도 입는 것에도 죄책감 느낀다고 합니다. 그는 월드비전을 통해 전 세계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 103명과 결연을 맺고 매달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에티오피아에서 지옥을 만났다고 합니다. 굶주리고 병에 걸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혜자 권사는 항상 이렇게 기도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나에게도 고통이 되게 하소서.' 이 기도문은 월드비전을 설립한미국의 밥 스피어스 목사가 자신의 성경책에 써놓은 기도문입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주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힘쓰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사람입니다.
3)하나님은 주님을 닮은 온유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사실 이삭이 마음만 먹었다면 그랄 사람들과 전쟁을 할 수도 있었고 우물도 빼앗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고 말합니다. 이삭의 힘은 이미 그랄을 능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우물을 막고 우물을 빼앗는 그랄 사람들에게 우물을 양보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이삭의 온유한 모습입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이삭이 손해를 보는 것 같은데 장기적으로 보니 결국 이삭이 승리합니다. 이삭은 계속 양보하는데 희한하게 계속해서 새로운 우물을 파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고 말하고 평화조약을 맺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싸울 일이 참 많습니다. 그랄 사람들이 이삭에게 와서 시비를 거는 것처럼 열 받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나라같이 물이 흔한 나라에서는 우물이 별로 귀하지 않지만 물이 귀한 그 지역에서는 큰 기업을 빼앗긴 거와 같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온유하게 반응했고 하나님이 주시는 온유한 자가 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손해를 볼 것 같고, 다른 사람들에게 온유하게 반응하면 바보 취급 받을 것처럼 생각 될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온유한 자의 편이 되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이삭은 온유하게 반응했고 하나님이 주시는 온유한 자가 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므로 그 땅에서 농사 하여 백배나 얻었고,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참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그 자체가 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는 자가 최고의 행복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의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주님을 믿는 자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자체가 심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생활 구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자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닮은 온유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모든 죄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복을 받게 하시려고 세상에 보내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영적 구원, 생활 구원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임방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