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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문일 : 2020년 6월 초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등이 있는 군산내항(군산항) 일대를 포괄한 지명입니다. 이는 꽃 이름 ‘장미’에서 온 것이 아닌 藏米洞(곶간 장, 쌀 미, 마을 동), 즉 ‘쌀을 창고에 쌓아 두는’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군산항이 쌀 수탈항으로 성장하면서 정미소가 많이 들어서게 되었고, 쌀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 시설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미곡 창고가 많은 부두 주변의 이름을 ‘장미동’이라 불렀습니다.
1899년 개항 이후 군산에는 ‘구 군산세관 본관’을 중심으로 조계지(=거류지, 개항장에서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지역)가 설정되었는데요. 이곳 장미동 일대는 초기 군산항의 모습부터 일제 강점기 경제 수탈항으로서의 역사와 근대산업화 시기의 어업 및 산업 생활사 등을 잘 보여주는 지역으로 「군산내항 역사문화공간(국가등록문화재 제719호)」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습니다.
‘군산내항 역사문화공간’은 ① 군산내항 뜬다리부두(부잔교, 제719-1호), ② 군산내항 호안시설(제719-2호), ③ 군산내항 철도(제719-3호), ④ 주 제일사료 주식회사공장(제719-4호), ⑤ 경기화학약품 상시 저장탱크(제719-5호), 그리고 그 뒤로는 구 군산세관,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근대미술관),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 중 몇몇 장소를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뜬다리 부두(부잔교)는 일제 강점기에 쌀 수탈항으로 이용된 군산항의 역사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시설물입니다. 전라도 곡창지대에서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설치한 항만시설로 서해안의 자연 특징을 고려하여 고안한 다리지요. 물에 뜰 수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부두에서 정박 시설 사이에 다리를 만들어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상하로 움직이며 선착장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치되었습니다. 군산항의 제3차 축항 공사 기간(1926년∼1932년)에 3기를, 제4차 축항 공사 기간에 3기를 추가하여 총 6기가 사용되었으나, 현재 군산항에는 3기만 남아있습니다.
해양경찰서 경비정 273함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호안시설은 근대항만으로서 군산내항의 공간 구조를 형성하는데 기반이 된 석축 구조물입니다. 군산항의 축항 공사는 1905년부터 1938년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현재 군산내항의 호안을 형성하는 주요 부분은 1932년 마무리된 제3차 축항 공사의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문화재청에서 안내하고 있는 사진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군산에 한 번 더 방문하면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요. *호안 : 하안(河岸)·해안(海岸)·둑을 보호해서 유수에 의한 물가선의 침식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 비탈면에 시설하는 공작물 [발췌 : 두산백과]
군산내항 철도는 1921년부터 1931년까지 수탈한 쌀을 옮기기 위해 군산항에 연결한 철도입니다. 군산항의 축항 공사 과정에서 1921년 군산선 철도가 군산항의 동쪽으로 연장되었고, 이후 축항공사와 함께 서쪽까지 연장되었으며, 1931년 군산세관의 북쪽으로 군산항역이 개설되어 군산내항 전체에 철도가 부설되었습니다. 현재는 운영되지 않는 철도 주변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해 두었습니다.
군산내항 철도 앞, 태극기와 안중근 의사의 손 도장이 그려진 독특한 건물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외벽 등 대부분이 허물어져 내린 이 건물은 1973년, 제일사료 주식회사에서 산업시설(공장) 용도로 만들어진 건축물입니다. ‘경기화학약품 상시 저장탱크’와 함께 광복 이후 대한민국 산업화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일제 강점기 군산항의 주된 경관을 형성하였던 근대 창고의 모습이 잘 남아있다고 합니다.
1899년 군산 조계지가 설정되면서 군산내항을 중심으로 다양한 상업·업무지구가 형성되었는데요. 군산내항 역사문화공간 뒤쪽에 자리잡고 있는 구 군산세관 본관,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근대미술관),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등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미곡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근대 일본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건축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장소입니다.
■ 문화재 지정번호 : 국가지정 사적 제545호[지정일 : 1994년 8월 10일(전라북도 기념물 제87호) , 2018년 8월(사적 제545호)]
■ 건립시기·연도 : 1908년 6월 20일
■ 주소 :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244-7 (지번: 장미동 49-38)
구 군산세관 본관은 군산항을 통해 드나들던 물품의 관세를 거두었던 곳입니다. 원래 인천해관 산하였지만, 군산항 개방(1899년) 이후 ‘인천세관 군산지사’를 설립하였고, 1908년 이 건물을 완공하였습니다. 서양식 단층 건물로 준공 당시 많은 부속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헐리고 아래 사진의 본관 건물만 남아있습니다. 서울역사, 한국은행 건물과 함께 국내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라고 해요. 건물의 지붕은 세개의 뾰족한 탑이 있는 고딕 양식이고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현관의 처마를 끄집어낸 것은 영국의 건축 양식으로 유럽의 건축 양식을 융합한 근대 일본 건축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본 근대 건축의 모습은 지난 번에 소개해 드린 이영춘가옥과 에도토쿄건축박물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날 코로나19로 인한 휴관으로 내부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측면에 '기억의 숲'이라는 작은 야외 갤러리가 있었는데 '구 군산세관'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른쪽에는 현재의 군산세관 건물이 있습니다.
아래의 건물은 세관 창고였다고 합니다. 근대 이후 가장 오래된 트러스 구조의 건축물로 현재 카페 ‘인문학 창고 정담’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지정종목 : 국가등록문화재(제372호, 지정일 : 2008년 2월 28일)
■ 주소 : 전북 군산시 해망로 230 (장미동)
■ 시대 : 1907년
오늘 소개해 드릴 마지막 장소입니다. 구 군산세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현 근대미술관)’ 건물이 있습니다. 이 은행은 1870년 일본 나가사키에 있던 대규모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출발한 은행(일본 나가사키에 본사를 두고 있던 일본 지방은행)으로 ‘18은행’이라는 명칭은 18번째로 은행설립 허가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18은행’은 나가사키가 무역항으로써의 기능을 잃자, 무역과 상업을 통한 이익을 얻기 위해 조선으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1890년 인천을 시작으로 전국에 지점을 개설했는데 1907년에 건립된 이곳(군산지점)은 조선에서의 일곱 번째 지점이었어요. 이 은행은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미곡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초기에는 사업을 빙자하여 싼 이자의 대출을 받은 일본인들이 그 돈으로 조선인들에게 토지를 담보로 고리대금업을 하여 원금 상환기일을 못 맞춘 농민의 농토를 갈취하여 부를 축적해 나갔습니다.
단층의 본관과 숙직실 등이 있는 부속 건물, 금고로 사용된 부속 창고의 3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제 강점기 초반에 지어진 폐쇄적인 은행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현재 본관건물은 '군산근대미술관'으로 운영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지점장실로 일제수탈사 사진전, 18은행 건물역사전시실, 18은행 보수과정 전시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집단 총살당한 한국인들의 시신, 강제 징용된 한국인 소년들과 노동자들의 사진을 보니 너무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곳은 금고동 건물인데요. 금고와 그 옆의 작은 공간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안중근의사와 그의 가족,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
안중근의사의 어머니(조마리아 여사)께서 쓰신 편지글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에게 조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지만, 그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좁은 계단을 따라 다락방 같은 2층으로 올라가면 안중근의사가 수감생활을 하셨던 중국 대련시의 여순감옥(뤼순감옥)을 재현한 공간이 나옵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동포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은 강인함과 중대한 일을 실천에 옮긴 결단력, 재판, 사형선고, 그리고 최후의 유언 장면까지. 이 작은 공간에서 안중근의사의 상세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군산내항 역사문화공간의 문화재들은 우리나라의 경제 수탈에 앞장선 대표적인 시설물들이지만, 현재는 이를 알리고 기억하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천천히 둘러보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이야기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마지막에 소개해 드린 군산 근대미술관(구 일본 제18은행)에 방문해서 안중근의사와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읽어본다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
[참고] 문화재청, 군산근대역사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부잔교, 구 군산세관 본관,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두산백과, 땅 이름 점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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