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2,1ㄱ.12-22; 요한 7,1-2.10.25-30
+ 찬미 예수님
오늘 독서는 지혜서의 말씀인데, 예수님의 수난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길을 부정한 것인 양 피한다. 의인들의 종말이 행복하다고 큰소리치고 하느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자랑한다. 그의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최후가 어찌 될지 지켜보자.”(지혜 2,16-17) 이러한 표현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유다인들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혜서의 첫머리에 왜 이런 구절이 있는 것일까요? 지혜는 의로움과 정의를 통해서만 얻어지는데, 세상에서 이렇게 살면 박해를 받게 마련입니다. 어떤 것을 개혁하려 하면 기득권은 ‘그 대가로 네 목숨을 내놓으라’ 하고 실재 그 목숨을 앗아가 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아무리 의인을 박해하고 설령 죽인다 하더라도, 의인의 영혼까지 빼앗을 수 없다는, ‘의인들의 불사불멸’을 지혜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배경은 초막절 축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초막절은 과월절, 오순절과 함께 3대 축제 중 하나였는데요, 초막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들이 이집트를 탈출하고 광야를 지날 때, 초막에서 살던 것을 기념하여 일주일간 초막에서 지냈습니다. 요즈음 캠핑이 유행을 하는데요, 종교적 이유로 캠핑을 하는 것이 초막절 축제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초막절을 이렇게 해석하십니다. “약속의 땅, 곧 영원한 나라에 아직 이르지 못했으므로 현세에서 우리는 천막에 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이들은 초막 속에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도록 운명 지어진 이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낯선 이임을 아는 사람은 말하자면 초막에 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본향을 그리워하며 한숨짓는 자신을 볼 때면 자기가 낯선 땅을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초막절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주민들이 궁금해합니다.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가족의 이름, 즉 성을 가지고 있지만, 성이 없을 때에는 출신과 이름을 같이 얘기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즉 ‘나자렛 예수’,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처럼 말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다는 것’은 ‘저 사람의 출신이 나자렛’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메시아는 어디 출신인지 몰라야 한다는 것이 그들이 물려 받은 생각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큰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이 구절을 의문문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요, 그러면 “너희는 정말로 나를 알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의미가 됩니다.
‘미쓰 에이’라는 걸그룹이 2010년에 발표한 ‘배드 걸, 굿 걸’이라는 노래가 있는데요, 혹시 아세요? 저한테는 이게 최신곡인데, 나온지 벌써 14년이나 되었네요? 가사가 이런데요, “유 돈 노 미, 유 돈 노 미, 소 셔럽 보이, 소 셔럽 보이. 앞에선 한 마디도 못 하더니 뒤에선 내 얘길 안 좋게 해. 참 어이가 없어. 헬로 헬로 헬로 나 같은 여잔 처음으로 본 것 같은데 왜 나를 판단하니 내가 혹시 두려운 거니”
오늘 복음 말씀과 매우 비슷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편견과 선입견이 진리를 깨닫는데 가장 방해가 됩니다. 진리를 만나는데 가장 훼방을 놓는 개가 두 마리 있는데, 편견과 선입견입니다. 유다인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편견과 선입견 그리고 얄팍한 지식은 그분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편견을 물리치고 진리이신 분을 참되게 만날 수 있을까요?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진리를 아는 것’과 ‘선을 행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말씀하십니다. 악을 행하는 것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진리를 보게 합니다. 하느님은 진리이시고 선이시므로, 진리를 아는 것과 선을 행하는 것은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곧 진리를 아는 것이 좋은 행동을 하도록 이끌고, 좋은 행동은 진리를 알도록 이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