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숙명의 노예인가
참 이상한 일이다. 우리의 지나간 역사를 훑어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자유라든가 평등에 대한 생각을 찾아볼 수 없다.
양반은 태어나면서부터 전답과 노비를 물려받는다. 특히 이씨조선시대를 볼 것 같으면 노비는 평생 노비이고 그 자식도 노비이다. 그래도 그러려니 하고 잘들 살아왔다.
남자와 여자의 차별도 마찬가지이다. 남자는 하늘이요, 여자는 땅이었다. 남자가 이혼 당하는 것은 보기 드물고 이혼 당하는 쪽은 언제나 거의 여자였다. 이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박당하고 쫓겨나는 숙명을 감수해야 하는 편은 항상 여자였다.
소위 칠출삼불거라는 명분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여자들을 억압하였다. 시부모를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것, 자식 없는 것, 음란, 질투, 고질병, 말 많은 것, 절도 등은 시가로부터 여자들이 쫓겨나는 일곱 가지 조건이었다.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
그래도 여전히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그리고 남녀의 차별이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고 우리의 내면 의식에 남아 있는 것을 본다는 것은 그다지 반가운 일일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거야. 사람이란 다 자기 운명을 타고나는 법이지. 제아무리 뛰어 보아야 벼룩이요, 부처님 손안의 손오공이지 별수 있나?"
한편으로 삶의 숙명을 비난하고 한탄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숙명에 외경심을 가지고 복종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왜 우리에게는 인간이 자유롭다는 생각이 없었을까?
왜 우리는 인간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우리는 인간의 자발성에 눈뜨지 못했던 것일까?
왜 우리는 숙명의 쇠사슬을 과감히 끊어버릴 수 없었을까?
우선 우리는 인간과 자연의 합일사상 속에 젖어서 살아왔기 때문에 삶을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거역하여 산을 허물고 바다를 메운다는 것은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인간의 자발성을 깨달을 여기가 없었을 것이다.
나무는 나무이고 풀은 풀이듯이 양반은 양반이고 노비는 노비였다.
다음으로, 유교의 형식주의로부터 인간의 평등이 도외시되었다. 유교에서 하늘은 완전한 것이고 사람은 불완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성인과 군자는 하늘의 이치를 깨달은 완전한 인간에 속한다.
핏줄로 대를 잇는 임금과 양반출신 신하 그리고 평민과 노비는 각각 다른 인간일 수밖에 없다. 인간차별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다.
공자나 맹자 또는 율곡이나 퇴계가 생각한 성인과 군자는 분명히 남자였을 것이다. 만일 공자에게 여자도 성인이나 군자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면 그의 대답은 뻔했을 것이다.
인간차별은 부차적으로 남존여비라는 남녀차별을 마련하였다. 지금도 대다수의 남자들 그리고 상당수의 여자들이 "여자는 남자에게 절대로 순종하고 복종하여야 한다"는 숙명의 소리를 명한 눈으로 매일같이 염불을 왼다.
한심한 일이다.
윤기나는 입술로 인간평등, 남녀평등을 지껄이지만 인간차별, 남녀차별은 암세포보다 더 무섭게 우리의 대뇌에 요지부동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만 그럴까? 나는 대통령이라는 말만 들으면 공연히 주눅이 들고 절대권을 휘두르는 왕을 연상한다. 우리 나라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으면 몸이 오그라들고 무서운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배우 출신 미국 대통령은 별 뜻도 없지만 친근한 느낌이 든다. 서독의 전 대통령과 한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을 때도 그가 왕이라기보다는 너그러운 할아버지로 보였다.
내 정신상태가 뭔가 잘못된 탓일까?
대학생 때였다. 근엄한 대학원장이 있었다. 사람들이 감히 접근하기 힘들었다. 어느 날 대변이 급했던 나는 교직원용 화장실 문을 냅다 열어 젖혔다. 대학원장이 일을 보고 있었다. 기막힌 몰골이었다.
언젠가 주민등록증을 분실하여 신고하러 동네 파출소에 들렀다. 파출소장인 듯한 친구가 신문을 좍 펴들고 두 다리는 책상 위에 아주 편한 자세로 올려놓고 있었다.
"주민증 분실신고 차 들렀습니다. 처리를 부탁합니다."
그 친구는 신문에 가린 얼굴을 내밀 생각도 하지 않고
"김순경, 이거 알아서 처리해."
그 친구는 자기가 사또라도 되는 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숙명의 노예인가?
참 많이 변해가고 있다.
사람은 너나 나나 대개 비슷비슷하다. 석가나 공자나, 너나 나나 비슷비슷하다. 사람은 다 슬픔에 울고 기쁨에 웃으며 소망과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소중한 삶을 가꾸고자 하는 면에서는 평등하다.
우리는 높은 사람의 인격은 고귀하고 낮은 사람의 인격은 하찮다는 숙명 속에서 살아왔다. 또 남자의 인격이 여자의 인격보다 높다는 숙명 속에서 살아왔다.
우물안 개구리는 자기가 개구리가 아니고 왕이라고 착각한다. 개구리가 우물을 빠져나와 뒷다리가 땡길 정도로 들과 산을 헤매고 나면 그는 자신이 개구리라는 것을 알 것이다.
백성이 대통령을 사랑하고 대통령이 백성을 존경한다면 그런 사회는 열린 사회이다. 사원이 사장을 감싸고 사장이 사원을 신뢰하면 그런 회사는 앞길이 탄탄하다. 남편과 아내가 하늘을 버리고 서로 땅이 된다면 그런 가정은 큰소리가 적다.
우리는 태어나고 죽기에 숙명의 노예이지만 내면의 자유와 자발성에 의하여 자연을 변형시키며 인간의 평등을 실현시킬 수 있으므로 숙명의 주인이기도 하다.
숙명을 타파하고 극복할 줄 아는 자만이 삶의 진한 뜻을 맛볼 권리가 있다.
@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