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법륜 스님】부처님 생존 시 사회는 약육강식이 일반화되어 그것이 합리화 되던 사회였습니다. 기독교에서도 하느님이 인간을 인간을 창조했기에 인간이 다른 동물을 잡아먹고 관리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부여한 당연한 권리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을 죽이고 먹는 것을 당연시 하고 정당화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브라만 계층이 노예는 마음대로 관리하는 것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처럼 일상화되고 합리화하던 시대였습니다. 누구나 관심이 약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아니라 어떻게 내가 경쟁과 투쟁에서 승리할 것인가가 주된 관심이었습니다.
부처님이 새가 벌레를 쪼아 먹는 걸 보고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은 한 소년으로서 ‘왜, 하나가 살려면 하나가 죽어야만 하나가 살 수 있는가?“ 새 이야기 한 가지만 아니라 세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 왕궁이 풍요롭게 사는 것은 농부들이 힘들고 비참한 고통 때문이다.
둘 때, 농부가 편리하게 사는 것은 소의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새의 경우처럼 하나가 살려면 하나가 죽어야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 함께 살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다 같이 행복한 길은 없는가? 이것이 문제의식입니다.
당시 지배와 피지배 계급이 분명하던 시대에 피지배 계급의 삶이 문제였다. 노예들은 병들면 갖다 버리고, 늙으면 갖다 버리고, 죽으면 갖다 버리는 그것이 고통 이였지요. 당시 사회가 약자들이 받는 고통을 당연시 하고 합리화는 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새가 벌레를 쪼아 먹는 것으로 어릴 때 문제의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연기적 세계화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자연 생태계에서 먹히고 먹는 것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다는 겁니다. 그것은 적자생존이니 약육강식이니 하는 관점을 본 것은 개체가 개별적으로 존재라는 관점에서는 그럴 수 있든 겁니다.
그런데 연기된 존재, 서로 연관된 존재일 때는 다릅니다. 연기된 존재, 서로 연관된 존재는 그렇게 볼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생태 연못에 개구리가 살고 있는데 개구리의 먹이는 물벌레이고 개구리의 천적은 뱀이 있습니다. 물벌레는 개체수가 아주 많이 있어요. 그런데 개구리에게 큰 문제는 뱀이에요. 연못에 뱀은 개구리는 번영을 구가할 수 없어요. 뱀 때문에 개구리는 일정 수 이상 번식을 못하고 늘 불안에 떨어야 합니다.
만약 개구리가 사람에게 요청을 하여 뱀을 다 잡아 없애서 뱀이 사라지면 개구리가 급속도로 번식합니다. 그러면 개구리에게는 몇 개월 또는 몇 년 동안은 천국같이 지낼 것입니다. 뱀이 없어지면 개구리 개체 수가 늘어나면서 연못의 물벌레가 적어집니다. 결국 개구리는 먹을 것이 없어 몰살하게 됩니다.
연기적으로 볼 때는 개구리에게는 물벌레뿐만 아니라 뱀도 필요한 겁니다. 뱀이 있음으로 개구리가 일정하게 존재하고 물벌레도 존재할 수 있지요. 적자생존도 아니고 약육강식도 아니고 연기적으로 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생태계에 관한 고민이 사라졌다.
출처 : 법륜 스님 즉문즉설
첫댓글 🙏이 내용 이해가.
천천히 읽어보니 뜻이 좀….
뱀이 아니라 개구리라?
만약 개구리가 사람에게 요청을 하여 개구리를 다 잡아 개구리가 사라지면 개구리가 급속도로 번식합니다. 그러면 개구리에게는 몇 개월 또는 몇 년 동안은 천국같이 지낼 것입니다.
🙏
고맙습니다. 뱀을 다 잡아 없애서 뱀이 사라지면 개구리가 급속도로 번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