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가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준다고 울었다.
절편같은 반달이 싸리문 우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
이쁜이 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객의 나이 불혹을 넘어 지천명이 바로 코앞이건만 여전히 궁기 지르르한 촌티를 벗지 못하고 오뉴월 보리밥 쉬어 터지는 냄새가 등천을 하는 촌보리 동지의 근기가 이제는 천석고황이 되어 화타와 편작의 술이 소용없게 되었더라.
그래서인지 하고 많은 시들 중에 놋양푼의 수수엿이니 절편같은 반달이니 하는 노천명님의 시가 여전히 가슴을 쏴아아 아리게 한다.
선머슴같은 딸년들에게 추석에 생각나는 좋은 시가 있다며 분위기 잡고 청승을 떠나 목가적 시어의 향기가 그들에겐 도대체가 요지부동인 모양이다.
비듬이 허연 뒤통수를 긁적이며 돌아 서고 말았다.
그러나 싸리문도 성황당 나귀도 보긴 어렵지만 여하튼 추석은 추석이다.
자전거에 입문하면서 꼭 해보고 싶은겄 세가지가 있었다.
첬째 임도의 제왕이란 가리왕산에서 실컷 뒹굴고 노는겄,
둘째 전국의 명산을 빙그르르 한바퀴 도는것,
글구 마지막으로 전국 일주,,
가리왕산은 언제가 되던 마눌과 딸년들의 성화와 지청구가 없는때 감행하기로 했고 전국 일주는 나중 회사에서 쫓겨나 연금으로 밥줄을 이어갈 때 마눌과 같이 하기로 작심해었다.
바람난 여편네 속곳 마를 새 없더라고 주야장천 산으로 잔차로 미쳐 날뛰니 집안의 대소사는 자연 마눌의 차지가 되어 가장으로서 이래저래 면목이 서지 않아 일테면 보은 차원의 계획이다.
전국 명산 일주는 산위의 산과 산 아래의 산이 어떻게 다른지 보고 싶어 제일 먼저 지리산 일주부터 생각했다.
그래 한달 전부터 지도를 펴놓고 산청-하동-구례-남원-함양 -산청을 잇는 국도와 지방도를 몽당 연필에 침 묻혀가며 줄을 그어가니 제법 구색이 갖추어진다.
한가위 보름달이 여전히 싱싱한 새벽,
산청 읍내 골목 한켠에서 대장정의 페달링을 시작한다.
윈드재킷으로 중무장을 하노라 하였건만 새벽의 한기는 매운 시어미 잔소리만큼이나 모질게 품을 파고든다.
밤머리재에 걸려 있던 다님은 웅석봉을 지나 신안에 이를 때까지 줄곧 객의 길을 밝혀 주더니 어느덧 동이 터오자 천왕봉 자락으로 몸을 숨긴다.
적벽산을 돌아 우리나라 면직 공업을 발아 시킨 문익점 선생의 목면시배유지에 이르자 해가 또오른다.
늘 중산리로만 향했던 창촌 삼거리에서 길다방(자판기) 커피 한잔으로 어한을 하고는 옥종으로 그대로 줄행랑을 놓는다.
제법 까칠한 까막고개를 넘어 선동 삼거리에 닿아 마눌이 챙겨준 정력대보탕 한첩을 어혈진 도깨비 개숫물 마시듯 벌컥거리고는 월횡리를 거쳐 돌고지재를 오른다.
올해는 태풍이 없어 반듯반듯 실한 벼포기가 보기에도 흐뭇하고 대처에서 추석을 쇠러온 젊은치들이 웃통을 거둬 부치고 굵은 팔뚝으로 부모님의 일손을 돕는 모습이 따뜻하고 정겨워 미소가 입술에 감돈다.
아늑한 시골의 풍경을 즐기며 돌고지재에 이른다.
아마 낙남정맥의 길목인듯 수많은 표지기가 나부끼는 고즈녁한 고갯마루에는 객 외에는
인적이 없어 한적하고 개운하다.
우편의 11번 지방도는 묵계리를 거쳐 청학동으로 이어지는 길이라 불현듯 청학동 길 욕심이 불일듯 한다.
돌고지재에서 횡천면까지는 거칠겄 없는 내리막길인지라 원 없이 달리고 또 달린다.
적량면 비파 삼거리의 짧은 된비알을 업힐하면 하동이 거짓말같이 나타난다.
허기가 명치 끝까지 차올라 아침을 할만한 식당을 찾아 보았으나 강원도 포수로 오리무중이다.
갑자기 오뉴월 장마에 토담 무너지디끼 삭신이 삶아 놓은 녹비끈으로 노골노골 해지는데 별수없이 빵과 우유로 허기를 속이려 작정하고 길가 가게에 들러니 주인 아주머니는 웬 복날 설잡은 개형국의 추레한 사내가 들어 서는걸 보고 흠칫한다.
동상전에 각좆 사러간 과부마냥 가장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혹 라면이래두 우찌 안되겠냐며 애원의 눈길을 호소하니 품새 만큼이나 넉넉한 인심의 아주머니는 선선히 응락한다.
라면 한끼에 천군만마의 힘을 얻어 힘차게 출발한다.
악양 삼거리를 지나면서 저멀리 시루봉과 회남재가 뚜렷하다.
통영의 부엉이님과 회남재를 내려서면서 마주친 아름다운 금낭화 풍경은 바로 어제인듯 아직도 생생하다.
화개에 돌아 들때까지 신선봉과 형제봉의 우람한 그림자가 천왕처럼 보비위하고 있어 나홀로의 힘든길을 외롭지 않게 한다.
길은 섬진강 자락을 끼고 구례로 너울너울 날아 오르는데 피아골과 왕시리봉 능선이 그림처럼 스쳐 지난다.
냉천 삼거리에서 17번 도로와 만나면서 길은 널찍한 대로로 변한다.
그러나 수많은 귀성 차량들이 뿜어내는 매연에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
용이 개천에 떨어지면 깔따구가 시비를 건다더니 갓길로 가는데도 바로 옆을 쌩하고 겁을 주며 달리는 그네들의 심사를 알길이 없다.
혹간 손을 흔들며 기운을 부추기는 고마운 분들도 없지는 않으나 아직은 성숙한 교통 문화가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용방 사거리를 지나면서 여름 휴가때 성삼재를 올랐던 기억이 뭉싯 피어 오른다.
곧추선 천은사 골과 삼선교를 지나 펼쳐지는 된비알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기억의 한 장으로 갈무리 되었다.
쑤막제를 벌벌거리며 지나 휴게소에 들러 식사를 물으니 역시 오늘은 장사를 하지 않는다며 매정하게 방색한다.
별수없이 정력대보탕 한첩을 전가의 보도처럼 뽑아 들이키고는 기운을 회복하려하나 역부족이다.
오뉴월 땡볕에 늘어진 쇠불알처럼 파김치가 될무렵 오른편으로 고리봉에서 만복대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이 장중하게 다가선다.
아,, 참으로 좋을시고,,,
산수유가 피었을때 다시 오기로 혼자 작정을 하고 밤재 긴긴 길을 오른다.
염천에 학질 오른 몰골로 겨우 밤재를 넘어서니 남원시 주천면이 반긴다.
여기서 또 갈등이 생긴다.
운봉으로 향하는 길은 두갈래로 갈리는데 이백면을 지나 여원재를 넘는길은 지리산과 좀 떨어지는 폐단이 있으나 길이 완만하고 육모정을 지나 고기리로 오르는 구룡골 길은 주지하다시피 궁궁을을 된비알이 이십리나 이어지는 지리산 둘레길 최고의 난코스이다.
주천의 자그만 식당에서 자장면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비온날 소금장수 생각을 이리저리 채어 보았으나 지리산을 벗어나는 편한길은 자존심이 허락을 않아 결국 구룡골로 핸들을 꺾고만다.
육모정을 지나면서 길은 된비알로 바뀌어 땀이 철대방죽으로 흐르는데 도대체가 이놈의 잔차가 땅에 백히기라도 한건지 좀체 앞으로 가려하질 않는다.
가자니 태산이요, 돌아서자니 숭산이더라고 처음으로 괜히 왔다는 후회가 물밀듯 밀려온다.
창피하지만 끌바를 감수하면서 어렵게 고기 삼거리에 닿는데 무심결에 뒷타이어를 눌러보니
어랍쇼!! 우찌 이런일이...
실펑크가 난줄도 모르고 어째 자전거가 안 나간다 생각하면서도 단순히 체력이 달려 그런줄 알았으니,, 에라이!!
그늘에 앉아 예비 튜브 교체하고는 다시 달리니 인월까지 한번의 페달링에 절로 미끄러져 간다.
실상사도 지나고 의탄교도 용유담도 꿈결처럼 지나 유림에 닿는다.
하이고 이리 잘나가는 잔차를 똥차라고 무시하고 욕을 퍼부었으니 쯧쯧,,
산청으로 향하는 완만한 툽뒤재를 슬렁슬렁 올라 긴 다운힐 한번에 산청에 다시 떨어진다.
새벽의 다님은 어디가고 웅석봉 언저리엔 노을이 곱게 곱게 깔려있다.
노을속을 가르는 까마귀의 긴 날개짓에 지리산 자락의 어느골에 파아란 실연기가 가늘게 흔들리며 솟아 오르고 있었다.
아, 참으로 긴하루였다.
^^달린거리,,, 181.6키로(5만분의 1지도 참조)
^^달린시간,,, 12시간 2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