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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道聽塗說)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곧 그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뜻으로, ①거리에서 들은 것을 남에게 아는 체하며 말함 ②깊이 생각 않고 예사(例事)로 듣고 말함 ③길거리에 떠돌아 다니는 뜬 소문을 이르는 말이다.
道 : 길 도(辶/9)
聽 : 들을 청(耳/16)
塗 : 길 도(土/10)
說 : 말씀 설(言/7)
(유의어)
가담항설(街談巷說)
유언비어(流言蜚語)
신문에 오피니언 란을 보면 사설과 함께 ’도청도설‘이 실린다. 최고의 필력을 자랑하는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전통의 짧은 칼럼이지만 그냥 그 말의 뜻을 모르고 지나치는 젊은 독자도 제법 많을 것이다.
여기에는 한글 전용 이후로 ‘道聽塗說‘에서 ’도청도설‘로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道聽塗說은 길에서 듣고(道聽) 길에서 말한다(塗說)는 뜻으로, 길거리에 퍼져 돌아다니는 뜬소문을 뜻한다.
뜻으로만 보면 믿을 수 없는 뜬소문이지만 칼럼은 한 곳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자재(自由自在)의 주제로 재미있게 펼쳐나간다는 의미가 있어 많이 읽힌다.
아무 근거 없이 널리 퍼진 소문을 뜻하는 유언비어(流言蜚語)를 유포하면 벌을 받지만 이것은 그 정도는 아닌 것이다.
道와 途는 같은 길이지만 道가 넓은 길(路는 더 넓은 길)이고 또 사람이 나아갈 목표, 또는 도덕이라는 의미까지 넓혀 쓸 수 있는 것이 다르다.
이 말이 성어가 된 유래는 깊다. 먼저 공자(孔子)의 논어(論語)에 나온다. 양화편(良貨篇)에 ‘도청이도설 덕지기야(道聽而途說 德之棄也)’라 해서 길가에서 얻어들은 헛소문을 길가에서 퍼뜨리는 것은 자신의 덕을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선인들의 좋은 말씀은 마음에 간직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덕을 쌓을 수 없다는 교훈이다.
그 후 송(宋)나라 학자 형병(邢昺)은 여기에 ‘길에서 얻어들은 소문을 길에서 퍼뜨리게 되면 허튼 소리가 많게 마련이다’고 주석을 달았다.
후한(後漢) 시대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도 예문지(藝文志)에 '대체로 소설이란 것의 기원은 임금이 하층민의 풍속을 알기 위해 하급 관리에게 명하여 서술토록 한 데서 비롯되었다. 즉 세상 이야기라든가 길거리의 뜬소문은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道聽塗說)' 무리가 지어낸 것이다'라며 이 성어를 쓰고 있다.
도청도설(道聽塗說)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해 버린다는 뜻으로, 좋은 말을 듣고는 가슴 속에 간직하지 않고 그대로 길에서 흘려버리는 어리석음을 지적한 말이다.
길(道)에서 들은 일을 길(道)에서 이야기한다는 뜻으로, 무슨 말을 들으면 그것을 깊이 생각지 않고 다시 옮기는 경박(輕薄)한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또한 천박(淺薄)한 사람은 좋은 말을 들어도 그것을 깊이 자기의 것으로 간직하지 못한다는 데도 비유된다.
공자(孔子)의 논어(論語) 양화편(陽貨篇)에 나오는 말로 “길에서 듣고 길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덕을 버리는 짓이다.(道聽而塗說 德之棄也)”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비록 좋은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스스로 그 덕(德)을 버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선인(先人)들의 훌륭한 말과 행실을 많이 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기의 덕을 기르는데 쓰지 못하고, 길에서 듣고 그것을 다시 길에서 흘려버린다면 스스로 덕을 버리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자신의 덕을 쌓는 일은 이렇게 길고 깊은 공(恭)을 들여야 하는 것이라는 교훈이다.
후한시대(後漢時代), 반고(班固)가 엮은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대체로 소설(小說)이란 것의 기원은 임금이 하층민의 풍속을 알기 위해 하급 관리에게 명하여 서술토록 한 데서 비롯되었다. 즉 세상 이야기라든가 길거리의 뜬소문은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道聽塗說) 무리가 지어낸 것이다.”
소설이란 말은 이런 의미에서 원래는 패관(稗官; 하급 관리) 소설이라고 일컬었으나 나중에 그냥 소설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순자(荀子) 권학편(權學篇)에는 다언(多言)을 이렇게 훈계하고 있다.
소인배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 곧바로 입으로 흘러나오고(口耳之學), 마음속에 새겨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귀와 입 사이는 불과 네 치(口耳四寸), 이처럼 짧은 거리를 지날 뿐이라면 어찌 일곱 자(七尺) 몸을 훌륭하게 닦을 수 있겠는가.
옛날에 학문을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닦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요즈음 사람들은 배운 것을 금방 다른 사람에게 고하고 자기를 위해 마음속에 새겨 두려고 하지 않는다.
군자의 학문은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하지만 소인배의 학문은 인간을 못쓰게 망쳐 버린다. 그래서 묻지 않은 말도 입밖에 낸다.
이것을 잔소리라 하며, 하나를 묻는데 둘을 말하는 것을 수다(饒舌)라고 한다. 둘 다 잘못되어 있다. 참된 군자는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
(荀子/權學篇)
어느 세상에도 오른쪽 귀로 들은 것을 왼쪽 사람에게 털어놓는 수다쟁이 정보통이 많다. 더구나 그 정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사이에 점점 꼬리를 끌게 마련이다. 이런 무리는 해가 있을 뿐이라며 공자(孔子), 순자(荀子)는 경계하고 있다.
실언(失言)이란 말은 우리가 흔하게 쓰는 말이다. 무심중에 하지 않을 말을 한 것도 실언(失言)이고,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실례되는 말을 한 것도 실언이다. 결국 말을 안해야 할 것을 해버린 것이 실언이다.
그러나 이 실언에는 사람에 따라 그 표준과 정도가 각각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스스로 실언이라고 생각지 않는 것도 남이 볼 때는 실언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실언이라고 생각되는 것도 남은 실언인 줄 모르기도 한다. 각 개인의 개성과 생활관과 인생관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다.
논어(論語)제15편 위령공편(衛靈公篇) 제7장에 공자(孔子)는 이렇게 말했다. “더불어 말할 수 있는 사람과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수 없는 사람과 말을 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도 잃지 않고, 또 말도 잃지 않는다.”
可與言而不如之言, 失人; 不可與言而之言, 失言. 智者不失人, 亦不失言.
인생이나 생활, 처세(處世)에도 매우 지혜로운 말이요 얼마나 말이 중요하고 어려운가를 알 수 있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아까운 사람을 놓치게 되고, 말을 함으로써 공연한 헛소리를 한 결과가 되는 일이 없어야만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실인(失人)을 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실언(失言)만 조심하면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도자가 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조그만 마을의 지도자가 되는 일도 어려운데, 큰 단체나 큰 고을의 지도자가 되기는 더 어렵고, 큰 기관이나 큰 세상 더 나아가 국가적 지도자나 국제적 지도자가 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떤 단위의 지도자라도 지도자가 되려면 일단 실인(失人)을 하거나 실언(失言)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실인(失人)이란 민심을 잃는다는 뜻이 있고, 실언(失言)이란 해서는 안될 말을 함이라고 설명합니다. 지도자란 의당 훌륭한 말씀만을 해서, 지도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모범으로 삼을 말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지도자라는 분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제대로 백성들을 계도(啓導)해주고 이끌어 주는 이야기보다는 입만 열면 실언(失言)만 해서 끝내는 실인(失人), 즉 인심(人心)까지 잃고마는 지경에 이르고 있으니 어쩐 일일까요.
옛날부터 ‘대장부의 말 한 마디는 천금처럼 무겁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천금(千金)처럼 무겁게 말은 못할지언정, 일금(一金)의 무게만큼이라도 신중하게 말을 해야지,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시정잡배(市井雜輩)보다 더 낮은 수준의 말을 내뱉고 있다면 민심이 어디로 돌아가겠습니까.
정치지도자들, 사회의 지도자들, 기업의 지도자들, 마을의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도자들은 민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실언(失言)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도청도설(道聽塗說)
공자에게 말은 군자 소인을 가르는 가늠자다. 군자가 말을 더듬듯이 하는 건 언변이 서툴러서가 아니다. 그건 행함이 말을 따르지 못할까 염려한 때문이다.
소인은 말을 앞세우고 군자는 행(行)을 앞세운다. 공자는 사람을 말로 취하고 용모로 취하면 실수가 잦다고 했다.
공자는 논어 양화편에서 말을 가볍게 하는 세태를 나무란다.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 것은 덕을 버리는 짓이다(道聽而塗說 德之棄也).”
성악설을 주창한 순자 역시 순자 권학편에서 말의 가벼움을 신랄히 꼬집는다. “소인배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 입으로 바로 나올 뿐 마음속에 새겨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귀와 입 사이는 불과 네 치밖에 안 되는데 배움이 이리 짧은 거리를 지나갈 뿐이면 어찌 일곱 자 몸을 아름답게 닦을 수 있겠는가.”
도청도설(道聽塗說)은 길에서 들은 말(道聽)을 길에 흘려 버린다(塗說)는 뜻이다. 근거 없는 허황한 소문을 이리저리 퍼뜨리고 다니거나 교훈이 될 만한 말을 깊이 새기지 않고 바로 옮기는 경박한 태도를 비유한다.
도(塗)는 진흙이란 뜻이니 가슴에 담아둬야 할 말을 바로 진흙에 흩뿌림을 의미한다. 길에서 들은 것을 남에게 아는 체하며 말하는 것을 꼬집을 때도 쓰인다.
순자는 묻지 않은 말을 입 밖에 내는 것을 '잔소리'라 하고, 하나를 묻는데 둘을 말하는 것을 '수다'라 했다. 공자는 남의 말을 중간에 끊는 것을 '조급'이라 하고, 남의 말이 끝났는데도 자기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숨김'이라 했다.
그리보면 쉬운 듯하면서 어려운 게 말이다. 험담을 줄이고 덕담은 늘리고, 말보다는 실천을 앞세워라. 진짜 당신은 말이 아니라 행함이다. 말은 함부로 보태지 마라.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 道(길 도)는 ❶회의문자로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首(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首(수)는 사람 머리와 같이 사물의 끝에 있는 것, 처음, 근거란 뜻을 나타낸다. 道(도)는 한 줄로 통하는 큰 길이다. 사람을 목적지에 인도하는 것도 길이지만 또 도덕적인 근거도 길이다. ❷회의문자로 道자는 ‘길’이나 ‘도리’, ‘이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道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首(머리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首자는 ‘머리’라는 뜻이 있다. 道자는 길을 뜻하는 辶자에 首자를 결합한 것으로 본래의 의미는 ‘인도하다’나 ‘이끌다’였다. 그러나 후에 ‘사람이 가야 할 올바른 바른길’이라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도리’나 ‘이치’를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寸(마디 촌)자를 더한 導(이끌 도)자가 ‘인도하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道(도)는 (1)우리나라의 지방 행정 구역의 하나. 예전에 8도이던 것을 고종(高宗) 33(1896)년에 13도로 고쳤고, 다시 대한민국 수립 후에 14도로 정함 (2)우리나라의 최고 지방자치단체 (3)도청 (4)중국 당(唐) 대의 최고 행정 단위. 당초에는 10도로 나누어 각 도마다 안찰사(按察使)를 두었으며 734년에 15도로 늘려 관찰사(觀察使)를 장관(長官)으로 두었음 (5)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6)종교 상으로, 교의에 깊이 통하여 알게 되는 이치, 또는 깊이 깨달은 지경 (7)기예(技藝)나 방술(方術), 무술(武術) 등에서의 방법 (8)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길 ②도리(道理), 이치(理致) ③재주 ④방법(方法), 술책(術策) ⑤근원(根源), 바탕 ⑥기능(機能), 작용(作用) ⑦주의(主義), 사상(思想) ⑧제도(制度) ⑨기예(技藝) ⑩불교(佛敎) ⑪승려(僧侶) ⑫도교(道敎) ⑬도사(道士) ⑭교설(敎說) ⑮~에서, ~부터 ⑯가다 ⑰가르치다 ⑱깨닫다 ⑲다스리다 ⑳따르다 ㉑말하다 ㉒완벽한 글 ㉓의존하다 ㉔이끌다, 인도하다 ㉕정통하다 ㉖통하다, 다니다 ㉗행정구역 단위 ㉘행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길 도(塗), 거리 항(巷), 거리 가(街), 네거리 구(衢), 길 로/노(路), 길 도(途), 길거리 규(逵), 모퉁이 우(隅)이다. 용례로는 사람이나 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든 길을 도로(道路),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길을 도리(道理),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도덕(道德), 일에 쓰이는 여러 가지 연장을 도구(道具), 도를 닦는 사람을 도사(道士),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 상의 의리를 도의(道義), 일반에게 알리는 새로운 소식을 보도(報道), 차가 지나다니는 길을 궤도(軌道),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를 효도(孝道), 사람이 행해야 할 바른 길을 정도(正道), 차가 다니도록 마련한 길을 차도(車道), 도를 닦음을 수도(修道), 임금이 마땅히 행해야 될 일을 왕도(王道), 바르지 못한 도리를 사도(邪道), 사람이 다니는 길을 보도(步道), 일에 대한 방법과 도리를 방도(方道),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는다는 도불습유(道不拾遺),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곧 그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도청도설(道聽塗說), 길가에 있는 쓴 자두 열매라는 뜻으로 남에게 버림받음을 도방고리(道傍苦李), 먼 길을 달린 후에야 천리마의 재능을 안다는 도원지기(道遠知驥), 길에는 오르고 내림이 있다는 도유승강(道有升降) 등에 쓰인다.
▶️ 聽(들을 청)은 ❶형성문자로 聴(청)의 본자(本字), 听(청)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귀 이(耳; 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呈(정, 청)의 생략형과 나머지 글자 덕(세우다)으로 이루어졌다. 소리가 잘 들리도록 귀를 기울여 듣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聽자는 ‘듣다’나 ‘받아들인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聽자는 耳(귀 이)자와 壬(천간 임)자, 悳(덕 덕)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耳자에 두 개의 口(입 구)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누군가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후에 口자는 생략되었고 대신 눈과 심장을 그린 悳자와 壬자가 더해지면서 ‘보고(直) 듣고(耳) 느끼는(心) 사람(壬)’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획이 복잡해지기는 했지만, 단순히 ‘듣는다’라는 뜻에서 ‘듣고 용서하고 살핀다.’까지 모두 표현하려다 보니 이렇게 다양한 글자들이 결합한 것이다. 그래서 聽(청)은 ①듣다 ②들어 주다 ③판결하다 ④결정하다 ⑤다스리다 ⑥받아 들이다, 허락하다 ⑦용서하다 ⑧살피다, 밝히다 ⑨기다리다 ⑩따르다, 순종하다 ⑪엿보다, 염탐하다 ⑫맡기다 ⑬마을 ⑭관청(官廳) ⑮염탐꾼, 간첩(間諜) ⑯이목(耳目)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소리를 듣는 감각을 청각(聽覺), 방송이나 진술 따위를 자세히 들음을 청취(聽取), 강연이나 설교 등을 듣는 군중을 청중(聽衆), 퍼져 돌아다니는 소문 또는 설교나 연설 따위를 들음을 청문(聽聞), 강의를 들음을 청강(聽講), 귀로 소리를 듣는 힘을 청력(聽力), 명령을 들음을 청령(聽令), 송사를 자세히 듣고 심리함을 청리(聽理), 듣고 봄을 청시(聽視), 소리가 귀에 들리는 범위를 청야(聽野), 이르는 대로 잘 들어 좇음을 청종(聽從), 죄의 고백을 들음을 청죄(聽罪), 몰래 엿들음을 도청(盜聽), 눈으로 봄과 귀로 들음을 시청(視聽), 남의 말을 공경하는 태도로 듣는 것을 경청(敬聽), 주의를 기울여 열심히 들음을 경청(傾聽), 듣기 기관의 장애로 듣는 힘이 낮아지거나 없어진 상태를 난청(難聽), 듣지 아니함이나 청하는 것을 들어 주지 아니함을 불청(不聽), 참여하여 들음을 참청(參聽), 소문을 들음 또는 그 소문을 풍청(風聽), 공손한 태도로 조심성 있게 들음을 근청(謹聽), 아무리 귀를 기울이고 들어도 들리지 않음을 청이불문(聽而不聞), 듣고도 못 들은 체함을 청약불문(聽若不聞),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곧 그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뜻으로 거리에서 들은 것을 남에게 아는 체하며 말함을 도청도설(道聽塗說), 거문고 소리가 하도 묘하여 물고기마저 떠올라와 듣는다는 뜻으로 재주가 뛰어남을 칭찬하여 이르는 말을 유어출청(遊魚出聽),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는 뜻으로 눈치가 매우 빠른 사람을 비유하는 말을 이시목청(耳視目聽),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면 시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음을 겸청즉명(兼聽則明), 남의 말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귀담아 듣는 것을 이르는 말을 세이공청(洗耳恭聽),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남을 꾸짖지 않음을 내시반청(內視反聽), 여러 사람을 거쳐 전해 오는 말을 들음을 전지전청(傳之傳聽) 등에 쓰인다.
▶️ 塗(칠할 도/길 도)는 ❶형성문자로 途(도)와 동자(同字), 涂(도)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흙 토(土; 흙)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涂(도)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余로 이루어졌다. 본디는 涂(도)가 탁한 물, 곧 진흙을 나타내었는데, 江(강)의 이름인 涂(도)와 구별하기 위하여 土(토)를 더하여 만든 글자이다. ❷형성문자로 塗자는 '진흙'이나 '길', '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塗자는 土(흙 토)자와 涂(칠할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涂자는 본래 강 이름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지만, 강 주변에 진흙이 많았는지 후에 '진흙'을 뜻하게 되었다. 소전에서는 여기에 土자가 더해지면서 塗자가 흙과 관계된 글자임을 표현하게 되었다. 塗자에 '칠하다'라는 뜻이 있는 것은 고대에는 벽에 진흙을 발라 열기를 차단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塗(도)는 ①칠하다 ②칠하여 없애다 ③지우다 ④더럽히다 ⑤매흙질하다(벽 거죽에 매흙을 바르다) ⑥두텁고 많다 ⑦길 ⑧도로(道路) ⑨진흙 ⑩진흙탕 ⑪진창(땅이 질어서 질퍽질퍽하게 된 곳) ⑫괴로움 ⑬도랑(매우 좁고 작은 개울) ⑭섣달(음력 12월의 딴 이름) ⑮이슬이 많이 내리는 모양 ⑯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거리 항(巷), 모퉁이 우(隅), 길거리 규(逵), 길 도(道), 거리 가(街), 네거리 구(衢), 길 로/노(路)이다. 용례로는 종이를 벽 등에 바르는 일 도배(塗褙), 벽에 종이나 흙을 바름을 도벽(塗壁), 기름을 바름 도유(塗油), 약 같은 것을 바름 도포(塗布), 노상에서 듣고 이내 노상에서 말한다는 도설(塗說), 진흙탕에 빠지고 숯불에 탄다는 도탄(塗炭), 물건의 거죽에 칠하는 재료를 도료(塗料), 물체의 겉에 도료를 곱게 칠하거나 바름을 도장(塗裝), 어떤 물체를 칠 따위를 발라서 꾸미는 것을 도식(塗飾), 칠을 바름을 도칠(塗漆), 길 가의 풀처럼 짓밟힘을 도초(塗草), 살갗에 바르는 약제를 도약(塗藥), 약 같은 것을 바름을 도포(塗布), 문장의 글귀를 지우거나 다시 고쳐 쓰는 일을 도찬(塗竄), 바르고 문지름을 도찰(塗擦), 겉에 무엇을 발라서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함을 도말(塗抹), 권세를 잡을 수 있는 길을 세도(勢塗), 여행할 준비를 함을 계도(戒塗), 이겨서 뭉친 진흙을 단도(塼塗), 풀을 바른다는 뜻으로 근본적인 조처를 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얼버무려 넘김을 호도(糊塗), 장사 지낼 때 무덤 속의 네 벽에 대는 흰 종이를 도광지(塗壙紙), 도배하는데 쓰는 종이를 도배지(塗褙紙), 피부나 점막 등에 바르는 약을 도포제(塗布劑), 도배를 전문으로 삼는 사람을 도벽사(塗壁師), 물체의 겉을 곱게 칠하거나 바르는 일을 맡아하는 사람을 도장공(塗裝工), 진흙이나 숯불에 떨어진 것과 같은 고통이라는 뜻으로 가혹한 정치로 말미암아 백성이 심한 고통을 겪는 것을 이르는 말을 도탄지고(塗炭之苦), 간과 뇌장을 땅에 쏟아낸다는 뜻으로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돌보지 않고 힘을 다함을 일컫는 말을 간뇌도지(肝腦塗地),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곧 그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뜻으로 거리에서 들은 것을 남에게 아는 체하며 말함 또는 깊이 생각 않고 예사로 듣고 말함을 이르는 말을 도청도설(道聽塗說), 싸움에 한 번 패하여 땅에 떨어진다는 뜻으로 한 번 싸우다가 여지없이 패하여 다시 일어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일패도지(一敗塗地), 꼬리를 진흙 속에 묻고 끈다는 뜻으로 벼슬을 함으로써 속박되기보다는 가난하더라도 집에서 편안히 사는 편이 나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예미도중(曳尾塗中), 먼지를 밥이라 하고 진흙을 국이라 하는 어린아이의 소꿉장난이라는 뜻으로 실제로는 아무 소용없는 일을 이르는 말을 진반도갱(塵飯塗羹), 들보 위에 회를 바른다는 뜻으로 여자가 얼굴에 분을 많이 바른 것을 비웃는 말을 양상도회(梁上塗灰) 등에 쓰인다.
▶️ 說(말씀 설, 달랠 세, 기뻐할 열, 벗을 탈)은 ❶형성문자로 説은 통자(通字), 说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언(言; 말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兌(열)로 이루어졌다. 말(言)로 나타낸다는 뜻이 합(合)하여 말씀을 뜻한다. 八(팔)은 분산하는 일, 兄(형)은 입의 움직임을 일컬는다. 음(音)을 나타내는 兌(탈, 열)은 큰소리를 질러 화락함을 말하고, 나중에 기뻐함에는 悅(열)이라고 쓰고, 말로는 그것은 무엇, 이것은 무엇이라고 구별함을 說(설)이라고 쓴다. ❷회의문자로 說자는 ‘말씀’이나 ‘이야기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說자는 ‘말’과 관련된 여러 글자 중에서도 ‘이야기하다’라는 뜻이 가장 두드러져 있다. 說자의 구성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說자는 言자와 兌(기쁠 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兌자는 입을 벌려 웃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기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입을 벌린 모습을 그린 兌자에 言자가 결합한 說자는 누군가에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說자는 주로 ‘이야기하다’나 ‘서술하다’, ‘유세하다’와 같이 입을 벌려 크게 말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說(설, 세, 열, 탈)은 (1)일부(一部) 명사(名詞) 뒤에 붙여 풍설(風說)의 뜻을 나타내는 말 (2)견해(見解). 주의(主義). 학설(學說) (3)풍설(風說) (4)중국에서의 문체(文體)의 하나. 구체적인 사물에 관하여 자기의 의견을 서술(敍述)하면서 사물의 도리를 설명하는 문장임. 당(唐)나라의 한유(韓愈)가 지은 사설(師說), 송(宋)나라의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애련설(愛蓮說) 따위. 문학 작품으로서의 형식을 갖춘 것은 당(唐)나라 이후임 등의 뜻으로 말씀 설의 경우는①말씀(설) ②문체(文體)의 이름(설) ③제사(祭祀)의 이름(설) ④말하다(설) ⑤이야기하다(설) ⑥서술하다, 진술하다(설) 그리고 달랠 세의 경우는 ⓐ달래다(세) ⓑ유세하다(세) 그리고 기뻐할 열의 경우는 ㉠기뻐하다, 기쁘다(열) ㉡즐거워하다(열) ㉢즐기다(열) ㉣공경하다(열) ㉤따르다, 복종하다(열) ㉥아첨하다(열) ㉦쉽다, 용이하다(열) ㉧헤아리다(열) ㉨기쁨, 희열(喜悅)(열)㉩수(數)(열) 그리고 벗을 탈의 경우는 ㊀벗다(탈) ㊁놓아주다(탈) ㊂빼앗기다(탈) ㊃제거하다(탈) ㊄용서하다(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기뻐할 희(憙), 기뻐할 환(驩)이다. 용례로는 일정한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풀어 밝힘을 설명(說明), 여러 모로 설명하여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잘 알아듣게 함을 설득(說得), 진리가 될 만한 것을 밝혀 듣는 사람의 납득하도록 궤뚫어 말함을 설파(說破), 사실대로 내 놓고 모두 이야기 함을 설토(說吐), 알아듣도록 타일러 그렇게 여기게 함을 설복(說伏), 종교의 교리를 설명함을 설교(說敎), 문제나 물음을 냄을 설문(說問), 여러 사람 앞에서 체계를 세워 자기의 주장을 말함을 연설(演說), 남을 저주하는 말을 욕설(辱說), 예전부터 전하여 오는 이야기를 전설(傳說), 뜻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함 또는 그 책을 해설(解說), 어떤 주의나 주장에 반대되는 이론을 역설(逆說), 자기의 의도를 힘주어 말함을 역설(力說), 학문적인 문제에 대해 학자가 내세우는 주장이나 이론을 학설(學說), 사물의 이치를 들어 의견이나 주장을 논하거나 설명함 또는 그 글을 논설(論說), 실상이 없이 떠돌아 다니는 말을 풍설(風說), 망령된 생각이나 주장을 망설(妄說), 서로 주고 받는 이야기를 담설(談說), 터무니없는 헛 소문을 낭설(浪說), 능란한 말솜씨로 각지를 유세하고 다니는 사람을 세객(說客),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자기의 의견을 설명하여서 그것을 채택하여 주기를 바람을 유세(游說), 서로 변론을 주고받으며 옥신각신 함을 설왕설래(說往說來), 달콤한 말과 이로운 이야기라는 뜻으로 남의 비위에 맞도록 꾸민 달콤한 말과 이로운 조건을 내세워 남을 꾀하는 말을 감언이설(甘言利說), 길거리나 세상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를 이르는 말을 가담항설(街談巷說), 말이 하나의 일관된 논의로 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어불성설(語不成說),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곧 그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말을 도청도설(道聽塗說),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하는 말을 불역열호(不亦說乎),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까지 찾아 온다는 말을 근자열원자래(近者說遠者來)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