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9월 1일 성령강림절 후 열다섯째 주일 예배
성경: 계21:22~22:9절 (신422)
제목: 새 예루살렘(2)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린양의 아내(성도들인 우리)인 새 예루살렘(21:9-21)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새 예루살렘의 영광(21:22-22:5)에 대하여 계속 살펴보고, 21:9-22:5절의 결론이면서 동시에 요한계시록의 결론(22:10-21)을 연결하는 이행 단락인 22:6-9절을 살펴보아 ‘우리의 장래 영광’을 확실히 알기를 원합니다.
1. 새 예루살렘의 내적본질에 대한 설명입니다(22-22:5).
요한은 그 성에 없고 있을 것들을 지적함으로써 그 성의 내적본질을 드러냅니다.
첫째로 물리적으로 건축된 성전이 없습니다(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옛 창조 세계에서 죄로 인한 저주받은 땅과 구별되는 ‘성전(나오스, 지성소)’만이 하나님이 온전하게 거하신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신천지인 새 예루살렘에는 그런 성전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이는 새 예루살렘이 성전이며, 더 나아가 신천지가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린양의 죽음(하나님의 최후 심판)으로 창조(율법) 언약이 다 이루어져서 새 언약에 따라 ‘성전 자체이신 주 하나님과 어린양’이 하나님의 재창조인 신천지인 새 예루살렘에 영원히 함께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어린양의 속량으로 성령님을 통하여 그와 연합한 우리(성도)가 이미 성전입니다(고전3:16, 엡2:21). 고전6:19-20절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과 교회가 성전이니, 예배를 드리는 건물이나 장소를 ‘성전’으로 부르지 마시고, ‘예배당이나 교회당’으로 부르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해와 달의 빛이 필요 없습니다(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이것은 사60:19절의 성취입니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성도 여러분, 첫 창조의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와 달 등은 궁극적인 실재가 아니라, 새 언약에 근거한 새 창조인 신천지, 즉 새 예루살렘에 영원히 함께하실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을 가리키는 그림자입니다. 즉 새 창조의 신천지에서 해와 달의 빛까지도 정리해고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조건적인 창조(율법) 언약의 첫 창조는 ‘유예(시험) 적(provisional)인 상태’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셋째로 영원히 닫힌 성문들이 없습니다(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왜냐하면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여기서 ‘밤이 없는’ 이유는 해와 달의 빛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새 예루살렘에 하나님과 어린양의 임재의 강력한 영광(빛)이 있기 때문입니다(23). 이같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으로 새 예루살렘에 더는 악이나 위험이 없기에 그 성문들을 닫을 필요가 영원히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24절과 26절입니다. “24)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6)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여기서 ‘만국’이나 ‘땅의 왕들’(24)과 ‘사람들’(26)은 어린양의 피로 구속받아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유대인들도 포함)을 의미합니다. ‘자기 영광’(24)과 ‘만국의 영광과 존귀’(26)는 그들이 소유한 ‘그 빛(하나님의 영광)’(24)으로 인한 하나님과 어린양에 대한 그들의 옳은 행실과 찬송(경배)을 의미합니다.
넷째로 그 성에 있을 수 없는 자들과 있을 수 있는 자들입니다(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그 성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은 8절에 언급된 자들과 동일한 집단입니다. 그 성이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어린양의 피로 속량(죄 사함)을 받아 의인이기에 거룩한 성전인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입니다. 여기서 ‘어린양의 생명책’은 요한계시록에서 계속 반복합니다(3:5, 17:8, 20:12, 15). 13:8절입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이것은 새 예루살렘(성도들)은 창세 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는 것입니다. 이는 창세 전에 어린양의 속량으로 죄 사함의 구원받을 자로 그 안에서 선택(예정)되었기 때문입니다(엡1:4-5).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의 죽음을 통한 은혜의 구원으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이며, 은혜의 영광(엡1:6)을 소유할 것을 확실히 믿으시길 바랍니다.
다섯째로 생명수의 강들이 있습니다(1).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이것은 슥14:8절과 겔47:1-9절과 욜3:18절의 예언의 성취이며, 요4:14절과 7:38절의 예수님 약속의 성취인데, 모두 창2:10절을 배경으로 합니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그러므로 신천지인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회복된 에덴’입니다.
여섯째로 생명 나무들이 있습니다(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와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여기서 ‘길’은 집합적 단수로 모든 길이며, ‘생명 나무’도 집합적 단수로 생명 나무들인데,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 그들에게 금지되었던 생명 나무입니다(창3:22-24).
이것(2)도 겔47:12절의 성취이며, ‘에덴의 재창조’를 의미합니다(창2:9).
생명 나무가 문자적으로 달마다 그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아니라, 새 예루살렘(성도들)의 영생의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첫 창조의 세계는 열매를 맺는 것이 해와 달에 의존하지만, 새 예루살렘에는 해와 달이 없기 때문입니다(21:23). 그리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에서 치료가 계속 필요할까요? 아닙니다. 이는 새 예루살렘에는 모든 저주(3)인 질병이나 상해나 죽음 등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곱째로 다시 모든 저주와 밤과 등불과 햇빛이 없을 것입니다(3-5). “다시 저주가 없으며….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이것은 21:23절과 25절의 반복입니다.
여기서 ‘다시 모든 저주가 없으며’(3)과 ‘다시 밤이 없겠고’(5)는 옛 창조의 세계에는 죄로 인한 저주와 밤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이것도 조건적인 창조(율법) 언약의 옛 창조의 ‘유예(시험) 적인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새 창조로 신천지인 새 예루살렘(회복된 에덴)은 어린양의 피로 속량(죄 사함)을 받았기에(엡1:7), 그의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았기에(롬1:17), 영원한 언약(사55:3)인 새 언약에 따라 주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영원히 비치기 때문에 이것들이 없을 것입니다. 롬8:1절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현재와 새 예루살렘에서도 모든 저주가 영원히 없을 것입니다.
여덟째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와 그의 제사장들과 왕들이 있을 것입니다(3-5).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그 성에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영원히 있기에 그 자체가 ‘거룩한 성’, 곧 ‘성전’입니다. 거기에는 어린양의 피로 속량함을 받은 ‘그의 종들’인 그의 언약 백성들이 ‘그의 제사장’(1:5-6, 5:9-10)으로 그를 섬길 것이며, 그의 얼굴을 볼 것이며,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을 것이며, ‘왕으로서’(1:5-6, 5:9-10) 영원히 왕 노릇 할 것입니다.
이것도 조건적인 창조(율법) 언약의 옛 창조의 ‘유예(시험) 적인 상태’와 ‘에덴의 상승된 회복’을 의미합니다. 이는 첫 창조의 에덴동산에 비하여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원한 임재(영광)와 그의 종들의 제사장과 왕 노릇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즉 조건적인 창조(율법) 언약의 첫 창조에 근거한 에덴동산과 달리 새 예루살렘은 어린양의 피로 창조(율법) 언약을 다 이루시고 세우신 새 언약, 즉 영원한 언약에 근거한 재창조의 영원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조건적인 창조(율법) 언약의 첫 창조의 에덴동산은 아담이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며, ‘경작하며 지키는(이 동사들은 제사장이 성막을 섬기는 것에 사용됨)’(창2:15) 장소로서 하나님의 첫 성전이었으며, 아담은 섬기는 제사장이었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며 다스릴 왕으로서 에덴동산(성전)을 온 땅으로 확장할 사명을 가졌습니다(창1:28). 그 방법은 창조(율법) 언약에 대한 그의 순종을 통하여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그 언약을 범하여 하나님의 언약적 저주를 받았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창3장).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율법) 언약을 다 이룬 마지막 아담, 어린양의 죽음(순종)을 통하여 세운 새 언약에 따라 ‘본래 에덴의 상승한 회복’인 ‘새 예루살렘(신천지)’을 재창조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천지가 흔들려도 새 언약대로 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 새 예루살렘에 대한 결론적인 권면으로서 22:6-9절입니다.
이 부분은 21:9-22:5의 결론(17:1-19:10의 결론인 19:9-10과 병행)일 수 있고, 요한계시록의 종결인 22:10-20절에 속할 수도 있습니다. 즉 이 부분은 전자의 결론인 동시에 후자를 도입하는 이행 단락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그 천사를 통하여 요한(우리)에게 결론적인 권면을 합니다.
첫째로 요한(우리)에게 보여준 환상을 믿고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6-7).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여기 ‘선지자들의 영’(6)에서 ‘영’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6a)는 21:5절의 문구를 그대로 반복한 것으로 ‘이 말’은 ‘신천지인 새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21:1-22:5)의 요약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6b절은 거의 1:1절의 반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그리고 7절도 거의 1:3절의 반복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때가 가까움이라.” 그러므로 ‘이 말’(6)은 넓게는 요한계시록, 즉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7)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천지인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묵시, 더 나아가 요한계시록은 “주 곧 선지자들의 영(들)의 하나님이 그의 천사를 보내사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주신 하나님의 신실하고 참된 말씀이기에 우리가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일방적인 선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참된 말씀과 이것과 다른 세상의 많은 거짓말의 홍수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그리고 7절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여기 ‘지키는’은 현재분사로서 ‘순종하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인 일곱 번째의 복의 선언이며, 첫 번째 복의 선언, 1:3절을 거의 반복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그의 천사를 보내사 그의 종들(우리)에게 보이시는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들’(6, 1:1)인 신실하며 참된 ‘이 말’(6), 즉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요한계시록)’(7)을 주님은 천사를 통하여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7)라고 요약하시며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끝까지 믿음으로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순종하여 복이 있으리라’(7)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는 권면입니다(8-9).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요한은 19:10절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이 말씀’(6)의 주이시며 내용이신 주 하나님 대신에 그것을 전달한 천사를 경배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천사는 똑같이(19:10) 요한에게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9)라고 하면서, 그 이유는 천사나 요한이나 그의 형제인 선지자들과 이 말씀을 지키는 자(성도)들이 함께 된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이다고 분명하게 설명합니다(9).
왜 요한은 자신의 잘못을 반복하여 기록할까요? 이는 예언의 말씀 그 자체보다 그것을 전하는 자를 쉽게 경배할 위험이 항상 있으며, 그것을 경고하기 위해서입니다. 요한의 잘못과 같이 하나님 말씀(복음)의 주이시며 내용이신 주 하나님보다 그것을 전하는 목사에게 더 큰 관심을 두고 경배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들을 존경하시되,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최대의 관심을 두시며 그 말씀이 계시하는 주 하나님만을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의 날(종말)의 재림 시에 어린양의 피로 세운 영원한 새 언약의 새 창조인 신천지, 새 예루살렘(어린양의 아내)의 영광, 즉 우리의 영화 구원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천지가 흔들려도 우리는 새 언약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 종말론적 관점에서 우리의 자신과 세상을 보시고 해석하시면서 새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면서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고난의 중에서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성령을 통하여 그의 영광에서 영광으로, 즉 그의 거룩한 열매(옳은 행실)를 더욱 강하게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의 요약인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라는 약속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6:10)라고 계속 기도하시며, 항상 복음의 새 언약만을 믿고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찬송 236장을 부르신 후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