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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설교 요약 / 원망으로 구하기를 멈춰야 합니다(출16:1-20)
1 하나님을 원망하는 백성들
백성들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해 이집트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펼쳐진 광야생활은 이들을 난감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말씀하시고, 아침에는 떡을 저녁에는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2 원망하여 얻은 결과들
그런데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고기와 떡을 개인당 한 오멜씩, 즉 2.2리터 씩 챙겨가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장막에 머무는 자들 것까지 가져가도록 하신 것이죠. 그러나 두 홉에 해당 되는 곡식과 고기를 한 사람이 하루에 다 먹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먹고 남은 음식을 장막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다음날 곧바로 음식에서 냄새가 나고 벌레가 끼기 시작했습니다.
3 원망으로 얻은 것은 결국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도 살아가며 원망을 합니다. 심지어 신앙생활을 하며 입에 불평과 원망을 채우고 사는 일이 빈번하기까지 합니다. 덕(德)이 되지도 못하고, 믿지 않는 분들에게 본(本)이 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자기 뜻이 채워지지 않는 것은 오히려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원망하여 얻은 결과물은 반드시 썩고 말기 때문입니다.
4 원망할 수는 있지만 감사의 자리에 앉기를
저도 목회를 하며 수도 없이 원망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원망섞인 기도에 응답해주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이것은 제게 복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원망의 힘으로 살아가기보다 감사의 자리에 앉는 법을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5 원망으로 구하기를 멈추시길 바랍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법은 간단할지 모릅니다. 원망으로 구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다면 당신도 분명히 자녀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하거나 일반의 사람들은 이 비밀을 알지 못해 욕심껏 구하고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주변사람을 괴롭히기까지 합니다. 이 원망을 멈추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의 비밀을 찾기 위해서라도 꼭 하나님께 나오시길 바랍니다. 진짜 복은 내 뜻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감사로 구할 수 있는 심령이기 때문입니다.
원망으로 구하기를 멈춰야 합니다(출16:1-20)
1 야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자기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하십니다. 350년 자기 백성의 통곡에 대한 전적인 응답이었습니다. 이들은 홍해를 건넜고, 오아시스 엘림에서 쓴물이 단물이 바뀌는 역사도 경험합니다. 두 달 반 동안 이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던 것입니다.
2 그런데 이들은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신광야에서 원망합니다. 배고픔이 원인이었습니다. 신광야는 황량한 사막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16:2-3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해방의 기쁨도 잠시 배고픔으로 이성을 잃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보살핌도 금방 잊어버렸습니다.
3 여기에 등장하는 ‘원망’이라는 단어는 원어로는 ‘틀루나(תְּלוּנָה)’입니다. 그리고 ‘틀루나’라는 단어의 원형은 ‘룬’입니다. 룬은 밤이 새도록 보낸다. 는 뜻으로써 주거를 뜻합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고난받는 욥에게 “허물을 지닌 자기 상태”를 뜻하기도 하고, 창공이 새들의 거주지임을 뜻할 때 사용하기도 하며, 광야와 같은 장소를 뜻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원망’이라는 것은 ‘광야’와 같은 주거지에 처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욕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망이라는 욕망은 동시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죠. 어려운 처지에 분통을 터트리며 나오는 원망은 분명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의 욕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4 이처럼 사람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원망도 마찬가지겠죠. 그래서 방금까지 하나님의 보살핌을 경험했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 원망에서 자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목마르면 마셔야 하고, 배고프면 먹어야 하는 욕구와 좀 더 편안한 곳을 찾는 인간의 욕망은 사라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5 그래서 종 되어 살던 이집트 땅에서 가마에 앉아 떡과 고기를 마음껏 먹었던 시절을 떠올리는 이들의 반응은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준비한 음식이 떨어지고 막막한 광야의 현실에 거주하게 된 이스라엘에게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일은 어색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이 정상적으로 보이는 현실에서도 하나님의 ‘목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6 바로 원망의 결과로 채우며 살 것인가? 다른 방법으로 살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야기는 4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4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이 문장에서 중요한 단어는 일용할 양식은 날마다 거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율법의 준행입니다.
7 먼저 일용할 양식이란 말에는 이미 이들이 매일 매일 필요한 양만큼만 가져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행동이 율법을 지키는 것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율법을 말하는 것일까요? 출애굽기16:4절에도 힌트가 있지만 29절에 자세히 나옵니다.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그러므로 이 율법은 안식일법을 뜻합니다. 이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날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궁극 안에서 나누는 것임을 알 수 있죠.
8 6, 7절에서도 “저녁이면 애굽에서 백성들을 자유롭게 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것은 메추라기와 만나를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도 하나님의 영광과 연관이 있으며, 안식일에 백성들은 이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기억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9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놀라운 공급이 백성들의 원망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원망의 결과로 하나님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셨지만, 여기에 ‘율법의 준행’이라는 조건이 붙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백성들을 가르치려고 하신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9 그러면 우리는 ‘원망’과 ‘은혜’의 연결 고리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을 원망해도 괜찮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을 원망했어도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기르시는구나. 라고 해석해야 할까요?
10 여기서 우리는 한 오멜(두 홉)이라는 정량과 이틀치 식량이라는 ‘규칙’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16:5절은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에서는 안식일을 위해 이틀치의 식량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적이 적혀 있고 16:16절은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라고 전하는데, 여기서는 정해진 정량 한 오멜이 규정됩니다.
그러니까. 매일 한 오멜의 정량이 정해져 있고, 6일째에는 갑절로 준비하라는 ‘규칙’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율법’안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죠. 결국 하나님과의 사랑은 율법의 준행이라는 증거를 통해 시험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11 먼저 4절에서 하나님은 이 백성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안하나 시험하리라 라고 말씀하신 구절이 근거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남녀의 관계도 그렇습니다만 ‘사랑’은 언제나 의무와 연관된다는 것을 여러분도 경험하실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고통’은 비교하지 않습니다. 고통은 말 자체로 언제나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언제나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사랑은 어떤가요? 사랑은 비교합니다. 시험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계속해서 확인이 필요하고, 시험을 통해 단단해지고 충만해지기 때문입니다.
12 부부 사이에 농담으로, 가족끼리 왜 이래? 라고 하면서 부부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미 가족이니까. 이 가족이라는 구속력이 모든 안전함을 줄 거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이혼사유가 부부의 의무를 소홀해서 벌어지는 것처럼. 부부 사이에 사랑은 반드시 의무를 전제합니다. 이것은 책임 없는 자유가 공허한 것과 마찬가지인 이치입니다.
13 이처럼 안식일을 지키는지 아닌지 시험해보려는 하나님의 뜻은 성도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 실은 혼인 관계나 다름없는 언약적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고, 심지어 하나님은 신랑처럼 광야에 나와 시험을 당한 성도들의 원망에 대해 신부를 대하듯 은혜로 응답합니다. 그리고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의 핵심이 언약 의 사랑과 의무에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1 그래서 우리는 규칙과 의무를 소홀히 했을 때 발생하는 ‘악취’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오멜은 2.2리터에 해당되는 양입니다. 성인 한 사람이 하루에 먹기에 넘치는 양입니다. 그런데 원망의 응답으로 받아온 양식은 남아서 썩고 냄새가 났으며 벌레가 끼었습니다.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것이 되었죠. 그래서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욕망의 원망으로 얻은 결과물이 결코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12 하지만 아둔한 영혼은 이런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과 원망에 더욱 집중합니다. 그리고 이 원망의 결과물에서 썩은 냄새도 맡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욕망에만 충실한 자신의 똑똑함에 만족하며, 천천히 썩은 것을 주워 먹고, 모아두고는 하나님이 내게 복을 줬다고 착각합니다. 그야말로 죄인이 죄를 먹고, 먹고 토한 것을 주워 먹는 것을 반복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에게 하나님은 원망으로 구하는 소원에 응답해주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감사의 자리에 앉을 때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때 주님은 은혜가 은혜 되도록 눈을 열어주시고, 썩은 내로 마비가 된 영혼을 새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원망으로 얻은 것들은 반드시 썩는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사랑하는 성도에게는 참으로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꼭 믿으셔야 합니다. 지금 당장 이해할 수 없는 시험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14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믿음과 가족, 물질들이 하나님이 향기롭게 여기시는 것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하면 맑은 영혼이 열립니다. 내가 굴레라고 여겼던 계명과 의무들도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의 고백이자. 부담으로 여겨진 헌신도 내 삶으로 드리는 번제처럼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로 여겨질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감사의 자리를 회복하는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