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가입교 52주년을 맞이하여 매년 시린 바람이 부는 1월이 찾아오면 , 내 마음은 언제나 반세기 전의 그 뜨거웠던 겨울로 달려간다. 2019년 올해는 우리 육사 27기가 졸업한지 어느덧 52주년이 되는 해, 가슴 벅찼던 가입교의 기억을 품고 육사 27기 자전거 동호회 전우들과 함께 아스라한 추억의 궤적을 따라 답사길에 올랐다. 우리가 걸었던 고된 훈련 코스와 숨가쁘게 뛰었던 단독, 완전군장 구보 길, 그리고 살을 에는 동계내한훈련의 기억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온몸으로 다시 느껴보고자 함이었다.
여정의 첫 페달은 청량리역에서 밟기 시작했다. 1971년 4월 15일, 어깨에 반짝이는 소위 계급장을 달고 전방 사단으로 부임하기 위해 기차를 탔던 젊은 날의 내 모습이 깃든 곳, 격세지감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현대적인 교통의 중심지로 변모한 역사를 바라보며 시간의 흐름을 실감했다. 왕산로와 망우로를 지나 동일로로 접어들었다. 구보를 할 때마다 눈에 익어 심장박동처럼 친숙했던 한독약품 중앙연구소 건물은 간데없고 그 자리엔 커다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조금 더 달려 도착한 구 묵동교 앞에서는 잠시 자전거를 멈추었다.
1967년 9월, 국군의 날 퍼레이드 연습을 위해 군용트럭을 타고 여의도 광장으로 향하던 중 트럭이 교량 난간을 들이받았던 아찔한 기억, 다행이 모래톱이었던 묵동천 바닥 덕분에 큰 화를 면했던 그날의 풍경을 동행한 전인구 전우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증언해 주어 등줄기가 다시금 서늘해지기도 했다. 붉은 벽돌이 인상적이었던 구보의 반환점, 옛 서울공대(현 과학기술대)자리를 지나 노원로로 접어드니 드디어 화랑대 사거리와 육사 정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문 왼편에 호젓하게 자리한 옛 화랑대역은 이제 철도공원과 역사관으로 옷을 갈아입고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1958년, 육사의 별칭을 따서 '화랑대역'으로 이름을 바꾸고 수많은 생도와 군 병력을 실어 나르던 그 간이역, 폐역의 쓸씋함 대신 추억을 간직한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모습을 보니 묘한 위안이 찾아왔다. 간성문을 경유해 경춘선 숲길을 따라 갈매역으로, 다시 별내와 퇴계원을 거쳐 사능천으로 향했다. 이 길은 해마다 1학년부터 4학년 생도까지 전 생도가 참여했던 혹독한 동계내한훈련(1968.1.18-20)의 행군 코스다. 육사에서 숙영지인 사능까지는 약 15km, 당시 육사 교장이셨던 김희덕 중장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프차 대신 긴 장화를 신고 장엄하게 말을 탄 채, 어린 생도들의 행군대열을 묵묵히 지키며 동행하시던 그 당당한 기개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감동으로 남아있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애달픈 넋이 깃든 사능 주변은 몰라보게 변해있었지만, 우리들의 분소대훈련장이었던 사능초등학교 뒷산만은 그대로였다. 각개전투와 경계근무, 매복작전으로 눈발을 구르던 옛 기억을 뒤로하고 인근 식당에서 갈치조림과 생선구이로 점심을 먹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맛있는 온기 속에 52년 전 배고프고 추웠던 생도 시절의 일화들이 반찬처럼 곁들여지며 식탁 위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다시 모교인 육군사관학교 교내로 들어섰다. 붉은 벽돌의 고풍스럽던 교수부 건물은 현대식 건물로 바뀌었고 화랑연병장과 불암산을 바라보는 명당 자리에 들어선 학교본부는 마치 국회의사당을 닮은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화랑연병장을 바라보자 영화필름처럼 옛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군악대의 힘찬 연주에 맞춰 질서정연하게 학과출장을 하던 모습, 매주 월요일 하기식 후 단독및 완전군장 구보, 그리고 토요일마다 깃발을 휘날리며 펼쳤던 화려한 퍼레이드, 무엇보다 가슴을 뜨겁게 올린 것은 1967년 기혼 시절 구정 날의 기억이었다.
당시 기훈 분대장이었던 남재준 생도(전 육군참모총장)가 우리 3중대 '사자"들을 세워놓고 포효하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했다. '사자는 새끼를 낳으면 낭떠러지로 떨어뜨려 살아남은 강한 새끼만 키운다' 그 매서운 겨울 맹추위 속에서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오직 팬티 한 장만 입은 채 눈이 수북이 쌓인 화랑연병장을 낮은 포복과 높은포복으로 기어다녔던 우리들, 사자 새끼들을 강하게 키우겠다던 분대장의 그 서슬 퍼런 사자후(獅子吼)는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가며 역경을 만날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워준 정신적 이정표가 되었다.
웅장한 육사박물관과 졸업생들의 성금으로 높게 솟아오른 64m의 지인용(智仁勇) 교훈탑을 바라보며 생도대로 향했다. 서로 절차탁마(切磋琢磨)를 하며 군사지식을 배우고 동고동락했던 생도대를 마주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교정에서 마주치는 늠름한 후배 생도들의 얼굴에서 52년 전 나의 푸르던 청춘이 겹쳐 보여 절로 정겨운 미소가 지어졌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면회장소이자 휴식처인 생도회관으로 향했다. 이곳에 오면 유독 어머니 생각이 간절해진다. 1학년 시절, 철없는 아들을 보고 싶어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면회를 오시던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이곳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기훈 시절 배고픔을 달래주던 추억의 '곰보빵'이 그리웠다. 회관 2층 베이커리에 가니 마침 딱 하나 남은 곰보빵이 반갑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대를 넘어 생도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민의 빵, 달랑 하나 남은 빵을 전우 넷이서 소중하게 나누어 먹었다. 달콤하고 고소한 그 맛은 52년 전 주린 배를 채워주던 그 맛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옆 자리에서 담소를 나누던 4학년 여생도와 3학년 기훈소대장 생도가 우리 테이블로 합류했다.
전인구 전우가 특유의 구수한 입담으로 반세기 전의 혹독했던 훈련담과 생도 생활의 비화를 들려주자 후배들은 눈을 빛내며 귀를 기울였다. 선배들의 경험담이 군 생활의 큰 귀감이 되겠다며 씩씩하게 감사를 표하는 후배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 국방의 미래가 얼마나 든든한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현재의 기훈 막사에서는 파릇파릇한 79기 후배들이 가입교하여 5주간의 혹독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있었다. 우리가 흘린 땀방울이 밀알이 되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고 위대하게 발전한 모교의 모습을 바라보는 노병의 가슴은 벅찬 자긍심과 감개무량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비록 몸은 늙고 머리는 희끗해졌으나 화랑의 기개와 정신만은 여전히 1967년 그해 겨울의 화랑연병장에 머물러 있음을 느낀다.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쳤던 우리들의 푸른 기억은 저 늠늠한 후배들의 눈동자 속에서 얖으로도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