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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어디서 살 것인가(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저- 유현준(홍익대 건축대학 교수 역임)
출-을유 문화사(2018년 7월 18일 초판)
독정- 2018. 9. 4. 화
•현대의 골목길
과거에는 이웃들이 골목길에서 만났다. 지금은 하아프 복도를 사이에 두고 소통이 사라졌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복도는 살마이 모이는 공간이 아니다. 서울시의 소득 격차는 각 구별로 벌어지더니 이제 폐쇄적 아파트 단지별로 더 작은 단위로 나누어졌다. 이 모든 것이 도시가 자동차 중심으로 진화해서다. 차도 폭은 점점 넓어져서 먼 곳은 쉽게 가지만 옆의 블록끼리는 더 단절되었다. 상업 활동을 하며 하던 소통도 지금은 인터넷상의 상거래가 이루어져 아마 10년 후에는 편의점 외에는 거리에서 물건 파는 가게는 사라지고 식당이나 미장원같이 직접 먹거나 내 몸에 직접 서비스 받는 상점들만 남을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전자 상거래 규모는 91조 9천 8백억원대로 추정. 이는 2016년보다 20조 원 이상 커진 수치다. 이런 추세라면 2018년에는 100조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업시설이 줄어들면 우연히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줄어든다.
• SNS 단지
현대에 와서 시선의 집중을 받아 권력을 창출하는 방법이 건축 이 하나 더 생긴 것이 TV, 영화같은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이다. TV에 나오는 사람은 권력을 갖는다. 현대인들은 신전 꼭대기를 우러러보기보다는 TV나 스마트폰 스크린을 더 많이 쳐다본다. 그 모니터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된다. TV나 영화에 나올 수 없는 일반인들은 그런 권력을 가지기 위해 패이스북을 비롯한 각종 SNS에 자신의 사진을 올린다. 5천 년 전 수메르문명의 권력자는 건축물을 만들고 죽을 때까지 권력을 점유했다면 지금 연예인은 방송국의 시스템을 잠시 빌려 아주 짧은 기간 권력을 가진다는 점이 다르다. 방송 권력은 일시적일 뿐, 미디어 시스템을 장악한 사람이 사회에서 진정 권력 가진 사람이다. 방송국 시스템이 과거의 신전 건축이다. 시청률이 권력이 되는 세상이다. 인기 프로그램 PD는 과거 건축가가 했던 역할을 하는 중요 권력 창출자다.
SNS에서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인다. 과거에는 친구들과 술상을 엎을 정도로 논쟁을 하기도 하고 술 깨면 다시 만났다. 지금은 자신의 SNS에 좋아료를 눌러 주는 사람들끼리만 모인다.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간단한 클릭 한 번으로 친구 관계를 끊어 버린다. 같은 당원끼리만 소통하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생각이 ‘국민의 뜻’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파트 단지 별로 주민들이 나뉘는 것처럼 현대인은 끼리끼리a만 모이는 SNS 단지에 갇혀서 바깥세상과 소통을 못한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하고만 소통하다보니 자신의 생각이 가장 옳다고 느낀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조금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맹공격을 퍼붓고 이런 폭력적 행위는 생각의 다양성을 죽이고 양극화 현상을 만들고 있다. 학교 왕따 현상의 원인을 심리학자는 ‘누군가가 한 사람을 왕따시키고 공격하면 중립적 위치에 있던 사람들도 자신이 왕따 대상이 될까 두려워 함께 왕따 공격에 동참한다’고 한다. 지금 한국 사회의 다면이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익명성은 인간의 숨어 있던 폭력성을 극대화시켰고 갈등과 반목한다. 댓글은 상호 대화라기 보다 혼자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뱉고 도망치는 것과 같다. 정상적 쌍방향의 대화가 어렵다. 다양한 생각의 교류를 만드는 데 인터넷은 실패했다. 국제 분야 전문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의 저서 <늦어서 고마워>에서 SNS가 기존의 체제를 파괴하는 데는 효율적이지만 사회 건설에는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했다. SNS는 ‘아랍의 봄’때 그랬듯이 사람을 선동하고 기존의 체제를 전복하는 데는 효율적이지만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가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의 책 결론은 결국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하고 의견을 교류하는 전통적 방법밖에 없다고 하였다. 소통의 단절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도시 안에서 얼굴을 맞대고 우연히 다른 사람을 만날 공간이 더 많아져야 한다. 과거 그리스는 다양한 살마이 모여 의견을 나누던 아고라와 원형극장이라는 건축양식을 만들어 창의적 사회의 꽃을 피웠다. 시장 바닥 같던 아고라가 없었다면 고대 그리스는 없었다. 우리는 지금 다양한 생각이 만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21세기형 아고라와 원형극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잘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축 환경을 이해하는 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하나의 시작이다. 건축은 거울과고 같아 건축 공간을 통해 우리를 비춰볼 수 있다. 건축물의 진정한 의미는 건축물이 사람과 맺는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 학교 건축은 교도소다
우리 의식에는 도전이나 모험보다는 큰 단체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거나 자신과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이 더 크게 자리한다. 중국집에서도 짜장면으로 통일하고 볶음밥 하나 시키면 유별난 사람으로 치부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보면 다르다고 느끼지 않고 틀렸다고 생각한다. 어린이가 집을 떠나 첫 12년 동안 경험하는 공간이 학교다. 아버지가 다닌 학교와 내가 다닌 학교와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똑같이 수십 개의 똑같은 상자 형 교실을 모아 놓은 네모난 교사동과 하나의 운동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닭장 양계장 같은 학교에서 자라난 사람은 똑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을 편하게 생각한다. 교도소와 학교와 군대는 비슷한 곳에서 똑같은 식판에 배급받아 먹는다. 군대는 2년이면 재대하지만 학교는 12년을 수감 상태의 공간에 두고 키워 어느 날 닭장에서 꺼내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아보라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이런 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기업과 공무원과 대형 쇼핑몰을 더 편안하게 생각한다. 지금 학교 건축은 다양성을 두려워하는 어른을 양산해 낼 수밖에 없다. 우리 세대만 해도 방과 후에는 집에서 마당과 골목길에서 뛰놀았다. 지금 방과 후에는 상가 학원에 보내지고 이동할 때도 봉고차에 실려 이동한다. 삶의 공간에 자연이 없다. 하늘 볼 시간이 거의 없다. 지식은 책에서 배우고 지혜는 자연에서 배운다는 말이 있지만 자연을 만날 기회가 없다. 지혜를 배울 수 없다. 아이들 삶에 필요한 것은 자연이다. 학교에서 10분 쉬는 시간에 내 개 층 계단을 뛰어 내러가서 운동장에서 2,3분 쉬고 다시 뛰어 올라올 아이는 없어 쉬는 시간에도 모두 교실에서 지낸다. 12년 동안 실내 공간에서만 지낸 아이들은 현화하는 환경에 적응, 반응, 진화하는 유전자로 본능적으로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1학년 때는 삼각형 마당에서 놀다가 2학년은 연못 마당에서 놀고 3학년은 빨간색 경사 지붕 교실 앞마당에서 놀 수 있어야 다양하고 정상적인 인격으로 클 수 있다. 학교만큼은 전체주의 시설 같은 건물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현대인이 TV를 많이 보는 이유도 마당이 없어서일지 모른다. TV는 내가 말할 틈을 안 주고 계속 떠드는 친구와 같다. 영화에서도 슈퍼 히어로가 때로 나오는 <어벤져스>가 인기다. 여러 명의 MC가 진행하는 TV 프로그램이나 여러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히어로 영화는 현대사회의 탈중심 현상을 보여주는 한 예디. 과거에는 어느 것 하나가 중심이 되고 나머지는 배경이 되는 수직적 위계 사회였다면 지금은 여러 개의 중심이 있는 수평적 구조가 특징이다. 과거에는 중앙 컴퓨터가 있었지만 지금은 개인용 컴퓨터가 병렬로 연결되어 있는 인터넷시대다. 라디오 스타가 여러 명의 MC로 진행하는 <마리텔> 예능 프로는 시청자가 실시간 댓글을 올리면서 진행자의 행동을 유도한다. 시청자가 작가이자 MC가 되기도 하는 프로그램이다. PD나 작가가 직접 방송에 출연하기도 한다. 방송인과 시청자와 제작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라디오 스타>가 탈중심의 현대사회를 보여준다면 <마리텔>은 현대사회의 ‘경계의 모호성’을 보여준다. 경제의 모호성은 공간과 기기를 넘어 인간에게까지 확대, 남녀 구분, 노인과 청년 구분, 패션상 구분도 사라지게 하고 있다.
• 술래잡기는 창의적 공간을 찾는 기가 막힌 놀이다. 술래잡기를 하면서 아이들은 문 뒤쪽이나 장롱과 벽 사이 등 자기 몸의 크기와 모양을 상상하며 공간을 찾는다. 아이들은 시간만 있으면 공간을 찾아서 ‘장소’로 만든다. 아이들은 천재 건축가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에게 시간을 안 주고 시간이 없으니 공간을 찾지 못하고 점점 의이 있는 장소가 사라진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주자. 도시가 더 좋은 공간이 되게.
• <학교 건물>
어느 제약 회사에서 신약을 잘 개발하는 연구원의 특징을 조사해보니 창의적 사람들로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청소부나 다른 부서 사람들과 잡담을 많이 하면서 다양한 생각을 접하며 새로운 생각에 열린 마음을 가진고 창의적 생각을 하게 된다. 갇힌 교실에서는 정상적이고 다채로운 교우 관계가 어렵다. 아마도 마당이 있는 저층형 교실에서 아이들이 자라난다면 친구가 세 배쯤 늘어나고 왕따는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다양한 외부 공간이 있는 학교에는 사각지대가 없어 공간이 열려 있고 어디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학교는 더욱 안전해진다. 담장을 없애고 주변에 문방구, 카페, 가게 같은 상점을 배치해서 지역 주민이 학교를 들여다보면 더 안전한 학교가 될 것이다. 우리 학교는 외부 세계난 외부 자연과 격리된 곳, 실내에서 감시하기 좋은 곳으로 진화해 왔다. 보호 명목으로 가둬 두는 실상이다. 학교 교사를 여러 채로 분절시키는 계획을 말하자 교육부 담당자는 “모르셔서 그러는데 요즘 아이들은 특별활동 시간도 많고 비 오면 교실 이동 중에 비 막게 되새 안 됩니다 했다. 1층에 지붕 있는 아케이드를 만들어 우산 없이도 이동할 수 있게 헤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겨울에 추어서 한 됩니다.“했다. 그래서 2층에 실내 복도를 만들어 연결하는 디자인을 했다. 그러자 1층 아이들이 불편해서 안 된다고 하며 건물로 모두 연결해 달라고 했다. 결국 외부 공간을 접할 수 없는 쇼핑몰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들이 칭찬하는 학교 설계를 보니 교실 간 이동복도 폭이 3미터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뛰놀기도 해야죠“ 란다. 밖에서 놀아야지 왜 복도에서 노나? 교실을 분절시켜 어떻게든 자연이 있는 외부 공간을 접하게 해주어야한다고 하니 이들에겐 오히려 위험한 생각이라며 비판했다. 교실을 분절시켜 건축하면 공사비가 많이 든다면 실제로 짓는 학교 건물을 보면 넓은 복도 같은 불필요한 공용 공간이 많고 자가용 주차장을 만들려고 한다. 실내 면적을 줄이고 다양한 외부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고 하자 좋은 줄은 알겠는데 공립학교이기 때문에 어느 한 학교만 좋아지면 형평성이 깨져서 안 된다고 반대했다. 좋은 아이디어는 사립학교에 가서 펼치란다. 변화를 싫어했다.
• 모든 것이 인간 중심이었다면 오늘날은 동물을 인간과 비슷한 급으로 보는 가치관이지지 받는다. 오늘날 사람들은 동물을 우리에 가두는 동물원을 비판하고 동물의 권리도 주장한다. 하라리는 이런 동물의 권위 상승을 인공지능의 발달 때문이라 한다. 과거 인간은 동물 중에 가장 뛰어난 지능으로 동물과 차별화되는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지금은 인공지능이 퀴즈 게임이나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는 시대다. 인간은 더 이상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한 동물이라는 독보적 자리를 지킬 수 없다. 인공지능은 지능으로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던 인간을 지그 ㅁ자리에서 끌어내려 동물과 같은 계단에 서 있으라 한다. 인간은 지난 수십 년간 인간의 존업성을 확보해주었던 종교의 권위도 없앴다. 점점 동물과 동등해져 가고 있다. 인간은 동물이 된 자신들의 존업성을 지키기 위해 동물의 존엄성을 높이고 있다. 동물과 인간이 비슷해지는 이런 시대 한쪽에서는 기술적 인본주의자들이 인간을 기계와 동화시키려 노력 중이다. 일론 머스크는 뇌와 컴퓨터 네트워크를 연결하여 인간 지능적 한계를 없애려 한다. 기계가 인간 위에 있으니 인간을 기계와 한 범주로 묶으려는 시도다. 스마트폰에서 시작된 기계-인간 동화의 움직임은 언젠가는 인간의 뇌가 인테넷과 연결되는 시대까지 갈 것이다. 현대사회 특징은 TV방송 매체에서 잘 드러난다. 방송은 대중이 원하는 것을 반영하고 대중의 요구는 곧 그 시대 정신이다. 현대인은 직장에서 돌아와 TV를 보며 쉰다. 고대 공둘 주거의 모닥불은 TV, 가스레인지, 보일러, 형광등으로 분화되고 진화되었다. 과거에 동굴벽화를 그렸듯이 오늘날은 벽지를 고르고 사진 액자와 그림을 건다. 2만 년 전 인간의 주거와 현대인의 주거는 근본적으로 같아. 유전적으로 바뀐 것이 없기 때문이다. 농업을 먼전 시작해서 가축을 키운 사람들은 가축에서 얻은 전염병으로 먼저 고생했지만 대신 내성이 생겼다. 유라시아 대륙의 스페인 사람은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보다 먼저 농사를 시작했고 가축을 키웠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은 인디언보다 전염병에 대한 내성이 강했다.
•<현대인의 공간>
현대사회는 공간을 즐기려면 돈을 내야한다. -과거에는 자기 방을 열고 나가면 거실 공간에서 가족을 만났다. 하지만 지금 일인 가구는 여유 공간이 없는 원룸에 살며 SNS로 사람을 만나며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을 보며 산다. 부모와 살면 친구들 집에 초대할 수 없고 원룸에 살면 공간이 작아 초대할 수 없어 친구는 한끼 식사비 정도로 비싼 커피 집에서 만나 값을 낸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카페를 보유한 이유는 결곡 우리 국민들에게 앉아서 쉴 곳이 없기 때문이다.)하늘을 보고 햇볕을 받으며 골목길을 걸으면 기분 좋지만 답답한 상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 경험은 유쾌하지 않다. 몇 십만 년의 경험이 유전자에 각인되어 우리는 주광성 동물이 되었다. 교통기관을 타면 답답한 실내 공간 속 기억 때문에 경험이 단절된다. 다른 장소로 가고 싶어 하지 않게 되고 자신의 현재 공간 속에 갇히게 된다. 우리의 도시에는 보행자 중심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승용차는 방같은 공간이다. 골목길에 주차된 차는 공적 공간이었던 골목가를 사적 공간으로 변형시킨다. 우리 도시에서 차도가 차지하는 면적은 점점 넓어졌다. 차도 면적이 넓어진다는 것은 전체적으로 이동 공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의 시민 입장에서 본다면 정주하는 공간을 그만큼 빼앗긴 것이다.
우리도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변화에 맞는 우리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돈 많은 살마만 갈 수 있는 공간들로 채워 갈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무료로 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들이 많아져야 한다. 걸어갈 수 있을 거리에
현대사회는 공간을 즐기려면 돈을 내야한다. 힙합 가수가 후드티를 입는 이유는 시선 차단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려는 노력인데 미국에서는 후드티를 입으면 빈민층 우범자로 보이는 선입견으로 경찰 충에 죽은 사건이 있다. 지붕 있는 공간 소유 대신 모자로 자기만의 지붕을 만들고 헤드폰으로 ‘세상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자기만의 음악’을 듣고 힙합의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행동은 자신만의 사적 공간이 없을 때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행동패턴이다. 손을 죄우로 넓게 흔드는 것도 힙합 춤의 형태다. 자기 공간 확보 액션이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공간을 구축하려는 가장 저렴한 방식이다. 지하철에서 이어폰 음악은 공적 공간에서 사적 공간을 만들려는 몸부림이다.
• 발코니에 널린 빨래나 그 위에서 쉬는 사람들 풍경이 도시의 얼굴을 따뜻하게 해 준다. 그러나 발코니 확장법 때문에 발코니가 멸종댔다. 더 이상 건물의 표정이 없다. 마스크를 쓴 사람 얼굴 같은 유리창만 있다.
• 해외여행 가서 느끼는 편안을 군중 속의 외로움이라 하지만 군중 속의 자유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 우리가 아파트로 이사 갔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주부가 문 잠그고 외출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주변인이 간섭하지 않는 자유를 가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게 우리의 도시 생활이다. 테헤란로는 11초당 한 번씩 채널이 바뀌는 것 같다. 가게 입구가 많은 곳이 다채로운 경험을 주는 걷고 싶은 거리다. 1970년대 아파트 상가에서 시작된 원스톱 쇼핑의 유구는 결국 이런 초대형 몬스터를 만들어 자동차를 타고 가게 했다. 자동차 회사와 대형 유통 회사가 돈을 많이 버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런 도시 구조가 기업들만 키워주는 구조가 되었다. 이런 시스템이 건강하지 못한 이유
첫째-백화점과 쇼핑몰의 복도까지 냉난방을 하고 자동차를 타고 소비하는 에너지도 많다.
둘째-자연을 빼앗아 간다. 집에서 나와 실내 주차장으로 내려가 자동차로 실내로 갔다가 다시 사무실의 지하 주차장에 내려 사무실로 올라간다. 비오는 날 우산 없이도 비 한 방울 안 맞고 여름 땀 한 흘리고 겨울에 코트 없이도 지낼 수 있는 도시 속이다. 모든 공간이 인공적으로 조절된 공간으로 자연과 격리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우선 공간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횡단보도 파란불을 기다린 다음에 10차선을 건너가서 청바지를 사기는 귀찮다. 홍대 정문 앞의 길은 3차선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캠퍼스에서 홍대 앞 블록으로 넘어간다. 홍데 앞 상권 길을 보면 삼거리포차 앞의 길만 4차선이고 나머지는 다 3차선 이하다. 우리나라의 공원이 대로변에만 접해 있어도 도시경관이 좋아지고 더 많은 사람이 걷고 싶어 할 것이다. 공원 면적을 늘리면 좋겠고 공원을 적절히 배치하여 쓰임새와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공원은 블록 안쪽에 숨기기보다 유동 인구가 많은 대로변에 배치해야 한다. 도서관은 걸어갈 만한 곳에 있어야 한다. 교모문고가 성공한 것은 역세권에 있어서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5천 평짜리 도서관 5개보다는 5백 평짜리 도서관 50개가 더 좋다. 우리 주변에 작은 도서관들이 많아지면 걸어서 쉽게 도서관에 자주 가게 되고, 그곳은 공동체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사람들은 종로의 익선동과 부산 감천마을을 좋아한다. 강남을 흉내 내지 않고 고유한 가치를 만들고 있다. 홍대 앞은 젊은이들을 위한 공간 특징을 가지고 있고 익선동은 아파트 단지 대신 마당과 골목길을 가지고 있다. 영화 <블랙 팬서>는 블록버스터가 히어로물이지만 스토리로 보면 많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도시의 소외된 계층에 대한 이야기와 사회 잠재적 위험이 만들어지는 방식 등 현재 미국 사회를 비판하고 자성하는 목소리가 담긴 영화다. 주인공는 마지막에 “현명한 자는 다리를 놓고 어리석은 자는 벽을 쌓는다.”고 한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 벽을 세우고 있는 트럼프한테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다.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돌궐의 명장 톤유쿠크는 성을 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만드는 자는 흥할 것이다고 했다. 소통하는 가자 발전하고 성장할 것이다. 이웃 지역과 걷고 싶은 거리로 연결될 때 지역 간 경계는 모호해지고 격차는 줄어들 것이다.
• 백종원씨는 이제 요리사라기보다 부동산 개발업자다. 그의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들어가는 지역은 새 상권이 형성되고 땅값이 올라간다. 이런 식당들도 배달민족이 너무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곧 사라질 것이다. 음식점 매출의 절반 이상이 배달로 이루어진다면 가게가 굳이 비싼 임대료를 내고 1층에 위치할 이유가 없다. 지하에서 앉는 자리는 부엌만 있는 홍대 앞 중국집은 배달만 하는 곳이다. 인구 천만 도시 서울에서도 주거와 사무실을 제외한 소비, 상업 용도의 연면적이 차지하는 비율은 몇 퍼센트 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한 곳에 쏠리면 다른 곳은 죽게 되어 있다. 얼마 안 남은 상업 시설을 잘 써야 우리 도시가 소통이 잘되는 도시가 된다. 도시에 필요한 것은 점이 아닌 선이다. 선형으로 상업 가로가 조성되어야 사람이 걸으며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청암동을 나와 거기서 또 걷고 싶은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강 건너 왕십리까지 갈수 있다. 백 층 넘는 건물은 대형 유통 회사를 가진 롯데그룹과 자동차 회사인 현대차 사옥이다. 이 두 개의 초고층 타워는 자동차 중심의 이동과 상업 시설의 대형화에 길들여진 우리의 도시 공간이 만들어 낸 것이다.
• 최초에 건축물을 계획했던 목적과 달리 시대가 변해 필요 없어지면 진화를 해서 증기 터빈이 있던 자리에 오르세 미술관을 건축했다. 우리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자연으로부터 잠시 빌려 쓰는 행위다. 내가 다 쓰고 후손이 다르게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업사이클링도 잠시 빌려 쓰는 행위다. 현재 지구상에는 역사상 가강 많은 인간 개체 수가 있고 모두 살아남아야 한다. 어느 때보다 나누어 쓰고 다시 쓰는 업사이클링이 필요한 때이다. 홍콩 상하이 은행은 1985년에 약 10억 달러를 들여 완공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비싼 단일 건축물이었다. 노먼 포스터가 처음 이 건물을 설계할 때 홍콩 경제의 중요한 맥이 지나가는 자리라 풍수지리적 제약으로 반대하자 그는 교각이 물에 닿는 면을 최소한으로 줄여 매단 구조로 1층은 비우고 수십 층 빌딩은 땅 위에 떠있는 것처럼 설계했다. 지금도 이 건물 1층은 온전히 시민에게 개방되어 시민이 여기서 하루 휴일을 즐긴다. 어떤 건축가는 이런 제약에 불평하기만 하지만 창의적 건축가는 이 제약을 새롭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승화시켰다.
• 교단위의 권위
교사는 지식과 성적 평가를 통해, 종교 지도자는 말씀을 통해 권력을 만든다. 바라보는 많은 이가 추종자로 느껴지고 그 사람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의 숫자만큼 큰 집단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말은 직함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 사람이 위치한 물리적 공간이 권력을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글레디에이터>를 보면 황제보다 검투사가 더 인기가 많자 황제가 콜로세움 경기장 중앙에 있는 검투사에게 내려와 대결하는 모습이 나온다. 선생이 강단에 서면 학생의 책상은 모두 강단을 보게 된다. 객석에 앉았거나 무대에 섰을 때의 나는 같은 사람지지만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이다. 맨 꼭대기에는 시전이 있는데 높기 때문에 주변의 수만 명 사람이 그 신전을 쳐다볼 수 있는 구조다. 좌우대칭 구조의 자금성이나 베르사유 궁전도 시선 집중을 위해 평면을 좌우대칭으로 만들고 중심축을 잡아 그 선상에 앉혔다. 과거 지구라트, 파라미드도 당대 초고층 건물이었고 현대 도시 대기업 총수가 초고층 사옥을 짓고 서울에서 가장 높은 롯데타워는 서울 대부분 지역에서 잘 보인다. 시민이 계속 바라보게 되면 초고층 건물 주인은 권력을 가진다. 시선이 집중되게 만드는 공간 배치는 없던 권력도 만들어 낸댜.
•우리는 정치 집회를 할 때 주로 광화문 광장에 모인다. 우리나라 역사적 중심축은 이순신 동상- 세종대왕 동상-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축이기 때문이다. 이것에서 열리는 집회는 단순히 넓은 공간을 차지했다는 의미를 떠나 권력의 중심축을 누가 점유하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중요한 전시 행위다.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에 가면 우리는 완벽한 좌우대칭의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성당과 그 앞의 거대한 광장이 하나의 규칙 하에 하나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 우리의 작은 몸은 좌우대칭의 근 공간을 인식하여 우리를 아주 작은 존재로 느낀다. 개인의 존재재감을 억누르는 전략이다. 학교 건물은 좌우대칭의 건축 공간이면 (사람이 억눌리기 때문에) 안 된다. 하나의 스타일로 된 유니폼도 조직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여 전체의 일부가 되었다가 안심하며 다른 조직에 하나 된 위압감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잠심시간에 대기업 사옥의 현관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은 정해진 드레스 코드가 ㅇ벗어도 비슷하게 입고 있다. 건축 공간의 좌우대칭 배치는 공간을 하나로 묶어 커다란 존재감을 만들어서 개개인을 스케일상으로 압도하기 위한 건축적 전략이다.
• 계단
건축에서는 높은 곳에 올라가게 해주는 특별 장치가 있는 게 계단이다. 계단 한 단의 높이는 대략 18센티미터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안채의 크기가 지난 수천 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단은 고관절, 무릎, 발가락이라는 신체 관절 부위를 가지고 직립 보행하는 인간이 좁은 면적 안에서 다른 높이의 공간으로 가기 위해 고안 한 장치다. 인체 모양이 극단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계단의 모양과 크기는 유지될 것이다. 높은 곳에 있으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자리다. 높은 곳의 권력의 자리는 면적과 관련이 있다. 대체로 높은 곳은 좁다(정상 부위가 좁듯 희소성의 가치를 지닌다. 계단을 통해 권력을 창출하고 그 권력으로 나라를 통치하는 힘을 만들어 낸다. 지구라트 계단에서 시작한 권력의 계단은 이집트의 피라미드 고구려의 장군총, 미야의 피라미드 잉카문명의 유적에서도 찾을 수 있다. 힘들여 지구라트를 만들이 않는 이유는 아무리 높은 건축물을 만들어 그 위에 올라가 봐야 주변 산이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 경복궁 꼭대기보다 북악산 나무꾼이 더 위에 있다. 그런 이유로 옛 정권은 청와대 뒤에 있는 북악산 길을 통제했을지도 . 주변에 산이 있다면 건축물이 그것과 경쟁하기는 무의미하다. 집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계단은 마당에서 대청마루에 올라갈 때 밟는 디딤돌 정도다. 조선 시대 건축에서 계단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사찰이다. 일반 주거에서 계단이 많이 보이게 된 것은 현대에 접어들어 도시로 인구가 집중하면서부터다. 한국전쟁 이후 급격한 도시화로 평지만으로는 주거지가 해결 안 되어 경사지에 달동네가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우리 주거 공간에 계단이 들어왔다. 보일러 덕분에 2층에서 온도를 깔 수 있자 2층 양옥집이 유행하고 집집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생겨난 것은 이때부터다. 계단이 건축으로 힘을 잃게 된 것은 엘리베이터 발명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로 고층 건물이 가능해졌고 비상시를 제외하고는 계단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최근 자동차 중심 도시에서 경사지 지형을 극복하는 방식이 계단에서 축대로 바뀌었다. 자동차 진입을 위해 대형 토목공사를 통해 축대를 쌓고 주차장을 만들고 건물을 짓게 되었다. 우리 외부 환경에서 계단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계단이 있는 곳은 사람이 보호받는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계단이 많은 이화동, 경리단길 등으로 사람이 모이고 있다. 계단은 권력을 창출, 사람을 억압하기도 하고 사람을 보호하기도 하면서 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건축 요소다. 건축가 지오 폰티는 계단은 두 개의 다른 공간을 연결해 주는 멋진 건축 요소라 했다. 계단을 올라가면 걷기만 할 뿐인데 키가 자라나는 듯 한 체험을 하게 된다. 내려 갈 때는 키가 줄어드는 느낌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 속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책상 위에 올라가라 한다. 수십 센티미터 커지는 그 시점의 변화가 엄청난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다. 일상에서 그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계단이다. 어린아이들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재미있어하는데 어쩌면 키가 작은 아이가 어른보다 커지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계단이다. 요즘 건축물의 계단은 벽으로 막혀있어 다른 층으로 가야 하는 일을 하는 공간일 뿐 웅장하고 멋졌던 계단이 현대 건축물에서 그저 벽에 둘러싸인 채 햇볕도 바람도 경치도 없는 계단 형태로 남아 있다. 계단은 그런 취급을 받을 공간이 아니다. 계단을 회복시켜 계단으로 하여금 계단이 되게 해야 한다. 계단이 갖는 숭고한 목적을 살려주자.
• 고층 건물의 아버지 카네기와 오티스
다리에 사용된 구조체가 주철이라는 약한 철이어서 무거운 기차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자 카네기는 1100도의 높은 온도에서나 만들 수 있는 강철을 제작, 강철 레일 하나 만드는데 걸리는 2주 정도 시간을 15분으로 단축시켜 강철왕 카네기가 되었다. 20층 넘는 고층 건물은 카네기가 개발한 강철이 있어 가능한 건축 디자인이다. 그리고 오티스가 엘리베이터를 발명하여 1904년 근데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이 H형강을 이용해 ‘카슨 피리 스콧 백화점’을 설계, 비로소 강철 구조의 고층 건축 시대가 열렸다. 이후 뉴욕과 시카고는 20층 이상의 건물로 채워진 마천루의 도시로 새롭게 태어났다.
• 집을 산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나만의 공간을 가진다는 것이다. 자동차 소유는 내가 원하는 곳에 언제든 갈 수 있는 공간의 확장이다. 세계여행 역시 개인의 공간 확장이다. 스마트폰으로 영화보고 음악 듣고 게임하는 젊은이에게 실제 공간은 별로 의미가 없다. CD 플레이어 같은 물건을 사면 보관할 공간도 필요했지만 지금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소유하지 않으니 공간도 필요 없다. 과거 인류 사회는 공간은 많은데 인구는 적었다. 초기 인류 역사는 공간을 소유하려는 자들의 정복역사였다. 지금은 75억 인구가 비좁은 공간에 살며 지나친 공간 소유는 갈등이고 공멸이다. 미디어 속의 공간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인지 모른다.
인터넷 쇼핑 기업인 아마존의 시가총액이 최고 전통 유퐁 판매 기업 월마트의 두 배를 넘었다. 병렬로 연결되어야 힘을 발휘하는데 그게 안 되니 인간은 대신 언어를 개발했다.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의 뇌와 네트워크를 이루기 시작하면서 문명이 발생했다. 이후 다른 지역, 다른 시대의 사람과 연결되기 위해 문자를 발명했다. 인류 문명의 발생에 큰 공헌을 한 언어와 문자는 이처럼 사람의 뇌를 병렬로 네트워크시키는 발명품이자 케이블이다.
• 웹 WWW -지하 농장과 도로 발전
네트워크를 위해 많은 사람이 각종 동창회 최고 경영자 모임, 로터리 클럽을 다니는 것은 인간 간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기술이 생기면 그리로 모일 것이 뻔하다. 영화 속 ‘보그’ 종족처럼 개인의 감정은 중화되고 지능은 극대화될 것이다. 인류는 <스타트랙>에서 이야기하는 보그 종족이 될지도 모른다. 인류가 그런 대세의 흐름을 막을 수 있을가 미래학자들은 향후 주요 대결의 무대가 기존 국가 대 다국적기업의 대결로 옮겨 갈 것으로 본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다국적기업과 그것을 통제하려는 국가, 그로 벗어나려는 다국적 기업과 그것을 막기 위해 통합된 세계정부를 만들려는 행정부들 간의 대결이 세계사의 주요 흐름이 될 것이다. 자동차를 시간당 빌려서 사용하는 집카의 공동 창업자 로빈 체이스는 자동차를 내가 사용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의 쓸 수 있게 해주면 도시 속 자동차 대수가 현재의 30퍼센트 줄고 카풀까지 하면 10퍼센트까지 줄어든다 했다. 무인 자동차가 상용화되면 기존 자동차을 소유하는 시스템에서 공유하는 시스템으로 바뀌게 돈다. 전기 자동차 전문 업체인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가까운 미래에는 인간이 운전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 될 것이라 한다. 대부분의 교통사고는 인간의 판단 실수로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동차 대신
세그웨이‘라는 전동 휠을 타고 다닌다. 향후 자동차 대수가 줄어들 대세다. 자동차 보유가 줄어드는 것은 자동차 산업에는 위기지만 건축과 도시에는 기회다. 자동차가 30퍼센트 줄어들면 현재 도로와 주차장의 70~90퍼센트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빈 공간이 된다. 도로는 녹지 공원이 될 수도 있고 태양광발전소가 될 수도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도로 자체를 태양전자판으로 포장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개인 중심 교통 시스탬이 발달하면서 대중교통 시스템이 줄어들면 지하 주차장이나 지하철이 다니던 터널은 LED 조명으로 식물을 키우는 실내 농장이나 로봇이 작업하는 공장이 될 것이다. 생산자아 소비도시 사이의 물류도 대폭 줄고 환경오염과 고속도로도 줄게 된다. 인공지능으로 가까운 미래에 도시는 한 단계 더 진화, 19세기 때 말이 끄는 마차나 석탄을 태우는 증기기관차가 다니는 도시를 보듯 신기하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 현재는 고층 건물일수록 엘리베이터가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져서 실제 사람이 사용 가능한 면적이 줄어든다. 순환형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엘리베이터가 다니는 수직 통로인 샤프트 shaft 숫자가가 줄어서 코어의 면적을 줄일 수 있다. 방향을 바꾸어 측면으로 이동할 수 있어 건물 모양이 위로만 올라가는 막대기 형태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 <포켓몬> 속 케릭터는 곤충이자 귀신이다. 누에 안 보이는데 스마트폰을 통해 볼 수 있는 개념이 ‘포켓몬고’의 시작이다. 천재적 발상이다. 현실과 가상이 반반씩 섞인 ‘증강현실’이라는 개념이 우리 실생활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1980년대 ‘블록 격파’난 ‘갤러그’같은 오락을 하면서 전자오락이 일어나는 모티너 뒤편 세상에 대해 궁금했다. 1990년대 들어 인터넷 공간이 우리 실생활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조만간 가상현실이 우리 현실 세계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했다. 1991년 <터미네이터> 2편에서 액체 금속 로봇 T 1000이 눈앞에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사람들은 더 빠져들어 영화 속 증강현실이 시작되고 실사와 만화의 명확했던 경계가 모호해졌다. 인터넷 세상은 모니터 속 가상의 캐릭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대 사회에서 나는 내가 소유한 공간으로 대변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비한 공간으로 대변된다. 이제는 내 실제 얼굴보다 셀카 사진이 더 중요해졌다. 땅값 낼 필요 없는 사이버 공간에 손전화 카레라만으로도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내집을 편집해서 공개할 수도 있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나의 공간이며 나 자체다. 기계끼리 소프트웨어 언어 통합, 음성인식, 동시통역 세 기술이 완성되면 모든 기계어ㅘ 기계, 기계와 인간, 모든 인간이 하나로 연결되는 소통의 고리가 완성된다. 중추신경계의 완성이다. 전문가들은 이 기술의 완성 시기를 2025년으로 예상, 그 이후 10년 동안 2035년까지 엄청난 산업의 혁명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 시기가 유토피아가 될지 일자리를 기계에게 빼앗기는 암울 시대가 될지는 예측 불가능하다.
신기술로 새 시대를 열려는 노력과 그에 따른 사회적 현상과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대다. -기술은 바뀌어도 인간의 유전적 본능은 빨리 바뀌지 않기 때문에 속도의 차이에 따른 갈등은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것을 해결할 방식은 전통적으로 얼굴 맞대고 대화하는 것밖에 없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는 이 시대는 새로운 방식의 정치적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 벽
벽을 세움으로 공간을 둘로 나눈다. 기존의 1미터 담장은 마음만 먹으면 넘나들 수 있는 담장이었다. 허리까기 오는 이 정도 높이는 일단 성인의 눈높이에서 건너편이 보이기 때문에 장벽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키보다 높은 담장은 시선도 차단되고 몸도 넘을 수 없는 벽이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식의 담장은 교도소와 국경선에서나 사용된다. 베를린장벽이 없어진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벽은 우선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구역을 나누는 병이다. 이보다 더 심한 담장은 이념으로 쳐진 한반도의 휴전선이다. 이스라엘보다 더 심ㅎㅎ해서 아예 중간에 4킬로미터의 비무장지대 공간을 만들고 양측에 철책 담장을 치고 있다. 보는 것을 차단할 뿐 아니라 소리도 전해지지 않게 격리하였다. 콘크리트나 벽돌로 세운 벽보다 이런 빈 공간으로 만든 장벽이 둘 사이를 더 단절시킨다. 이는 마치 완전한 단열과 차음을 위해 가운데 가스층을 두고 겹으로 만든 복층 유리와 같다. 자연에는 담장이 없다. 동물은 벽을 쌓지 않는다. 인간만이 정치, 종교 이념으로 선을 긋고 벽을 세우고 공간을 나눈다. 자연에 ㅇ유일한 선은 물과 땅이 바뀌는 강변이나 해안선 같은 것들 뿐. 이 선들도 밀물과 썰물, 파도, 장마 등으로 끊임없이 변하면서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하지만 인가는 이런 지역의 선과는 상관없이 명확한 국경선을 긋고 사람들을 오가지 못하게 한다. 이런 선들은 언젠가는 없어져야 할 선이고 벽이다.
• 인류 최초의 집-동굴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예술적 정정기는 기원전 1만 1천 년경으로 빙하기가 아직 완전히 끝나기 전이었고, 해수면은 계속 상승하던 시대였다. 수렵 시기에 사냥을 하고 모닥불 주위에서 음식을 먹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비를 피할 수 있고 돌물의 공격에서 보호해줄 동굴 벽이 둘러쳐져 있다. 입구는 하나라 보안상 유리하고 불을 가운데 두어 보온하였고 음식을 익혀 먹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불을 보며 쉬었고 벽화를 그려서 주거 공간을 장식했다. 동굴ㅇ에서 나온 후 집을 지었다. 나뭇잎으로 지붕을 만들고 공격을 피랄 벽을 둘러 . 진화되어 TV속의 영상이 되었다. 오늘날은 벽지르 고르고 사진 액자를 건다. 건축 요소의 근본 원리는 다 자연에서 온다. 자연이나 건축이나 둘 다 중력을 이겨 내기 위해 만들어진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지붕
지붕은 하늘과 건축물이 만나는 면이다. 우선 지붕 모양은 기후와 관련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건축물은 지붕이 평형하다. 건조 기후라 비를 의식해서 경사 지붕을 만들 필요가 없어서다. 강수량이 늘어날수록 지붕의 기울기는 급해진다. 우리나라보다 비가 더 많이 내리는 동남아시아 건축물의 지붕을 보면 훨씬 더 기울기가 급하다. 물을 빨리 땅으로내려보내기 위해서다.
•징검다리
우선 아래를 내려다보며 걸어야 한다. 보통 다리를 건널 때는 주변을 둘러볼 수 있지만 징검다리 위에서는 발을 잘못 내디디면 물에 빠지기 때문에 내 발을 보고 내 보폭을 생각하면서 걸어야 한다. 다음 돌까지 성큼성큼 건널지 한 발 한 발 내디딜지 순간 순간 판단해야 한다. 디디고 있는 둥근 돌 위에서도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징검다리 건너기는 내 몸을 민감하게 느끼면서 내 다리를 보며 걷는 특별한 건축 체험이다. 그 외에도 물 위에 나만의 사적 공간을 가지게 해준다. 내가 디디고 있는 작은 돌만큼의 면적은 온전히 내 공간이다. 마주 오는 살마과 교차할 때에는 서로 친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이 하나의 공간 다이어그램 안에서 가깝게 묶이는 순간이 만들어진다. 또한 징검다리는 하늘과 물 사이에 혼자 존재하는 나늘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건축물이다. 물이 불어나면 사라지는 다리다. 징검다리는 때로는 자연에 양보하는 겸손한 다리다. 점선으로 연결된 징검다리는 수면의 높이에 따라 잠기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한다. 징검다리는 수십 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미세한 개울 수위의 변화에 따라 개울 양편이 연결되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한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보면 갑작스런 소나리고 물이 불어 징검다리가 끊긴다. 이때 소년은 소녀를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넌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의 진전이다. 콘크리트 다리가 있었다면 <소나기>는 없었을 것. 징검다리는 가변적 건축 공간이 함쳐져서 만들어 낸 아름다운 이야기가 징검다리는 중요 배역이 된다. 건축 공간을 깊은 수준으로 이해한 황순원으로 보인다.
한강이라는 수공간과 반복적으로 세워져 있는 열주가 어우러져 영원의 공간을 연출한다. 현대식 대형 다리 밑의 공간은 어느 성당이나 절 이상으로 기도와 명상을 부르는 공간이다. 과거 다리는 물 바로 위에서 물을 가깝게 접할 수 잇게 해주었다면 현대식 대형 다리는 너무 높아서 사람을 강과 하늘의 중간에 떠 있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도심에서 벗어니 수십 평방킬로미터의 넓은 공간 속에 홀로 떠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우리 사회에서 최근 건축 내의 분업은 ‘온돌과 아궁이의 분리’다 인류 최초의 집을 보면 모닥불로 난방도 하고 음식도 했다. 1960년대에 석유곤로가 도입되면서 취사가 난방에서 분리되기 시작했다. 난방은 연탄보일러와 기름 보일러로 진화되고 1970년대에 2층 양옥집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후 10층이 넘는 아파트도 지었다. 온돌 때문에 항상 1층만 지었는데 보일러로 고층 주거와 고밀도 도시를 만들었다. 고밀화된 도시가 되면서 가장 혜ㅌ택을 본 계층은 농업보다 상공업인이다. 주변에 자기 물건을 사주는 사람이 많아진 탓이다. 온돌 시스탬을 사용하지 않은 유럽은 우리보다 수백 년 앞서 고층 주거가 보급되고 도시화되었다. 우리 사회 변화는 온돌과 아궁이가 분리되면서 시작된 일이다. 주택에서 방이 늘어나면 호텔이 되고, 거실이 커지면 미술관이 된다. 한 건축가의 건축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주택이다.
• 모델하우스기 망친 한국 건축
내가 살 집 외관이나 방에서 창문 밖 풍경이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집을 결정한다. 인테리어와 평면도만 보고 고른다. 그러니 부엌에서 동선이 좋다느니, 현관에서 신발 갈아 신을 때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느니 같은 이유로 디자인을 자랑한다. 과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나 주변 환경과의 관계보다 이런 것이 더 중요할까? 우리나라 건축이 발전하지 못한 데는 이런 모델하우스 분양을 통한 주책 공급이 큰 역할 했다. 그래서 대부분 국민 의식에 건축은 없고 인테리어가 있을 뿐이다. 아래에 물 떨어지는 자연을 이용해 만든 펜실베니아 계곡에 지은 낙수장은 아름다운 집이지만 강남구에 옮겨 놓으면 생뚱맞다. 하지만 주변 환경을 잘 이용한 이런 개성이 존중되는 건축이 다양성 있고 가치 있다. 건축ㅁ물을 만들 때 건축물 자체에 맞춰서는 안 된다. 건축물이 담아내는 삶을 바라보아야 한다. 차를 선택 할 때 자동차 디자인보다 누구와 함께 타고 어디를 가느냐를 중시해야 하듯 그 공간 안에서 이루어질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서 생각해야 한다. 시에서 공원을 만든다면 어디에 들어서는 ㄱ서이 좋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학교 건축은 어떠해야 하는지도, 아파트가 재개발될 때 대형 상가가 들어오는 게 좋은지, 연도형 가게가 있는 거리가 좋은지 주민 회의에서 의견을 내야 한다. 여라 방식으로 스스로가 자신이 살 곳을 더 화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책명- 어디서 살 것인가(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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