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날이 밝았다.
다시 힘을 내서 의미있는 하루를 시작해 본다.
금주까지 지루한 장마가 계속될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건강과 평안을 위해 기도한다.
오늘 오전엔 바쁜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하심정'으로 달려가려 한다.
그곳에서 봉사자들과 함께 맛있는 한 끼의 식사를 대접해 드리기 위해 작은 힘이나마 힘껏 보태고 싶다.
나는 처음부터 '설거지 담당'이었고 수 년이 흐른 지금도 그렇다.
이젠 '설거지 박사'다.
2007년 봄부터 '하심정'에서 무료급식 봉사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2011년 7월이 되었으니 시간이 참 빠르다.
앞으로도 나의 건강이 허락되는 한 지속적으로 나누고, 섬기는 일에 성심을 다하고 싶다.
지금은 2011년 7월이다.
어느새 하반기다.
요 근자에 계속 해서 장맛비가 쏟아졌다.
그런 까닭에 연일 장마와 관련된 뉴스로 하루 해가 뜨고 하루 해가 질 정도였다.
전국적으로 장맛비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았다.
온 나라가 장마로 뒤숭숭하던 차에 부지불식간에 7월도 벌써 5부 능선을 넘어가 버렸다.
급류 같은 시간이다.
어제 오후엔 친구가 목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퇴행성'이라 연골 삽입술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끝내 그의 목뼈 사이에 연골을 삽입했다.
이젠 '퇴행성'이란 낱말이 그리 낯설지 않을 만큼 세월이 흘렀음을 느낀다.
그런 만큼 그동안 켜켜이 쌓였던 세월의 무게감 또한 녹록치 않았다.
독재 정권 타도를 위해 최루가스 자욱한 캠퍼스에서, 종로와 세종로에서 민주화를 열망하며 울부짖었던, 가혹했고 참담했던 80년대를 보냈다.
광주의 슬픔을 함께 아파하고, 백성이 주인되는 세상을 희구하다 비명에 먼저 가신 민주열사들을 위해 뜨거운 눈물도 많이 쏟았었다.
한동안 비탄과 우울에 빠져 지낸 적도 있었다.
그 아프고 치열했던 현장으로 열심히 뛰어다녔던 기억들이 새롭다.
그러나 그런 격동기를 보내고 '지천명'을 목전에 둔 작금에 나의 삶과 인생을 뒤돌아 본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가열찬 투쟁도 중요했고 꼭 필요했다.
하지만 제 몸뚱이라 하나, 제 마음 하나, 제 생각 하나, 제 행동 하나를 제대로 닦고 지켜가며 사는 것이 수십 배 더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다.
웅변보다는 침묵 속의 진중한 실천과 섬김이 훨씬 더 힘들고 곤고한 길이었다.
타인에 대한 가르침과 충고 보다는 자신이 기도했던 바를 바르게 실천하는 삶이 훨씬 더 지난한 길임을 알았다.
그것도 불혹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세상에 나아가 입신양명과 출세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도 중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일생 동안 '하심'의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들과 더불어 가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손을 맞잡은 채 동행하는 인생이 더 의미 있는 길임을 알았다.
'하심정'에서 무료급식을 하고 돌아올 때마다 나의 영혼에도 하나씩 하나씩 하심의 '의미'와 '교훈'이 쌓여 갔다.
돈으로 아파트와 자동차를 살 수는 있지만 '사랑'과 '감사'를 살 수는 없다.
'사랑'과 '감사'는 돈을 주고 거래하는 그런 재화나용역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네 마음 밭에 그런 씨앗을 뿌리고, 평생토록 기도하는 심정으로 잘 가꿔야만 비로소 느리게 성장하는 인생이란 이름의 '인동초'니까 말이다.
오늘 하루는 어제와 같은 날이 아니다.
신이 허락하신 새날이다.
기쁨과 감사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 보자.
오늘도 건승하시길.
파이팅.
2011년 7월 14일.
아침에 쓴 나의 큐티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