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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SWAN
WRITTEN BY. 승짱
티모시와 여자는 보육원에서 함께 자랐다.
티모시의 눈 속에 담긴 깊은 우물이 제 것과
닮았기 때문이었을까.
여자는 저보다 늦게 들어온
동갑내기 티모시를 살뜰히 챙겼다.
예민한 고양이 마냥 잔뜩 경계해마지않던
티모시도 점차 여자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들은 다른 누구보다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더랬다.
티모시가 미국의 어느 유복한 가정으로
입양을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성인이 된 티모시는 뛰어난 머리로 유수의 대학에
합격하였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무기중개업이라는 양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았다.
원체 토대가 단단하게 잡힌 가업이었고
티모시의 명석한 두뇌가 더해지니
수익은 배가 되며 사업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반면 여자의 상황은 여간 녹록지 않았다.
보육원을 나와 독립한 후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일거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다녔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수준었지만
여자는 이마저도 감사히 여겼다.
그나마 이런 생활 덕에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렵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자연스레 그들의
호감을 사는 재주 하나 얻은 것이 그녀만의
크나큰 자산이라면 자산이라 할 수 있겠다.
이래 봬도 동양인 여자로 살아가기 비책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여자는 생계를 짊어지며
빠듯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단골손님의 추천으로
고급 호텔 안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특별할 것 없는 어느 평범한 날이었다.
티모시가 제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보고 싶었어,"
티모시는 터져버린 울음을 간신히 참아내며
다짜고짜 여자를 안아버리는 탓에
그녀는 들고 있던 커피포트의 커피를
왈칵 쏟아버렸다.
"얼마나 찾았는데,"
"여기 있는 줄도 모르고,"
티모시가 더 이상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먹이며
말하는 통에 그의 말을 전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동안 여자를 찾고 있던 것임에는 분명해 보였다.
티모시는 제 앞의 여자가 또다시 사라져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여자를 더욱 그러안았다.
아니, 안았다기보다 자신의 품에 꼭 쥐고 있었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려나.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레스토랑 지배인의 시선도,
레스토랑 안 다른 이들의 시선도,
티모시의 약속 상대로 보이는
어느 남자의 시선까지도,
모두 티모시와 여자를 향해있었다.
티모시는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 없었다.
슬플 때도 그랬고 기쁠 때도 그랬다.
옛날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티모시가 울고 있었으니,
일이고 뭐고 알게 뭐람,
일단 안아줘야지.
티모시의 집에 여자는 저의 몇 안 되는
살림살이들을 풀어내었고,
그 길로 티모시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무기 중개라는 업의 특성상
종종 위험한 인물과 마주해야 할 때가 있어
티모시는 그녀가 이 일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극도로 꺼려 했지만,
자신을 돕게 해주지 않으면
당장 나가버리겠다는 여자의 협박 아닌
협박에 못 이겨 마지못해 수락했더랬다.
여자의 수완이 생각지도 못하게 좋았다.
그녀의 사람 대하는 솜씨는 업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갖은 고생을 해가며 체득한 재주가 여기서
빛을 발할 줄이야. 여자는 신기하고 재밌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티모시를 돕고 있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꼈다.
티모시는 그런 여자를 위해 전보다
신중하고 까다롭게 고객을 선별하였고
조금이라도 위험한 인물이다 싶으면
여자가 알아채기 전에 가차 없이 정리하였다.
러시아 정보국과의 거래가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여자의 주도로 몇 년 동안 공을 들인
대형 프로젝트였다.
위험한 무기들이 대량으로 거래되었고
이는 마땅하게도 은밀히 이루어져야 하는
기밀의 것이었기에 여자와 티모시만이
이번 거래의 모든 진상을 공유했다.
비밀유지는 티모시에게도 여자에게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서로를 가장 믿었으므로.
러시아 정부가 주관하는 파티에 초대되었다.
여자가 골라준 턱시도로 멀끔히 차려입은
티모시가 먼저 준비를 끝냈다.
미리 대기시켜 놓은 검은색 세단에 몸을 기대고
팔짱을 낀 채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단에서 내려오는 여자는 새빨간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그런 여자의 모습을 마주한 티모시는
당연스럽게도 그만 넋이 나가버렸다.
다행히 그녀에겐 들키지 않았지만.
차에 올라타는 여자를 바라보며
티모시는 결심했다.
여자의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있어야겠다고.
1.
티모시는 자신이 입고 있던 검은색 턱시도 재킷을
벗고서 여자의 훤히 드러난 어깨 위로 제 것을 걸쳐주었다.
"아이 참,
왜 그러는 거야, 어린애처럼."
킥킥 웃으며 티모시를 질책했다.
그리고는 그의 재킷을 조심스레 접어
옆에 있는 그의 경호원에게 건네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는 듯
티모시의 나른했던 이목구비가 점차 굳어가고 있었다.
여자는 얄궂게 웃으며 그의 얼굴과 목을 감싸 안고
그의 하얀 뺨에 정성 어린 키스를 남겼다.
"다녀올게."
"... 같이 가."
여자는 티모시를 장난스레 흘겨보았다.
"고객 응대는 내 일이잖아.
제 몫은 하게 해 줘."
러시아 쪽과 약속이 되어있는 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의 말마따나 고객 응대는
늘상 그녀의 몫이었고 티모시는 전적으로
물러나 있었다. 따라서 티모시는 여자가 미리
일러주지 않으면 알지 못했다.
이는 여자의 고집스런 주장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여자의 말을 그대로 전하자면
티모는 은근 불친절해, 라는 것이 그녀가 설명한 이유의 전부였다.
한껏 찌푸린 얼굴의 티모시를 뒤로하고
그녀는 파티장 내 어느 프라이빗 룸으로 향했다.
티모시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샴페인만을 연거푸 들이켰다.
다만 그의 한쪽 뺨에 남겨진 그녀의 빨간 입술 자욱 때문이었을까,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보인다는 것은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 할 수 있겠다.
여자가 자리를 뜨자 기다렸다는 듯
그들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금발의
매력적인 소녀가 티모시에게로 다가왔다.
허나, 그녀가 뭐라 말을 건네기도 전에
티모시가 먼저 선수를 쳤다.
"꺼져."
티모시는 능숙한 러시아어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심지어 소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여자에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한없이 냉담하고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가운 대답에
소녀는 그만 울먹거리며 자리를 떠나버렸다.
만약 여자가 봤다면 빨간 매니큐어가 깨끗이 발린
손가락으로 티모시의 두 뺨을 잡아당겼을 테지.
반면 늘상 있어왔던 일이라는 듯
티모시의 경호원은 그의 갑작스런 온도 차이에도 무척이나 태연했다.
그런 와중에도 티모시는 점점 멀어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고개를 갸웃거려야만 했다.
2.
"제가 늦었나요?"
그녀의 낭창한 목소리에 마티아스의 눈동자는
마법처럼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수많은 군사들을 통솔하는 중령이라는 계급에
걸맞게 줄곧 표정 없는 얼굴로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고수하던 방금 전의 사내와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심지어 이따금씩 미소라는 것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의 뒤에 서있던 러시아 군복을 입은 남자를 향해
마티아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앞에
검은색 벨벳 케이스가 순식간에 놓여졌다.
놀란 눈으로 마티아스를 한 번 쳐다보고는
손을 들어 그것을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손끝에 닿는 벨벳의 감촉이 매우 부드러워
누가 봐도 고가의 물건이 들어있음직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안에는 아몬드 모양의
다이아몬드가 영롱한 빛을 발하며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케이스를 굳게 닫았다.
"저... 이건 받을 수 없어요."
그녀의 떨리면서도 단호한 목소리에
금발을 단정하게 뒤로 넘긴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져갔다.
조심스레 마티아스의 눈치를 살피며 여자는
자신의 가슴 위로 두 손을 살포시 모아 얹었다.
"부디 무례를 용서하세요, 중령님."
자신의 말에 거절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려나, 생각해봤지만 역시 드물었다.
거절이 익숙지 않은 지위를 가진 탓에
마티아스는 이 상황이 다소 당황스러웠다.
잠시 동안 두 눈꺼풀만을 천천히 움직였을 뿐
마티아스는 일말의 미동도 없이 생각에 잠겼고,
이내 여자라면 그럴 수 있겠다,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생애 처음으로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여자의 선물을 골랐건만, 단번에 거절당해버렸다.
이럴 때 보통의 남자들은 어떻게 하는 거지.
뭐라고 해야 그녀가 받아주려나.
마티아스가 초조한 듯 제 입술을 손으로 훑었다.
긴 침묵을 뒤로하고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만족스러운 거래에 대한 러시아의 답례일 뿐이니 부담 갖지 마십시오."
마티아스는 자신의 진심을 가리기 위해
어느 때보다 차갑게 말하였다.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얼음장같은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상대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듯한 여자의 눈빛은
역시나 예사롭지 않았다.
생사를 넘나드는 무수한 훈련을 거쳐 이 자리까지
올라온 그였지만 이상하게도 저 눈빛만은
견디기 힘들었다. 마른침을 삼켰다.
여자가 다정하지만 진중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이것은 중령님의 답례일 뿐인가요.
아님, 마티아스 씨의 마음인 건가요?"
아, 날카로웠다.
그녀는 날카롭게도 진실을 갈구하고 있었다.
"... 절 곤경에 빠뜨리시는군요."
마티아스는 애써 웃어 보였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들켜버린 것이 이번이 처음이거니와 그 상대가 제 앞에 앉은 여자라니.
곤혹스러웠다.
그의 대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여자의 결연한 눈빛에 더 이상 둘러댈 변명이 없었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어 결국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옷매무새를 다듬고 그녀의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케이스를 열어 목걸이를 꺼냈다.
여자의 뒤쪽으로 걸음을 옮겨 그녀의 목에 그것을 걸어내고야 말았다.
크고 투박한 손으로 여자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빼내어 한쪽으로 가지런히 모아두었다.
이내 마티아스의 모든 사고가 멈춰버렸다.
머릿속으로 수십, 수백 번 상상했던 그림이었지만
감히 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곧게 뻗은 하얀 목덜미와 금빛의 목걸이 줄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가히 황홀경이 따로 없겠다,며
마티아스는 속으로 되뇌었다.
"... 더 이상 숨겨지지가 않는군요."
마티아스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목덜미에
사근히 키스를 남겼다.
왠지 그러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티아스의 숨결이 여자의 뒷목에 닿자
그녀는 그제서야 수줍은 미소를 내비쳤다.
3.
마티아스와 헤어진 후 여자는 혼자 남아 파티장 곳곳을 돌아다녔다.
러시아에서 역사가 유고하고 가장 화려하다는
성을 개조하여 만든 호텔답게 온갖 장식물들이
여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황금색 술을 단 크림슨 색상의 천들이 둥그런
아치 모양으로 적재적소에 걸려 있었고,
특히 황금으로 장식된 샹들리에가 더해지면서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파티장 한 켠에서는 블랙잭이 한창이었다.
심심하던 차에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비어있는 자리 한곳을 차지했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윙크를 하였고 여자는 상냥히 웃었다.
이에 오히려 남자가 당황하였다.
보통의 경우 수줍어하며 눈도 못 마주치던데.
몇 번의 턴을 마치고 나니
여자의 칩이 금세 바닥을 보였다.
에잉, 다 잃었잖아. 여자는 혀를 내둘렀다.
그럼 그렇지. 옛날부터 게임엔 젬병이었다.
어릴 적 티모시와 종종 보드게임을 하곤 했는데,
이상하리만치 여자에게는 게임 운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티모시가 일부러 져주는 일이 허다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여자가 서럽게 울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 그렇게 울어버리겠다는 얘기는 아니고.
이런, 티모시가 그리워졌다.
이제 그만 그에게로 돌아가야겠다, 싶었다.
딜러에게 눈인사를 건넨 후 자리를 뜨려는 여자의
앞에 윙크를 하던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건네왔다.
"제가 한 잔 사드려도 될까요.
많이 땄거든요."
남자의 손에는 다양한 색깔의 칩이
가득 들려있었다.
"아마 제 지분이 상당할 거예요."
여자가 칩을 가리키며 유쾌하게 대답했고
남자는 매력적인 웃음을 선보였다.
근처에 있던 플로어 퍼슨이 팁을 두둑이 받고
칩을 현금으로 바꿔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는 동안 남자가 여자를 향해 자신의 팔을
들어 보였고, 그녀는 그 사이로 제 손을 넣어 팔짱을 끼었다.
수년 전 러시아 정부가 샬라메 측과
긴밀히 접촉을 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그 이후로 CIA는 줄곧 그들을 예의주시해왔는데
최근 들어 그들의 거래가 마무리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가 있었다.
러시아가 어떤 무기를 사들였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루빨리 장부를 입수해야만 했다.
경계심이 많으며 저들보다 영특한,
그리고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티모시는
누가 봐도 어려운 상대였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여자를
타깃으로 하자는 것이 그들의 작전이었다.
반면
여자 쪽이 더 만만치 않을걸, 이라며
작전팀에서 유일하게 반대 의사를 내비친 사람이
바로, 톰이었다.
서로의 직업과 이름을 숨기며 한참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중 피곤하다는 여자의 말에
톰이 잽싸게 방을 잡았다.
두 사람이 방 앞에 도착하자
여자가 갑작스레 운을 떼었다.
"찾으시는 물건은 러시아에 없어요."
"앞으로도 찾을 실 수 없을 거고요."
여자의 뜬금없는 고백은 베테랑 요원조차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
물론 톰은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서 여자를 지그시 내려다보았지만.
그는 하이힐을 신은 여자보다 한 뼘은 더 컸다.
장부가 이곳에 없다는 것쯤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장부는 티모시 샬라메의 소관이었고,
그는 그것을 들고 다닐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녀가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톰은 꽤 충격을 받았다.
그는 CIA 내 그 누구보다 유능한 요원이었고
이번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해내고 있었다.
단지 여자와의 대화 도중
심장이 빠르게 뛰어 가슴이 저릿했던 순간이
겨우 몇 차례 있었을 뿐이었다.
거봐, 티모시 못지않게 영리한 여자라니깐.
톰은 속으로 생각했다.
정체를 들킨 톰 대신 울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서 여자가 물어왔다.
"장부가 없어 실망하셨나요?"
"... 언제부터.."
"그게 뭐 중요한가요.
그렇게 심각해질 필요 없어요."
여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마저 덧붙였다.
"우리가 누구였든,
즐거웠잖아요."
"그럼 된 거죠."
여자는 별거 아니라는 투로 톰을 위로하며 웃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비웃는다거나
비아냥 거리는 식의 가식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자의 웃음은 그녀의 광대를 도톰히
올라가게 하였고 그 위의 눈은 적당히 휘어지게 만들어 보기 좋았다.
저런, 톰의 심장이 다시 한번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었는데,
한 번 봐도 될까요?"
톰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짧게 끄덕이자
여자는 그의 재킷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그의 허리를 쓰다듬으며 점점 더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등 뒤에서 뭉툭한 무엇인가가 손에 잡혔다.
여자는 두 눈을 감고 그것을 좀 더 세밀하게 더듬었다.
톰은 그런 여자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여자가 무방비적으로 입술을 삐죽인 탓에
하마터면 자연스럽게 입을 맞출 뻔했다.
아, 차라리 눈을 감으면 좀 나으려나.
눈을 감으면 그녀를 볼 수 없으니 톰은 대신
자신의 죄 없는 입술만 잘근 깨무는 것을 선택했다.
동시에 마치 경찰에게 검문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두 손을 허공에 들어 올리고는 어쩌면 CIA 요원을
상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는 여자를,
톰은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음, M1911A1... 일까나."
여자는 모델명을 중얼거린 후
손에 잡힌 그것을 잽싸게 꺼내보았다.
검은색의 권총이 그녀의 손에 들려있었고
톰의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반동은 크지만 위력이 상당하죠.
줄곧 어떤 녀석을 갖고 다니 실지 궁금했어요.
좀 하드한 쪽이 취향이신가 봐요."
여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권총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더니 관리가 잘 되어있네, 라고 중얼거리다
다시 톰에게 돌려주었다.
"정말... 굉장한데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건네받은 권총을 허리 뒤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한 번 올라간 그의 입꼬리는
다시 내려올 줄을 몰랐다.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제 앞에서 뿌듯해하며
마냥 웃고 있는 여자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제 일인 걸요."
여자는 자랑스럽게 웃으면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철컥,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잘 가요."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가까스로 여자를 불러 세웠다.
"장부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합시다.
난 이곳에 있는 줄 알았고 지금은 열심히
임무수행 중인 거죠."
"그러니,
같이 있고 싶어요.
같이 있게 해줘요."
다급한 마음에 그만 진심을 내비치고 말았다.
훌륭한 요원이 할 말은 아니지만
사실 작전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이대로 여자가 문을 닫아버리고 나면
그녀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그저 막막했다.
그런 톰의 진심에 여자는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제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애인이 준 건가. 톰의 시선이 목걸이에 멈춰 섰다.
그의 눈썹 머리가 꿈틀댔다.
당장 들어가 저것부터 풀어버리고 싶었다.
목걸이를 만지던 여자의 손을 조심스레 잡아 올렸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여자의 눈을 지그시 맞추며
그녀의 손등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었다.
"들어가게 해줄래요?"
아,
톰의 입꼬리가 능글맞게 올라가는 모양새는
또 어찌나 매혹적이던지.
# 에필로그
여자를 발견하기 전,
그녀가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자신의 고객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티모시.
여자는 고객에게 친절히 대하라며 그를 혼내곤 했다.
*
차례대로
/티모시 샬라메/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톰 하디/
**
티모시의 본래 애칭은 '티미'이지만
여자가 부르는 특별한 애칭이 있었으면 해서
티미가 아닌 '티모'로 설정했습니다.
혹시 어색하시다면 '티미'로 읽으셔도 괜찮습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재밋어요b
잘 읽었어용♥
취향저격당햇다..
마티어스 ㅠㅠ
취저다 취저..
인물들도 매력적인데 인물들을 더 매력적으로 글로 표현하는 게 너무 대단해요ㅠㅠ
티미,,,내 사랑,,, 진짜 티모시 저런 어두운역 너무 잘어울려요,,
분위기 장난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