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 똥 누는 법
김봄희
동시집 베껴 쓰기 숙제를 하는데 자꾸 똥이 마려워.
휴지가 없어 조금씩 나눠 누기로 했어.
똥만 모아 놓으면 진짜 똥 되지만,
글자 속에 숨겨 놓으면 무늬가 된단 말이지.
대신 한 글자에 너무 힘을 주면 안 돼.
왕똥이 나오면 닦기가 힘들어.
요리조리 심을 굴리며 힘을 나눠 봐.
따옴표 말줄임표가 나오면 만세지.
"근데 걔들은 언제 나오냐?"
"나올 생각이 없나 봐. 내 맘도 모르고……."
그래도 이 시는 좀 낫네.
이렇게 시를 싸야지.
아니 써야지.
김봄희 동시집,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상상 2023)
볼펜 똥은 자꾸 생기는데 닦아 낼 휴지가 없다. 궁지에 몰린 삶의 순간에 대한 은유다. 어떻게든 이에 맞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 똥을 똥으로 두지 않고 기름진 거름으로 사용하는 것이 삶에서 찾아낸 지혜이듯이, 볼펜 똥을 글자 속에 숨겨 무늬가 되게 만드는 것이 시의 지혜다. ―이안, 해설, 〈모든 세대를 위한 동시집 한 권〉(《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 95~96쪽
첫댓글 볼펜 똥 누는 법시를 넘 잘 싸신듯 해요 ㅋ해설은 넘 잘 쓰신듯 하고요.^^
첫댓글 볼펜 똥 누는 법
시를 넘 잘 싸신듯 해요 ㅋ
해설은 넘 잘 쓰신듯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