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영향력 / 정희연
아내가 사보에 실렸다. 우수 사원으로 선정된 것이다. 그래서 회장님의 손자인 부사장이 우리 공부방을 방문하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무엇을 보여야 좋을까 고민했다. 그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건네고 싶었다.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닌 다른 의미를 담아야 했다.
모든 관계는 상호 이익이 있어야 지속될 수 있다. 일방적인 의존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이어야 한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이렇게 했어요>를 제목으로 보고서를 만들었다. 공부방을 시작하게 된 이유와 그동안 해왔던 것들을 한데 모았다. 3, 4 년 동안의 자료였다. 회원증가・매출・수강생 분포・성적 등 시간에 따른 변화를 알아보기 쉽게 표와 그래프를 만들었다. 어떻게 해왔는지 주석을 달고, 요점 정리한 교제도 덧붙였다.
식사 장소도 예약해 두었다.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자리가 아니다. 좋은 사람과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나누는 식사는 기분을 좋게 만든다. 공감대가 형성되면 신뢰도 쌓이게 된다. 애로 사항과 개선점을 찾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취향도 알아가고 친밀한 사이로 다가갈 수 있다. 부사장은 개척교회를 본 듯한 인상을 받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프로젝트나 사업이 실패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전문지식이 부족하거나 업종을 잘못 선택 하거나 혹은 외부 환경의 영향 등 다양한 원인이 실패로 이어진다. 공부방을 인수하면 쉬운 일을 아내는 새로 시작했다. 내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공부방에서 학원으로 확장할 때도 시설 기준에 맞게 허가를 받고, 교육청에 사업장을 신고할 때도 그랬다. 벽을 막고 벽지를 바르고 환경을 꾸미는 일을 하면서 전문가의 손이 필요한 것을 빼고는 손수 해냈다. 주말이면 온 가족이 장갑을 꼈고 학원문을 열고서는 컴퓨터에 매달려 전단지를 제작하고 수업 자료를 만들고 문제지를 체점했다.
학업성적이 오르자 학원은 급성장했다. 그래서 였을까? 00출판사 회장님과 미팅 일정이 잡혔다. 직급, 역량, 지식, 지혜, 재산 등 뭐 하나 뛰어난 게 없는데 그런 그녀가 그를 만난다. “뭐 준비한 것 있어요?” “그러게 뭘 사갈까요?” 우리 가족은 또 야근을 했다.
아내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높은 사람을 만나면 말문이 막혀 부담을 느끼기 마련인데 그런 면이 보이지 않는다. “황지점장은 정말 잘하네요. 정말 멋집니다.” 준비해간 서류를 보고 회장님이 말했다. 아내는 순간 당황했다. 평상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 그때는 달랐다. 내 실력이 아니라 가족이 노력해서 만들어낸 결과라 다른 말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모든 일을 혼자서만 해내야 하는 건가? 같이 함께한 것은 내것이 아닌건가? 아내는 그때 잘못된 판단을 했다.
여러 해가 지났다. 나이 오십을 넘어 대학원에 다닌다. 직장을 다니는 것도 쉽지 않은데 거기에 공부를 더했다. 단순히 몸을 바쁘게 움직인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업무를 소화하면서 학업에 집중하고 과제를 해내는 건 의지와 집중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두 번째 책을 냈다. 첫 책이 나오던 그때의 기쁨이 선명한데 얼마 안 돼서 또 출간된 것이다. 이번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은 대학원 동기들과 함께 만들어 낸 결과라 더욱 달랐다.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함께·같이·우리라는 의미가 더해진 것이다. 준비하는 동안 새로운 경험을 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의견이 갈리기도 하고, 여러 사람의 글을 조화롭게 엮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런 순간을 서로 노력하며 풀어가는 과정에서 돈독함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여섯 명이 쓴 글을 합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색깔과 생각을 조화롭게 엮어 만든 미래의 언약 같은 것이었다.
아내는 혼자일 때 보다 함께일 때 빛나는 사람이다. 단지 일을 잘 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목표를 향해 나가며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을 즐긴다. 그녀의 영향력은 상당히 넓고 깊다. 독특한 역량을 가졌다. 아내는 스스로 길을 닦고 몸으로 부딪히며 성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때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려 했던 그였지만, 과거의 착오가 자양분이 되어 다시 새롭게 싹을 틔우고 있다. 여러 사람과 어깨를 같이 하며 함께 빛나는 법을 배운다. 그동안 쌓인 경험이 단단한 성곽이 되고 그 안에 성을 쌓는다. 얇던 귀도 한층 더 두꺼워졌다. 함께하는 이들과 마음을 나누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녀가 만들어 가는 미래가 누군가의 추운 겨울에 따뜻한 불씨가 되길 바란다.
첫댓글 멋진 아내분께 박수를 보냅니다. 남편의 지지가 넘치니 행복하겠네요.
오, 황 씨!
이렇게 멋진 동반자가 옆에 있어 선생님도 자극받아 열정적으로 사시는 건가요?
아내를 존경하는 마음이 보입니다. 두분도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는 것 같네요.
와, 이렇게 남편에게 인정 받는 아내라니. 두 분다 멋지세요.
아내분이 사업하며서 늦은 나이에 학업도 계속한다니 대단하네요. 박수.